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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쿠농/단편 2015. 2. 21. 12:01[청흑] 공유감정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이번에 올리는 글은 작년초 서코에서 급하게 중철본으로 냈던 책이었습니다. 표지도 급하게 하는 바람에 그지같이 했구... 그래서 전혀 팔리지 않았던 책이었습니다. 사실 저라도 그런 책은 사지 않았을 거에요 ㅋㅋㅋㅋ 결국 이 책들은 바로 처분해서 지금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때 부족함이 많았던 책을 사주신 지인분들 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ㅠㅠ 진짜 제가 더 맛난거 많이 사드릴게요ㅠㅠ
어째든 거의 1년동안 묵혀둔 글을 이제야 생각나서 올립니다. 아마 이 글은 현재 버려두고 있는 네이버블로그에도 올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재밌게 봐주세요.
그리고 맛점-입니다 헤헤헤
모든 게 재미없었다. 새 교복을 입고 새로운 학교로 들어가서 백넘버 5가 새겨진 검은색 유니폼을 받고, 새로운 녀석들을 만나도 아오미네 다이키의 흥미를 끌 수 없었다. 지루함에 하염없이 하품이 나오고 별 이유 없이 졸음이 밀려왔다. 같이 토오학원 고등학교로 진학한 소꼽친구인 모모이 사츠키가 아오미네에게 앞으로 같이 팀플레이할 농구부원들이랑 인사라도 하라고 닥달했지만 그는 그마저 귀찮았다.그런 아오미네에게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을 하면서 좋아하는 농구를 하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 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농구는 이미 중학교 때부터 흥미를 잃었다. 농구가 재미없기때문에 모든 게 재미없었다는 것이 맞았다. 아오미네는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는 게 괴로웠다.
모모이가 감독의 명령이라며 틈만 나면 옆에서 방과 후에 체육관에 오라고 떠드는 바람에 그녀에게 진 아오미네는 결국 처음으로 농구부원들이 연습하고 있는 체육관으로 갔다. 교복을 입고 있는 그와 달리 부원들은 체육복을 입고 열심히 패스 연습했다. 그런 그들에게 불쾌한 땀냄새가 나 아오미네는 눈살을 찌푸렸다.
감독이 아오미네에게 연습시간에 오라고 한 것은 그가 아무리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해 바로 레귤러선수가 되었어도 신입부원이면 적어도 알고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것을 배우기 바람이었다. 감독의 말에 아오미네는 자기는 연습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으로 들어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감독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연습과 부원으로서 해야하는 일은 다르다고 단정지었다. 아오미네는 감독이 보이는 앞에서 대놓고 열 받았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허나 혈기 왕성한 그보다 연륜이 있는 감독은 무시하고 모모이를 시켜 다른 사람을 불렸다.
감독의 명령대로 모모이는 체육관안을 돌아다니며 그 사람을 찾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이름을 외치면서 찾는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이름은 쿠로코이고 아오미네와 모모이보단 선배인 듯했다. 기껏 왔는데 하는 게 선배나 소개 받는 귀찮은 일이라고 하니 아오미네로선 점점 짜증이 밀려왔다. 중학교때부터 선배라는 건 그에게 부담이었다. 선배가 있어봤자 그는 그들에게서 배울 게 없었다. 실력으로만 인정을 받는 스포츠 계에서 어차피 아오미네를 농구 실력으로 이길 수 있는 선수는 고등학교 내에서 없었다.
꽤 오랫동안 아오미네는 쿠로코라는 사람을 찾고 있는 모모이를 말없이 보고 있는데 그 때 뒤에서 감독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 옆에서 자료를 보고 있던 감독도 놀랐는지 조금 당황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쿠로코 군, 매번 뒤에서 나타나면 놀랍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다음부턴 주의하겠습니다.”
“뭐야, 전혀 검지 안잖아!”
감독이 부른 그 선배는 농구부원에 맞지 않는 작은 체구였고 쿠로코라는 이름과 달리 옅은 하늘색 머리와 피부가 다른 사람보다 하얀 남자였다. 피부가 하얗다고 해서 예쁘장하다는 게 아니라 피부색 때문에 존재감이 옅어보였다. 얼마든지 눈 앞에서 투명인간이 되어 사라진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정도였다.
감독은 아오미네에게 이 사람이 쿠로코 테츠야이며, 그 보다 선배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아오미네가 부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알려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오미네와 같이 그 말을 들은 쿠로코는 감독 옆에 있는 그를 빤히 보다가 다시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감독을 보았다.
그는 자신을 아무 감정없이 빤히 보는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부담스럽거나 싫다고 표현하면 이쪽에서도 알아서 맞받아칠텐데 오는 게 없으니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아오미네는 그렇다면 이쪽에선 제멋대로 할 거라고 다짐했다.
아오미네의 개별 교육 담당이 된 쿠로코는 연습은 잠시 멈추고 다른 부원들의 연습에 방해가 되지 않게 구석으로 그를 데려가 농구부 주장인 이마요시를 비롯해 현재 토오농구부 레귤러가 누구인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체육관을 나와 부실이 어디에 있고, 앞으로 아오미네가 쓸 캐비넷이 어떤 건지 알려주었다.
쿠로코가 힘없는 목소리로 단조롭게 가르쳐주고 있는 동안 아오미네는 그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어차피 연습에도 잘 안 나오는 것만큼 부실에도 잘 가지 않을 것 같아서 어디에 있는 지 자기가 쓸 캐비넷은 어떤 건지 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마음이라도 알았는지 부실 안에서 공동으로 쓰는 물건들이 무엇이 있고 어디에 있다고 말하던 입을 다물고 그를 올려다 보았다. 아오미네도 표정을 굳히고 그를 내려다 보았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말도 오고가지 않았다. 그러다 먼저 고개를 돌린 건 쿠로코였다. 그는 다시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물품에 대해 마저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아오미네는 어떤 반응을 해야하는지 알 수 없어서 적잖이 당황했지만 티내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무튼 아오미네에게 쿠로코는 감독보다 더 부담스럽고 모모이보다 더 짜증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로부터 아오미네가 모모이의 닥달에 못 이겨 방과후에 체육관에 오면 어김없이 쿠로코는 그에게 다가가 부활동에 관한 교육을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 가르쳐줬던 것 그대로 처음부터 주장이 누구이며, 부실은 어디에 있고, 아오미네의 캐비넷은 어디에 있고, 부실에 있는 물품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를 반복적으로 가르쳐주었다. 같은 내용을 가르쳐주는 중간에 전체 토오 농구부원들, 부실을 사용할 때 주의점과 아침, 방과후, 주말 연습시간에 대한 정보를 추가해서 가르쳐주기도 했다.
대충 교육 받았던 아오미네는 계속해서 같은 걸 가르쳐준 쿠로코에게 버럭 화내며 그만하라고 했더니 쿠로코는 아오미네의 험악한 얼굴을 보고도 그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교육 받는 태도가 불성실해서 한번 가지고는 못 알아 들을테니 계속 알려드리는 겁니다.”
그 때 만큼은 쿠로코가 후배인 자기에게 쓰는 경어조차 듣기 싫어졌다.
결국 쿠로코 때문에 그렇게 듣기 싫은 교육을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록 반복해서 들은 아오미네는 억지로 알고 싶지 않아도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게 되었다. 그러다 주말에 본가에서 늦잠을 자고 있다가 우연히 시계를 보고 주말 연습시간이구나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 했을 땐 왜 이런 걸 생각하고 있나 싶어 자괴감과 함께 쿠로코에 대한 분노가 점점 쌓여갔다.
그래서 아오미네는 쿠로코가 자신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서 교육을 하려 온 쿠로코를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가 옆에서 자신에게 말을 거는 걸 알고 있어도 상관하지 않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 들리도록 노래를 틀었다. 레귤러 선수이지만 후배 주제에 선배인 자신을 정말 대놓고 무시하는 걸 쿠로코가 모를리가 없었기에 그는 아오미네의 무례함을 보고 그제서야 무표정을 치우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이 처음으로 쿠로코가 보여준 감정의 표현이었다. 비록 좋지 못한 감정이라도 그것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왠지 아오미네를 즐겁게 만들었다.
토오학원은 전원 기숙생활을 해야하는 그런 학교는 아니었지만 1학년은 집이 어디에 있든 무조건 기숙생활을 해야했다. 그건 집이 이 근처인 아오미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게 학교에서 주는 맛없는 저녁급식을 먹고 급식실에서 홀로 나온 아오미네는 소화도 시킬 겸 학교 안을 산책하기로 했다. 급식시간동안 산책하는 학생은 아오미네 말고도 제법 많았고, 출입구 쪽에는 당직 선생들이 학생들이 무단으로 학교밖으로 외출하지 않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과 같이 있는 게 어색한 아오미네는 그들이 자주 가지 않을 체육관 쪽으로 갔다.
토오학원에는 농구부만 있는 게 아니였다. 그래서 고시엔이 얼마 남지 않아 체육관 근처에서 야간 훈련을 하고 있는 야구부를 보면서 아오미네는 눈살을 찌푸리고 결국 농구부가 쓰는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향할 수 밖에 없었다.
무심코 오늘은 저녁 연습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 그는 체육관의 불이 반정도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그러면서 과연 누가 미련하게 연습하고 있는지 창문을 통해 살펴보니 쿠로코가 혼자서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방과 후 체육관에 올때 마다 쿠로코가 아오미네를 데리고 어떻게든 교육을 시키려고 했기때문에 아오미네로선 그가 연습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첫인상에서도 느꼈듯이 쿠로코의 농구 실력은 형편이 없었다. 혼자서는 드리블을 곧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렇게 느린 속도로는 사람을 상대하는 건 어림도 없다. 그리고 드리블하다가 점프슛을 날리는 폼도 정확하지만 전혀 골대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정도 실력이면 토오는 물론이거니와 중학교 때도 절대 레귤러가 될 수 없었을 터였다.
이렇게 실력이 형편없는데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건 그만큼 농구를 좋아하고 있다는 거지.
아오미네에겐 이제 사라진 그 마음을 저런 실력의 쿠로코가 가지고 있다는 느낌에 질투가 났다. 그래서 연습하고 있는 쿠로코를 방해하고 싶었다.
잠기지 않는 체육관 문을 힘주어서 큰소리가 나도록 열자 쿠로코는 드리블하다 깜짝 놀라서 저도 모르게 투스텝을 하고 말았다. 아오미네는 그런 그를 보고 그래도 손에서 공을 놓치지 않는게 용하다 생각했다.
“네가 웬일로 체육관에 스스로 왔습니까.”
조금 톤이 높아진 쿠로코의 말에 단번에 대꾸하지 않는 아오미네는 체육관 입구에 몸을 기대어 결코 안으로 들어오려고 온 게 아님을 어필했다.그리고 그 무표정한 얼굴로 빤히 보는 쿠로코에게 자신이 질문했다.
“뭐 하러 열심히 해. 완전 형편없던데.”
날이 선 아오미네의 말에 쿠로코가 시선을 살짝 내리고 보일듯 말듯하게 웃었다. 아마도 아오미네의 말대로 형편없는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조적으로 웃고 있는 게 맞을 것이다.
“좋아하는 걸 더 잘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쿠로코의 대답을 들으니 아오미네는 목 안쪽이 꽉 막혔다. 마치 없애버리고 싶던 자신의 미련함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듯했다.
어서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아오미네는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걸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때 자신을 향한 예리한 감각과 농구공이 마룻바닥을 튀는 짧은 소리가 들러서 다시 돌아보니 농구공이 빠른 속도로 정확히 자신에게 날려왔다. 아오미네는 무의식적으로 공을 잡았고 그런 그를 쿠로코가 흐뭇하게 보았다.
“아오미네 군도 같이 하시겠습니까?”
쿠로코의 말이 아오미네의 귓속에서 울리고 탄력을 받은 공으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공이 떨고 있었다.
아오미네는 자꾸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쿠로코가 짜증이 나서 체육관 입구에서 골대를 향해 공을 힘껏 던졌다. 그가 한 손으로 던진 공은 매끄러운 포물선을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힘들게 연습 같은 거 안 해도 누구보다 잘하니까 소용없어.”
“농구가 재미없습니까?”
아오미네의 말에 쿠로코가 다소 다급한 목소리로 물어보았지만 미련없이 뒤돌아 체육관을 떠나는 그에게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한참을 체육관 입구를 보고 있던 쿠로코는 아무 표정 없이 아오미네가 던진 그 공을 주었다.
그날 이 후로 전혀 체육관을 들리지 않았던 아오미네에게 모모이가 이번 주 토요일에 연습 시합이 있으니 이번만이라도 참가하라고 애원했다. 귀찮으니까 따라붙지 말라는 그에게 모모이가 이번 연습 시합은 도쿄 3대 왕자 중에 하나인 센신칸이랑 할 거라고 말해도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습경기 당일인 토요일이 되자 아오미네는 아예 집에도 가지 않고 남자기숙사에만 있었다. 남자 기숙사엔 여학생이 들어올 수 없어서 모모이도 들어올 수 없기에 아오미네가 스스로 기숙사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그녀는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간간히 모모이의 부탁을 받은 사감이나 다른 녀석들이 대신 아오미네를 찾아왔지만 그들도 아오미네가 나가지 않겠다고 단단히 으름장을 놓으면 금세 포기하고 말았다. 그걸 노린 아오미네는 밖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모모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쾌재를 불렸다.
한숨이라도 잘 생각에 한숨을 하고 있던 그는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감았던 눈을 떴다. 이번에는 녀석인지 몰라도 금세 포기하게끔 만들어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방문을 세게 열었다. 그러자 문 앞에는 그와 안 어울리는 검은색 토오 농구부 저지를 입고 있는 쿠로코가 있었다. 쿠로코는 아오미네를 올려다보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조금 늦어지면 연습 시합에서 아예 지각하고 맙니다. 서둘러 주세요.”
“사츠키가 시켰냐? 그럼 얘기도 들었겠지. 안 나간다고.”
“네 뒷바라지 하는 모모이 씨도 생각해주세요. 다른 팀원들이랑 같이 가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럼, 네가 나 대신 가서 하던가. 아무튼 난 안 가.”
아오미네는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고 방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그 순간 쿠로코가 손으로 방문을 잡고 그 사이에 몸을 집어 넣었다. 그 때문에 문이 닫혀지지 않자 아오미네의 짜증을 점점 극에 달했다.
“비켜.”
“나오지 않는 이상 여기에 계속 있을 겁니다.”
“2군 선수 주제에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결국 아오미네는 선배인 쿠로코를 밀치고 틈이 생긴 그의 복부에 주먹을 날렸다. 화가 난 상태에서 힘을 잔뜩 실린 주먹이었기에 쿠로코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명치가 아닌 복부에 맞았는데도 숨 쉬기 어려운지 쿠로코는 허리를 굽히고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겨우 한 대 맞고 저렇게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그를 보니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약해 빠진 게 보여서 더 이상 상대하기 싫어졌다. 주위에 있는 몇몇 애들이 그들을 보고 웅성거리는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쯤이면 충분히 경고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 아오미네는 쿠로코를 내려다보다가 뒤돌았다. 그 때 안 좋은 예감이 들어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어느 새 일어난 쿠로코가 손바닥을 들어 올리더니 순식간에 아오미네 배를 강하게 때렸다. 빌빌거리는 녀석이라고 우습게 봤는데 아오미네의 배를 때린 그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복근을 찌릿하게 울리는 통증과 내장이 파열될 것 같은 고통에 아오미네도 한동안 숨쉬기 어려웠다. 게다가 다리 힘도 풀려서 그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않았다. 쿠로코는 아픈 배를 만지고 그를 내려다 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에게 함부로 손찌검하지 마세요. 오늘은 이쯤에서 끝나지만 다음에는 기절해서 데려갑니다. 망할 개새끼야.”
그리고 쿠로코는 아직도 움직이지 못하는 아오미네를 버려두고 기숙사를 나가버렸다. 아오미네는 그의 조용한 발소리를 들으면서 저 자식을 절대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이를 갈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마 그때부터였다. 아오미네가 정말 못 말리는 망나니가 된 것이.
원래 성격이 개차판인 것은 알았지만 적어도 남들이 연습하는데 방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나오지 못한 연습 시합 이후부터는 1군이든, 2군이든 가리지 않고 자신의 눈에 뜨이면 연습을 방해하면서 괴롭히고 있었다. 게다가 더 심각한 건 일부러 체육관에 일찍 나와서 마찬가지로 일찍 나와서 연습하고 있는 부원들을 상대로 1대5 내기 농구였다. 물론 1대5라는 수적으로 불리한 핸디캡을 아오미네 본인이 스스로 만들었어도 그 부원들은 그를 상대할 수 없었다. 자신의 것들 모두 쏟아부어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 차이에 그 부원들은 모두 농구에 대한 흥미를 잃고 그만 퇴부하고 말았다. 그 중에는 레귤러들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실력이 있고 미래도 밝았던 1군 2학년 선수들도 있었다. 그런 일들이 계속되자 감독도 참지 않고 아오미네에게 직접 주의를 주었다. 그럴 때마다 아오미네는 그의 앞에선 알겠다고 말했지만 그의 악행은 감독이 없어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었다. 감독으로도 그를 제어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감독이 학교 건물에 간 사이, 체육관 단상에 가만히 누워있던 아오미네가 슬슬 자리에 일어나더니 가까이 있는 부원들에게 말을 걸었다. 당연히 아오미네랑 엮이고 싶지 않았던 부원들을 서로 눈을 맞추고 자리를 피했다. 자신을 대놓고 피하는 그들을 보니 화가 치밀고 했고 무서워하는 그들이 웃기도 해서 그는 따라가 엄청 괴롭혀 주려고 했다. 그 때 갑자기 쿠로코가 나타나 그들에게 가고 있던 아오미네의 팔을 잡았다. 쿠로코와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던 그는 거칠게 잡힌 팔을 떼어 놓았다.
