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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소송 2017. 2. 15. 22:02[올캐러] 해피발렌타인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발렌타인은 지났지만 그래도 발렌타인때 썼다고 발렌타인 기념 썰같은 글을 가져왔습니다. 올캐러라고 했지만 본격적으로 나오는 사람은 쥬시마츠, 오소마츠, 카라마츠입니다 ㅎㅎ
또한 발렌타인 기념이지만 달달한 것보단 피튀기는 마피아 썰입니다... 헤헷.
이 뒤에도 있지만 아직 자세히 생각한 것이 없어서 마저 쓰지 못했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진짜 연재글로 찾아 뵙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중세시대 건물과 현대적인 건물에 둘러 싸여있는 넓은 광장에는 흰색으로 통일한 테이블과 의자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오늘은 볕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한 잔의 차를 즐기고 있었다. 2월인데도 이곳은 따뜻한 지방인지라 다들 복장이 가벼웠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라도 외국에서 나름 아름답다고 이름난 광장이었다. 그래서 현지인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언제나 많았다. 온갖 사람들이 있는 이 곳에서 쥬시마츠는 누구보다 이목을 끌었다.
[검은색 정장파]
- 주로 하는 일은 여러가지 물건의 유통 루트를 관리해서 이익을 취함. 아가씨들과 같이 일하는 일도 함. 연결, 신변 보호 등과 같은 일이다. 현재 ※○□ 선발대회 출전권을 가지고 있음.
- 오소마츠 : 검은색 정장파 대장. 검은색 정장파라고 해도 어차피 3명이 다 인 조직이라서 크게 사업하는 건 없다. 자잘한 유통 루트를 관리하는 정도. 자신들과 성격이 비슷한 카라마츠의 하얀색 정장파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 중에 카라마츠를 제일 안좋아한다. 지금은 유들유들하고 빈틈이 많아 보이지만 한창 혈기 왕성했던 주니어 시절에는 싸움으로 끗발 날리던 사람이었고 지금도 전설로 이어지는 게 몇개 있다.
- 쵸로마츠 : 여기에서 하는 일은 재정관리. 원래는 카라마츠 소속이었으나 오소마츠가 있는 검은색 정장파에 있게 된 이유는 스파이 짓을 하기 위해서 였지만 그건 이미 진작에 걸린지 오래다. 걸리기도 했고 카라마츠보단 오소마츠와 일하는 게 나름 편해서 그냥 눌러 붙은 케이스. 그래서 카라마츠의 하얀색 정장파와 친분과 교류를 유지하고 있다. 그냥 연결책이나 다름이 없다.
- 토도마츠 : 오소마츠의 막내동생. 형이 이런 일을 하니 동생인 토도마츠도 따라서 하는 중이다. 형을 따라 유통 루트를 관리하며 형보다 영특해서 새로운 루트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래도 노는 걸 더 좋아해 아가씨들과 많이 놀러다닌다. 아가씨들은 토도마츠와 있으면 걸즈토크 하는 느낌이라서 좋아함.
[하얀색 정장파]
- 하는 일은 청부업. 대놓고 떠벌려 다니지 않지만 이 바닥에서 사람을 처리하는 데 손이 빠르다고 유명한 쥬시마츠가 있어서 그를 위주로 돌아간다. 은신처로 두는 가게들이 도시 곳곳에 있어서 수입이 안되는 건물을 많이 가졌다고 놀림 당한다.
- 카라마츠 : 하얀색 정장파 대장. 옛날부터 온갖 청부업을 하면서 돈을 벌었고 지금도 청부업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직접 사람도 처리 했으나 부하이자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쥬시마츠가 있어서 킬러는 은퇴. 일 덕분에 인맥은 넓지만 유독 여성분들에겐 인기가 없다. 허세가 많아서 사람이 허술해 보여도 머리 회전은 빠르다.
- 이치마츠 : 검은색 정장파의 대장 오소마츠의 둘째 동생. 토도마츠처럼 형을 따라 이 바닥 일을 시작한 케이스. 물론 검은색 정장파에서 일했는데 쥬시마츠를 보고 그대로 폴 인 러브해서 형제들을 배신하고 하얀색 정장파로 들어갔다. 이때 검은색 정장파에서 스파이 짓을 하던 쵸로마츠가 아예 그 쪽으로 돌아선 계기가 되었다. 카라마츠를 따라 청부업을 하고 있으며, 고양이처럼 이리저리 잘 돌아다니는 특기가 있어서 정보 수집 및 조사에 능하다. 쥬시마츠에게 이것저것 입히는 게 삶의 유일한 원동력.
- 쥬시마츠 : 청부업 중에서 사람을 처리하는 데는 프로페셔널이다. 일 할 땐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즉각처리할 정도로 냉정하나 자기 사람들과 있을 땐 애교덩어리다. 하얀색 정장파라도 검은색 정장파와도 두루두루 잘 지내고 특히 토도마츠와는 친구 사이. 이치마츠를 홀리게 만드는 마성이 있는 모양이나 다른 사람들은 그 마성을 잘 모른다. 아무튼 이치마츠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고, 쥬시마츠 또한 이치마츠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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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소송/장편 2017. 2. 3. 23:30[이치쥬시] 마법사와 천사의 이야기 6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벌써 2월이 시작되었습니다. 2017년이 오는 것도 실감이 안나는데 벌써 한달이 지났다니 신기하네요.
이번 화는 드디어 마지막화입니다.
더 이상 말하면 스포가 되니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다 완성된 글을 올리는 거지만 지금까지 기다려주시고 재밌게 읽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결말으로 달려가는 이번화도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약속대로 책을 사주신 분을 위해 결말부분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씁쓸한 엔딩이 되고 말았지만 약속이니 유의해주세요.
디페에서 재고가 많이 남아 통판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만약 책을 구하고 싶으시다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단편 하나 9월 온리를 위한 장편 하나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당신의 하루가 이치쥬시 하시길 바랍니다.
그때부터였다. 이치마츠 옆에 꼭 붙어 있던 쥬시마츠가 대놓고 그와 떨어져 있었다. 이치마츠가 의아하게 생각해서 가까이 가면 자기도 벌떡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그럴 때마다 쥬시마츠는 당황한 얼굴로 이치마츠의 시선을 피했다.
이치마츠와의 친근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쥬시마츠가 하루사이에 태도 바꿔버리니 위화감이 들었다. 집에 놀러 온 토도마츠도 이상한 태도를 보이는 쥬시마츠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쥬시마츠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는데 쥬시마츠는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하지 못하고 자꾸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토도마츠가 마당에서 호두 과육을 벗길 준비를 하는 이치마츠에게 다가와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어? 쥬시마츠 형 장터에 갔을 때부터 이상해.”
토도마츠에게 다 말할까 잠시 고민했으나 어차피 별일이 아니라서 아무 일이 없었다고 둘러댔다.
“나도 몰라.”
“아, 진짜! 둘 다 입 다물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아냐고! 분위기가 이러니까 답답해 죽겠어.”
토도마츠는 잔뜩 열이 받아서 발을 굴렸다.
“그러지 말고 너도 여기서 과육 벗겨.”
“그런 냄새 나는 거 만지기 싫어.”
단호하게 말한 토도마츠가 이치마츠를 내버려두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게 잔정도 없다고 속으로 나무라며 호두 과육을 벗겼다. 쥬시마츠에게 부탁하면 되지만 상태가 이러니 이치마츠도 더 이상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토도마츠의 말대로 이유도 없이 저러는 쥬시마츠가 답답해 점점 열 받았다. 과육을 벗기던 호두를 집어 던지고 한숨을 쉬었다.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와 돌아가고 나니 집안 분위기를 더 가라앉았다. 쥬시마츠를 따라 집 안에 숨어 있던 여우는 나가버렸는지 침대 밑에도 보이지 않았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이치마츠는 잘 준비를 했고 쥬시마츠는 소파에 꼭 붙어 있었다. 이치마츠는 침대에 누워 아직도 다가오지 않으려는 쥬시마츠에게 말했다.
“추워. 쥬시마츠.”
춥다는 말에 쥬시마츠는 반응을 보였다. 이치마츠를 향해 고개를 들었으나 그를 보자마자 당황한 얼굴이 되어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이치마츠가 어서 오라는 식으로 한 번 춥다고 하니 드디어 쥬시마츠가 움직였다.
조금씩 이치마츠가 있는 침대로 온 쥬시마츠는 완전 다가오지 않고 멀찍이 서서 날개를 펼치고 빛냈다. 빛나는 몸에서 뜨거운 온기가 차가웠던 공기를 덥혔다. 하지만 그건 이치마츠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쥬시마츠의 행동에 이치마츠는 그만 머리끝까지 열 받아서 침대에서 튀어나와 쥬시마츠의 팔을 잡아 당겼다. 쥬시마츠가 보다 강한 힘으로 뿌리치려고 하자 아예 두 손으로 잡았다.
“너 도대체 왜 그래! 좋아한다는 말이 그렇게 싫었어? 그러면 떠나면 되잖아! 뭐가 미련이 생겨서 남아서 이러는데. 뭐가!”
이치마츠가 다그치자 쥬시마츠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웃고 있는 입으로 천천히 말했다. 활기찼던 목소리가 마구 떨렸다.
“나, 나는 이치마츠 형아… 옆에서 감시하고…….”
“아, 그 감시 때문에 그러냐? 이제 와서 그게 너랑 뭔 상관이야! 이럴 거면 내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마!”
쥬시마츠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가 이치마츠를 자괴감에 들게 만들었다. 가슴이 너무 아픈 나머지 다리의 힘이 풀릴 거 같아서 무릎을 굽히고 간신히 다리에 힘을 주었다.
