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우리들의 생일은 단 하루였다. 형제가 6명이 있어도 같은 날에 축하를 받았고 커다란 케이크 하나를 나누어 먹었고, 색깔만 다른 똑같은 선물을 다같이 받았다.
머리가 커지고, 나이를 먹어도 우리들의 생일은 변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서도 아무도 독립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다같이 생일을 보냈다. 다른 게 있다면 동정 n년째를 한탄하면서 술을 마시는 것 뿐일까.
이번에도 생일을 맞이한 마츠노가의 형제들은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고 바로 2층에 있는 자신들 방에 들어가 2차를 시작했다.
올해도 동정을 못떼서 서러웠는지 장남이 빠칭코와 경마에서 딴 형제들의 돈을 끌어모아 술을 박스 채로 사왔다. 형제들 중에 세 명이나 술이 약한대도 불구하고 내일을 없애버리겠다는 심정으로 술잔에 술을 가득히 채웠다.
저녁을 먹고 바로 시작한 2차는 어느새 새벽까지 이어졌다. 긴 이불이 깔아져 있어야하는 다다미 바닥에는 빈 술병과 쓰레기가 가득했다. 이치마츠처럼 술이 약한 카라마츠는 잔뜩 취해서 벌써 배까고 구석에 누워있는데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에게 이불도 안 덮어주고 자기들끼리 열심히 마시고 있었다. 아, 쵸로마츠는 속이 안 좋아서 또 한번 화장실로 갔다.
형제들 중에도 술이 제법 센 쥬시마츠도 버티기 힘들었는지 술을 자꾸 주는 장남과 막내를 물리치고 겨우 베란다로 나왔다. 여름이 성큼 다가온 5월의 마지막주이라도 저녁에는 바람이 시원했다. 술 때문에 잔뜩 올라 온 열기를 식히기 충분했다.
쥬시마츠는 형제들 눈에 보이지 않는 사각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앉았다. 헤롱한 고개를 빙그르르 돌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며칠 째 맑은 하늘에서 희미하게 별이 보였다. 어릴 때 놀러간 시골이었다면 분명 별들이 쏟아져 내렸을 하늘이었다.
그게 아쉬워, 쥬시마츠는 손가락으로 하늘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다. 그러자 쥬시마츠가 그린 동그라미 안에는 별이 반짝하게 가득했다. 물론 술기운 탓이겠지만.
하늘에 별이 가득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이. 방 안에서 누군가 베란다로 나왔다. 느릿한 발소리에 고개를 그쪽으로 돌려서 보니 그 사람은 등이 굽은 이치마츠였다. 얼굴이 카라마츠처럼 벌건 이치마츠는 평소와 다르게 잘 버티고 있었다. 쓴 맛을 싫어해서 술을 잘못하는 이치마츠가 아직도 서있다는 건 아마 그 술을 다 카라마츠가 먹어준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억지로 먹였거나. 왠지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구석에 숨어있는 자신을 단번에 발견해서 느릿하게 다가오는 형을 위해 쥬시마츠는 제 몸을 벽에 난간에 더 붙여서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치마츠는 그 자리를 다 차지하고도 모자라 쥬시마츠에게 기대다시피 몸을 붙였다. 이치마츠가 먼저 몸을 붙이면서 어리광을 부리는 건 흔치 않아서 쥬시마츠는 몸이 불편해도 기뻤다.
이치마츠는 쥬시마츠가 보고 있던 하늘을 보면서 물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별을 그리고 있었어!"
쥬시마츠가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자 이치마츠는 되물었다. 그래서 쥬시마츠는 이해하지 못한 형을 위해 아까처럼 하늘에 동그라미를 그려서 반짝이는 별을 보여주었다.
"형아, 형아. 여기 안에 별이 많지?"
"-그렇네."
쥬시마츠처럼 그 별을 보았는지 모르지만 이치마츠는 사투리를 흉내는 거처럼 말을 쭈욱- 늘렸다. 그 반응이 재미있어서 쥬시마츠는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의 얼굴을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떨구고 동생의 어깨에 기댔다. 몸 안에 가두리 쳤던 술기운이 그물이 터진 것처럼 한꺼번에 올라온 모양이었다. 숨 쉴때마다 술냄새가 올라왔다. 쥬시마츠는 완전히 취한 형의 어깨를 약하게 흔들어 보았다.
"이치마츠 형, 졸리면 들어가서 자야지."
그러나 이치마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쥬시마츠는 이번에는 어깨를 토닥였다.
"에이, 취한 거 같은데에?"
"……안 취했어."
그렇세 말한 이치마츠는 고개를 들었다. 잠들기 시작한 뇌를 깨우기 위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지만 더 어지러웠는지 이번에는 등 뒤에 있는 창문에 기댔다. 쥬시마츠는 멍하게 반쯤 눈 앞에다가 손을 흔들어 보았다. 그게 거슬린 이치마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자신을 향해 입벌려서 웃고 있는 쥬시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안광이 없는 흐린 눈동자는 서로 같지만, 쥬시마츠는 그 눈을 통해 이치마츠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반면에 이치마츠는 그러지 못했다. 여천히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동생의 눈동자를 빤히 본 이치마츠가 대뜸 말했다.
"뽀뽀해줘."
그 순간 쥬시마츠의 눈동자가 당황하고 이치마츠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그 시선에는 다시 합류한 쵸로마츠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오소마츠와 토도마츠의 등을 향해 있었다. 사온 술을 다 마시기 위해 베란다는 신경쓰지 않는 그들을 보다가 쥬시마츠는 이치마츠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그으래! 볼에다가 해줄까?"
"입에……, 아니 지금 냄새 날거야."
이치마츠는 말하다가 목구멍을 통해 올라온 술냄새가 마음에 드지 않아서 말을 바꾸었다. 하지만 이미 앞에 말을 알아들은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입맞추었다. 똑같이 생긴 입술에다가 부벼서 말랑한 느낌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똑같이 큰 입 안에다가 혀를 살짝 넣어서 혀 끝만 닿다가 바로 뗐다. 이 이상 깊게 들어가지 않는 건 두 사람의 약속이었다. 마지막으로 입술로 입술을 깨물어서 짧은 입맞춤을 끝냈다.
이치마츠는 멀어지는 쥬시마츠에게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냄새는?"
"괜찮아. 괜찮아. 나도 술냄새 나는 걸!"
그렇게 말한 쥬시마츠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키득키득 웃고 있었지만 그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어두운 밤에서도 지금의 쥬시마츠의 볼은 발갛게 빛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쥬시마츠에게 뽀뽀를 받은 이치마츠는 이제 버티기 힘든지 쓰러지듯이 쥬시마츠에게 기댔다. 쥬시마츠는 가두기 힘들어하는 이치마츠의 얼굴을 잡아서 어깨에 바로 올렸다.
"이제 잘거야?"
"으응."
"방에는 안 들어갈거야?"
"으응."
"알았어."
멀어져가는 의식으로도 대답을 꼬박꼬박하고 있는 이치마츠를 위해 쥬시마츠는 자세를 바꿔서 형이 편하게 기댈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술을 다 마신 토도마츠가 두 형을 찾기 위해 베란다에 나올때까지 자유로운 손으로 하늘에 별을 그렸다가 이치마츠 꿈에 넣어주었다.
꿈 속에서 쥬시마츠와 이치마츠는 다시 한 번 서로의 생일을 축하했다. 형제로 태어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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