“이제 부원들을 괴롭히는 건 그만하세요.”
“그만 안 두면 어쩔 건데. 또 때리실 겁니까? 선배님?”
“아오미네!”
실실 약 올리면서 시비를 거는 아오미네가 정말 화가 난 쿠로코는 평소라면 나오지 않을 큰소리로 외쳤다. 전에 아오미네가 자신을 무시 했을 때 약간 미간을 찌푸리는 것과 달리 이번에는 온몸으로 분노했음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 아오미네는 잠깐 움찔거렸지만 그래도 지지 않기 위해 그에게 바짝 다가가 같이 노려봐주었다. 둘 중에 누구도 서로에게 지지 않았다.
“나에게 화났으면 나한테 푸세요! 왜 애꿎은 부원들만 괴롭히지 못해 안달입니까!”
“내가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지금 네 녀석이 하는 짓은 팀을 망치는 겁니다!”
“그럼 너는 이 팀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뭔데? 이 팀의 목표는 오로지 이기는 거야. 근데 넌 2군 시합도 못 나갈 정도 실력이 거지 같고 입만 살았지 하는 건 하나도 없잖아!”
“팀은 이기는 것만 다가 아닙니다. 팀은 모두가 같이 나아가야 그 의미가 있고, 그만큼 팀메이트는 소중해요!”
“순진하게 이상만 쫓고 싶으면 너나 이 버러지 같은 녀석들이랑 잘 지지고 볶고 해봐! 굳이 나에게 강요하지말고!”
“나가!”
결국 쿠로코가 먼저 제 분에 못 이겨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다른 부원들이 말릴새도 없이 아오미네의 멱살을 잡았다.
“너 같이 팀메이트를 우습게 보는 녀석은 여기에 있을 필요 없어! 꺼져!”
자신에게 이렇게 진심으로 화내는 사람이 없었던 아오미네는 지금의 쿠로코를 보고 놀랐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도 종종 화냈지만 다들 그의 고집에 기가 꺾이고 피하면서 포기했다. 그런데 쿠로코는 다르다.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면서 끝까지 싸운다. 간만에 남자다운 녀석을 만났다고 생각한 아오미네는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쿠로코의 손을 떼어 놓았다. 그리고 그에게 사악하게 웃으면서 이딴 거 거리낌 없이 나가주겠다고 말한 다음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체육관을 나갔다. 곧 있으면 인터하이 본선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팀은 아오미네를 필요로 할테고 그러면 다시 찾아 올 터였다. 만약 그 때 자신에게 화낸 쿠로코가 와서 사과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즐거워서 소름이 돋았다. 반드시 자신 앞에서 그 자존심 강한 무릎을 꿇게 해서 그날의 복수를 이루겠다고 생각했다.
인터하이 본선이 시작되자 아오미네의 예상대로 모모이가 찾아와서 퇴부처리 안했으니 다시 돌아오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모모이만으로 되지 않자, 주장인 이마요시도 찾아오고 심지어 감독도 아오미네를 불려서 나오라고 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오미네가 원하는 건 쿠로코 테츠야가 직접 찾아와서 자신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알면 그렇게 하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후, 토오학원이 인터하이 8강전에서 중학교 동창이자 같은 기적의 세대인 미도리마가 있는 슈토쿠에게 졌다는 얘기가 들리고 난 뒤 아오미네는 집에 찾아온 모모이에게 쿠로코가 퇴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동안 집에만 지내면서 쿠로코가 자신에게 사과하기만 기다리고 있던 그로선 적잖은 충격이었다. 아오미네는 쿠로코를 정말 싫어했지만 그래도 농구를 좋아하고, 농구에 대한 진지한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퇴부했다고?
아오미네가 아무말도 못하고 있자 모모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인터하이에서 진 걸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나가신 거니까, 쿠로코 선배님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돌아오란 말이야.”
그녀의 말에 아오미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후, 다시 농구부로 돌아오니 주장인 이마요시는 반가워 했지만 나머지 부원들은 탐탁치 않게 보았다. 하지만 그들 누구도 아오미네에게 인터하이에 멋대로 나오지 않는 일에 대해 화내거나 따져 들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자기들끼리 연습하고 있었고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쿠로코는 보이지 않았다. 만약 쿠로코가 여기에 있었다면 그 특유의 무표정으로 멍하니 서있는 아오미네를 단단히 혼내주고 대드는 자신을 데리고 다시 기초교육부터 실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그럴 사람은 이제 여기에 없었다.
아오미네가 천천히 노을을 등지고 걸어가는 골목에는 사람이 없어서 한적했다.
그는 모모이가 알려준 쿠로코의 집 앞에 도착했다. 학교에선 제법 떨어져 있는 그의 집은 어느 집과 다름이 없는 평범한 2층식 목조건물이었다. 그래도 자신의 집보다 좀 작다는 생각에 들어가기 전부터 답답하게 느껴졌다.
막상 집에 도착하고 초인종을 누르려고 하니 망설어졌다. 안 그래도 마지막으로 봤던 그 때 아오미네는 쿠로코에게 진심으로 사라지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런 마당에 얼굴 가죽을 철판으로 단단히 무장한 아오미네라고 해도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부담이 안 될 리가 없었다. 해가 지평선까지 져서 주위가 제법 어두워질때까지 그는 쿠로코의 집 앞에 서 있었다. 쿠로코의 집은 아직 전등을 켜지 않았다.
몸살에 걸려서 학교에 못 왔다고 들었기에 집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전등을 켜지 않는 건 아무래도 지금 집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제발 집에 아무도 없길 바라면서 아오미네는 드디어 초인종을 눌렸다.
초인종 벨소리는 제법 오랫동안 울렸다. 그리고 반응이 없었다. 아오미네는 역시 집에 아무도 없는 게 맞다고 단정지었다. 그래서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집에서 시선을 돌리고 뒤돌았는데 그때 쿠로코의 집 거실 전등이 켜지고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즈막한 기침소리와 함께 쿠로코가 집에서 나왔다.
몸살이 단단히 걸렸는지 쿠로코는 잠옷 위에 두꺼운 담요를 두르고 나왔다. 아오미네는 그런 모습에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평소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누구세요라고 물어보던 쿠로코는 현관문 앞에 있는 아오미네를 보고 입을 다물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아오미네가 말없이 자신을 빤히 보고 있기만 하는데도 쿠로코는 그를 내쫓지 않았다.
자신보다 큰 아오미네를 올려다 보던 쿠로코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다가 기침이 나와버렸다. 기침이 쉽게 멈추지 않는지 그는 허리를 숙이면서까지 기침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당황한 아오미네는 다가가 등을 두드려 주려 했다. 하지만 쿠로코가 다가오는 아오미네의 손을 쳐내고 괜찮다면서 거부했다. 그렇게 그는 그 날부터 지금까지 아오미네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잠시 후 스스로 기침을 진정시킨 쿠로코가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다가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왜 여기까지 왔냐고 물어보았다.
“왜, 그만 둔 거야. 농구 좋아하잖아.”
“2군 선수가 그만두는 이유를 직접 들어서 자위하려고 왔습니까? 좋아하는 것과 팀에 공헌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걸 알려 준 게 아오미네 군이고요.”
“그동안 포기 하지 않았다며! 근데 나 때문에 그 노력 다 물거품 만들 거냐고!”
“악어의 눈물이라니 정말 잔인하시네요.”
쿠로코의 말은 하나하나 예민하게 날이 서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는 그의 말에 오히려 아오미네가 괴로워졌다. 이유는 다르지만 더 이상 농구를 즐길 수 없어서 괴로워했던 중3때 자신의 모습과 쿠로코가 자꾸 겹쳐졌다.
“아오미네 군은 나 같은 게 어떤 마음으로 농구를 그만 둔 지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그 오만과 이기심으로 다른 부원을 무시했던 것처럼 나도 무시하세요.”
“그래, 나는 엄청 이기적이라서 몰라. 그러니까 그 감정이 어떤 건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려줘.”
괴로운 표정으로 애원하는 아오미네의 말에 쿠로코는 되려 화가 났는지 두르고 있던 담요도 던져버리고 주먹으로 아오미네 얼굴을 때렸다. 하지만 몸살 때문에 힘이 없어서 아프지 않았다. 쿠로코 본인도 자신이 힘이 없어서 만족스럽게 때리지 못한 걸 아는지 이를 꽉 다물고 잇새 사이로 욕했다. 몸살 때문에 몸이 약한 상태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바람에 머리가 어지러워 잠시 비틀거렸다. 그래도 쿠로코는 멈추지 않고 주먹으로 아오미네의 가슴팍을 마구 때렸다.
“미쳤어? 나한테 왜 그래. 널 보는 걸로 괴로워하는 날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 셈이야!”
“나도 내가 왜 이러는 지 몰라! 그저 당신을 다시 농구부에 데려오고 싶었어!”
아오미네는 자신을 때리는 쿠로코의 두 팔을 잡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눈을 마주치지 않았던 쿠로코가 아오미네를 올려보았다. 눈물로 글썽이고, 빨갛게 충혈된 눈에는 분노만 가득했다. 아오미네는 잔뜩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는 쿠로코의 어깨가 전보다 작아 보여 제 품에 안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쿠로코의 팔을 잡고 있는 손으로 그를 끌어 당겨보았지만, 쿠로코는 아오미네의 가슴팍을 때리고 있던 두 손을 그의 어깨에 대고 안기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었다. 서글퍼졌다.
한참을 현관 앞에서 그러고 있던 쿠로코는 아오미네에게 떨어졌고 아오미네도 그를 잡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엔 아무 말이 오가지 않았다. 그러다 어색한 분위기에 핸드폰을 확인하던 아오미네가 이제 가야겠다고 말했지만 쿠로코는 떨어진 담요를 주우면서 시간이 늦었고 오늘 부모님도 늦게 오신다고 했으니 자고 가라고 했다. 선배인 자신이 기숙사 사감과 아오미네의 부모님에게 그가 여기서 자고 갈 거라고 전화해주겠다고 후배를 안심 시키는 쿠로코의 배려를 아오미네는 거부하지 않았다.
아오미네가 집에 들어오고 현관문을 닫은 쿠로코는 몸살 때문에 저녁을 못 챙겨주니 알아서 우유에 시리얼을 먹으라고 했지만 아오미네가 식욕이 없다고 하자 그는 주방에서 컵과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챙기고 그와 같이 2층으로 올라갔다.
처음으로 들어간 쿠로코의 방은 작아서 책장이 붙어있는 책상과 서랍, 싱글 침대만 들어가도 방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쿠로코가 아오미네에게 음료수를 따라 줄 때까지 두 사람을 계속 말이 없었다. 아마도 현관문 앞에서 서로에게 있던 감정을 모두 소진한 탓일지도 모른다. 아오미네는 쿠로코가 건네주는 음료수를 마시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몸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푸른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도 쿠로코의 눈가는 빨갰다. 남은 음료수도 다 마시고 고개를 살짝 숙여서 보니 빨갛게 충혈되었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혀 있었다. 아직도 쿠로코에게 분노와 슬픔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보였다. 아오미네는 그런 그를 보면서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하다 옆에 아무렇게 내려둔 외투를 집었다. 작은 먼지라도 있을지도 모르니 손으로 탈탈 털어내고 그의 머리위에 얹어주자 쿠로코가 놀란 눈으로 아오미네를 보았다. 아오미네는 말없이 쿠로코의 눈이 보이지 않도록 외투를 깊숙히 쓸 수 있게 잡아 당겼다. 의도대로 외투에 가려 쿠로코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는 입술을 깨물어 우는소리가 나지 않게 참았고 흐느낌을 참기 위해 어깨에 힘주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이윽고 살짝 보이는 볼과 턱에 눈물 한 방울이 흘려 내렸다. 그렇게 눈물은 계속 나와서 입꼬리에 살짝 고이고, 이내 다시 아래로 흘렸다.
“너 같은 거 정말 싫습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쿠로코는 덮고 있는 아오미네의 외투를 두 손으로 꽉 잡고 더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고 자기 앞에 있는 외투 주인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아오미네는 그런 그를 내치지 않았다. 그저 억누른 흐느낌을 들으면서 쿠로코 어깨에 손을 차분히 올려두었다.
울다가 지친 쿠로코를 차마 차가운 방바닥에 둘 수 없었던 아오미네는 그를 깨워봤지만 정말 깊게 잤는지 일어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결국 쿠로코를 겨우 들어서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역시 그도 남자라서 보통 무게가 아니었기에 침대에 내려줄 때 거의 던지다시피 내려준 것 같은데도 쿠로코는 얕은 숨을 내쉬면서 그대로 잤다.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오미네는 침대 옆에 앉아서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이나 가도록 보고 있자니 아까 외투를 덮어쓰고 눈물 흘렸던 쿠로코의 볼과 턱이 떠올랐다. 눈물이 잠깐 고였던 입술도 떠 올랐다. 그는 여자들보다 옅은 입술을 깨물고 있어서 살짝 핏기가 돌았었다. 아까의 입술과 비교하면 지금 자고 있는 쿠로코의 입술은 핏기도 없고 각질도 일어났다. 여자의 것에 비하면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을 터. 하지만 아오미네는 무릎을 꿇어 자리에서 살짝 일어났다. 그리고는 침대에 올려준 대가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내려 제 입술을 쿠로코의 입술에 댔다. 자신의 심장이 귓가에서 뛰고 있었다.
쿠로코의 작은 방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던 그 날 밤. 아오미네는 꿈을 꾸었다.
그는 농구 코트가 있는 체육관에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중학교에 있던 체육관이나,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의 체육관과는 다른 곳이었다. 그 낯선 곳 가운데에는 교실에 흔하게 있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의자 두개가 마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들 중 하나에 쿠로코가 앉아있었다. 아오미네는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그 쪽으로 걸어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앞만 보고 있던 쿠로코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은 처음 만났을 때 봤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눈이었다. 쿠로코는 다가온 아오미네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아오미네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 만지면서 느리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농구 많이 좋아했어. 그래서 남들 보다 더 잘하고 싶어서 그쪽처럼 밤이 늦도록 연습하고. 그렇게 농구를 잘하게 되었는데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랑 농구 하기 싫어하더라. 나를 보고 절망하는 그 눈을 마주 보는 게 너무 무섭고 남들 말처럼 내가 정말 괴물처럼 보였어.”
그때를 떠올리는지 아오미네는 말을 끊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무표정한 쿠로코에게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어린 아이가 신부님께 처음으로 말하는 고해성사 같았다.
“그렇게 농구가 재미없어지고나서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내가 너무 슬퍼 보였거든. 그런데 며칠 전에 본 그쪽 표정이 그때 나와 닮아서 그냥 무시할 수 가 없었어. 그 다음에 어떻게 될 지 아니까.”
말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오미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까 현관문에선 그가 쿠로코의 마음을 모른다고 했지만 사실은 겪어봐서 알고 있었다. 이유는 다를지언정 결국 그 마음은 똑같으니까. 그러니까 그쪽과 똑같은 자신을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진짜 속마음을 꼭꼭 숨기고 있는 아오미네에게 이번에는 쿠로코가 말했다.
“너는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 네가 농구 하던 모습을 본 적이었습니다. 그때도 저는 벤치에도 못 들어가는 2군 선수였고 너는 레귤러선수에다가 테이코의 기적의 세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실력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농구 하는 너의 모습에 반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게 질투도 나지만 그래도 동경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죠. 그래서 제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말에 좋아했는데 전과 달리 너무 변해버린 네 모습에 실망했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길 바랐습니다.”
어쩌면 이기적인 마음이었죠.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흘린 뒤 쿠로코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 후부터 두 사람이 있는 코트 안은 계속 조용했다. 그렇게 꿈이 끝났다.
쿠로코가 다시 돌아왔다. 토오에서 누구보다 중요한 에이스를 나가게 한 원인인 된 책임으로 퇴부했던 그를 다시 복귀할 수 있게 한 것은 그 때문에 퇴부소동을 벌였던 토오의 에이스 아오미네였다. 감독에게 쿠로코의 복귀를 허락해달라고 부탁한 아오미네는 결국 그것을 빌미로 부원들이 하고 있는 모든 연습에 비롯해 당번이나 청소 같은 자잘한 일까지 모두 참여해야 한다는 감독의 조항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겨우 선배하나 때문에 이런 귀찮은 일에 휘말려야 하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쿠로코는 아오미네가 보기엔 누구보다 남자다운 남자였고 그런 그의 마음을 따라가고 싶었다.