“엄마 다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날 엄청 챙겨주고 옆에서 꼭 붙어있길래 나랑 같은 마음인 줄 알았어. 근데 쥬시마츠 네가 지금 이러니까 이제 와서 아무것도 모르겠어. 난 전처럼 계속 같이 있고 싶은데 너는 도대체 어떤 맘인 거야? 남자인 내가 좋아한다고 싫어졌어?”
“……미안해.”
쥬시마츠는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그리고 울고 있었다. 커다란 눈에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해. 형아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쥬시마츠는 새빨간 얼굴로 펑펑 울었다. 차인 이치마츠보다 더 서럽게 울고 있어서 어떤 말을 할 수 없었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왜 우는 지, 그럼에도 이치마츠의 마음을 받아 줄 수 없는지, 이치마츠는 쥬시마츠를 이해하지 못했다.
울고 있는 쥬시마츠 앞에서 힘이 완전히 풀린 이치마츠는 쥬시마츠를 위로하려 손을 뻗었으나 이내 손을 거두었다. 우는 그를 달래고 싶어도 이치마츠도 쥬시마츠가 너무 속상했다.
그래서 이치마츠는 쥬시마츠를 지나치고 로브를 챙겨가 밖으로 나갔다. 쥬시마츠가 따라오지 못하게 재빠른 걸음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가는 중에 뒤에서 멀찍이 따라오는 쥬시마츠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이치마츠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곧장 카라마츠의 집으로 갔다.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니 카라마츠가 바로 나왔다. 그는 문 앞에 있는 이치마츠를 보고 놀랐다. 이 시간에 혼자서 온 게 이상해 보였나보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카라마츠를 무시하고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토도마츠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어린 아이는 일찍 잠에 든 모양이었다. 뒤에서 당황하는 카라마츠가 쥬시마츠는 어디갔냐고 물어보았는데 이치마츠는 그것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야, 너 술 가진 거 있냐.”
다짜고짜 집에 찾아와서 술을 달라고 하는 이치마츠를 보고 카라마츠조차 답답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상냥한 그답게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선반 위에 숨겨둔 술 한 병을 꺼냈다.
“같이 마시지.”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화롯불만 있는 어두운 식탁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술을 원하던 이치마츠였으나 원래 술을 잘 먹지 못해서 한 잔을 오랫동안 한 모금씩 마셨다. 그런데도 취기가 확 올라와 몸이 금세 나른해졌다. 자기 몫 술을 따라놓고 한입도 대지 않았던 카라마츠는 이때다 싶어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카라마츠의 말에 날을 세우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이내 맘이 풀렸는지 이치마츠는 한 숨을 쉬고 자기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도 모르겠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냥 나랑 같은 맘이라고 생각해서 말했을 뿐인데 거절당했어. 이유는 말 안 해줘.”
중요한 말을 쏙 빼고 말했는데도 카라마츠는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 없는 그라도 어렴풋이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보통 형제 사이인 걸 알았다. 물론 토도마츠가 말한 것도 있었고. 카라마츠는 침울해 하는 이치마츠에게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보기엔 쥬시, 아니 그 녀석은 절대로 너를 싫어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받아주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 거 아닐까.”
“사정?”
사정이란 말을 들은 이치마츠는 곰곰이 생각했다. 사정이라니 쥬시마츠에게 있는 사정이 뭘까.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는데 이미 술이 잔뜩 취해서 머리가 무거웠다. 눈앞이 흐릿하게 보이고 잠이 쏟아진 이치마츠는 그만 식탁에 엎드려 잤다.
당황한 카라마츠가 이치마츠를 흔들어 깨웠는데 그 때 등 뒤로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그 이후부턴 깊은 잠에 들어서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술에 취해서 잠을 자다가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이 들어서 게슴츠레 눈을 뜨니 자신을 안고 있는 쥬시마츠의 얼굴이 보였다. 잔뜩 굳은 얼굴하고 있는 쥬시마츠. 그 얼굴을 말없이 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고 아침까지 깨지 않았다.
산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큰 눈송이가 끊임없이 내려서 허리를 파묻힐 만큼 내리면 산촌 사람들은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눈이 어느 정도 녹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래서 그런 날이면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만 둘이서 집 안에 갇히고 만다.
눈에 반사되어 강하고 하얀 빛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 빛 아래에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꼭 붙어서 서로에게 온기를 나누어 주었다. 그 대신 이제 손은 잡지 않았다.
* * *
눈이 어느 정도 녹아서 카라마츠는 널찍한 나무 삽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집에만 있어서 심심해하는 토도마츠를 위해 눈을 파서 길을 만들어 줄 참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생일이라고 해서 어린 동생은 형에게 어서 빨리 길을 만들어 달라고 다그쳤다.
현관문에서 부터 이미 마을 어른들이 판 길까지 동생과 함께 열심히 길을 만들었다. 남자아이라도 힘쓰는 건 싫어해서 이런 일을 하지 않았는데 어서 빨리 가고 싶었는지 스스로 형을 도와줬다.
이치마츠가 나누어 준 뒷다리 고깃덩이를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가져가는 토도마츠를 있는 힘껏 손을 흔들어 배웅해줬다. 동생이 가니 다시 이치마츠와 쥬시마츠 일이 생각났다.
이치마츠가 한 잔의 술에 취해서 골아 떨어졌을 때 쥬시마츠가 바로 찾아왔다. 전혀 웃지 않고 눈가가 벌건 쥬시마츠를 보고 카라마츠는 그 또한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쥬시마츠도 이유를 말해주지 않고 이치마츠를 가볍게 안아 데리고 갔다. 길 앞까지 배웅해주려고 했는데 문이 잠깐 닫힌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쥬시마츠와 이치마츠가 사라진 자리에는 커다란 하얀색 깃털이 떨어져 있었다.
그 이후에는 눈이 많이 와서 집 밖에 나가지 못해서 그들을 찾아가지 못했다. 그들이 어디 사라지거나 죽을 것 같지 않지만 친구로서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간도 있겠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집이 있는 위까지 길을 만들어 주려고 삽을 다시 들었다. 여전히 허벅지까지 오는 눈을 파는 동안 그에게 어떤 사람들이 찾아왔다. 거무튀튀한 옷을 입은 사람들은 다섯 명이었고 그 앞에 있는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얼굴살이 마르고 기침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날카로운 회색 눈이 인상적이라서 넉살이 좋은 카라마츠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회색 눈을 한 사람은 이민자 출신인 카라마츠를 보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사람을 찾고 있는데 말이야.”
토도마츠는 오늘 하루 종일 즐거웠다. 좋아하는 아이의 생일 선물로 뒷다리를 고기를 주니 아이는 다른 애들 선물 받을 때보다 토도마츠의 선물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자신감이 생긴 토도마츠는 으스대며 더 재밌게 놀았다.
친구 부모님이 만들어 준 음식도 맛있게 먹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놀다보니 어느새 해질 때가 되었다. 산길을 어두울 때 다니면 위험하니 토도마츠는 아쉽지만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낮 동안 눈이 많이 녹아서 다행이었다.
자기 집까지 뛰어가는데 평소라면 집 앞에서 동생을 기다리는 카라마츠가 있을 텐데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위화감이 들었으나 이 시간에 형도 어딜 갔나 싶어서 잔소리 해줄 생각만 가득했다.
폴짝 뛰어서 현관문을 열 참에 집 안에서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큰 소리였다. 완전히 놀란 토도마츠는 온 몸이 굳어서 차마 현관문을 열지 못했다. 망설이고 있는 동안 집 안에서 처음 듣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불라니까! 이 새끼가 입 다물면 모를 줄 알아!”
“애새끼가 진짜 고집 세네.”
그 뒤로 거친 숨을 내쉬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소리라도 괴로워하는 게 자신의 형인 걸 알아챘다. 토도마츠는 피가 차갑게 식었다.
또다시 큰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물건을 부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때 이상한 쉰 목소리가 들렸다.
“이치마츠가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주면 될 걸. 이민자 놈들은 쓸데없이 입이 무거워. 처리해.”
그 사람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사람들이 알겠다고 다 같이 합창했다. 그리고 토도마츠는 현관문을 발로 차 열었다. 현관문을 여니 자신을 노려보는 남자 다섯 명과 그 사이에서 엎드려서 피 범벅이 된 카라마츠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형!”
카라마츠는 동생의 목소리를 듣고 움찔거렸으나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입 안도 다쳐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날카로운 회색 눈을 가진 마른 사람이 토도마츠를 내려다보며 이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명 더 있었군. 그래 너는 이치마츠가 어디에 있는지 알겠지? 용감한 아이니까.”
회색 눈을 가진 사람은 입 꼬리를 비틀어 올리면서 말했다. 겁에 질린 토도마츠가 잔뜩 얼어서 입 밖으로 말이 안 나오자 그는 카라마츠의 머리를 발로 쳤다. 그 모습을 본 동생은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형이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어서 불어. 이치마츠 어디 있어!”
“이, 이치마츠 형은…….”
갑자기 쥬시마츠가 밖으로 나가서 이치마츠도 로브를 들고 따라 나갔다. 웃고 있는 입도 닫고 엄청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저만치에서 회색눈 팬 일당이 이치마츠의 집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손에 끌려오는 토도마츠를 보고 이치마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회색눈 팬은 이치마츠를 발견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의 이상한 철금성이 온 산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도망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너 때문에 애먼 사람이 죽는 걸 보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끌고 온 토도마츠를 앞으로 밀었다. 미끄러운 눈길에 잠시 비틀거린 토도마츠는 계속 울었는지 눈이 부었다. 토도마츠가 이렇다면 카라마츠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자신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온 저들의 집요함과 결국 카라마츠와 토도마츠에게 피해를 줬다는 자괴감에 눈앞이 캄캄했다.