다시 농구부로 복귀한 쿠로코는 다른 부원들이 모여있을때 그 앞에 서서 부원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다음부턴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좀 더 팀을 위해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아오미네는 과연 여기서 쿠로코가 사과하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일에 대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오미네의 악행이었고 그것을 막고자 하는 건 쿠로코이다. 어느새 쿠로코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있던 아오미네는 문득 자기 옆에 있는 부원들을 보게 되었다. 부원들은 쿠로코를 보면서 경멸하거나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들이 쿠로코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는지 그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들을 괴롭혔던 아오미네였지 쿠로코가 아니었다. 단지 인터하이에 졌다는 이유로 악당과 히어로가 뒤 바뀐 상황은 당사자로선 입맛이 씁쓸했다.
인사를 마친 쿠로코는 연습을 재개하겠다는 감독의 말과 함께 다른 부원들과 같이 연습에 들어갔다. 토오 농구부는 다른 강호 학교들에 비해 인원수가 적은 편이라서 1군, 2군이 나누어 있어도 둘 다 같은 체육관을 사용했다. 그래서 아오미네는 대충 연습하면서 옆에 2군 라인에서 연습하고 있는 쿠로코를 볼 수 있었다. 새삼 이렇게 보니 쿠로코는 2군 중에서도 체력도 좋지 못해서 연습하는 도중에 뒤쳐지는 편이었다. 그래도 쿠로코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기 분량을 빠짐없이 수행했다. 다른 부원들이 가끔씩하는 요행도 그는 하지 않았다. 시선을 잠깐 돌리면서 다시 찾기 힘들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데 정말 누구보다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에이스가 팀의 히어로면 저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아오미네는 점프슛을 날리면서 생각했다.
10분간 휴식시간은 1군이나 2군이나 똑같이 주었다. 흔히 쉬는 시간이 되면 저절로 1군은 1군끼리, 2군은 2군끼리 모여서 서로의 영역을 건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오미네는 2군 라인 근처까지 가 거기에서 혼자 벽에 기대서 앉아있는 쿠로코 옆에 라인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누가 다가왔나 싶어 고개를 들어 살펴본 그는 아오미네인 걸 보고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어이, 쿠로코.”
“뒤에 선배라고 붙으세요.”
“엉. 쿠로코 선배.”
“무슨 일 입니까.”
막상 무슨 일 때문이냐는 말에 아오미네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딱히 이유가 있어서 쿠로코에게 온 것이 아니었다. 그냥 옆에 있고 싶어서 몸이 저절로 간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오미네가 우물거리면서 아무 말을 못하자 쿠로코는 한숨을 쉬면서 아오미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키가 부쩍 큰 중학교 때 이후로 그동안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걸 당해 본 적이 없는 아오미네는 당황해서 쿠로코의 손을 쳐내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오히려 쿠로코가 아오미네를 이상하게 봤다.
“너, 뭐 하는 거야?!”
“선배한테 너라고 하지 마세요. 그리고 선배가 후배 머리 쓰다듬어 주는 게 뭐 어때서요? 동생 같아서 그러는 건데요.”
며칠 전에 쿠로코가 자신에게 마구 화냈던 게 아직도 떠오르는 아오미네는 그가 그 때와 달라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먼저 친근하게 다가오는 모습에 조금 안심이 되는 것도 있었다.
“나, 미워하는 거 아니였어?”
“맞아요. 지금도 아오미네 군에게 한 방 먹이고 싶습니다만 그러지 않을 겁니다.”
“왜?”
“비밀입니다.”
쿠로코의 말에 아오미네는 우리 둘 사이에 비밀이 어디에 있냐고 따졌지만 휴식시간이 끝났다는 벨소리가 들리자마자 쿠로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하러 가버리고 말았다. 아오미네도 라인을 넘어 그를 따라갔지만 이마요시가 어느새 뒤에 바짝 다가와서는 그를 잡고 1군 구역으로 데려가고 말았다.
“마, 아우하고 싶으믄 싶다하제 그랬나. 내도 있는디.”
“싫어, 필요없어.”
“남사시럽게 생각치 말고.”
아오미네는 자꾸 어깨를 치는 이마요시의 손길을 쳐냈다. 아무리 형이 필요한다고 해도 이마요시 같이 성격이 나쁜 남자는 질색이었다. 역시 형이라면 듬직한 쿠로코가 제격이리라.
인터하이가 끝나자마자 합숙을 한 바람에 남은 여름방학이 금세 끝나버렸다. 하필 합숙을 1군과 2군이 따로 간 바람에 아오미네는 그동안 쿠로코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합숙 뒤에는 잠깐 연습을 쉬기로 해서 합숙을 끝나고도 보지 못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나지 못하니 더 보고 싶은 맘이 쌓이고 있었다. 전에는 그렇게 보기 싫어했는데 왜 지금 보고 싶어서 안달일까. 하루는 합숙 도중에 너무 보고싶어서 모모이가 그녀의 핸드폰에 저장한 쿠로코의 사진을 몰래 보기도 했다. 그렇게 개학이 되고나서야 겨우 만났다.
개학 첫 날에도 부원들은 방과 후에 연습을 했다. 이제 곧 있으면 윈터컵 예선이 시작하니 지금부터 시간을 허투루 사용할 수 없었다. 그건 다른 부원들 이야기였고 아오미네는 아직까지는 별 감흥이 없었다. 예선이야 토오라면 간단하게 올라 갈 테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연습을 대충하고 있던 아오미네는 휴식시간이 되자마자 2군 구역에 있는 쿠로코를 불러냈다. 휴식 시간이라도 손에 공을 놓지 않고 있던 쿠로코는 자신을 불려낸 후배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무시했지만 무시한다고 포기할 아오미네가 아니었다. 결국 아오미네에 끌려서 나온 쿠로코는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그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어이없는 것이었다.
“쿠로코…… 선배, 내 캐비넷이 몇 번인지 모르겠어.”
“제가 너에게 그걸 얼마나 가르쳐 주었는데 그사이에 까먹었습니까? 당신은 아오미네가 아니라 멍청미네죠?”
“이름 함부로 바꿔 부르지마. 아무튼, 같이 부실 좀 가줘. 부실도 기억 안나.”
“조만간 네 몸에서 쓸모없는 머리를 뜯어 버리겠습니다.”
쿠로코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면서 먼저 부실로 가버렸다. 그 뒤를 아오미네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껄렁하게 가고 있는데 그 모양새가 마치 엄마 오리를 따라가는 다 큰 흑조를 보는 꼴이라서 그걸 멍하니 보고 있는 부원들은 이걸 보고 당황했다. 그러다 그들 사이에서 이마요시가 그걸 보고 낄낄대며 웃고나서야 다른 사람들도 어색하게나마 웃었다. 아오미네가 쿠로코랑 친하게(?) 지나고부터 토오 농구부 부원들은 하루하루 그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심정이 복잡해졌다. 그러면서도 1군 부원들은 무자비했던 폭군을 잠재운 쿠로코를 향해 몰래 절했다.
아무도 없는 부실에 들어온 쿠로코는 뒤따라 들어온 아오미네의 캐비넷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이거라고 가르쳐 주었다. 짜증을 손에 담았는지 캐비넷을 때리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캐비넷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던 우유맛 사탕하나를 캐비넷을 때렸던 쿠로코의 손에 쥐어주었다. 갑자기 그에게 우유맛 사탕을 받은 쿠로코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탕과 아오미네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학교에서 어떤 여자애가 줬어. 하나 먹어보니까 그 마지바의 바닐라쉐이크 맛이랑 비슷해서 주는 거야.”
“여자애가 준 걸 왜 저한테 주는 겁니까. 다음부턴 그녀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그러지 마세요.”
그렇게 말했으면서도 쿠로코는 잘 먹겠다며 사탕을 입에 넣었다. 정확히 그 바닐라쉐이크 맛이랑은 달랐으나 그래도 주는 정성을 생각해서 맛있게 먹어줬다. 달달한 맛이 입에 들어오자 짜증났던 쿠로코의 기분도 어느 정도 풀어졌다.
쿠로코는 의외로 표정이 많은 편이었다. 성격도 무덤덤해서 항상 무표정한 얼굴이긴 한데 눈썹이나 눈동자, 미간, 입꼬리를 자세히 보면 그가 어떤 기분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특히 기분이 좋아지면 쿠로코의 눈썹이 살짝 내려가고, 입꼬리는 정말 살짝 올라간다. 그래서 아오미네는 지금 쿠로코가 사탕을 먹고 기분이 좋아졌다는 걸 알아챘다.
그렇게 아오미네는 쿠로코의 감정을 하나씩 알아갔다. 아직은 짜증, 귀찮음, 남아있는 분노만 주로 보여주지만 가끔 좋다는 감정을 느끼면 그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중에는 쿠로코가 자신을 볼 때마다 기분 좋아지고, 만나면 반가워하고, 항상 사랑스럽게 봐주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우유맛 사탕을 주겠다며 아오미네는 사탕의 브랜드를 외우고 또 외웠다.
- 그리고 조금 뒤에 있을 이야기.
쿠로코는 떨리는 손으로 왼쪽 손목에 맨 손목밴드를 빼다가 다시 껴보고 했다. 그래도 긴장감은 해소되지 않았다. 같이 있는 다른 부원들은 각자 알아서 스트레칭도 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앞으로 30분 뒤에 있을 지역 예선전을 대비하고 있었다. 역시 한번이라도 경기에 나가본 부원들은 이 상황이 익숙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기가 데뷔전인 쿠로코는 너무 떨려서 미칠 것 같았다. 선발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듣기 좋은 말로는 식스맨으로서 참가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 없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는 코트에 서는 한 걸음, 한 걸음에 간절함을 담아야 했다.
앞으로 5분 뒤 경기가 시작한다. 이번에는 같은 지역구인 세이린과 경기를 치룬다. 전에 모모이와의 브리핑에는 세이린은 선수층이 얇지만 선수 개인의 능력이 뛰어났다고 했다. 게다가 카가미 타이가라는 선수는 파워 포워드인데 경이로운 고공 점프가 특기인 선수로 아오미네와 동갑이다. 그런 상대와 맞붙을 생각을 하니 쿠로코는 소름이 돋아 신발끈을 다시 맺다가 몸을 떨었다.
신발끈을 다 맨 쿠로코는 자리에 일어나 이미 코트에 서있는 선발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세이린은 예의의 카가미까지 포함해서 5명이 다 서있었지만 토오는 아직 네 명 밖에 없었다. 코트에 있는 와카마츠는 아직 안 온 나머지 한 명 때문에 이미 화가 잔뜩 나서 혼자서 성을 내고 있었다. 아직 안 나온 부원은 역시 아오미네였다. 그동안 나름 성실하게 경기에 임하고 있어도 지각 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감독은 쿠로코를 보고 사인을 주었다. 그래서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으려고 하자 쿠로코의 머리를 쓰다듬고 간 사람이 있었다. 그를 지나친 사람의 등에는 숫자 5가 새겨져 있었다.
“늦었습니다. 아오미네 군.”
“그래도 시간에 맞춰서 왔잖아. 기다리고 있으라고. 테츠.”
“뒤에 선배라고 붙이라고 했죠. 아무튼 화이팅입니다.”
토오고의 에이스는 제자리에 가서 상대방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 앞에는 카가미가 있었다. 두 팀은 인사를 나누고 각자 위치로 갔다. 점프볼은 토오의 와카마츠와 세이린의 카가미가 맞붙기로 했다. 잠시 후 코트 안을 정리하던 심판의 휘슬이 불어졌다. 날카로운 금속음이 경기장안을 가득 울려 퍼져서 예민해진 피부를 자극할 때, 쿠로코는 그때가 제일 흥분되었다.
경기의 결과를 말하자면 토오는 세이린에게 지고 말았다. 물론 에이스인 아오미네를 필두로 토오는 선취점을 탔고 계속 경기를 리드했다. 그러나 세이린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밀어붙었다. 그러다 2쿼터 중간에 역전이 되자 드디어 쿠로코가 투입 되었다. 쿠로코는 여전히 다른 선수들에 비해 능력은 떨어지지만 누구보다 희미한 존재감으로 신출귀몰한 패스돌리기가 특기였다. 특히 그런 능력은 아오미네와 같이 콤비를 이룰 때 더 빛을 발했다. 쿠로코의 투입 이후로 토오는 점수를 좀 더 내서 아예 쐐기를 박고자 했다. 하지만 세이린에는 유독 시야가 전방위로 넓은 포인트가드가 있어서 쿠로코가 존재감을 감추고 다른 선수들 사이에 숨고 있어도 그 포인트가드가 그를 찾아내고 말았다. 그렇게 패스를 돌려야 하는 쿠로코가 그에 마크 당하는 동안 아오미네는 카가미에게 마크를 당하고 있어서 생각보다 점수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호각을 이루던 토오와 세이린은 1점차 승부를 4쿼터 마지막까지 끌고 갔다. 하지만 결국 승리의 여신이 손들어 준 팀은 세이린이었다.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토오 저지를 입고 있는 아오미네와 쿠로코 밖에 없었다. 쿠로코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심하게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머릿속에는 오늘 치룬 경기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부분이 좋은 플레이이었고, 어떤 잘못된 플레이 때문에 팀이 경기에 지게 되었는지까지.
반면 옆에 있는 아오미네는 경기에 져서 그런지 화도 나고 머리도 멍해졌다. 생각하기 싫은데 계속 실수하고 잘못했던 부분만 떠올라서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에 열이 솟구쳤다. 그래서 아오미네는 저도 모르게 발에 걸린 빈 깡통을 힘껏 차버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쿠로코가 놀랐는지 아오미네를 쳐다보고 말했다.
“화 많이 납니까?”
“그럼, 테츠는 열 안 받아?”
아오미네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어보는 말에 쿠로코는 잠시 고민하더니 잘 모르겠다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자신의 심경을 말했다.
“미안하게도 저는 화가 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처음 선 공식전의 열기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사람들의 함성이나 우리를 응원하는 부원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고, 우리를 압박하던 세이린 선수들의 전의가 아직도 피부로 느껴집니다. 게다가 아오미네 군에게 공을 패스한 감각이 손에 떠나지 않아요. 뭔가 이기적으로 저만 기뻐하는 것 같아요.”
아오미네가 보기에 쿠로코는 아직도 그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럴만도 한 게 그동안 2군 선수로서 경기를 지켜보는 입장이었다가 드디어 실력이 빛이 발해서 1군에 올라오고 레귤러 선수까지 되어 직접 코트에 선 입장으로 변했으니 결과가 어떠하든 경기에 나갔다는 것에 기뻐할 법 했다. 그래서 경기장을 나오고부터 계속 말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직도 제 손을 보고 중얼거리는 쿠로코를 보던 아오미네는 그를 안아주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이런 날이 아니면 그를 품에 안을 수 있을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의 생각대로 쿠로코는 안으려고 하면 도망치던 평소와 다르게 아오미네 품에서 얌전하게 있었다. 오히려 아오미네를 마주 안아서 한 손으로 그의 등을 쓸어 만져주었다.
“수고 많았습니다. 누가 뭐래도 역시 최강은 아오미네 군입니다.”
“다음에도 같이 농구하자.”
두 사람의 맞닿은 심장 사이로 위로와 따뜻함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이 결국엔 애정이었다는 걸 두 사람이 알게 된 건 그리 멀지 않은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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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농/장편 2015. 2. 21. 11:44[청흑] 인어를 위한 소야곡 7 [수정]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이번 설날을 잘 보내셨나요? 제법 긴 연휴입니다. 물론 저는 토요일에 나와 일하는 처지만요...
아무튼 이 말 하러는 게 아니라, 월요일에 7편을 올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ㅠ
잊고있다고 번뜩 생각하지만 이미 때는 이틀이나 지난 수요일이었고, 저는 시골에 있었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급히 올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 드릴게 있는데 이번에 올리는 7화까지 사실상 6화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인데 제가 깜박하고 이부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부득이하게 7화로 올리지만 다른 편보다 분량이 적어졌습니다... 게다가 이 페이지는 19금적 내용을 통채로 들어내서 더 분량이...
그래도 이틀만 참으시면 다음화를 볼 수 있으니 믿고 기다려주심이..헤헤헤
아무튼 적은 분량이지만 재밌게 봐주세요!
그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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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농/장편 2015. 2. 9. 09:39[청흑] 인어를 위한 소야곡 6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청흑온이 끝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좋은 건 제 손에 존잘님들 회지가 있어서.. 후후후후 읽고 또 읽어도 좋으네요ㅠ 어서 6월달에 할 청흑온도 기다려봅니다ㅠ
이번 화는 나름 정치적 대화가 오고가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나마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거라 이 화를 제일 신경쓰면서 써봤는데 잘 표현이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ㅎㅎㅎ
아 그리고 이 화에도 조금 15금적 분위기가 풍기는 장면이 있는데 제 기준으로 그렇게 심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비밀글을 따로 올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괜찮겠죠? ㅎㄷㄷ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길 바라며 이어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주에도 만나요~
하릴없이 궁녀가 서고에서 가져 온 책을 읽던 중에 오랜만에 누군가가 쿠로코를 찾아온다는 전갈을 받았다. 인어에게 흥미를 잃었는지 그동안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지나고 온다는 말에 벌써부터 긴장되었다. 게다가 이부상서이라면 일본에서는 총리 아니면 장관급 되는 사람이니 그런 사람 앞에서 실수하지 않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지나자 약속대로 이부상서 대감이 찾아왔다. 궁녀가 입혀준 대로 격식 있게 덧옷에 두건같이 생긴 모자까지 챙겨 입은 쿠로코는 1층에 있는 접견실에서 그를 맞이했다.
원탁에 마주보며 앉은 두 사람은 궁녀들이 차와 다식을 차려올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대감이 궁녀가 따라 준 차를 마시자, 쿠로코도 그가 차를 마시는 모습을 따라 차를 마셨다.
향기로운 차향이 이번만큼은 숨이 막혀서 느껴지지 않았다. 천천히 한 모금을 마신 쿠로코가 찻잔을 내려놓자 그는 쿠로코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두 번째 만나 뵙는 건데 전보다 좋아보여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별거 없는 소인에게 이렇게 좋은 차도 대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도 생각했지만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설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상냥하십니다.”
두 번째 봤다고 했지만 쿠로코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때는 워낙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만났고 처음에 여기에 적응하기 전이라 정신이 없었기에 잘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았다.
자신을 기억해주는 그에게 미안해진 쿠로코는 이번에야 말로 얼굴을 확실히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쿠로코가 마른 침을 삼키며 감사하다고 하자 대감이 푸근해 보이는 웃음을 지어주었다. 안심이 되었다.
“전설과 달리 인어님이 자애로운 분이시라는 소문이 이미 온 나라에 퍼지고 있답니다. 그래서 백성들 사이에서 인어님의 그림이 어떤 미인도보다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 전하와 둘도 없는 친우가 되었다는 소식도 같이 전해지고 있지요. 이는 이 나라의 큰 복 입니다. 인어님 덕분에 백성들이 이 왕실을 더욱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 와서 한 것이 없습니다. 다 전하와 대감님들 덕분입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쿠로코도 왕실 사람들을 칭송해주자 그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놓치지 않고 살펴 본 쿠로코는 그의 앞에서 실수하지 않은 것 같아 안심되어 몰래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조금 긴장한 몸을 풀어도 될 것 같았다.
다시 차를 마시는 그를 따라 찻잔을 들어 마시고 나니 쿠로코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한순간에 날카롭게 변했다.
“그러나 저희들은 인어님이 전하와 더 이상 가까워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당황한 쿠로코는 그가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달리 대감은 쿠로코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어쩐지 불안해졌다.
“인어님은 전하의 연동으로 온 것이 아니잖습니까. 더 이상 전하의 순진한 마음을 흔들지 마십시오. 전하가 인어님에게만 매달리다가 정무를 보시는데 소홀해지시는 건 신하로서 더더욱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그날 밤에 아오미네와 있었던 일을 꺼내자 충격을 받아 그 말에 차마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아오미네에게 사랑에 빠진 자신의 마음이 부정한 것이라고 인정받자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물론 인어님께서 인간 세상에 대해 몰상식하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제는 왕실의 법도를 존중해주셔야지요.”
대놓고 자신을 비난하는 그의 말에 쿠로코는 반박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였다. 연륜으로 무장한 박력 앞에 자꾸만 작아졌다.
“인어님은 그저 여기에 앉아 전설로만 남으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저희들의 몫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한 대감은 바로 자리에 일어났다. 그가 평안재를 나가는 동안 쿠로코는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 배웅해주지 못했다.
대감이 말한 대로 아무 것도 없는 쿠로코가 이 왕실에서 가지는 위치는 그저 선전용일 뿐이었다. 아오미네가 아무리 자신에게 애틋하게 대해주어도 연인으로서 그 옆에 설 수 없었다. 그리고 과연 이쪽 아오미네를 사랑하게 된 쿠로코의 마음은 올바른 것일까.
원래 세계에 있는 아오미네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닮은 그에게 짝사랑을 보상 받고 싶어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자신도 속이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쿠로코의 마음은 부정한 것이었다. 그 마음으로는 아오미네에게 미안해서 절대 그의 옆에 있을 수 없었다.
쿠로코는 아직도 접견실에 앉아있으면서 이제 떠나야 할 때라고 느껴졌다. 어서 동료들과 가족이 기다리는 원래 세계로 가 농구를 하면서 이 심란한 마음을 위로 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차마 다리가 떨어지지 않는 건 이쪽의 아오미네는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아오미네에게 달려가 다시 안기고 싶었다.
**
아오미네가 쿠로코를 자주 자신의 침실로 초대했지만 쿠로코는 산책 갔다 와서 몸이 피곤하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저녁을 먹고 체해서 속이 좋지 않다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절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아오미네가 저녁시간에 맞춰서 순수 쿠로코가 있는 평안재로 행차했다. 쿠로코가 애초에 방문을 거절하기 않도록 하기 위해 그는 많은 궁녀들을 대동해 온갖 음식을 가져왔다.
대문에 나온 쿠로코 앞에 위압적인 얼굴로 노려보는 그를 보니 이번에는 거절하지 못했다. 만약에 방문마저 거절하면 그의 뒤에서 무거운 음식을 들고 있는 궁녀들이 먼저 쿠로코를 찢어 죽일 것이다.
1층에 있는 큰 테이블에 그들이 가져 온 음식들이 차려지고 어색한 저녁 시간이 시작되었다.
아오미네는 쿠로코가 그동안 초대를 거절한 것 때문에 단단히 삐쳤는지 평소와 다르게 아무 말이 없었다. 별로 그를 달래줄 말이 없었던 쿠로코도 말없이 식사했다.
대화가 없었던 식사는 순식간에 끝났고 아오미네는 형식적으로 평안재의 주인인 쿠로코의 허락도 없이 바로 2층에 올라가버렸다. 단단히 각오하고 온 듯 한 그의 뒷모습을 보던 쿠로코는 한숨을 쉬고 뒤따라 올라갔다.
2층에는 이미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전혀 도망 갈 틈을 주지 않는 것을 보니 기가 질렸다. 어쩔 수 없이 아오미네가 앉은 테이블에 앉자, 궁녀들은 아오미네의 명령에 따라 1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이 넓은 곳에 아오미네와 단둘이 있으니 너무 어색해 낯설었다. 쿠로코가 여기에 있는 동안 그와 아오미네는 급속도로 친해졌고 같이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 사이를 다시 어색하게 만든 쿠로코이었다.
하지만 이 어색함이 전에 찾아 온 대신(이름이나 직책언급)의 말대로 쿠로코와 아오미네가 지켜야 하는 거리이었다. 그동안 아오미네가 쿠로코에게 애정을 주어서 자신의 위치를 잊고 있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 가야하는 쿠로코는 지금이라도 아오미네에게 떨어지기로 다짐했다.
스스로 술잔에 술을 채운 아오미네는 안주도 없이 마셨다. 그리고 술을 좋아하는 그 답지 않게 더 마시지 않고 쿠로코에게 다가왔다. 단단히 화가 난 그 눈빛을 보니 쿠로코는 마주보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쿠로코의 팔을 잡아 당겨서 그가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게 했다.
“피하지마. 왜 갑자기 그래.”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하는 그의 얼굴에 쿠로코는 미안해져서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그래도 속으로 여러 번 연습했던 말을 잊지 않고 그에게 해주었다.
“저는 전하의 노리개가 아닐 뿐더러…….”
“네가 왜 노리개야!”
노리개라는 단어에 아오미네가 말을 끊으면서 발끈했다. 무의식적으로 팔을 더 세게 잡아당기는 그가 쿠로코를 결코 가볍게 보고 있지 않다고 알려주는 거 같아 고마웠다. 하지만 고마움을 느끼기 전에 그에게 해줄 말이 아직 많았다.
“말 끊지 마세요. 아무튼 우리는 이렇게 단둘이 있을 만한 사이가 아닙니다. 어쩌다 한번은 실수로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곤란합니다. 이제 저에게 이러지 마세요.”
말을 끝내면서 쿠로코는 팔을 잡은 아오미네의 손을 떼어냈다.
대화가 끝나자 두 사람 사이엔 전보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오미네는 그 침묵 속에서 쿠로코가 놓아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미묘한 그의 표정을 보니 쿠로코의 말을 이해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그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거냐.”
“그럼 무슨 사이인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아오미네는 당황하면서 대답하지 못했다. 역시 아오미네는 쿠로코와 몸을 섞었으면서도 그와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왠지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왕의 입장에서 섹스라는 건 후사를 도모하기 위해서이거나 그냥 아무 감정 없이 욕구대로 밤을 보내며 즐기는 일 둘 중 하나 일 터. 그런 아오미네에게 쿠로코는 후자이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세요. 밤이 늦었으니 여기에서 주무세요. 저는 아래로 내려가 자겠습니다.”
“아니, 돌아가겠다.”
덤덤하게 말했지만 표정은 전혀 기분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 아오미네는 별 말하지 않았다. 왔을 때와 달리 조용하게 떠나는 아오미네를 배웅해주면서 그의 등을 보는데 가슴 한쪽이 시렸다.
아오미네에게 미움을 받을지라도 결과적으로 이게 옳았다.
**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쿠로코를 깨웠다. 야심한 시간에는 평안재에 절대 누구도 들어 올 일이 없었기에 쿠로코는 화들짝 잠에서 깼다.
황급히 뒤로 몸을 빼고 옆을 돌아보자 어두운 방, 자신의 앞에 아오미네가 있었다.
“무슨 일 입니까.”
아직도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서 입술이 떨리는 쿠로코는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았지만 아오미네는 대답대신 쿠로코의 팔목을 잡고 침대 밖으로 꺼냈다.
그는 말도 없이 얇고 부드러운 이불을 챙겨 쿠로코 머리에 덮어주고 1층으로 끌고 갔다. 아래로 내려가니 오늘 불침번인 궁녀 두 명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라고 물어보았지만 아오미네가 대답도 듣지 못하게 끌고 가버렸다.
궁전 안은 아직도 어두웠고 멀리서 초롱 안에 붙여둔 불빛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달이 반달이라서 어둠에 익숙해지면 발밑 정도는 보였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건물 뒤로 가는 아오미네에게 쿠로코는 다시 한 번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쿠로코에게 조용하라고 속삭였다. 뭔지도 알려주지 않는 그에게 짜증이 났지만 전에 그를 돌려보냈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 잠자코 따라갔다.
그렇게 궁 외곽으로 가는 아오미네는 야간 순찰을 도는 금군 병사들이 보이면 왕이면서도 그들을 피해 숨었다. 쿠로코는 점점 아오미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자신을 이끄는 아오미네를 따라 궁을 보호하는 궁벽 구석에 도착하니 흙을 덮은 판자로 가린 개구멍이 있었다. 금군 병사들이 단단히 지키고 있는 궁 안에 허술하기 짝이 없는 개구멍이 있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아오미네는 판자를 치우고 제법 큰 개구멍에 고개를 넣어 밖을 살펴보았다. 밖에는 어떤 위험요소도 없는 걸 확인한 아오미네는 다시 나와 머리에 묻은 흙을 털면서 쿠로코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말했다.
“좀 있으면 무사들이 여기 지나가니 어서 들어가.”
“도대체 뭐하는 건데요.”
“산책이야. 산책.”
또 자세히 얘기해주지 않자, 쿠로코는 조금 화가 나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아오미네는 굴하지 않고 직접 쿠로코의 등을 밀어 개구멍으로 집어넣었다.
어쩔 수 없이 어두컴컴하고 좁은 땅굴을 지나가는데 덮고 있는 이불 안으로 흙덩이들이 들어와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뒤에서 아오미네가 세게 엉덩이를 밀고 있어서 되돌아 갈 수 없었다.
이윽고 아오미네까지 어찌어찌 순찰하고 있는 금군 병사들에게 걸리지 않고 잘 빠져나왔다. 궁 밖은 나무가 빽빽이 자란 숲 속이었다. 무성하게 자란 이파리들 때문에 숲 안에는 달빛조차 들지 않아, 여름인데도 숲은 싸늘해 보였다.
숲을 보고 있는 쿠로코에게 묻은 흙을 털어주던 아오미네는 그에게 따라오라는 식으로 먼저 앞으로 나갔다. 쿠로코는 그런 아오미네를 급하게 불렸다.
“숲 안으로 들어가시게요? 너무 어두워서 위험합니다.”
“걱정 마. 이미 여긴 수백 번 넘게 돌아다녔어.”
그렇게 말한 아오미네는 자신의 뒤에 있는 쿠로코의 손을 덥썩 잡아 자신에게 오게 했다. 어느새 쿠로코의 어깨에 팔을 올린 그는 곧장 숲 안으로 들어갔다.
아오미네는 초행인 쿠로코를 위해 한 발짝 조심히 걸었는데 그런 그의 배려심보다, 그의 품에서 나는 살 냄새가 먼저 느껴졌다. 시원한 나무 냄새와 남자의 땀 냄새가 온몸을 흠뻑 적시듯이 풍겨와 쿠로코는 정신이 없었다.
두 번 다시 이렇게 붙어있지 말자고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고작 냄새에 허벅지가 떨리도록 반응하다니 그도 별 수 없는 남자였다.
그렇게 아오미네를 따라 한참 숲 속을 걸어가자 드디어 숲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어두운 숲 속에 있어서 그런지 바다에 반사된 달빛이 밝게 느껴졌다.
두 사람이 나온 곳은 작은 모래사장에 이어진 곳이었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바다는 바람도 불지 않아 잔잔했다. 자장가 같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두 사람은 모래사장 위를 걸어갔다.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쿠로코는 아오미네와 붙어 있는 것이 어색했다. 자신의 어깨에 올린 아오미네의 팔을 내리고 그에게 떨어지려고 했지만 아오미네는 강한 힘으로 쿠로코를 더 끌어 당겼다.
사람 맘도 모르고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그가 미웠지만 그래도 이렇게 바다를 볼 수 있어서 나쁜 기분이 파도에 깨끗이 씻겨갔다. 기분이 좋아져 저도 모르게 웃고 있었는지 아오미네가 쿠로코를 보고 좋냐고 물었다.
“네, 바다도 예쁘고 밤에 파도소리 듣는 것도 좋네요. 전하가 절 납치 한 것만 빼면요.”
“네가 사람 맘을 몰라주니까 그런 거야. 순순히 따라와.”
이기적인 그의 대답에 쿠로코는 기가 찼다. 그래도 심호흡을 하면서 한 번 더 참기로 했다.
어색한 상태에서 모래사장의 끝까지 걸어가니 큰 절벽 밖에 없었다. 궁이 있는 절벽에 비하면 크기는 작아도 제법 큰 절벽을 본 쿠로코는 아오미네가 왜 이 곳으로 왔는지 더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는 쿠로코의 어깨에 두르던 팔을 내리고 대신 손을 잡고 절벽을 끼면서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왜 그쪽으로 가나 싶었는데 마침 썰물 때라 바닷물이 어느새 멀리 있었고 절벽 앞에는 잠겨 있는 바위들이 드러났다.
아오미네는 쿠로코를 데리고 그 쪽으로 올라갔다. 아직 물기가 있어서 미끄러운데 그는 겁 없이 성큼성큼 갔다. 그래도 자기 페이스에 맞춰 가지 않고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쿠로코가 넘어지지 않도록 중간에 기다리기도 했다.
그렇게 울퉁불퉁한 바위 위를 얼마 가지 않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절벽 가운데에 동굴을 있었다. 달빛이 살랑살랑 들어가는 동굴을 본 쿠로코가 아오미네에게 가자고 한데가 여기냐고 물어보자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자기에게 한 번 대들었다고 여기다 사람을 묻어버리려는 것은 아니겠지.
왜 동굴을 낮에 안가고 이렇게 어두울 때 다른 사람들 모르게 왔냐고 물어볼 게 많았지만 아오미네가 무작정 동굴 안으로 끌고 가는 바람에 차마 말하지 못했다.
동굴 안은 달빛을 가린 두 사람의 실루엣 주위에 비추는 빛 말고는 칠흑같이 어두워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싸늘한 바람도 안에서 불어와 쿠로코는 아오미네의 손을 꽉 잡았다.
“음, 아직 달이 기울기를 더 기다려야하나.”
“여기에 뭐라도 있습니까.”
“없으면 굳이 올 필요가 없지.”
동굴 안에 들어가는 게 다가 아닌 모양인데 쿠로코는 아오미네가 자신에게 뭘 보여주고 싶어 하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동굴에서 달이나 보려는 건 아닐 것이고.
동굴 안과 밖에 있는 달을 번갈아 보던 아오미네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동굴 안으로 더 들어가려고 했다. 달빛도 비치지 않는 어두운 곳으로 가려는 그가 위태로워 쿠로코는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가지 말라고 버텼다.
아오미네는 오히려 걱정 말라며 쿠로코도 동굴 안으로 끌어 당겼다. 그때, 달빛이 가리던 두 사람이 옆으로 가자 달빛은 더 동굴 안으로 들어 동굴 바닥에 있는 웅덩이를 비추었다. 웅덩이에 반사된 달빛들은 동굴 벽을 비추었다. 거기에 동굴 벽에는 수정같이 반짝이는 돌들이 박혀 있어서 또다시 달빛을 반사했다.
순식간에 밝아진 동굴을 본 쿠로코는 홍휘궁과 다른 별세계에 온 것 같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옆에 아오미네가 손 잡아주는 것도 잊은 채 주위를 돌아보는 데 정신을 팔렸다. 그러다 아오미네가 쿠로코를 잡아 당겨 짧게 입맞춤했다.
“어때?”
“아름답습니다. 이런 데도 있다니…….”
“내가 왜 여기 온 지 알아?”
“네?”