이대로 도망 다니는 것이 옳은 일인가. 어차피 죽을 인생이라면 차라리 그들의 손에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앞에 있는 쥬시마츠는 울고 있는 토도마츠를 보면서 뛰어가 구해 주려고 서서히 앞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를 막아선 건 이치마츠였다.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너까지 다치는 거 싫어.”
“이치마츠!”
“매번 이러는 것도 지겨워. 토도마츠를 구하고 또 다시 도망간다고 해도 저들은 또 쫓아 올 거야. 그리고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카라마츠를 놓고 갈 수 없잖아. 나만 저들에게 가면 모든 건 다 괜찮아져.”
이치마츠는 차마 쥬시마츠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하얀 바닥을 보고 말했다. 쥬시마츠는 뭐라 말하고 싶어서 양손을 흔들었으나 바로 그를 무시하고 저들에게 갔다.
“카라마츠와 토도마츠를 부탁해. 약속이야.”
눈이 아직 무릎까지 있어서 헤쳐 가는데 힘들었지만 이미 결심한 그의 발걸음엔 주저함이 없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이치마츠를 보며 회색눈 팬은 잔기침을 하다가 입 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역시 넌 똑똑해.”
“거기에 있는 아이는 놔줘, 나랑 전혀 상관없는 녀석이야!”
“당연하지. 이 귀여운 꼬맹이가 여기까지 안내 해줬는걸.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어.”
풀려날 수 있다는 희망에 붙잡힌 토도마츠는 더 크게 울었다. 다가오는 이치마츠를 보지도 못하고 계속 형을 부르고 있는 토도마츠를 보니 너무 미안해졌다. 어느새 회색눈 팬 앞에 선 이치마츠는 어서 토도마츠를 풀어 달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토도마츠를 붙잡고 있는 부하가 가라고 거칠게 밀었다. 그의 손에 풀려난 토도마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울면서 산 밑으로 뛰어갔다. 벌써 저만치 뛰어가는 토도마츠를 보던 회색눈 팬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엾는 동생도 형을 따라가야지.”
듣자마자 말의 의미를 알아챈 이치마츠는 소리 지르며 그들을 막아서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석궁을 장전하고 있던 부하 중 하나가 도망가는 토도마츠를 향해 화살을 발사했다. 재빠르게 날아가는 화살이 날아가는 걸 보며 이치마츠는 비명을 질렀다.
그때 투둑하고 화살이 꽂힌 소리가 뇌리 깊숙하게 들렸다. 제발 아니길 바라면서 토도마츠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살에 맞은 건 커다란 하얀 날개였다. 하얀 날개가 피로 물드는 사이 쥬시마츠가 기절한 토도마츠를 안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석궁을 쏜 사람을 노려보았다. 날개에 화살을 맞았는데도 아픈 기색하나 없는 쥬시마츠는 커다란 눈에 핏발이 섰고, 이를 꽉 다물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전혀 빛이 나지 않았으나 압도적인 힘이 여기까지 느꼈다. 성스럽고 생명력이 가득했던 기운이 아니었다. 피부를 태울 정도로 뜨거운 살기, 위대한 존재의 분노 앞에서 회색눈 팬조차 두려움에 떨었다.
겁에 질린 부하 하나가 비명을 지르면서 들고 있던 석궁을 발사했다. 그러나 그의 화살을 쥬시마츠를 꿰뚫지 못했고, 오히려 단말마의 비명도 없이 사라졌다. 신음소리가 뒤쪽에서 나서 돌아보니 그는 이미 팔이 뭉개졌다. 쥬시마츠는 괴로워하는 그 사람을 뒤돌아보지 않고 남은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쥬시마츠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 이치마츠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무서웠다. 쥬시마츠를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비록 적이지만 더 이상 그들을 해치게 할 수 없었다. 그때 회색눈 팬이 이치마츠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단검을 꺼내 이치마츠의 턱 아래에 갔다 댔다. 흥분된 그는 더욱 이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새끼가 죽는 걸 보기 싫으면 거기 가만히…….”
회색눈 팬의 말을 끝나기 전에 귓가에서 처음 듣는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치마츠를 붙잡은 그의 몸에 힘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고 그는 힘없이 쓰려졌다. 갑자기 풀려난 이치마츠는 자기 바로 옆에 회색눈 팬이 목이 반쯤 뜯겨서 죽은 걸 보았다. 회색눈 팬의 시체 주위에는 피에 얼룩진 하얀 깃털이 떨어져 있었다.
두목이 눈앞에서 죽자 남은 부하들은 비명을 지르고 서둘러 도망쳤다. 팔이 뭉개진 사람은 고통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나무 뒤로 기어갔다. 이 모든 일이 한순간에 일어났다. 너무 혼란스러웠으나 이치마츠의 눈에는 도망가는 사람들을 노려보는 쥬시마츠만 보였다. 피에 얼룩진 쥬시마츠는 더 이상 천사가 아니었다.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에게 비틀거리면서 다가갔다. 로브를 벗어 쥬시마츠 몸과 날개에 묻은 피를 닦았다.
“이제, 다 끝났어. 다 끝났으니까 그만해도 돼. 쥬시마츠.”
사람을 죽였던 손을 정성스럽게 닦아주고 날개 묻은 피도 조심스럽게 닦았다. 날개를 닦다가 깃털이 힘없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이치마츠는 깃털이 덜 빠지도록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럼에도 깃털은 계속 빠졌고 뼈도 드러났다. 이치마츠는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아, 이거 어떡해. 쥬시마츠.”
쥬시마츠는 말없이 울고 있는 이치마츠를 보았다. 하고 싶은 말도 그리 없는지 입을 꽉 다물고 이치마츠의 얼굴만 보았다. 당황하는 이치마츠에 비해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쥬시마츠는 울고 있는 이치마츠의 볼을 깨끗해진 두 손으로 잡았다. 누구보다 침착한 눈빛으로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사랑해.”
쥬시마츠는 그 짧은 말 한마디만 하고 이치마츠의 입에 입 맞추었다. 꼭 붙은 입술을 통해 쥬시마츠의 따뜻한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 쥬시마츠는 비슷하게 생긴 입술을 살짝 깨물고 곧장 떨어졌다. 이치마츠는 쥬시마츠가 이 상황에서 왜 갑자기 고백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왜그러나고 물어보니 그와 동시에 쥬시마츠 발밑에 검은 원이 생겼다. 그리고 그 원에서 검은색 넝쿨이 생겨 쥬시마츠의 몸을 꽉 잡았다. 세게 잡았는지 쥬시마츠는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이치마츠가 막을 새도 없이 검은 넝쿨에 붙잡힌 쥬시마츠는 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쥬시마츠!”
이치마츠는 아래로 떨어지는 쥬시마츠를 따라 그 원 안으로 손을 뻗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유황 냄새가 맡아졌다. 지옥이 이었다. 이치마츠는 숨이 막혔지만 한없이 떨어지는 쥬시마츠를 따라 그 안으로 떨어지려고 상체를 집어넣었다. 그 때 지옥 밑바닥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 이치마츠를 밀어냈다. 바람에는 익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바람 때문에 밖으로 나온 이치마츠 앞에 붉은 박쥐 날개와 두툼한 도마뱀 꼬리를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 머리 위에 커다란 뿔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은 지독할 만큼 이치마츠와 꼭 닮았다. 그토록 찾았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이치마츠를 내려 보며 말했다.
“그녀랑 완전 꼭 닮았네. 내 아들.”
아버지와 만남에 이치마츠는 놀라거나, 죽이고 싶거나, 와서 고맙다고 할 여유가 없었다. 다급하게 아버지의 펄럭이는 옷자락을 붙잡고 애원했다.
“쥬시마츠를 구해줘! 이 밑으로 떨어졌어.”
그러나 아버지는 괴로운 얼굴을 하고 아들인 이치마츠의 어깨를 토닥였다.
“심판 없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사랑한 그 천사는 이미 틀렸어. 문지기인 나는 그를 데려오려고 문을 열었던 거고. 포기해라.”
“아니야! 쥬시마츠 잘못이 아니라고. 나 때문에 그랬는데, 왜 쥬시마츠가 가야돼?”
애원은 절규가 되었다. 이치마츠는 계속 아버지에게 쥬시마츠를 구해달라고 아니면 자기도 지옥에 가겠다고 말했지만 문지기인 아버지는 규칙이라며 절대로 지켜주지 않았다. 어떻게 해도 쥬시마츠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이치마츠는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처절하게 울었다.
“너만은 이런 기분을 안 느끼기를 바랐는데.”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계속 달래주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숲 속이 어두컴컴해졌을 때 이치마츠가 결국 체념하고 정신을 차리자 아버지는 다시 지옥으로 갔다. 그는 가기 전에 쥬시마츠는 언젠간 악마가 된다고 일러두었다. 그게 얼마나 걸리지 모르지만.
멍하니 서 있던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와 한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디에선가 기절 했을 토도마츠를 찾았다. 차가운 바닥에 오랫동안 있어서 설마 병이 나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토도마츠가 쓰려져 있는 곳은 눈이 녹을 정도로 매우 따뜻했다. 쥬시마츠가 토도마츠를 위해 한 거 이었다. 이치마츠는 다행히 곤히 자는 토도마츠를 안고 카라마츠의 집으로 갔다.
그 놈들 때문에 집 안에서 쓰려져 있는 카라마츠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조심스럽게 만져보니 뼈가 부셔진 곳이 많았고 무엇보다 피를 많이 흘렸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기적일 정도였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우선 카라마츠를 바닥에 똑바로 눕게 하고 집안에 있을 약을 찾아보았다. 지혈할 때 쓰는 약초와 감기 걸릴 때 달여 먹는 약초가 있었다.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치마츠는 포기하지 않고 약초를 빻아서 물을 넣고 반죽해서 연고를 만들었다. 카라마츠 몸에 있는 상처에 지혈제부터 붙이고, 집에 있는 길쭉한 걸 모조리 찾아서 뼈가 부셔진 곳은 고정했다. 감기 걸릴 때 먹는 약도 먹였지만 더 좋은 약이 필요했다. 결국 이치마츠는 해가 뜨면 집으로 갔다 오기로 했다.