쿠로코가 얼떨결에 대답하는 사이 아오미네가 허리띠에 달아두었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가락에 집은 걸 조심스럽게 보여주었는데 그건 얇은 한 쌍의 옥 가락지였다.
가락지를 보고 놀란 쿠로코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그는 잡은 쿠로코의 손에다가 가락지 중 한 개를 껴주었다. 약지에 끼어진 가락지는 딱 맞았다. 아오미네는 쿠로코에게 자신의 새끼손가락에도 낀 같은 가락지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썰물 때만 나타나는 동굴에 달빛이 가득 찰 때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같은 가락지를 나누어 끼면 그 둘은 영원한 연인이 된다.’”
“……전하.”
“이제 우리 연인 사이야. 아무 사이도 아닌게 아니라.”
쿠로코는 뭐라고 말하고 싶은데 자꾸 울컥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손이 파르르 떨리는 쿠로코의 손을 꼭 잡아 준 아오미네는 그런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가락지를 보던 쿠로코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오미네와 눈을 마주보자 아오미네는 강한 두 팔로 그를 꽉 끌어안았다.
“이젠 날 피하지마. 이대로 우리 평생 함께하는 거야,”
아오미네의 말에 쿠로코는 기뻤다. 그와 동시에 그에게 미안했다. 자신은 혼자 힘들어지기 싫어서 남의 말에 휩쓸리고 그를 피하려고 만했는데 아오미네는 그런 쿠로코를 잡아주고 사랑해주었다. 겁쟁이인 자기를 사랑해주는 그가 고마운 쿠로코는 그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아오미네는 쿠로코가 덮고 온 이불을 동굴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쿠로코를 앉혔다. 그리고 그는 쿠로코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쿠로코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왼쪽 어깨를 잡고 점점 가까이 왔다.
반사된 달빛에 빛나는 아오미네는 누구보다 멋졌다. 아오미네의 입술만 보이던 쿠로코는 입을 살짝 벌리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닿은 건 입술이 아니라 두 사람의 이마였다.
“쿠로코, 심장이 엄청 뛰는 데.”
심장소리를 들키자 입맞춤을 기대했던 속마음도 들킨 것 같아서 쿠로코는 최대한 철면피를 깔고 변명했다.
“그거 제 꺼 아닙니다.”
“아, 그럼 이것도 내 거네.”
쿠로코의 어깨를 잡던 아오미네의 손이 미끄러지듯이 내려와 심장이 있을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댔다. 크고 뜨거운 손바닥으로 쿵쾅쿵쾅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이 그에게 전해졌다.
아오미네는 가슴팍에 손바닥을 대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손을 쿠로코의 옷깃 안으로 넣었다. 아오미네의 두터운 손끝이 닿은 맨살에서 아찔한 느낌이 전해졌다.
안으로 들어간 아오미네의 손 때문에 쿠로코의 옷은 점점 옷깃이 벌어졌다. 그의 손이 더 밑으로 내려가 쿠로코의 허리를 감싸는 동시에 다른 손이 옷고름을 풀었다. 파도소리와 함께 옷자락이 쿠로코의 옆구리를 타고 밑에 떨어졌다.
아오미네는 천천히 쿠로코를 눕혔다. 동굴 바닥은 울퉁불퉁했으나 이불을 깔아서 누울 만했다. 바닥에 누운 쿠로코는 잊지 않고 아오미네의 허리띠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손을 더 뻗어 옷고름을 풀어주는 동안 아오미네는 자신의 허락 없이 옷을 벗기는 쿠로코에게 책망하지 않았다.
옷자락에 숨겨놓은 그의 근육이 잘 발달되어 탄탄한 몸에 쿠로코는 저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좀 더 가까이 와주세요. 저도 만져보고 싶습니다.”
아오미네는 군말 없이 쿠로코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 상체를 굽히고 점점 가까이 왔다. 아오미네의 맨살이 쿠로코의 맨살에 닿으니 온기가 은근한 무게감과 함께 느껴졌다.
아오미네는 자신의 품속에 있는 쿠로코의 앞머리를 만져주다가 천천히 입술을 맞추었다. 거칠게 혀를 놀리지도 않고 입술을 깨물지도 않는 부드러운 입맞춤인데 술김에 급하게 했던 때보다 더 부끄럽고 발끝이 간지러웠다.
그리고 입술과 함께 맞닿은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감을 깨닫고 흥분하고 있었다. 딱딱해지는 아오미네의 것을 느끼며 쿠로코는 오늘이 지나면 모든 것을 다 잊고 싶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더라도 순순하게 이 아오미네를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떠오르는 해로 인해 어스름이 완전히 걷혀지기 전에 아오미네와 쿠로코는 재빨리 궁을 향해 뛰어갔다. 동굴에서 이것저것 하다보니까 어느새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왔고 그제야 아침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오미네조차 궁 안에 있는 그 누구에게 말하지 않아서 아무도 그가 궁에서 나온 걸 모르는 상태다. 이럴 때 그가 궁에 없다는 것을 알아채면 분명 큰 난리가 날 게 뻔했다. 오해해서 쓸데없이 주위를 들쑤시기 전에 돌아가야 했다.
아오미네가 자신보다 뜀이 느린 쿠로코의 손을 꼭 붙잡고 어떻게든 뛰어가니 결국 해가 뜨기 전에 개구멍이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이번에도 쿠로코가 먼저 개구멍에 들어가고 곧 뒤이어 아오미네가 들어갔다. 흙먼지 다 묻어가며 지나가고 있는 데 어째선지 쿠로코가 나가지 않고 있었다. 맘이 급했던 아오미네는 쿠로코의 엉덩이를 밀어가며 땅굴을 나갔다.
그리고 아오미네는 개구멍 근처에서 쿠로코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마요시와 금군 병사들을 보았다.
“이번에는 여기였군요. 전하를 위해 흔적도 없이 메꾸어두겠습니다.”
실눈으로 호를 그리면서 빙그레 웃는 이마요시의 말에 아오미네는 표정을 구겼다. 이번에 만든 개구멍은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아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오래 밖에 있어서 들킨 모양이었다.
“인어님도 너무 전하께서 하자는 대로 다 따라하시면 안되십니다. 그러다 나쁜 것만 배우세요.”
“아, 알겠습니다.”
이마요시의 말에 인정한 쿠로코의 말에 아오미네는 발끈했다.
하지만 장난 같은 대화도 잠시, 아오미네는 같이 온 궁녀들에 의해 자리에 일어나 은의궁로 갈 채비를 했다. 아오미네에 끌려왔던 쿠로코는 그 대신 금군 병사들 평안재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조심히 들어가고. 피곤할 테니 한 숨 푹 자고 있어. 쿠로코.”
“전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아오미네가 먼저 가자, 쿠로코도 금군 병사들과 같이 반대편으로 갔다. 그때까지 자리에 있던 이마요시는 어쩐지 아오미네를 따라가지 않고 쿠로코를 따라왔다. 쿠로코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는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쿠로코에게 말했다.
“전하가 먼저 인어님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궁에는 돌멩이에도 눈이 달렸고 소문은 궁녀의 걸음보다 빠릅니다. 그리고 제일 무서운 건 일식보다 사람의 마음입니다.”
한 마디로 조심히 행동하라는 말이었다. 쿠로코는 이마요시가 던진 수수께끼 같은 말에 전에 자신을 찾아왔던 이부상서가 생각났다.
두 사람만 있는 동굴에서 은밀한 사랑을 나누다가 갑자기 현실로 오자 숨이 막혀왔다.
잠시 쿠로코와 걷던 이마요시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대언사으로 가야겠다며 헤어졌다. 그가 멀어지자 쿠로코는 길게 한 숨을 쉬었다. 이제야 답답함이 가시고 숨이 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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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농 2015. 2. 2. 11:40청흑온, 흑좌온 발간 소설본 통판 안내
안녕하세요. 아오입니다.
저번 주말에 청흑온과 흑좌온에서 발간한 두 소설본의 재고가 남아 통판으로 돌립니다. [단 흑적 소설본은 3권으로 극소량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네이버 폼에 들어가 작성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청흑 소설본
제목 : 인어를 위한 소야곡(성인본)
맛보기 페이지 : http://nameisao.tistory.com/25 [1편]
통판신청폼 : http://me2.do/xrBWoXc3
성인본으므로 미성년자분들은 신청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흑적 소설본
제목 : 땅거미 내리는 저녁
맛보기 페이지 : http://nameisao.tistory.com/14 [1편]
통판신청폼 : http://me2.do/FPfkYR3Z
소량이 3권뿐입니다. 극소량이라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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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농/장편 2015. 2. 2. 10:05[청흑] 인어를 위한 소야곡 5 (수정)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드디어 청흑온이 끝나고 새로운 달이 시작된 월요일입니다. 청흑온을 위해 그동안 달렸는데 지나고나니 후련하면서도 아쉬운 맘이 있습니다. 특히 5화를 올리기 위해 다시 읽어보는데 치명적인 오타도 있었곸ㅋ큐ㅠㅠㅠㅠㅠㅠㅠ 왜 퇴고는 계속해도 모자람이 없는 걸까요ㅠㅠ
아무튼 청흑온에서 만낫던 분들 정말 반가웠고요, 마지막으로 청흑온을 무사히 열어준 주최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주최분들 덕분에 청흑온이 무사히 열었고 저또한 재밌게 즐기고 왔습니다.
그 고난과 역경을 이기신 그분들이야 말로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아무튼 후기는 이정도로 하고 5화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부분에는 19금적 부분이 있어서 자체 검열한 글과 안한 비밀글 2개로 나누어 올립니다.
그럼 재밌게 읽어주세요! ><
쿠로코는 스스로도 자신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원래 세계의 아오미네를 그렇게 짝사랑했으면서 여기에 있는 아오미네가 잘해주었다고 홀라당 반해버리다니. 자신이 이렇게 마음이 가벼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한 번 좋아해지자 마음이 변해지는 것을 막기 힘들었다. 그럴수록 원래 세계의 아오미네에게 괜히 미안해자 그것도 웃겼다.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 와는 전혀 상관없는데.
평안재에서 두 아오미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쿠로코에게 이번에는 아오미네가 바다에 같이 갈 것이니 준비하라는 전갈을 보냈다.
바다라는 말에 궁 밖에 있는 해안가가 떠올라 왕이 성 밖에 자주 나가도 되나 싶었다. 괜히 갔다가 사람들이 쿠로코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보고 작살 들고 죽이려 드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참에 자신에 대한 모든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였다. 바다에 들어가도 인어로 변하지 않는 쿠로코를 보게 된다면 아오미네도 더 이상 오해하지 않을 것이다.
쿠로코는 비장한 눈빛을 한 채 전갈을 전하러 온 궁녀에게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눈빛을 읽은 그녀는 인어가 바다에 가서 왕을 어떻게 하려고 각오한 눈빛으로 오해했는지 몸을 파르르 떨 정도로 무서워했다.
그녀의 반응에 당황한 쿠로코는 바다에 가서 아무 것도 안 할 거라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궁녀는 서둘러 쿠로코의 전갈을 전하러 뛰쳐나갔다.
창문에서 뛰어가는 궁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니 씁쓸했지만 이젠 그 것도 오늘로 마지막이었다. 자신이 인어가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그 소문은 순식간에 궁 안에 퍼져갈 것이다.
그렇다면 아오미네는 쿠로코에게 더 이상 관심을 안가지고 손수 내보낼지도 모른다. 어째 버림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만 쿠로코에게 중요한 것은 이쪽의 아오미네가 아니라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벗기 쉬운 상의로 갈아입고 자신을 데리러 온 금군 병사들과 같이 사직단이 있는 언덕 밑으로 가자 절벽 끝에 세워진 작은 문 앞에 아오미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금군 병사들 손에는 긴 작살을 들고 있었다. 어째서 가지고 왔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단지 바다에서 물고기나 잡을 생각으로 가져 온 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작살의 날카로운 끝을 보자 쿠로코는 괜히 마른침을 삼켰다.
쿠로코 앞에 있던 금군 병사가 그가 왔음을 알리자 아오미네는 고개를 돌려 웃으면서 반겼다. 평소처럼 여유로워 보였다. 그러나 움직임이 살짝 경직되어 있었고 긴장한 것처럼 그의 눈동자가 고정되어 있었다.
그게 많이 티가 날 정도는 아닌데 아오미네가 항상 쿠로코의 앞에서 여유로운 모습만 보여줘서 어색했다. 하긴 사람을 잡아먹는 인어를 바다에 데려가는데 왕인 그도 긴장할 수밖에 없을지도.
이윽고 문지기가 문을 열자 밖에는 바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돌계단이 있었다. 계단 바로 끝엔 양 옆이 절벽과 큰 바위에 둘러싸인 작은 모래사장이 있었고 바위 위에 누워서 쉴 수 있을만한 작은 정자도 있었다. 마치 고급주택의 마당에 있는 수영장 같았다.
작살을 든 금군 병사가 먼저 내려갔고 그 다음에는 쿠로코, 뒤이어 아오미네가 금군 병사들에게 앞뒤로 보호 받으며 따라왔다.
모래사장에 도착하자 금군 병사들은 쿠로코에게 먼저 바다에 들어가라고 했다. 명령하는 모양새가 불쾌했다. 하지만 자신의 오해를 풀기 위해 스스로 왔으니까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 덧옷과 신발을 벗었다. 수영복이 없으니 바지도 벗어야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남들 앞에서 알몸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냥 그대로 들어갔다.
부드러운 하얀 모래를 밟으며 쿠로코가 바다를 향해 걸어가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등 뒤에서 날카롭게 느껴졌다. 밀려온 파도가 쿠로코의 발을 간지럽히고 지나가니 시선은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차가운 물에 새삼 기분이 야릇하고 더 긴장되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에 하나 다리가 꼬리로 변하면 그땐 어쩌지.
쿠로코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바다로 들어갔다. 허벅지까지 걸어서 들어가 보았으나 쿠로코의 다리는 역시 꼬리로 변하지 않았다.
안도하며 한숨을 쉰 쿠로코는 아오미네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쿠로코에게 집중하고 있던 그는 꼬리로 변하지 않는 다리를 보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의심하고 있었다.
결국 허리까지 들어가서 바다 속을 여러 번 걸어가도 끝까지 다리가 꼬리로 변하지 않는 쿠로코를 본 사람들은 입이 쩍 벌어졌다. 이제야 모든 오해가 풀렸다.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었는지 아오미네가 파도가 닿는 곳까지 다가와 다시 해안가로 오는 쿠로코에게 물어보았다. 눈에 뜨게 당황하는 표정이 좀 바보 같았다.
“꼬리로 안 변해?”
“당연하죠. 인어도 아닌데 왜 변하겠어요.”
계속 아니라고 말했다고 덧붙이자 아오미네가 허탈하게 웃었다. 긴장한 것도 풀렸는지 다시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쿠로코가 인어가 아님을 알게 되었어도 예상과 다르게 그에서 실망한 내색이 보이지 않았다.
아오미네는 금군 병사들에게 작살을 내려놓으라고 명령했고, 몇 명의 병사들이 다시 궁으로 올라 간 대신 대기하고 있던 궁녀들이 간식과 음료를 가지고 내려왔다. 내려오던 궁녀들도 인어로 변하지 않는 쿠로코를 보고 놀랐다.
아오미네는 쿠로코가 벗어둔 옷을 정리하던 궁녀에게 자신의 덧옷도 넘기고 쿠로코가 있는 바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가려는 쿠로코의 팔을 잡고 나가지 못하게 했다.
“이왕 들어왔으니 같이 수영이나 하지.”
“죄송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수영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바다에서 노는 것도 그닥입니다.”
“인어랑 달라도 너무 다르군.”
쿠로코는 그의 말에 긴 한숨을 쉬었다. 아오미네는 쿠로코가 그러던지 말던지 자기 상관 아니라는 식으로 그를 끌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쿠로코의 허리쯤까지 들어가자 아오미네는 손을 놓고 혼자서 헤엄쳤다.
그는 수영에 대해 잘 모르는 쿠로코가 봐도 정말 잘하는 편이었다.
멀뚱멀뚱 서있는 쿠로코 주위를 돌면서 수영하는 그의 모습은 자연스러워 그가 쿠로코보다 더 인어 같았다.
그렇게 몇 번을 물속에서 돌아다니던 아오미네가 배영 형태로 쿠로코에게 다가왔다. 아주 쉽게 물에 떠있는 그를 내려 보자 그가 물속에서 쿠로코의 손을 잡았다.
“제가 인어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으신가봅니다.”
“이제 그런 건 상관없네. 어차피 백성들은 네 인어가 아닌 걸 모를 테니 여기 입단속만 제대로 하면 되고.”
“선전용으로는 이용가치가 있다는 말이네요.”
아오미네의 말에 쿠로코는 기분이 나빠져서 까칠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이런 곳에서 그런 식으로 남들에게 보여 주기용 인형이 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처지를 알자 같이 농구하는 동료들과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 옆엔 인어님, 아니 쿠로코 너로서 있으면 되네. 가끔 말투가 무례하지만 이젠 그런 것도 좋아. 그리고 항상 무표정이면서 전에 한 번 날 보고 멋있게 웃어주지 않는가. 그렇게만 해줘.”
듣기에 부끄러운 말에 쿠로코는 서둘러 시선을 그에게서 돌렸다.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닐 텐데 마치 사랑의 고백 받는 것 같아서 심장이 마구 뛰었다.
심란한 쿠로코와 달리 혼자서 계속 신이 난 아오미네는 자리에 일어나 그를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단숨에 수위가 어깨까지 올라오자 쿠로코는 당황해서 아오미네의 어깨를 꽉 잡았다. 해안가를 바라보니 그곳으로부터 제법 멀어졌다.
아오미네는 무서워하는 쿠로코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위로 올려주어 자신과 눈을 마주보게 했다. 그의 얼굴이 바짝 다가오자 쿠로코는 입을 맞출 것 같아서 머리가 달아오르고 몸이 굳어졌다.
“왜 이렇게 수영을 못 하는가. 시간만 나면 바다로 데려가겠네.”
“이건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아무튼 그건 사양합니다. 저는 밖으로 나가고 싶으니 놔주세요.”
그의 말에 심술이 난 아오미네가 그만 겨드랑이를 잡고 있던 손을 확 놓았다. 순식간에 턱밑까지 빠진 쿠로코는 덩달아 발도 헛디뎌서 그만 완전히 빠져버렸다. 당황한 아오미네가 재빨리 쿠로코를 건져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죽다 산 쿠로코는 무의식적으로 아오미네의 어깨를 꽉 끌어안아서 최대한 위로 올라갔다. 다리마저 그의 허리에 감싸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아오미네는 힘겹게 기침하는 쿠로코의 등을 쓸어 만져주며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한 가득이었다.
결국 바다에서 노는 건 이쯤에서 그만두었다. 아오미네는 해안가로 걸어가면서 자신에게 안긴 쿠로코를 달래주었다. 겨우 기침이 멈춘 쿠로코는 고개를 돌려 아오미네를 노려보았다. 언제 울었는지 눈가도 약간 빨갰다.
“정말 못됐습니다. 거기서 갑자기 놓아주면 어떡해요. 안 그래도 거기 엄청 깊었단 말입니다.”
“미안하네. 내가 다 잘못했다.”
말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한 아오미네가 얄미웠다. 그런데 그가 워낙 예쁘게 웃고 있어서 한 번은 봐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안겨있는 게 기분 좋기도 했고,
쿠로코와 아오미네가 나오자 궁녀들은 면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었다. 여기저기 만져대는 그녀들의 손길에 부담스러웠으나 그래도 다행인 건 젖은 옷을 갈아입자고 나서지 않았다.
그 상태로 정자에 가기는 갔는데 젖은 옷을 입고 나무 바닥에 앉아도 되는 지 걱정되었다. 그러나 거리낌 없이 들어가는 아오미네따라 쿠로코도 마지못해 들어갔다.
바다가 보이는 정자에서 바람을 맞으니 이건 이거대로 기분이 좋았다. 동료들이랑 같이 바다에서 합숙하다가 놀았던 것이 기억났다.
말없이 바다를 보던 쿠로코는 문득 처음 이 세계에 왔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아오미네는 배를 타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배도 여기서 띄우는 건지 궁금했다. 쿠로코는 시원한 차를 마시고 있던 아오미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오미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뱃놀이 하는 데 백성들이 사용하는 항구까지 일일이 행차하는 건 귀찮네. 차려입을 것도 많고 데려 가야하는 사람도 많아서 복잡하지.”
"은근히 귀찮은 것을 싫어하시네요."
아오미네는 쿠로코에게 더 가까이 와 그 때 자신이 배를 띄웠던 장소까지 가리켰다. 그가 알려 준 곳은 높은 절벽 앞에 있는 곳이었다. 쿠로코는 무의식적으로 절벽을 올려다보았는데 그 위에 내궁의 기와집들 지붕이 조금 보였다.
“그 날, 그대가 날 구해주지 않았으면 이 자리에 없었겠지. 나의 목숨을 구해 준 것 정말 감사히 여기고 있다네.”
“누구라도 물에 빠진 사람을 발견했으면 구해 주었을 겁니다. 그래도 무사하시니 제가 있길 잘했네요. 덕분에 인어로 오해받았지만요.”
쿠로코의 말에 아오미네는 크게 웃었다. 그는 쿠로코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전과 똑같은 대답을 했다.
확실히 짙은 머리색을 가지고 있는 여기 사람들 사이에서 쿠로코와 같은 옅은 머리색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 것보다 왜 인어들이 쿠로코와 같은 하늘색이라고 전해지는지 궁금했다.
“왜 이 색이죠?”
쿠로코가 묻자 아오미네는 차 한 모금 마셨다.
“태조가 그 인어에게 들은 이야기들 중 하나네. 그 인어의 말로는 인어들은 원래 하늘에서 사는 사람들인데 하늘에서 큰 죄를 짓고 바다에 떨어졌고, 결국 물고기처럼 꼬리가 생긴 그 사람들은 더 이상 돌아 갈 수 없는 고향인 하늘을 그리워하다가 눈에 하늘을 담고 그 색으로 머리를 물들었다고 하더군.”
“향수병이네요. 그 마음 이해갑니다.”
전설 속 인어의 이야기가 어쩐지 낯선 세상에 홀로 떨어진 쿠로코의 처지와 닮았다.
궁에서 호의호식하고 이쪽의 아오미네가 자신을 다정하게 대해주나 그렇다고 동료들과 가족이 있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이쪽의 아오미네보다 어리숙하고 성격도 나쁘지만 항상 좋아했던 그 아오미네도 그리운 건 마찬가지다.
쿠로코는 원래 세계의 아오미네를 떠오르면서 자신이 나타난 절벽 앞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때, 그 쪽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빛이 보였다.
저도 모르게 유심하게 보고 있던 중 아오미네가 쿠로코의 팔을 잡아 자신 쪽으로 당겼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에게 고개를 돌리니 그의 표정은 어느 순간 굳어있었다. 불안하고 초조해 보이는 아오미네는 아무 말하지 않고 쿠로코의 팔을 더 세게 잡았다.
잡힌 팔이 저릴 정도로 아팠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보면서 차마 놓아달라고 하지 못했다.
항상 화창했던 날씨가 오늘은 새벽부터 흐려지고 아침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먹구름이 끼더니 이내 장대비가 쏟아졌다. 그리고 폭우는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더 이상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이 곳에서 쿠로코는 하염없이 창가에 앉아 비 내리는 궁안을 바라보았는데 폭우 속에서도 하급신하들은 짚으로 만든 비옷을 쓰고 바삐 움직였다. 특히 그들이 제일 많이 하는 건 물통이란 물통을 다 가져와 빗물을 받는 일이었다.
홍휘궁은 물길이 없는 절벽 위에 지어진터라 물을 끌어오기 매번 힘들었다. 그래서 비가 오는 참에 필요한 물을 최대한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궁녀들이 차려준 식사를 마치자 지금도 내리는 빗속을 뚫고 아오미네가 보낸 가마가 평안재에 도착했다.
1층에 내려가 짚으로 만든 비옷을 입고 있는 가마꾼들이 들고 온 가마를 본 쿠로코는 같이 온 금군 병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오미네가 쿠로코와 함께 술자리를 갖고 싶어서 가마를 보낸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 마디로 이거타고 자신에게 오라는 뜻.
심심하던 차에 아오미네가 초대해준 건 고마웠지만 술자리는 꺼려졌다. 적어도 키가 자랄 가능성이 있는 24세까지는 성장에 안좋은 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쿠로코와 다르게 궁녀들은 즉시 준비하겠다며 그를 2층으로 끌고 갔다. 그녀들의 빠른 움직임에 당황한 쿠로코는 다른 옷으로 갈아입히는 그녀들에게 자신은 갈 마음이 없다고 다급하게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초대를 절대 거부하면 안 된다고 그를 혼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오미네에게 가기 위해 준비했다.
궁녀들이 입혀준 옷은 처음 본 것으로 다른 외출복과 다르게 입는 것도 별로 없었고 얇은 비단으로 만들어져서 가벼웠다. 새하얀 비단에 새하얀 실로 모란무늬자수를 새긴 옷은 드라마에서 중년부부들이 커플로 입고 나오는 잠옷와 같은 느낌이었다.
거기에 모자라 궁녀들은 쿠로코에게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모를 장신구를 꺼내와 팔과 머리에 장식했다. 어디서 반지라도 껴본 적이 없었던 그는 화려한 장신구들을 보고 기가 질려 미간이 찌푸려졌다. 팔찌야 그렇다고 해도 짧은 머리에 머리 장신구가 고정되기 힘들 텐데 궁녀들은 얇은 끈을 이용해 기어코 장신구를 머리에 달아두었다.
마지막으로 가는 도중에 추위에 감기 걸리지 말라고 연보라색으로 염색한 덧옷을 입고 나서야 쿠로코는 금군 병사의 안내에 따라 가마에 올라탔다.
두꺼운 장막이 내려지자마자 가마꾼들이 기합 소리내며 가마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지붕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가마 안에서 듣는 빗소리는 여기저기 울려서 그 소리가 금세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그들이 아무리 발걸음을 조심히 해도 복잡한 길을 가는 버스보다 더 흔들렸다.
아오미네가 초대한 술자리로 가는 동안 가마 밖에서 있는 병사나 가마꾼들은 아무 말 없었다. 가득이나 가마 안은 무척 어두워서 가는 길이 지루해 쿠로코는 불편한 머리 장식을 매만졌다. 도착하면 장신구들은 모조리 벗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가서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고 이내 가마 지붕을 세차게 때리던 빗소리가 잦아졌다. 가마꾼들이 조심스럽게 가마를 내려주는 것을 보니 도착한 모양이었다.
안에 있던 쿠로코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가마 문을 열고 나오자 열어주려고 했던 병사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어느 건물 앞에 설치한 차양이었다. 아마 가마를 타고 오는 쿠로코가 내릴 때 비를 맞지 않게 하기 위해 설치한 것 같았다.
쿠로코는 말없이 앞에 있는 건물을 응시했다. 열어둔 문 너머에 있는 복도에는 군데군데 등불을 설치해서 아주 어둡지 않았다. 그런 복도 끝에는 유난히 밝은 빛이 새어나오는 방이 있었다.
가만히 서있는 쿠로코에게 못 보던 궁녀가 다가와 안으로 안내했다.
그녀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낮은 등불만 있는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어가 밝은 빛이 새어나오는 장지문 앞에 도착하자 거기에 있던 궁녀가 쿠로코의 얼굴을 확인하고 방 안을 향해 그가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얼마가지 않아 안에서 아오미네의 목소리가 들렸고 기다렸다는듯 장지문을 열렸다.
등불을 여러 개 설치해서 밝은 방에는 침대가 있었고 쿠로코를 이곳으로 초대한 아오미네는 그 앞에 있는 원형 테이블 앞에 앉아있었다. 이상하게도 테이블에는 일인용 의자는 없었고 아오미네가 앉아 있는 벤치와 같은 긴 의자밖에 없었다. 이미 마시고 있었는지 테이블에는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늦은 시간에 수고가 많았군. 이리와 앉으시게.”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쿠로코는 형식적으로 인사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궁녀들은 따라오지 않았고 그가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았다. 장지문너머로 멀어지는 궁녀들의 발걸음소리가 의아했다.
테이블에는 의자가 하나밖에 없어서 쿠로코는 어쩔 수 없이 아오미네 옆에 앉았다. 아무도 없이 단둘만 있는 방안에 옆에 있으려니 새삼 부끄러웠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았다.
아오미네는 그런 쿠로코의 속내도 모르고 그에게 좀 더 다가와 앞에 놓인 흰색 술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예쁘게 차려입었군.”
“아, 깜박하고 있었네요.”
말이 끝나지 무섭게 쿠로코는 궁녀들이 머리에 달아 준 머리 장식을 뺐다. 걸리적거리는 팔찌들도 모조리 빼서 테이블에 차곡차곡 올려두었다. 아오미네는 그런 쿠로코를 심술 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표정을 읽은 쿠로코는 그에게 장신구를 뺀 이유를 말했다.
“불편해서 빼는 겁니다. 여기에는 남자 분들도 이런 장신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부담스럽습니다.”
“그대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술이나 한 잔 하시게.”
그렇게 말한 아오미네는 건배도 없이 술이 가득 찬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그에 반해 쿠로코는 술잔을 들지도 않았다. 그러자 또 다시 아오미네의 표정이 미간을 찌푸려졌다.
“술이 마음에 안 드는가?”
“아직 미성년자라서 먹을 수 없습니다.”
“흐음, 나이가 어떻게 되길래?”
나이를 물어본 아오미네는 쿠로코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무 가까이 온 바람에 쿠로코가 놀라 몸을 뒤로 물렸으나 그럴수록 더 가까이 갔다. 그는 단순히 쿠로코의 얼굴을 살펴보기 위해서 그런 것일지라도 쿠로코에겐 좋아하는 사람이 가까이 온 것이라서 부담스러웠다. 그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생일이 지나서 이제 18세입니다?”
“근데 왜 미성년이라고 속였는가?”
아오미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다시 되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오미네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쿠로코를 보았다.
“하긴 그대가 있던 곳은 우리와 많이 달랐지. 여기서는 지습(知習)이 지나면 성년이네. 내가 성년이 되자마자 왕위에 올랐으니 아직 얼마 안 되었군.”
“설마, 당신 나이는 어떻게 되십니까?”
물음에 아오미네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생일이 지나지 않아서 열일곱.”
열일곱이면 쿠로코보다 한 살이 어린 셈이었다. 쿠로코는 하도 아오미네가 원래 세계의 아오미네보다 어른스럽게 봐서 적어도 20대는 훌쩍 넘겼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말투도 늙은이 말투였고.
아오미네의 나이를 듣고 놀라자 아오미네는 고개를 쿠로코에게 살짝 내밀었다. 장난스러운 미소는 그대로인 채.
“그대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존대했던 것이 억울했는가?”
“아니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만, 그렇게 나이 어리시면 말투 좀 어떻게 해보세요. 늙은이 말투 때문에 더 나이가 많은 줄 알았습니다.”
아오미네는 쿠로코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늙은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 그의 심기를 건든 모양이었다.
그런 표정을 본 쿠로코는 능글맞은 아오미네에게 드디어 한방 먹어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아오미네는 다시 몸을 뒤로 빼 바로 앉아 스스로 술잔에 술을 채웠다. 술잔을 들었지만 입에 대지 않고 쿠로코에게 다시 술을 권했다.
그러나 아무리 여기 기준으로 성년이라고 해도 쿠로코 본인은 자신 만의 기준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거절했다.
계속되는 거절에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아오미네는 술을 마시면서 그윽한 눈으로 쿠로코를 바라보았다.
“처음 하는 것일 테니 마시는 것이 좋을걸.”
“뭘, 처음해요?”
귀찮아서 미간을 찡그리며 던진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아오미네가 긴 팔을 뻗어 그의 뒷덜미를 덥썩 잡았다. 막을 새도 없이 그는 쿠로코를 끌어 당겨 순식간에 그와 입맞춤을 했다.
아랫입술을 뜯어 먹을 기세로 밀어붙이는 아오미네는 놀라서 벌어진 쿠로코의 입속으로 자신의 혀를 넣었다. 단단하고 축축한 혀는 뒤로 숨어버린 쿠로코를 집요하게 찾아서 건들었다. 맛을 느낄 때나 사용해왔던 혀는 아오미네가 스칠 때마다 짜릿한 자극을 느끼고 있었다.
아찔했다. 온 몸이 아찔해서 아오미네와 닿아있는 피부는 뜨거워졌고 손발이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오므라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랫배 한 가운데도 힘이 들어갔다. 몸이 제멋대로 반응한 것에 당황한 쿠로코는 자유로운 두 손으로 아오미네를 밀어내고 자리에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굴하지 않고 자신도 자리에 일어나 쿠로코에게 다가갔다.
“잠깐만요. 우리, 말로 해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한 쿠로코는 정신없는 머리로 아오미네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다가와 쿠로코의 옆구리를 세게 잡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그에게 소용없었다.
그는 잡은 쿠로코를 그대로 침대에 던져버렸다. 갑자기 몸이 붕 떠서 침대에 떨어진 쿠로코가 몸이 놀란 나머지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아오미네는 그 위에 누워 한껏 달아오른 몸을 그에게 밀어붙였다. 다시 거친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누군가가 머리카락을 만지는 느낌에 쿠로코는 점점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몸이 너무 천근만근이라서 아직 눈을 뜨지 않았다. 계속 머리카락을 만지는 손길이 귀찮아진 그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자 머리카락을 만지던 사람은 쿠로코의 고개를 다시 자신의 쪽으로 돌렸다.
짜증나서 미간을 찌푸리자 위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일어났으면 어서 눈 뜨지 그래?”
목소리를 듣자 쿠로코는 번쩍 눈이 떠졌다. 눈앞에서 옆으로 누워있는 아오미네가 쿠로코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쿠로코는 끝나자마자 여기에 잠들었다. 그렇다면 여긴 아오미네의 침실인가.
“안녕히 주무셨어요? 저는 다시 잘게요.”
“자지 말라니까. 곧 조찬 시간이야.”
그 말을 무시하고 다시 등을 돌리고 눈을 감았지만 아오미네가 아예 쿠로코를 일으켜 세운 바람에 다시 자기 글렸다. 부족한 잠은 평안재에서 자야겠다 싶은 쿠로코는 한 숨을 쉬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왕의 침실치고는 조금 작은 규모였다. 침대는 어른 사이즈가 맞으나 다른 가구들은 전체적으로 화려하지 않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었다.