여전히 자고 있는 토도마츠는 넓은 침대 위에서 곤히 자고 있었고 이치마츠는 식탁에 앉아 엎드려서 선잠을 잤다. 자고 있던 중에 등 뒤가 서서히 따뜻해진 게 느껴졌다. 뭔가 쥬시마츠와 같은 기운에 이치마츠는 잠을 깼다. 그때 황금색으로 빛나는 창끝이 목덜미를 살짝 스치고 멈췄다. 목에 상처를 낸 창끝에서는 분노가 전해져 뒤돌아보지 못했다. 등 뒤에 있는 존재는 이치마츠를 향해 위압적으로 말했다.
“네가 내 제자를 타락시킨 인간인가.”
목소리는 미성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서 제자를 잃은 슬픔이 느껴져서 이치마츠는 자기도 입술을 깨물었다. 뒤에 있는 사람은 이치마츠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지금이라도 너에게 심판을 내려서 죽이고 싶지만, 제자가 너에게 준 축복을 생각해 살려두겠다. 오늘부터 또다시 죄를 짓는 순간 내 손으로 직접 심판을 내리겠다. 소중한 축복을 헛되게 하지 마라.”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낸 그 사람은 목덜미에 있는 창을 거두었다. 이치마츠는 그가 사라지기 전에 다급하게 소리쳤다.
“내가 받은 축복을 저기에 있는 카라마츠에게 전해 주세요. 저 녀석을 살려주고 지켜주겠다고 쥬시마츠와 약속했습니다. 부디 당신에 자비가 있다면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이치마츠의 말에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치마츠의 소원을 무시하지 않았는지 그의 기운이 등에 닿았고 멀어질 때 몸속에 있었던 쥬시마츠의 기운도 함께 빠져나갔다. 하나 남은 쥬시마츠의 흔적이 사라져서 쓸쓸해졌어도 카라마츠를 살리기 위해선 견뎌야 했다.
이윽고 등 뒤에 있는 사람이 말했다.
“됐다.”
짧은 말 한마디만 하고 따뜻했던 기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이치마츠는 식탁에서 일어나 바닥에 누워있는 카라마츠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서서히 상처에 새살이 올라왔고 부려졌던 뼈들은 붙었다. 혈색도 돌아왔고 가늘었던 숨도 조금씩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완전히 회복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나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상태를 다 살펴 본 이치마츠는 크게 한 숨을 쉬고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창문에서 아침 햇살이 서서히 들어왔다.
산에 눈이 완전히 녹고 엉성한 나무가 드러났을 때 이치마츠는 산촌을 떠날 준비를 했다. 완전히 회복한 카라마츠가 떠나는 이치마츠를 배웅해줬다. 토도마츠는, 어린 아이는 아직도 그 때 그 일을 잊지 못해서 이치마츠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치마츠가 직접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해줘도 전처럼 맘을 열지 못했다.
카라마츠는 쥬시마츠가 왜 사라졌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어린 동생이 친구를 잃어서 침울해진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치마츠가 혈색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창백해서 더욱 물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이치마츠가 걱정이 된 카라마츠는 그에게 그냥 여기서 정착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이치마츠는 매번 단칼에 거절했다. 결국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가서 잘 지내고. 가끔 시간이 되면 놀러와. 나는 언제나 환영이다.”
카라마츠의 말에 이치마츠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잘 지내라는 인사와 함께 이치마츠는 산 아래로 내려갔다. 두 번 다시 못 볼 친구에게 카라마츠는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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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송/장편 2017. 1. 28. 00:00[이치쥬시] 마법사와 천사의 이야기 5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어느새 5화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쥬시마츠를 쥬시마츠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애기는 천사가 맞지만(??) 역시 쥬시마츠는 쥬시마츠가 장르라고 쥬시마츠라고 부르는 편이 편하네요ㅋㅋ
그리고 집에만 있던 이치마츠랑 쥬시마츠가 드디어 둘이서 밖에도 나갑니다.
뭔가 5화부터 분위기가 많이 변할 겁니다.
플라토닉한 사랑, 형제애와 같은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5화는 아슬한 선을 살짝 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이 글은 그동안 이치쥬시라고 공수가 정해진 글이라긴 보단 콤비 개념의 숫자마츠 이야기 같았는데 5화에선 이 글이 이치쥬시가 맞구나...라고 조금이나마 느껴지실 겁니다.
5화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오늘 하루도 이치쥬시하세요~
발에 차이는 낙엽에 낀 서리를 햇살에 녹았으나 서리를 만들었던 산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입김이 눈앞에서 허옇게 번지는 것을 보면서 이치마츠는 나무가 빽빽한 산 속을 한걸음 내딛었다. 그의 옆에는 시린 손을 잡아주는 쥬시마츠와 따라오는 사슴 세 마리가 있었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쥬시마츠가 손을 잡으려고 하기에 이치마츠는 번거롭다고 거부했다. 그러다가 얼마가지 않아 물기가 있는 낙엽에 미끄러져서 비틀거렸더니 쥬시마츠가 이치마츠의 손을 꼭 붙잡았다. 산 속에 두 사람만 있다고 해도 이렇게 손잡고 가는 게 부끄럽지만 쥬시마츠가 긴 소매 속에 있던 손을 일부러 꺼내서 깍지까지 끼는 바람에 떼어 놓지 못했다.
거의 집에만 있던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온 건 겨울이 오기 전에 먹을 걸 미리 구하려기 때문이다. 아직 먹을 것이 남아 있는 가을이라서 그동안 쥬시마츠가 알아서 구했으나, 눈이 내리는 겨울엔 산짐승도 먹을 걸 구하기 힘든 기간이니 겨울이 오기 전에 찾을 생각이었다. 마침 토도마츠도 일이 있었는지 오지 않았다. 우선 말려서 먹을 수 있는 버섯을 많이 구할 예정이었다. 이치마츠는 어깨에 멘 바구니를 고쳐 매며 쥬시마츠에게 말했다.
“쥬시마츠, 낙엽이 불룩한 곳을 잘 봐. 알록달록하지 않는 버섯을 찾아야 돼. 화려한 건 독버섯이라서 못 먹으니까. 알겠지? 바닥에 떨어진 밤도 있으면 줍고.”
“이치마츠 형아. 땅 속에 있는 건?”
쥬시마츠가 빈손을 붕붕 흔들면서 떡갈나무 아래 큰 낙엽이 쌓인 곳들을 가리켰다. 뿌리가 튀어 나온 곳은 이끼가 좀 끼여 있고 버섯 같은 건 붙어 있지 않는 평범한 곳이었다. 이치마츠 눈으로 보기엔 저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천사라면 알지도 모르지.
이치마츠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의 손을 잡은 채로 끌고 갔다. 쥬시마츠가 손을 안 놓고 자리에 앉아 한 손으로 땅을 파려고 하기에 이치마츠는 잡힌 손을 살짝 흔들었다.
“땅 팔 거면 이 손 놓고 해. 나 어디 안 가.”
“넹!”
이치마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쥬시마츠는 드디어 손을 놓고 두 손으로 낙엽을 헤치고 땅을 팠다. 부드럽고 축축한 흙은 쉽게 파졌다. 얼마 파지 않아 땅 속에 있는 뿌리가 드러났고 더 깊이 파니 뿌리에 붙어 있는 검은 혹 같은 것이 보였다. 검고 울퉁불퉁한 건 표면이 흡사 돌 같았다. 그러나 풍기는 향은 쥬시마츠 뒤에 있는 이치마츠도 맡아질 정도로 강했다. 태초부터 전해지는 숲의 향기와 축축한 땅 냄새를 풍기는 송로버섯이었다.
땅 속에 있는 이 버섯은 사람의 눈으로는 절대로 찾을 수 없어서 후각이 뛰어난 돼지가 있어야 찾을 수 있는 버섯이었다. 거기에 버섯이 있는 곳은 많이 않아서 돈 많은 귀족이나 대상들만 먹을 수 있는 귀한 것이었다. 이치마츠도 향기만 맡아 본 게 다라서 송로버섯의 향기를 기억하지 않았더라면 이게 송로버섯인지 모를 뻔 했다. 새삼 그걸 단번에 찾은 쥬시마츠가 사람이 아닌 걸 상기 되었다.
이치마츠는 입고 있던 짧은 로브를 벗어 그 위에 축축한 이끼를 뜯어서 깔았다. 모든 버섯이 그렇듯이 송로버섯 또한 원형 그대로 오래 보관하기 위해선 습기가 중요했다.
“쥬시마츠, 그거 엄청 귀한 거니까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파야 돼.”
“귀한 거야?”
“응, 찾기 힘드니까.”
“헤에, 저쪽에도 더 있는데? 저기, 저기에도 또 있어.”
쥬시마츠는 흙이 묻은 손으로 100걸음 정도 앞에 있는 큰 떡갈나무와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들을 하나씩 가리켰다. 이치마츠가 알기로는 이 나라의 송로버섯 산지는 한 곳 밖에 없었다. 여기처럼 북쪽 산맥에 걸쳐 있는 지방이었다. 그렇다면 쥬시마츠가 날아 온 여기가 그 곳 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측해도 어차피 산촌으로 내려가야 자세히 알 수 있으니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쥬시마츠가 이치마츠의 말대로 조심스럽게 파서 딴 송로버섯은 호두보다 약간 컸다. 금처럼 귀한 송로버섯을 두 손으로 받은 이치마츠는 깔아 둔 이끼 위에 얹어 놓고 로브를 바구니처럼 들었다. 송로버섯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온갖 정성을 다 드렸다.