그에 비해 바다를 향해 난 창문은 평안재 창문보다 훨씬 컸다. 거기에 창밖의 하늘은 절경이라서 마치 잘 그린 유화를 달아 놓은 것 같았다.
“하늘이 참 예쁘네요.”
쿠로코가 창문을 보고 한 말인 줄 알아챈 아오미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곳에 대해 설명했다.
“이 은의궁(恩義宮)은 왕의 침전이 아니야. 내가 세자일 때부터 있던 곳인데 저 풍경에 반해서 지금도 쓰고 있지.”
“참 특이하시네요. 왕의 침전이면 여기보다 클 텐데.”
“작아도 상관없어. 여기서는 바다가 잘 보이니까.”
참 유별난 바다 사랑이었다. 그래도 바다를 농구로 대입하니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쿠로코도 그가 좋아하는 풍경을 보고 싶어서 자리에 일어나려고 했는데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엎드러진 상태에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할 때야 당연히 아팠지만 하고난 뒤에서 이렇게 아플 줄 몰랐던 쿠로코는 당황했다.
그러자 옆에 누워있던 아오미네가 한 숨을 쉬더니 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고 있는 옷의 허리띠를 둘러서 옷매무새를 다듬은 그는 엎드러져 있는 쿠로코를 끌어당겨 대신 상의 옷고름을 묶어주었다. 바지는 다른 곳에 널브러져 있어서 그것까진 입히지 않았다.
아오미네는 쿠로코의 팔을 잡고 천천히 침대에 나올 수 있게 했다. 그가 부축해주니 아팠던 몸이 한결 편안해졌다. 침대에 나와 일어섰을 땐 다리에 힘이 없어서 넘어질 뻔 했는데 다행히 아오미네가 그를 잡아주었다.
그의 도움으로 천천히 창문으로 가자, 아오미네의 말대로 절경이었다. 절벽 끝에 있는 정원 너머에서 보이는 푸른 바다는 마침 햇살에 은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거기에 아름다운 하늘까지. 설화 속 인어들이 왜 하늘을 그토록 그리워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아름답네요. 매일 일어나면 이런 것을 볼 수 있어서 부럽습니다.”
“그렇다면 가끔 보러와.”
단순히 놀러오라는 말이 아님을 아는 쿠로코가 부끄러워하자 아오미네는 그의 머리에 얼굴을 기댔다. 좋아하는 그를 보니 쿠로코도 같이 기분이 좋았다. 서로 고백을 하지 않았지만 사귀는 사이가 된 것이 맞겠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원래 세계의 아오미네가 떠올랐다. 심장은 달콤하게 뛰는데 입맛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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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농/장편 2015. 1. 26. 11:15[청흑] 인어를 위한 소야곡 4
* 이 글은 1월 31일 청흑성인온에 낼 책의 맛보기 용 글입니다. 에필로그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공개될 예정입니다. (성적인 부분은 비밀글)
안녕하세요. 아오입니다.
이제 청흑온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직 에필로그랑 그 침대...ㅆ..ㅣ..ㄴ.... 남았는데 마감은 이틀앞까지 왔네요. 그래도 청흑온이 무사히 열리길 바랍니다!!! 제가 이틀 안자면 되죠!
아무튼 우리 무사히 테츠오빠 생일에 만납시다ㅠㅠㅠ
참고로 우선 내일까지 이 책의 수량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여기로 [ http://me2.do/FIFzAzpv ] 조사에 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럼 청흑온 끝나는 다음주 ㄷ...대망의 5편을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쿠로코를 보좌하는 궁녀들이나 혹시나 인어가 날뛸까봐 감시하고 있는 금군 병사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평안재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왔다. 쿠로코는 얼굴하나 들이매밀지 않았던 그들이 왜 자신을 만나려 오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아오미네와 산책을 갔다온 이후로 사람들이 찾아 온 것을 보아 왠지 아오미네가 그들에게 쿠로코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언급했음을 짐작했다.
아무튼 시작이 어찌되었든 쿠로코는 방문자들 덕분에 갑자기 없던 일정이 생겨나 바빠졌다. 쿠로코를 만나러 온 사람들은 딱 보아도 이 나라의 귀족같은 사람들이었다. 아오미네의 신하인 이마요시와 똑같이 생긴 관복을 입은 사람에서 시작해 고급스럽고 화려한 옷차림으로 한껏 치장해서 온 귀부인들까지 찾아왔는데 올 때마다 인어에게 드리는 선물이라며 화려하게 장식한 공예품, 딷 봐도 귀해보이는 과일이나 약초들, 아름다운 옷감, 심지어 남자인 쿠로코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장신구까지 있어서 받을때마다 부담스러워 죽는 줄 알았다.
인어도 아닌데 머리카락과 눈동자 때문에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했고 엄청난 관심을 견디기 힘들어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하도 기운이 없어 여기를 나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마저 들지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일주일이 지나자 쿠로코가 몸져 붑기 전에 동물원에 있는 동물을 구경하는 괜객들처럼 찾아오던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끽해야 하루에 두 명 정도 짧게 만나려 와서 어느정도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그래도 그들이 가져오는 선물들은 부담스러워 공예품은 제외하고 모두 궁녀들과 금군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방문하는 사람들이 줄지 않았던 어느 날, 궁에서 상주하는 화공들이 찾아왔다. 인어가 궁에 왔다는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초상화를 그리겠다고 하는 그들에게 쿠로코는 어색하고 귀찮아서 사양했지만 그의 의견은 가볍게 관찰되었다. 결국 언제나 적극적인 궁녀들에 의해 쿠로코가 가진 옷 중에서 가장 화려한 옷으로 챙겨입고 화공들 앞에서 앉게 되었다. 그래도 선물 받은 장신구도 채우려고 하는 궁녀들의 의지는 꺾을 수 있었다.
그들 중에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사람이 붓을 들고 쿠로코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은 메모할 책과 세필붓을 들고 쿠로코의 옆에서 바닷속은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마치 연예인이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것과 같았다. 모델인 키세라면 이런 상황이 익숙하겠지만 단순한 일반인에 지나지 않는 쿠로코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그래도 그들은 기록을 위해 어쩔수 없이 하는 입장이니 성심껏 바다가 아닌 도쿄와 일본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쿠로코가 자신들이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을 설명하는 탓에 물어본 사람은 당황했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쿠로코의 말을 받아적었다.
몇 시간 뒤 어느 정도 밑그림을 다 그린 화공들이 나중에 완성된 그름을 들고 찾아 오겠다며 평안재를 떠났다. 그들이 배웅하고나니 어느새 푸른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저 앉아있는 것뿐이었는데도 더운 날씨에 한껏 차려입은채로 긴장하고 있어서 강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무거운 비단 덧옷을 벗은 쿠로코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지 않고 바로 침대에 털썩 누웠다.
오늘은 화공들 덕분에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어제 몹지 않게 피곤했다. 오늘 저녁도 먹기 싫은 쿠로코는 천천히 눈을 감으면서 내일은 부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만약 찾아올 거면 차라리 아오미네를 데리고 오든가. 원래 세계의 아오미네든 여기의 아오미네든 이젠 상관없이 둘 중에 누구든 보고 싶었다. 분명 그 얼굴이라면 보는 것만으로 힘이 될 것이다.
평안재를 찾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며칠 전에 궁녀에게 들은 말로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쿠로코를 만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게 된 걸까.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어째든 쿠로코에겐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그러던 중 아오미네가 저녁을 먹고 나갈 채비를 하라고 전갈을 보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전갈을 전하러 온 궁녀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성 안에서 5일에 한번 야시장이 열리는 데 아오미네가 그 곳으로 잠행을 갈 예정이고 거기에 쿠로코도 동행하라는 내용이었다. 왜 잠행에 자신을 데려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야시장에 간다는 사실에 기대되었다. 원래 세계에 있는 야시장과 여기 야시장이 뭐가 다를지 상상하고 있던 쿠로코는 신나서 저도 모르게 계속 웃고 있었다.
저녁을 죽으로 간단하게 먹자, 궁녀들이 다른 옷으로 갈아 입혀주었다. 잠행을 가는 거라 전에 입혀준 옷들 보다 화려하지 않았다. 옅은 아이보리색의 바지를 입히고 위에는 황토색 모시 상의를 입혔다. 이번에는 허리띠도 매지 않았다. 그런데 특이한 건 얼굴도 가릴 정도로 큰 삿갓을 쓰여주었다. 챙이 넓고 깊어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삿갓이 불편해 벗으려고 했다가 쓰여준 궁녀에게 절대 벗지 말라고 혼났다.
“저희는 이제 괜찮습니다만 백성들은 인어님을 보고 심히 놀랐겁니다. 밖에선 절대 벗지 마세요.”
낭랑한 목소리를 낮게 깔고 그렇게 말하니 쿠로코는 식은 땀을 흘리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제까지 살면서 별 의식하지 않았던 자신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 주리야.
초롱을 들고 길을 안내하는 금군 병사를 따라 다른 대문들보다 훨씬 작은 문에 도착했다. 그 곳에 있던 문지기는 삿갓을 쓴 쿠로코를 보고 소문의 인어임을 알아채고 잔뜩 긴장해 창을 바로 잡았다. 잠시 후 쿠로코가 온 길로 아오미네가 온다는 안내가 들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삿갓을 들어 아오미네를 보니 그도 쿠로코와 마찬가지로 수수한 옷을 입었다. 그러나 아무리 수수해보여도 남색 비단 덧옷을 입은 그의 모습은 딱 봐도 귀족 나으리이었다. 삿갓을 쓴 쿠로코와 달리 남색 두건으로 된 모자를 쓴 것 말고는 당당히 얼굴을 드러낸 그를 보니 답답해 보이지 않아 부러웠다.
가까이 온 아오미네에게 인사했지만 궁녀가 절대 벗지 마라는 말을 잊지 않고 예의에 어긋날지라도 삿갓은 벗지 않았다. 그러자 아오미네는 오히려 만족한 목소리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나인들이 잘 가르쳤군. 그런식으로 절대 삿갓을 벗지말게.”
“하지만 이거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불편합니다.”
그래도 하늘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때문에 어쩔 수 없으니 참으라는 아오미네가 얄미워 보였다. 그렇게 따지면 왕의 얼굴도 가려야 하는 거 아닌가. 쿠로코는 그에게 요목조목 따지고 싶었지만 그러다 그의 심기를 불편해져 자신을 야시장에 데려가지 않을까봐 입을 꾹 다물었다.
아오미네의 명령에 문지기가 문을 열자 마찬가지로 관복이 아닌 평범하게 입고 초롱을 든 금군 병사들과 함께 아오미네가 먼저 밖으로 나갔다. 뒤이어 나가는 쿠로코는 삿갓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발밑을 보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때 아오미네가 쿠로코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내 손을 잡아. 그러면 앞이 보이지 않아도 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거다.”
삿갓을 들어 환하게 웃는 아오미네를 보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뛰는 심장에 놀랐다. 아마 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것에 들떠서 덩달아 그런거다. 쿠로코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오미네의 호의는 무시할 수 없었서 쿠로코는 머뭇거리며 그의 손을 잡았다. 처음 잡은 그의 손은 굳은 살 위치가 원래 세계에 있는 아오미네와 달랐다. 아니 크기도 달랐다. 원래 세계의 아오미네의 손을 잡아 본 건 그가 아직 작았던 중학교때였다.
아무도 없는 샛길따라 계속 내려가보니 저만치에서 시끌시끌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삿갓을 살짝 들어 앞을 보자 유독 밝은 불빛이 나는 곳이 있었다. 전등보다 어두운 초롱을 달아서 화려하게 밝지 않아도 한 눈에 저기가 야시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동료들과 야시장에서 불꽃놀이를 보았던 것이 기억났다. 그때 보았던 형형색색에 빛나던 아오미네가 문득 그리웠다.
드디어 도착한 야시장은 초입부터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기에 와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던 쿠로코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그들은 원래 세계의 사람들과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아오미네를 따라 야시장에 진입했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전혀 치이지 않았다. 아마 남들보다 훨씬 덩치가 큰 아오미네 뒤에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부하기엔 주위 사람들이 아오미네를 피하는데 급급했다.
이 점을 의아하게 생각한 쿠로코는 삿갓을 살짝 들고 그들을 관찰해보았다. 자기들끼리 아오미네를 보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나, 당황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오미네를 보고 반해 두 손을 꼭 모은 소녀들까지. 그들의 반응이 너무 신기해 쿠로코는 아오미네의 손을 놓친 것도 모르고 사람들에게 눈길이 갔다.
그러나 아오미네가 잠시 멀어지자마자 존재감이 옅는 쿠로코는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파묻혔다. 앞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아오미네를 찾았다. 키가 큰 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쿠로코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자꾸 앞을 막고 있어서 가까이 가기 힘들었다.
계속 그렇게 사람에 치이다가 어떤 사람이 저도 모르게 손으로 쿠로코의 삿갓을 쳐버렸다. 하도 답답해서 처음부터 갓끈을 풀어놓았는데 그 때문에 쉽게 들리고 말았다. 뒤로 넘어가는 삿갓을 잡지 못해 그만 하늘색 머리카락 보여질 찰나 누군가가 삿갓을 잡고 다시 쿠로코에게 쓰였다.
“이 녀석! 어딜 혼자 돌아다닌 거야!”
버럭 소리 친 사람은 아오미네였다. 잔뜩 화가 난 아오미네는 쿠로코를 거칠게 끌어 당겨 자신이 바짝 오게 만들었다. 갑자기 그의 품에 들어온 쿠로코가 당황해서 밀치자 그는 양 손으로 갓끈을 잡고 잡아 당겼다. 두 번 다시 갓끈이 풀어지지 않도록 그가 대신 묶어주었는데 어찌나 힘주어 묶던지 매듭 짓는 순간 숨이 막혀 기침이 나왔다.
“갑자기 없어지면 어떡해! 삿갓도 벗겨질 뻔 했지 않는가!”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러면 내 손을 꽉 잡고 있어야지. 자네는 손 잡는 걸로는 안되겠다.”
아오미네는 쿠로코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잡고 아예 자신의 앞에 두고 갔다. 왼쪽으로 가면 쿠로코를 왼쪽으로 틀고, 오른쪽으로 가면 그를 오른쪽으로 트는 모양이 마치 자신이 자전거가 되어 운전당하는 느낌이었다. 잠깐 미아가 되었다지만 애들도 아니고 이런 자세는 굴욕적이었다.
자존심이 상해서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으나 그래도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아오미네의 앞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 뒤로 뒷걸음쳤고, 다른 사람들은 애써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사람은 아오미네와 눈을 마주쳤는지 눈동자를 돌리고 어색하게 휘파람을 불었고, 어떤 여인은 같이 온 아이가 손가락으로 아오미네를 가르키며 뭐라고 말하는 순간에 아이의 입을 막고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단순히 덩치 큰 사람을 피한다고 하기엔 뭔가가 달랐다.
이거 잠행이라고 들었는데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니 이미 야시장에 왕이 왔음을 알아챈 것 같다. 하긴 따지고 보면 남들보다 덩치도 크고, 피부도 남들보다 새까매서 존재감이 엄청난 이 사람을 못 알아 볼 리가 없다.
그럼에도 아오미네에게 달려들지 않고 최대한 모르는 척하는 그들이 참 상냥하다고 느껴졌다. 이 곳의 아오미네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받고 있었다.
그렇게 시장 중간까지 오자 아오미네는 쿠로코의 몸을 오른쪽으로 틀어 어느 노점 앞으로 갔다. 노점에선 팔뚝이 굵은 아저씨가 힘차게 야끼소바 같은 것을 만들고 있었다. 근데 큰 중화팬에 면을 볶고 있는 건 맞지만 냄새는 야끼소바랑 달랐다. 아오미네는 쿠로코를 계속 앞에 세운 상태로 노점에 있는 아저씨에게 국수 한 접시 달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새로 들어온 주문에 신나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가 아오미네를 보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그러나 바로 표정을 바꾸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 나으리, 얼마나 드릴까 굽쇼?”
“거 적당히 많이 주쇼.”
귀족같이 입고서는 부랑배를 따라하는 말투가 이상해서 쿠로코는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놀란 사람들과 달리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싱글벙글하게 웃고 있었다. 설마 자신이 완벽하게 변장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건가. 사람들이 어색한 변장을 속아주는 것도 모르고 있는 아오미네가 참 바보같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와중에 그런 그가 아오미네가 예뻐보였다.
아저씨는 남들 주는 것보다 훨씬 많이 얹은 야키소바 같은 국수를 떨리는 두 손으로 아오미네에게 주었다. 아오미네 앞에 있는 쿠로코가 받자 아저씨는 유령이 나타난 것 마냥 더 화들짝 놀랐다. 놀란 가슴을 쓸어만지는 노점 아저씨에게 미안했지만 어쨌든 국수를 받는 두 사람은 노점 옆에서 먹을 수 있는 자리에 갔다. 이미 사람들이 가득한 그 곳에 아오미네가 나타나자 제일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술 마시다 말고 화들짝 놀라 서둘러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저씨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 준 국수는 맛있었다. 확실히 간장소스 맛이 강한 야키소바보다 덜 짭조름했는데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 향이 강했다. 그래도 입맛이 맞아 잘 먹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아오미네는 먹지도 않고 쿠로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느낀 쿠로코가 삿갓을 들어 눈을 마주보자 예쁜 미소로 물어보았다.
“어떤가?”
“야키소바요? 맛있습니다.”
“아니, 국수 말고 이 거.”
라고 말하면서 아오미네는 자신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입고 온 옷을 말하는 건가 싶었다. 쿠로코가 의아하게 보면서 옷 잘어울린다고 말하니 아오미네가 답답했는지 주위를 살펴보다가 쿠로코에게 속삭이며 ‘변장’이라고 말했다.
“이정도면 완벽하지? 가끔 야시장이 열릴 때마다 오는 데 아무도 눈치 못 챈다고.”
아오미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쿠로코는 먹던 국수를 뿜었다. 아까부터 안 웃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본인이 결정타를 날려준 바람에 쿠로코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전부터 여기 사람들이 이 바보같은 왕을 위해 필사적으로 모른 척했다고 생각하니 그 정성이 기특하고 웃겼다. 과연 그들은 아오미네가 올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쿠로코가 웃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테이블에 엎드려져 있자 아오미네는 그가 어디 아픈지 알고 당황했다. 어깨를 흔들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그에게 쿠로코는 가까스로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웃음끼가 가시지 않았던 터라 미간을 찌푸린 그의 얼굴이 귀여워서 다시 웃음 터졌다. 쿠로코는 아오미네에게 속아 준 사람들을 생각해서 필사적 변명했다.
“당신이 멋져서 그랬습니다.”
“자네도 멋지네.”
뜬금없는 말에 놀라서 웃는 것도 멈추어졌다. 그러자 아오미네는 손을 뻗어 쿠로코의 뺨을 만졌다.
“항상 무표정이었다가 웃으니 이제야 인물이 훤하군. 앞으로도 계속 웃고 다니게."
그렇게 말한 아오미네는 쿠로코를 바라보며 예쁘고 환하게 웃었다. 어루만져주는 손길과 그 미소에 쿠로코는 심장이 마구 뛰었다. 아까 손을 잡아줄 때보다 더 심하게 뛰고 있어서 이대로면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터지고 심장이 너덜너덜 해질 것 같았다. 쿠로코는 아픈 심장을 부여잡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아오미네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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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농/단편 2015. 1. 22. 09:43[흑적] 1104호 이야기 / 맛보기용
* 흑좌온에서 낼 흑적 배포본 맛보기 페이지입니다. 물론 실제책은 19금이므로 이 점 유의해주세요.
흑적인데 테츠오빠는 왜 안나오면.... 오빠 나올때가 그것하는 이야기라서요...
클럽 입구에는 호객을 위해 일렉트로닉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글리치 몹의 Fortune day. 아까부터 들었지만 인트로의 바이올린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노래 제목 답지 않게 음울하게 이어지는 음악을 들으면서 아카시는 거기 맞은편 도로, 건물과 건물 사이 어두운 곳에서 몸을 숨기고 클럽 입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클럽에 들어가기 앞서 아카시는 조직에서 변장을 위해 짙은 갈색 가발과 남색 요미우리 야구 모자, 가장 중요한 장갑과 함께 준비한 점프슈트 형식의 작업복 주머니에서 껌 한개를 꺼내 쓰고 있던 때가 탄 흰색 마스크를 내리고 입에 넣었다. 원래부터 옷 안에 있었던 껌은 흔한 패션후르츠 맛이었다. 취향은 아니지만 평소에 기호식품을 스스로 찾지 않기에 상관없었다.
클럽 앞에 있는 택시 정류장에서 온 승합차 때문에 클럽 입구가 보이지 않자 그는 바닥에 내려둔 묵직한 공구가방을 들고 어두운 곳을 나왔다. 나오면서 남은 껌종이는 한 손으로 뭉개서 하수구 틈 사이로 던져버렸다. 기상청에서 예고한대로 새벽에 비가 내리면 하수구에 있는 껌종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승합차는 몸에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태우고 다시 엑셀을 밟아 정류장을 빠져 나갔고 아카시는 구부정한 허리로 평소와 다른 걸음걸이로 클럽 앞에 도착했다. 네온 사인과 레이저가 나오는 화려한 입구 있던 클럽 직원 중 한 사람이 턱에 마스크를 걸친 아카시의 얼굴을 확인하고 않고 단순히 그가 입고 있는 작업복과 공구 박스를 보더니 무심한 표정으로 말도 없이 손님들이 들어가는 입구가 아닌 건물 뒷편으로 가라고 손짓했다. 그와 함께 입장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눈빛도 싸늘하고 매섭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카시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상태로 직원에게 인사하고 안내 받은 건물 뒷편으로 갔다. 등 뒤로 노래에 삽입된 여자의 신음소리가 간지럽게 들렸다.
건물을 끼고 코너를 돌자 화려한 입구와 다르게 조용하고 더러웠다. 클럽 직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쭈그러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아카시가 입고 있는 낡고 오물이 묻어 있는 바지를 흘겨보다가 바로 무시하고 손에 들고 있던 담배에 입을 댔다. 아카시는 그 사람을 보고 얼굴을 바로 기억했지만 정작 그는 아카시의 얼굴을 보지 않아서 앞으로 기억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코너를 돌아 음악의 비트만 들리는 건물 뒷편으로 가자 녹슨 철문에는 입구에 있던 호리호리한 몸매의 클럽 직원과 다르게 한 덩치하는 한 사람이 우직하게 서 있었다. 통이 넓은 정장바지와 활동하기 편한 흰색 티셔츠 위로 걸쳐 입은 자켓은 딱 봐도 평범한 클럽 직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험상궂은 얼굴로 아카시에게 쓰고 있는 모자를 벗으라고 멍령했다. 순순히 남색 모자를 벗어서 얼굴을 보여주자 왼쪽 눈썹 쪽에 반창고를 붙인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던 그 사람은 이번에는 공구 박스를 열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공구 박스를 열어주니 그 사람은 구둣발로 공구들을 헤집어 보고는 별 의심없이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공구 박스를 대충 정리하고 아카시는 구부정한 허리로 그 사람에게 인사하고 열어준 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멍청한 사람은 다행히 작업복 안에 숨겨둔 총과 소음기까지 확인하지 않았다.
클럽은 이 상가 건물의 4층과 5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카시는 거기까지 이어진 비상구 계단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타겟이 있는 곳이 얼마남지 않았다. 장갑을 낀 손으로 옷 속에 숨겨둔 총을 확인한 그는 천천히 타켓을 향해 계단을 올라갔다.
5층에 있는 클럽의 VIP층에 도착해 비상문을 열자 커다란 우퍼스피커로 터져나오는 비트소리가 무지막지하게 컸다. 그래서 클럽 안으로 돌아다니고 있던 직원은 문 여는 소리가 아니라 비상구에 있는 형광등 불빛을 보고 아카시가 왔음을 알아챘다. 아카시를 비상구를 닫는 사이 다가온 직원은 그를 VIP층 화장실로 안내했다. 화장실의 입구는 하나이나 짧은 복도를 지나면 각자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따로 있었다.
아카시는 배관업체 직원처럼 공구 박스에서 공사중이라는 안내문을 찾아 남자화장실 문에 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문을 붙이면 안 들어 올 사람은 안 들어오고 들어올 사람은 기여코 들어오는데 아카시의 타겟은 아집이 강한 사람이라 무조건 들어 올 것이다.
남자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어서 아카시 밖에 없었다. 그는 천장을 살펴봐 다시한 번 CCTV가 없는지 확인하고 화장실에 있는 창문에 다가가 열어보았다. 불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는 창문은 걸림장치 때문에 반밖에 열리지 않았다. 공구 박스가 통과 힘들어 보였다. 그 다음은 고장한 변기칸 안에 공구 박스를 넣어두고 구조상 여자화장실과 붙어있는 세면대로 가 거울이 붙어있는 타일에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을 대고 귀를 갖다댔다. 아무리 주의 깊게 들어보아도 여자화장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화장실 안에도 음악소리가 들려서 아주 자세히 듣거나 타일이나 거울이 깨질 정도로 큰 소동이 나지 않는 이상 거기서 이쪽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사전 확인 작업을 마친 아카시는 완벽한 변장을 위해 고장난 변기가 있는 화장실 칸에 들어갔다. 문 입구에는 공구 박스에서 꺼낸 여러 공구들을 바닥에 이러저리 내려 놓았다. 그리고 문을 열어둔 채 변기 앞에 앉아 타겟을 기다렸다. 먼저 온 조직원이 단단히 막혀둔 변기에선 오물 냄새가 풍겼지만 그는 마치 감각을 잃은 것 마냥 미간조차 찌푸리지 않았다. 그저 타겟을 죽이는 과정을 몇번이고 떠올랐다.
회색톤 세미정장으로 차려입고 조금이라도 젊어보이기 위해 왁스로 앞머리를 올린 타켓은 아카시와 눈이 마주치자 대뜸 욕을 내뱉었다.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있는 중에도 술에 취해서 혀가 꼬이는 말투로 왜 공사를 지금하냐, 빨리 못하냐, 냄새나니 꺼져라는 말을 하면서 타겟은 금세라도 아카시를 한대 칠 기세였지만 그가 있던 화장실 칸에서 나는 오물 냄새 때문에 다가오지 않았다.
타겟은 세면기에 가까이 있는 소변기를 사용했다. 타겟이 바지 지퍼 여는 소리가 들렸고 아카시는 작업복 속에 넣은 총과 소음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미 총은 장전되어 있었다. 총구에 소음기를 돌리며 고정을 시키는 동안 뒤로 갈 타이밍을 쟀다. 제법 거센 소변 누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아카시가 있는 화장실 칸에서 그가 소변을 누는 소변기까지 세 걸음. 술이 취한 타겟은 많이 마신 만큼 소변도 길게 누고 있었다. 아카시는 왼손에 든 총을 숨기고 소리없이 자리에 일어났다.
자신이 소변 누는 모습을 지켜 보고있는 타겟은 아카시가 일어나 자신에 한 발자국 다가온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내 소변을 다 눈 타겟은 반 발자국 뒤로 물러나 속옷을 추스리고 바지 지퍼를 닫으려고 했다. 그때 단발에 뛰어든 아카시가 주먹쥔 오른손으로 타겟을 턱을 세개 쳤다. 턱을 맞아 가벼운 뇌진탕에 걸린 타겟이 정신을 못차리는 사이 아카시는 그의 멱살을 잡아 자신을 보게 한 뒤 그의 입안에 총구를 밀어넣었다. 목젖을 누르는 총구에 타겟이 놀라 눈을 크게 뜨자 아카시는 아까와 전혀 다른 싸늘한 눈빛으로 그에게 속삭였다.
"USB는 어디에 있지."
USB라는 말에 타겟의 눈동자가 무의식적으로 행거치프를 넣은 왼쪽 자켓주머니를 향했다. 그 눈동자를 빠르게 잡아낸 아카시는 확인 할 것도 없이 왼손을 높이 들고 기도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소음기 특유의 소리는 다겟의 입안에서 묻혔고 그의 등 뒤로 붉은색 피가 불꽃이 터지는 것처럼 흘어졌다.
아카시는 총구를 타겟의 입에서 꺼내고 눈을 뜨고 단발에 죽은 그를 천천히 화장실 바닥에 눕혔다. 무릎을 꿇어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주머니를 뒤졌다. 그가 찾는 USB는 헹거치프에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이제부터 시간 싸움이었다. USB를 찾은 아카시는 공구 박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면서 사용한 장갑을 작업복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가죽장갑으로 바꾸어 꼈다. 그리고 공구 박스에 있는 공구들을 모조리 꺼내고 플라스틱으로 된 바닥도 들었다. 위장용으로 넣은 플라스틱 바닥 밑에는 비닐 봉지에 싼 총을 감쌀 수건들과 아카시가 다음으로 입을 변장용 밝은 갈색 가발과 세미정장 자켓과 구두, 자잘한 남성용 악세사리들이 있었다.
그는 서둘러 작업복을 벗고 그 안에 입고 있던 베이지색 고급 면바지와 푸른색 셔츠 위로 남색 자켓을 걸쳤다. 갈색 로퍼로 갈아 신고 마지막으로 허세부리는 사람들이 흔하게 가지고 있다는 프리미엄 손목시계를 찼다.
아카시는 벗어둔 작업복을 공구 박스에 넣지 않았다. 그 대신 그 작업복의 팔과 다리는 묶어두고 흡사 천가방처럼 된 작업복 안에 타겟에서 빼앗은 USB를 안에 씹던 껌으로 붙어둔 운동화와 수건으로 감싼 총, 가발을 넣어 지퍼를 닫았다. 아카시는 작업복 안에 있는 물건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소매와 바지를 끈처럼 매듭졌고 마지막으로는 공구 박스에 꺼낸 청테이프로 목구멍을 막으면서 돌돌 쌌다.
이제 마지막 작업으로 아카시는 화장실 유리창에 청테이프를 빈틈없이 붙였다. 청테이프로 손잡이 같은 것도 만든 그는 바닥에 있는 공구에서 스패너를 꺼내고 손잡이를 잡은 상태로 청테이프를 붙은 유리창에 내리쳤다. 청테이프 덕분에 유리는 큰소리 없이 깨졌고 아카시가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큰 파편없이 창에서 떼어졌다. 창유리를 깨고난 아카시는 물건을 든 작업복을 들어 창가로 갔다. 창이 향해져 있는 곳은 건물의 옆쪽으로 다른 건물과 틈은 좁았다. 밑을 내려보자 옆건물 쪽에 배달원 역할을 맡은 조직원이 서서 물건을 기다렸다. 아카시는 망설임없이 그를 향해 작업복 덩어리를 던졌다. 확인은 하지 않았다. 그것하나 못찾아 배달하지 못하면 그 과실은 배달원에게 있었다.
여기까지 5분 안팍이 걸렸다. 슬슬 나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와 마주칠 것이다. 하지만 아카시는 서두르지 않고 나가기 전 바닥에 놓아둔 공구들을 다시 공구 박스에 넣었다. 다시 평범한 공구 박스가 된 공구 박스는 그대로 화장실에 두었다. 어차피 실제로는 평범한 배관공의 공구 박스였고 아카시가 절대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공구에 새겨진 일련번호들을 모조리 지운 그 것을 경찰들이 백날 가지고 있어봤자 아카시로 도달할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화장실 문에 다다른 아카시는 문을 열기 전 바지주머니에 미리 넣어둔 남자화장실 복사키를 꺼내고 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기척을 살폈다. 여자화장실에 누군가 나오는 소리가 들리자 두 호흡 뒤 아카시도 나왔다. 화장실과 달리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리는 복도에는 조명이 약해 어두웠고 앞서 간 여자도 뒤에서 나온 아카시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앞에 있는 여자를 주시하면서 재빠르게 문 밑에 있는 걸쇠에 열쇠를 넣고 문을 잠갔다. 이제 최소한 아카시가 이 클럽을 빠져나기기까지 이 안으로 사람이 들어 갈 일은 없다.
배관공으로 연기했던 아카시는 이번에는 여기 손님으로 연기했다. 즐거운 긋 살짝 미소를 지으며 같은 가수의 Warrior concerto의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클럽은 복층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5층 VIP 룸에서 계단으로 4층에 있는 댄스플로어로 내려갈 수 있었다. 내려간 댄스플로어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아카시는 그들 사이에 섞으면서 대충 아무나 골라 그의 자켓 주머니에 화장실 열쇠를 몰래 넣었다.
모든 것을 마무리한 아카시는 계속 일반 손님으로 연기하면서 출구로 걸어갔다. 출구쪽 밝은 불빛에 시간을 확인하니 12시 30분이 넘었다. 일찌감치 다른 클럽으로 가려는 무리들에 섞여 들어 간 아카시는 별 의심없이 클럽을 나올 수 있었다.
아까 지나친 화려한 1층 입구에 가자 아까 그 직원들이 그대로 있었다. 그 중에 배관공으로 연기하고 있던 아카시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던 직원이 아카시 손목에 찬 시계를 보더니 부러운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아카시는 아까와 다른 쾌활한 목소리로 잘 가라고 외친 그 직원의 인사를 무시하고 제 갈길을 갔다.
술 취한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를 걸어가 클럽으로부터 5블럭정도 멀어졌을때 낡은 승용차가 아카시 가까이 다가왔다. 경적을 울리지 않고 다가온 차를 바라보자 낡은 차답지 않게 최근에 선팅한 유리창을 내려졌고 운전석에는 굳은 얼굴을 한 미도리마가 있었다. 그임을 확인한 아카시는 바로 뒷자석에 탔고 미도리마는 서둘러 유리창을 올렸다. 낡은 승용차는 굉장한 엔진음을 내고 앞으로 달렸다. 서둘러 여기를 빠져나기 위해 엑셀을 밟는 미도리마에게 아카시는 자신의 붉은 머리를 가렸던 가발을 벗으며 좌석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
"114번지로 가."
"또 거기인가. 알겠다."
대화의 목적이 끝나자 두 사람 사이에선 아무 말이 없었다. 어차피 아카시는 미도리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었고 또한 미도리마가 아카시와 말을 섞이기 싫어하는 것을 알기에 두 사람은 대화 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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