“하나만 더 따고 가자.”
약간 고양된 목소리로 이치마츠가 말하자 쥬시마츠는 활짝 웃었다. 땅을 판 손으로 다시 손잡았지만 내치지 않고 꼭 잡았다.
오늘은 집에 놀러 온 토도마츠와 함께 산으로 들어갔다. 토도마츠는 따뜻한 쥬시마츠의 손을 꼭 잡고 산속을 누볐다. 확실히 깍쟁이 같아도 산촌에 사는 아이답게 거친 땅도 매끄럽게 돌아다녔고 버섯이나 먹을 것도 많이 찾았다. 돌아다니면서 운이 좋게 열매가 많이 열린 호두나무를 찾아서 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문을 열고 들어 온 카라마츠는 놀란 눈을 하고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 온 거라서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사는 문 앞에 여기에 왔다고 적은 메모를 보고 급하게 온 모양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그에게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주방에 있는 식탁에 앉아 손을 흔들어 반겼다.
“어서와! 카라마츠 형아!”
이치마츠는 딱히 인사할 맘이 들지 않았으나 신난 분위기에 휩쓸려서 말없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카라마츠는 자신의 집에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놀러 온 게 보고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특유의 뻔뻔함은 어딜 가지 않아서 금세 눈에 힘을 주고 허세가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오우! 형제들이여. 날 위한 깜짝 파티인가?”
“그럴 리가 있겠냐고. 카라마츠 형. 어서 와서 안기나 해.”
그의 말에 먼저 딴지를 건 사람은 동생인 토도마츠였다. 형이 이랬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딴지를 거는 게 매우 자연스러웠다.
카라마츠가 커다란 도끼를 문 앞에 있는 도구함에 올려두고 바로 주방으로 오자 스프를 만들어 두었던 쥬시마츠가 자리에 일어났다. 그를 따라 이치마츠도 무의식적으로 따라서 일어났다. 스프를 뜨기 위해 화로 위에 있는 무쇠솥 뚜껑을 여니 걸쭉한 스프에서 진한 송로버섯 향기가 느껴졌다. 워낙 강한 향기였기에 식탁에 앉아 있는 카라마츠까지 전해졌다.
“으흠? 이건 무슨 향기인가? 집 안이 숲의 그윽한 향기로 가득하군. 집 안에 숲의 요정님이라도 강림하신 건가? 아항?“”
“아, 네네.”
쥬시마츠조차 무시한 카라마츠의 말을 카드를 만지고 놀던 토도마츠만이 대충 받아줬다. 그러나 솔직히 동생도 형의 말을 제대로 들은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내뱉은 말에 뿌듯하고 있는 카라마츠에게 이치마츠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대답했다.
“시끄러워. 개똥마츠.”
“푸하하핫. 개똥마츠래. 하하하.”
형이 충격을 받든 말든 어린 동생은 이치마츠의 말에 크게 웃었다. 의자에 앉아 발을 동동 구르는 게 정말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카라마츠는 어린 동생이 욕을 배울까봐 전전긍긍했다. 그 모습에 조금 찔렸으나 쥬시마츠가 큰 그릇에 송로버섯 스프를 가득 퍼 이치마츠에게 건네줘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얇게 저민 송로버섯이 들어간 야채 스프 앞에서 카라마츠와 토도마츠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 맡은 향이라도 송로버섯이 진미인 걸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릇 네 개가 식탁에 올라가자마자 토도마츠가 먼저 자기 손에 맞지 않는 숟가락을 들고 먼저 스프를 먹었다.
“우와, 대박. 맛있어! 진짜 맛있어!”
“톳티, 맛있어?”
“응! 맛있어. 쥬시마츠 형아.”
어린 토도마츠가 애교를 섞여서 맛있다고 하니 만든 쥬시마츠도 기뻐서 박수치며 웃었다. 이치마츠도 스프를 먹어보니 역시 맛있었다. 짭조름하면서 양파와 당근에서 배어 나온 단맛이 혀 위에 맴돌았다. 그리고 입안 가득히 풍기는 송로버섯 향기는 숲 속에서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는 것 같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카라마츠의 말대로 숲의 요정이라도 온 것 같았다. 이렇게 먹어보니 왜 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송로버섯을 찾는지 이해되었다.
동생을 따라 스프를 먹은 카라마츠는 허세를 벗고 본래의 목소리로 감탄했다.
“정말 맛있군. 이런 건 처음 먹어봐. 이 버섯 이름이 뭐지?”
“송로버섯. 처음 봐?”
이치마츠가 대답하니 카라마츠는 송로버섯이란 이름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다. 이런 건 어디서 구한 건가.”
이민자 출신이라도 산촌 토박이인 카라마츠는 이 숲에서 송로버섯이 나는지 모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여기가 송로버섯 산지는 아닌 게 밝혀졌다.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던 송로버섯을 찾은 것도 어쩌면 행운을 가져다주는 천사의 기운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대충 구하기 힘든 귀한 거라고 말해주고 마저 식사했다.
처음으로 네 명이 함께 한 저녁식사가 끝나니 맛있는 걸 대접해준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에게 차를 내줬다. 카라마츠는 좋은 차가 아니라서 미안했지만 오랜만에 차다운 차를 마시게 된 이치마츠는 속으로 감사히 받았다. 차를 마시면서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첫눈 오면 장이 어디서 열리는지 알려줘. 겨울을 대비해서 살 게 많아.”
“그리고 보니 곧 첫눈이 오겠군. 나도 장작을 팔아야 하니 같이 가세.”
카라마츠의 말을 들은 토도마츠는 자기도 장터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토도마츠와 이치마츠도 가는데 쥬시마츠도 안갈 리가 없으니 다같이 장터에 갈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어디 간 적이 없었던 이치마츠는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차까지 마시니 이미 밖은 어두워졌다. 이 시간에 산길을 다니는 건 위험하다면서 카라마츠가 두 사람에게 자고 가라고 했다. 그러나 이치마츠는 불편하다며 단번에 거절했다. 토도마츠마저 자고가라고 떼쓰기 전에 바로 현관문을 열었다.
“어두운 데 잘 갈 수 있겠나?”
“남 걱정하지 말고 잠이나 자러가. 우리는 알아서 갈거야.”
“응! 달빛이 있으니까 괜찮아. 괜찮아!”
쥬시마츠가 팔 근육을 뽐내는 것처럼 두 팔을 들어 흔들어 보아도 카라마츠의 걱정하는 표정은 가시지 않았다. 괜히 또 붙잡을 게 귀찮았던 이치마츠는 인사도 없이 바로 현관문을 닫아 뒤도 보지 않고 산길에 들어갔다. 확실히 나무가 빽빽한 산길은 하늘에 커다란 보름달과 별이 떠도 어두웠다. 발밑을 조심하지 않으면 돌부리에 채여서 넘어질지도 모른다.
한 치도 보이지 않는 발밑을 노려보면서 가던 중 쥬시마츠가 이치마츠를 번쩍 안아들었다.
“날아가자! 이치마츠 형아.”
대답도 듣기 전에 쥬시마츠는 이미 커다랗고 하얀 날개를 꺼냈다. 날아가겠다는 말에 잠시 놀랐지만 어차피 바로 눈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숲속이기에 누구에게 걸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거기에 날아가면 걸어올 때보다 훨씬 더 빨리 가고 다리도 안 아프니 지금은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의 어깨를 꼭 잡고 말했다.
“춥지 않게 가.”
“넹! 넹!”
쥬시마츠가 가볍게 뛰자 간단하게 커다란 나무 위까지 올라갔다. 나무가 가렸던 밤하늘을 보니 티 없이 부드러운 검은 비단에 하얗고 노랗고 붉고 푸른 보석이 흘러가는 강처럼 박혀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에 추운 것도 잊어버렸다. 쥬시마츠는 큰 날개를 크게 퍼덕였다. 천천히 흔들리는 걸 느끼며 이치마츠는 자신을 안고 있는 온기에 취해 살며시 눈을 감았다.
* * *
카라마츠의 말대로 일주일 뒤에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라서 도시처럼 많이 내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발목이 파묻힐 정도 제법 내렸다. 어제만 해도 알록달록했던 산이 밤사이에 새하얗게 된 걸 보고 오늘 무사히 산길을 내려갈 수 있나 고민했으나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장작을 가득 들고 해도 안 뜬 새벽부터 집에 찾아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따라 눈 쌓인 산길을 내려갔다.
쥬시마츠가 손을 꼭 잡고 있어줘서 무사히 산길을 내려가 당나귀 두 마리가 끄는 수레가 대기하고 있는 곳까지 갔다. 내려오면서 카라마츠가 말하길 장이 열리는 곳은 산 아래 강이 시작되는 나루터라서 거기까지 수레를 타고 더 가야한다고 했다. 큰 수레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이치마츠는 품에 안에 숨긴 걸 더 끌어안고 쥬시마츠 옆에 꼭 붙어 있었다. 그러자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산촌 사람들은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궁금한 것이 많아서 계속 질문을 했다. 이치마츠가 대답을 거의 안하고 입을 다물고 있으니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대신 대답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이 많은 사람들도 쥬시마츠를 볼 땐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천사인 걸 숨기기 위해 날개를 드러내지 않아서 이치마츠와 비슷하게 생긴 보통 사람처럼 보일 텐데도, 그에서 뿜어 나오는 성스럽고 생명력이 가득한 기운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경외하는 것 같았다. 쥬시마츠가 눈이 마주쳐서 빙그레 웃고 있으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해졌다. 신앙심이 충만해서 눈물을 흐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정오가 되지 않는 시간에 나루터에 도착했다. 이런 촌이라도 장터에서는 사람이 제법 많이 왔다. 장소도 나루터라서 정착된 배도 많았다. 같이 수레를 타고 온 산촌 사람들이 서둘러 내리자 이치마츠는 눈에 띄지 않게 그들 뒤에서 내렸는데 옆에 있는 쥬시마츠 때문에 장터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이대로면 안될 것 같아서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와 잡은 손을 놓았다. 그러자 쥬시마츠가 놀랐다. 영문을 몰라서 눈이 빙그르르 돌아가는 쥬시마츠에게 이치마츠는 목소리를 잔뜩 낮추어서 말했다.
“남들 앞에서 손잡고 다니면 이상하게 봐.”
“왜? 우리 형제잖아?”
“형제라도 다 큰 성인처럼 보이는 남자 둘이 손잡으면 안된다니까?”
“왜? 왜? 나랑 이치마츠 형아는 안 이상해.”
쥬시마츠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기운이 다 빠졌다.
“남자 둘인데 손잡고 다니면 너무 친밀하게 보여서 그렇고 그런 사인 줄 알아. 우리가 그런 사이가 아닌데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해.”
“우리 완전 친해!”
“여기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아.”
더 이상 설명하기 귀찮았던 이치마츠는 대화를 서둘러 마치고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있는 곳으로 먼저 갔다. 그렇게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한 쥬시마츠는 침울해졌다. 입술을 삐죽 내밀고 팔이 축 처져 있는 게 이치마츠에게 삐친 것 같았다. 아무리 천사라도 이런 거 하나 이해 못하는 게 답답했으나 한편으로는 손 하나 못 잡는다고 침울해진 쥬시마츠가 귀여워 보였다. 얼마나 떨어지지 싫으면 저럴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설마.
느릿하게 따라오는 쥬시마츠를 바라보던 이치마츠에게 카라마츠가 불렀다.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니 카라마츠와 토도마츠는 가지고 온 장작의 값을 이미 치루고 끝난 뒤였다. 그들을 보고 자신도 어서 서둘러야 겠다는 생각에 쥬시마츠를 끌고 가려고 했는데 쥬시마츠 옆에는 어느새 토도마츠가 쪼르르 달려와서 풀이 죽은 달래주고 있었다. 이다음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치마츠도 카라마츠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갔다.
멀뚱하게 있는 카라마츠를 데리고 간 곳은 배에 짐을 실고 있는 나루터였다. 거기서 짐꾼들에게 지시하고 있는 상단 주인을 찾았다. 송로버섯 같이 귀한 건 돈이 있는 사람에게 팔아야 했다. 상단 주인에게 가기 전, 이치마츠는 품에 숨겨 두었던 돌사과만한 송로버섯을 카라마츠에게 전해주며 대신 거래하고 오라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송로버섯을 가져왔으나 이 귀한 걸 자신이 팔다가 혹이나 소문이 돌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장터에 온 것도 도박이나 다름이 없는데 여기서 더 큰 도박을 하다간 위험했다.
왜 거래를 자신에게 시키는지 모르는 카라마츠에게 이치마츠는 사정을 숨긴 채 다짜고짜 하라고만 했다.
“너는 그나마 장터에서 아는 사람들이 많잖아. 값은 적게 받아도 되니까 네가 나무 했다가 멧돼지가 땅 파는 걸 보고 거기서 땄다고 해.”
“네가 그렇게 말하면 되는 걸 왜 나에게 시키는가?”
“잔말 말고 그냥 하고 와.”
쥬시마츠도 그렇고 카라마츠까지 자꾸 물어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완전 굳어진 얼굴로 이치마츠가 노려보자 카라마츠는 단번에 기가 죽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송로버섯을 들고 상단 주인에게 가는 카라마츠를 놔두고 이치마츠는 두 사람이 잘 보이는 곳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카라마츠가 어색해하며 꺼낸 송로버섯을 본 상단 주인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다. 송로버섯의 크기에 한 번 더 놀랐다. 송로버섯을 확인한 상단 주인은 황급히 주위를 살펴보고 카라마츠에게 더 다가가 다른 사람들이 송로버섯을 보지 못하게 몸으로 막았다. 그 때문에 이치마츠도 거래가 어떻게 되는지 볼 수 없었다.
여전히 뻘쭘해하는 카라마츠와 대화를 나누던 상단 주인은 재빠르게 돈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금세 떨어졌는데 카라마츠의 손에 송로버섯이 없는 것을 보아 거래가 끝났다. 품에 귀한 것을 안고 다른 곳으로 상단 주인을 보면서 이치마츠는 나루터를 나오는 카라마츠에게 갔다. 이치마츠를 본 카라마츠는 그동안 긴장했는지 울상이 된 얼굴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제대로 말했지?”
“그렇다. 멧돼지 때문에 발견했다고 말했다. 거짓말을 하려니 너무 떨려서 넘어질 뻔 했다고.”
남자답게 생긴 것과 다르게 속이 좁은 카라마츠를 보고 혀를 찼다. 중요한 볼일은 끝났으니 송로버섯을 팔아서 받은 돈을 돌려받았다. 돈 주머니에 담긴 돈을 세보니 상단 주인이 제법 두둑하게 줬다. 물론 그 송로버섯을 들고 이 값보다 훨씬 더 비싸 파겠지만.
이치마츠는 대신 수고해준 카라마츠에게 수고비를 건네주고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를 찾으러 갔다. 두 사람은 나루터 근처에서 작은 인형을 꺼내서 재밌는 이야기를 말하는 이야기꾼을 구경하고 있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즐거워하는 토도마츠와 달리 쥬시마츠는 여전히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미안해져서 어떻게든 달래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치마츠와 카라마츠가 가니 이야기꾼의 이야기는 끝났고 사람들은 박수치며 그에게 동전 몇 닢을 건넸다. 송로버섯을 팔아서 돈이 두둑한 이치마츠가 대신 이야기꾼에게 동전을 주었다. 어느 정도 돈을 받은 이야기꾼은 여기 오기 전에 들은 새 소식이라면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남쪽 지방에 천사가 강림했다고 합니다! 그걸 한 사람이 본 게 아니라 여러 명이 봤다네요.”
이야기 꾼 입에서 천사가 강림했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번쩍 놀라서 한마음으로 짧은 감탄사를 말했다. 그에 비해 이치마츠는 당황한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회색눈 팬에게 도망칠 때 쥬시마츠가 화려하게 날아오르긴 했어도 이렇게 빠르게 소문이 퍼질지는 몰랐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이 이야기꾼에게 천사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보았다.
“그야, 상아처럼 뽀얗게 빛나는 피부에 햇살처럼 눈 부시는 금발이 아니겠습니까? 천사를 본 사람들 말로는 마그레타 공주님보다 아름답디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촤악- 하고 펼쳐진 날개가 무척 커서 해를 가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소문으로 퍼진 내용이 평범하게 생긴 쥬시마츠와 많이 다르다는 거였다. 이 나라에도 성지가 생겼다며 신기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치마츠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천사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야기 꾼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로 붐비기 전에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와 함께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장터를 돌면서 이치마츠는 염장한 돼지 뒷다리, 야채 절임 가득히, 딱딱한 빵 여러 개, 말린 옥수수 한 다발, 추운 겨울동안 입을 자신과 쥬시마츠 옷들, 등불용 기름을 사갔다. 그럼에도 돈이 남았다. 송로버섯 하나 판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들고 가기 힘들 정도 많았으나 힘이라면 어느 누구보다도 센 쥬시마츠가 가뿐히 들어서 걱정하지 않고 샀다.
다시 수레를 타고 산촌으로 돌아 온 네 명은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집으로 가니 여전히 말이 없는 쥬시마츠와 단둘이 남았다.
이치마츠는 하루 종일 우울해 하는 쥬시마츠를 어떻게 달래줘야할지 열심히 고민했다. 하지만 떠오른 것 중에 마땅한 것이 없어서 더 자괴감이 들었다. 솔직히 자기는 맞는 말을 했을 뿐인데 천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괜히 자책감이 든 것 같았다.
앞서 가는 쥬시마츠에게 이치마츠는 머뭇거리다가 그냥 속에 있는 말을 다했다.
“저기, 사람들에겐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게 중요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면 다들 안 좋게 보고 의심해.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 그것 때문에 속상하게 만들었으면 미안해. 근데 우리가 같이 다니려면 쥬시마츠 너도 지켜야 하는 거야.”
이치마츠의 말을 묵묵히 듣던 쥬시마츠는 멈췄다. 뒤돌아보지 않는 채로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이치마츠 형아랑 다시 안 친해진 것 같았어. 또 가라고 할까봐 무서웠어.”
표정을 볼 수 없지만 매일 웃던 쥬시마츠가 지금은 무척 속상한 얼굴을 하고 있을 거 같아서 이쪽도 마음이 아파졌다. 아무리 사람들의 시선에 때문에 한 거라도 그걸로 오해하게 만들었다는 게 옳은 일인가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치마츠는 먼저 쥬시마츠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니야. 우리 친해. 세상에 둘도 없을 만큼 누구보다도 친해. 그러니까 절대로 가라고 안 할 거야.”
부끄러운 말을 하고 있어서 이치마츠의 얼굴은 추운 겨울인데도 달아올랐다. 말을 계속하다보니 결국 속에 둔 말까지 나올 순간에는 심장이 요동쳐서 그대로 들릴 정도였다. 이치마츠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가 좋아. 쥬시마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쥬시마츠의 손이 크게 움찔거렸다. 듣던 쥬시마츠는 정말 놀랐는지 몸이 완전히 굳어졌다. 그의 반응에 걱정되어 이치마츠가 좀 더 가까이 가자 쥬시마츠는 황급히 잡은 손을 뺐다. 이런 쥬시마츠가 이상해서 얼굴을 보기 위해 앞으로 갔다. 그의 얼굴을 본 이치마츠는 놀라서 자기도 몸이 굳어졌다.
쥬시마츠는 완전 새빨간 얼굴로 입을 뻐금거리고 있었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말끔하게 정리된 머리도 솟아 오른 것 같았다. 그리고 앞에 있는 이치마츠를 보고 있는 눈은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잘못한 걸 들켜서 무서워하는 아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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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송 2017. 1. 24. 20:11[쵸로마츠] 마법 사서의 일상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오늘도 찾아왔네요ㅋㅋㅋ
근데 이번건 별거 아니고 헤소쿠리에 나온 마법 사서 쵸로마츠를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길게 쓸 건 없어서 아주 짧게 썼습니다.
어떤거 쓸까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좀 신기한 걸 찾았습니다. 포르투갈의 오래된 도서관에서는 책벌레들을 잡아먹으라고 박쥐를 키운데요. 그것도 예전부터 전해지는 거라서 지금도 그렇다고 하네요. 저도 처음 듣는 소리라서 이번에 한번 써봤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검색하면서 미국 공공도서관에서 쓰는 도서 분류법인 듀이십진분류법에 해리포터 마법 과목을 대입시켜 보기도 했는데 막상 만들어 놓고 쓰지 못해 여기에 대충 올려봅니다. 심심하면 한번 열어보세요ㅎㅎ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쵸로마츠는 제 키보다 큰 황금색 열쇠를 타고 학교 뒷산 아래에 있는 작은 창고처럼 보이는 서고로 갔다. 곁에서 보기엔 2평도 채 되지 않아 도저히 서고로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학교 자체가 커다란 나무에 둘러싸여 있어서 햇빛이 잘 들지 않는데, 그 커다란 학교가 동쪽 하늘을 막고 있어서 더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이었다. 남들은 음침하다고 질색하지만 쵸로마츠가 일하기엔 최적의 장소다.
분류방법
DDC
000 컴퓨터 과학, 정보 총류 (마법 이론, 총류)
100 철학 심리학 (+ 강령술, 점술)
200 종교
300 사회 과학 (머글 연구, 사회학)
400 언어 (고대 룬 문자, 에녹어)
500 과학 (신비한 동물, 약초학, 천문학, 산술점)
600 기술 (약학, 변신술)
700 예술, 레크리에이션 (비행, 마법 예술, 마법 스포츠)
800 문학
900 역사, 지리 (마법의 역사, 마법사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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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송/단편 2017. 1. 23. 20:55[이치쥬시] 끝난 여름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단편으로 오랜만이에요ㅋㅋㅋ
별 이유는 없고요 그냥 문득 양호교사 이치랑 야구부 쥬시 이야기를 다 쓰고 싶어서 어제부터 부지런히 썼습니다.
별다른 애정행각도 없고 짧은 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치킨먹으러 갈게요~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 쥬시마츠를 본 이치마츠는 의아했다. 특별하게 잘못한게 없는데 황급히 도망하는 꼴이라서 이치마츠는 괜히 서운해졌다.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어쩌면 설마.
"오늘은 성교육을 할거야."
매니저라서 딱히 격하게 움직이지 않는데도 마치 훈련을 받는 것 마냥 목덜미에 땀 한줄기가 흘러 내렸다. 쥬시마츠는 습관처럼 입고 있는 티셔츠 소매로 대충 땀을 닦다가 아차 싶었다. 분명 옷에 또 땀 냄새가 밸 것이다. 최대한 땀 냄새가 안나게 하려고 수건을 챙겼는데. 쥬시마츠는 다음에는 반드시 수건으로 땀을 닦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공 바구니를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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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송/장편 2017. 1. 21. 00:00[이치쥬시] 마법사와 천사의 이야기 4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어느새 이야기의 중반이 넘어 간 4화입니다.
마법사와 천사가 도시로 도망쳐서 산촌에서 생활하는 이야기의 첫번째 부분입니다.
도시에서 생활하던 마법사님이 과연 산촌에서도 잘 지낼 수 있을까요? 아마도 잘 지내겠죠?ㅋㅋㅋ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산촌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마법사님도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ㅠ
이미 늦은 거 어쩔 수 없겠죠.
아무튼 다음부턴 스포이니 궁금하신 분들께서 아래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이치쥬시하세요~
추위 때문에 몸살에 걸렸지만 옆에 있는 천사 덕분에 하루 만에 말끔히 나았다. 동굴에 반나절 이상이나 앓고 있어서 아무 것도 먹은 게 없는데 저번처럼 몸이 가뿐한 게 또 한 번 신기할 따름이다.
동굴 밖으로 나오니 침엽수와 키가 큰 활엽수가 빽빽하게 보였다. 공기도 하루 전에 있었던 도시보다 차가운 걸 보니 북쪽으로 올라 온 같았다. 얼마나 왔는지는 인가에 가서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날아온 거니 제법 멀리 왔을 것이다. 당분간 회색눈 팬의 시야 밖에 있을 수 있다.
이치마츠는 천사와 함께 인가를 찾아 신 밑으로 내려갔다. 천사가 또다시 이치마츠를 안고 하늘을 날아가면 편하지만 다시 추운 하늘로 올라가고 싶지도 않았고, 천사가 강림했다는 엄청난 소문을 퍼트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힘들어도 천사에게 절대로 날개를 펼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바로 빈집을 찾을 수 있었다. 집은 그렇게 크지 않아서 버려진 산장 같았다. 사람이 안산지 오래 되어서 근처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웅크리면 사람 몸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무성했다. 통나무로 만든 집은 곁의 형태는 아직 무사하나 안에 들어가 보면 썩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건 햇빛은 잘 들었다. 분위기는 낮에도 유령이 나올 정도로 을씨년스럽다.
주위에는 그 집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폐허가 될 정도로 사람이 다니지 않은 곳이라면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이야기가 밖에 나가지 않는다.
도시에서 나름 편안하게 살고 있다가 갑자기 죽을 뻔 했더니 작은 것도 조심하지 않으면 불안해져서 목이 막혔다.
이치마츠는 생각을 정리 할 겸 천사에게 말했다.
“여기서 살거야. 썩은 부분은 흙 반죽으로 메우고 지붕은 곰팡이 핀 부분만 갈고, 집 안에 있는 가구들은 고쳐서 쓰면 둘이서도 충분히 살 수 있어.”
“좋아!”
이치마츠의 말에 천사는 크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어찌나 목청이 좋은지 메아리가 울릴 정도였다. 시끄러워서 이치마츠가 미간을 찌푸리니 그와 반대로 천사는 크게 웃었다. 쌀쌀한 산바람을 맞는 중에도 햇살에 반짝이는 그 얼굴을 보고 있으니 불편했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졌다. 한동안 이렇게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살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한 지 하루도 안돼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말았다. 천사와 함께 빈집을 보수하고 있는 중에 뒤에서 어떤 남자가 힘준 목소리로 잡초를 뽑고 있는 이치마츠를 불렸다. 사람 목소리를 듣고 절망해서 천천히 뒤돌아보니 제 얼굴만한 날이 달린 도끼를 어깨에 메고 있는 같은 또래의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색 짧은 머리에 조금 탄 누런 피부. 이치마츠와 같은 이민자에, 나무꾼으로 보였다.
눈이 조금 큰 남자는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가 물어보았으나 이미 당황한 이치마츠는 완전 얼어붙었다. 대놓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앞에 있는 젊은 남자는 눈치를 못 채고 일부러 힘 준 얼굴로 다가왔다. 이치마츠가 망설이고 있는 사이 지시대로 지붕을 고치고 있던 천사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작은 기척에도 눈치 챈 남자는 바로 고개를 들어 천사를 발견했다. 남자의 고개가 올라감에 따라 이치마츠도 서둘러 천사를 봤는데 다행히 날개를 펼치지 않았다.
“일행이 있었군. 그쪽은 누구신가?”
남자는 대답을 못하던 이치마츠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말에 천사는 활짝 웃었다. 그러자 남자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천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천사가 내뿜는 성스럽고 생명력이 가득한 기운에 저도 모르게 취한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 이치마츠는 눈치 없는 천사가 괜히 이상한 말을 하기 전에 남자에게 먼저 달려가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우리는 형제야! 형제. 할아버지의 형님의 아들의 외사촌의 조카가 나에게 물러준 집인데 잠깐 살려고 왔어. 정말 잠깐만!”
급하게 거짓말을 하다 보니 별 희한한 말까지 나왔지만 젊은 남자는 산촌 사람이라서 그런지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어깨에 메고 있던 도끼를 내리고 이치마츠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매를 걷은 남자의 팔은 다부졌다.
“만나서 반갑네. 나는 카라마츠. 이 근처에서 이 도끼 한 자루로 이 세상에게 온기를 주기 위해 열심히 나무에게 도움을 받는 나무꾼이지. 자네들의 낡은 집에도 불같은 온기가 필요하면 내가 얼마…….”
“장작은 필요 없어. 나도 만나서 반가워! 이치마츠야.”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라고 한 남자의 손을 마주 잡아 악수했다. 긴장감을 풀려고 손을 세게 흔들다가 이자에게 본명을 그대로 알려줬다는 것을 깨닫고 속으로 경악했다. 숨어 살아야 하는데 첫 단추부터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이치마츠의 심정을 눈치 못 챈 카라마츠는 눈에 힘주어 쌍꺼풀을 만들어 느끼하게 웃었다. 그 표정을 보고 벌써부터 질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카라마츠가 이번엔 지붕에서 내려 보는 천사에 대해 물었다.
“그렇다면 귀여운 자네의 형제 이름은 무엇인지 이 카라마츠에게 알려 줄 수 있는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이치마츠는 다시 얼어붙었다. 천사의 이름을 아직도 몰라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때 카라마츠 뒤로 까마귀 네 마리가 보였다. 이치마츠는 가까스로 머리를 굴려서 형제 같아 보이는 이름을 만들었다.
“그게, 쥬시마츠야 동생은 쥬시마츠. 내가 1이 들어가고 동생은 1하고 4가 들어가서…가 아니라 엄마가 십자매를 좋아해서 쥬시마츠야.”
엄마가 십자매를 좋아하는 것조차 지금 지어낸 말이지만 다행히도 카라마츠는 그대로 믿었다. 이 사람은 원래 사람을 잘 믿는 성격 같았다.
같은 또래를 만나서 기쁜 카라마츠는 땅에 꽃은 도끼를 들고 산 속으로 돌아갔다. 헤어지기 전에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이치마츠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카라마츠가 가자 지붕에 있던 천사가 날개를 펼치고 이치마츠 옆으로 내려왔다.
“갑자기 날개를 펼치면 어떡해! 또 누가 봤으면 어쩌려고!”
“괜찮아, 괜찮아. 카라마츠 지금 멀리 갔어.”
아무 걱정 없이 웃는 천사를 보니 괘씸해졌다. 왠지 카라마츠는 자주 찾아 올 것 같아서 천사에게 단단히 주의를 줘야겠다. 자꾸 한숨만 나오는 이치마츠에게 천사는 대뜸 소리쳤다.
“쥬시마츠!”
아까 카라마츠 앞에서 즉석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이치마츠는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아, 그건 대충 둘러댄 거니까. 원래 이름 있잖아.”
“그거랑 상관없어. 이치마츠가 나를 쥬시마츠라고 부르고나서부터 난 쥬시마츠가 인거야.”
그렇게 말한 천사를 이치마츠를 빤히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자기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대충 지은 이름가지고 이렇게 좋아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 이치마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이름이 있어야 부르기 편하니까.
“……귀찮아. 맘대로 해.”
이치마츠는 상기된 얼굴을 돌리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제부터 쥬시마츠가 된 천사는 잔뜩 신이 나서 힘차게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의 날갯짓 소리에 아까 그곳에 있던 까마귀들이 놀라서 날아갔다. 그런데 한 마리는 날아가지 않아서 유심히 살펴보니 깃털이 빠져서 듬성듬성했다.
* * *
나무꾼인 카라마츠에게 우연히 발견된 후부터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원치 않는 이웃이 생겨버렸다. 장작을 많이 구해야 하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서 바쁠 시기인데도 집고치는 것을 손수 도와주었다. 같은 또래에 같은 고향의 이민자 출신이 새로 왔으니 반갑겠으나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찾아 올 수 록 곤란했다.
급기야 카라마츠는 자신의 어린 남동생까지 데려와서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에게 소개시켰다. 그의 동생은 이름이 토도마츠였고 나이는 갓 10살을 넘긴 아이였다. 순진한 형과 다르게 똘똘하고 무엇보다 애교가 많았다. 남자아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여자아이라고 믿을 만큼이었다.
작은 동물을 좋아하는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만나자마자 완전히 친해졌다. 그사이에 토도마츠에게 애교를 배워서 완전 찰떡이 맞았다. 거기에 천사인 쥬시마츠는 원래 음식을 먹지 않아서 어린 토도마츠에게 먹을 것도 주기도 하니 당연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꼭 붙어서 둘이서만 장난을 치고 놀았으니 친형인 카라마츠가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제3자인 이치마츠가 보기엔 토도마츠가 어린 나이인데도 영악한 구석이 있어서 친형처럼 순진해 보이는 쥬시마츠에게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돌아가고 그날 밤 평소처럼 잠자려고 침대에 누운 이치마츠를 빤히 보고 있던 쥬시마츠가 대뜸 말했다.
“이치마츠 형아.”
형아라는 말에 이치마츠가 놀라서 왜 그러냐고 반문했다.
“뭐야, 왜 갑자기 형아라고 해?”
“토도마츠가 그랬어. 카라마츠 형아, 이치마츠 형아, 쥬시마츠 형아.”
카라마츠가 빌려준 등불에 비친 쥬시마츠의 눈이 무척 반짝반짝 빛났다. 형아라는 단어가 그의 무엇을 자극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이치마츠는 한숨을 쉬고 차근하게 설명했다.
“그건 토도마츠가 제일 어리니까 너나 나한테 형이라고 하는 거야. 쥬시마츠 넌 인간인 나보다 훨씬 오래 살았을 테니 형이라고 할 필요 없어.”
“근데 여기서 난 이치마츠 동생 아니야? 그러니까 형아가 맞지? 맞지?”
“그 설정은 둘만 있을 땐 안 해도 돼. 이름도 마찬가지고.”
“그치만 쥬시마츠도 좋고, 형아도 좋아. 나는 계속 할래.”
쥬시마츠가 환하게 웃어버리니 이치마츠는 마음이 간질거리고 얼굴이 달아올라서 시선을 피했다. 별일 아닌 것처럼 굴고 싶은데 부끄러움에 머리가 어지러워서 맘에도 없는 말이 나왔다.
“난 호칭 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딱히 있어도 귀찮기만 해. 형이라고 하면 괜히 친해진 것 같잖아.”
“형아라고 하면 친해진 거야? 그런 거야? 우와! 완전 기뻐!”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의 말을 다르게 받아들었다. 친해졌다는 것이 정말로 기쁜지 감추고 있던 날개를 펼치고 파닥거렸다. 그 날갯짓에 등불이 꺼졌는데 쥬시마츠한테서 나온 빛 덕분에 방안이 밝았다.
“옆에 있어도 돼. 친해진 걸로 난 쓸모 있어진 거야.”
“쓸모 있다는 게 그렇게 중요해? 쓸모없어도 옆에 있어도 된다고.”
“그래도 쓸모 있는 채로 있을래. 그게 좋잖아. 그치? 이치마츠 형아.”
낮에 토도마츠가 한 걸 그대로 배워서 고개를 살짝 기울고 바짝 다가왔다. 그 때문에 이치마츠는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빨개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얼른 이불을 뒤집어썼다. 추운 날씨에 얇은 이불을 덮은 건데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 같았다.
“몰라 맘대로 해. 난 이제 잘 거야.”
“응! 잘 자. 이치마츠 형아!”
힘세고 강한 쥬시마츠가 모든 힘든 일을 다 하고 이치마츠는 세부적인 것을 고쳐서 사흘 만에 집다운 집에서 보낼 수 있었다. 빈집에 침대와 식탁, 소파는 남아 있어서 차가운 맨 바닥에서 생활하지 않게 되었다. 도망칠 때 챙기지 못했던 이불, 식탁보, 식기, 자잘한 바구니 같은 생활품은 카라마츠가 자신들이 쓰지 않는 걸 빌려줬다.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고쳐진 집을 보니 겨울을 지나 계속 지내도 될 것 같았다. 회색눈 팬이 영원히 오지 않는다면.
산 속으로 온 이후로 이치마츠는 전보다 훨씬 느긋하게 보냈다. 근처에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그에게 마법을 의뢰할 사람이 없고, 마법 도구와 타로카드도 가져오지 않아서 할 수 없었다. 마법 도구야 다시 만들면 되지만 마력을 기르기 위해 했던 이완 의식을 하지 않을 정도로 무기력해져서 그마저 하지 않았다. 소환된 악마 이름 목록은 있지만 복수할 악마를 찾는 것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엄마를 버리고 간 아버지를 싫어한다. 지금이라도 스스로 나온다면 곤죽이 될 만큼 팰 의향도 있다. 근데 살의가 사라진 건 잘못 소환된 천사 덕분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새 천으로 덮은 소파 위에 웅크리고 있는 이치마츠에게 쥬시마츠가 다가와 밥을 먹으라고 했다. 그가 말을 걸어서야 정신을 차린 이치마츠는 그제야 음식 냄새를 맡았다. 음식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냄새를 맡아도 쥬시마츠가 뭘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그게 무엇이든 무척 맛있었다. 의욕을 안 생기게 만든 건 쥬시마츠가 이치마츠가 아무 것도 안 해도 될 정도로 다 챙겨주는 것도 있다.
식탁에 앉아 온갖 야채를 한꺼번에 넣고 끓은 스튜가 담긴 그릇 하나를 바라보던 이치마츠는 먹기 전에 마주보고 앉아 있는 쥬시마츠에게 지금까지 물어보지 않았던 걸 물어보았다.
“음식, 정말 못 먹어?”
“그건 왜?”
이치마츠가 물었는데 쥬시마츠는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입을 벌리고 해맑게 웃고 있어도 이런 식으로 반문하면 스스로 시험에 드는 기분이었다. 그 표정 앞에선 솔직한 말만 나왔다.
“사람 앞에 앉혀두고 혼자 먹기 좀 그래. 먹을 수 있으면 같이 먹어, 그게 더 좋잖아.”
이치마츠의 대답에 쥬시마츠는 소매로 입을 가렸다. 잠시 고민하는 모습에 이치마츠가 되려 긴장되어 몸이 굳어졌다. 더 이상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저절로 입에서 말이 나왔다.
“그렇게 싫으면 뜸들이지 말고…….”
“좋아! 먹자!”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의 말을 끊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큰 소리에 이치마츠는 고양이처럼 놀랐다. 그 바람에 말이 헛 나왔다.
“천사인데 사람 음식을 먹다가 탈이 나거나 그러면 어쩌려고. 어이 무리하지 말라고.”
“걱정마! 걱정마!”
쥬시마츠는 활짝 웃어주고 카라마츠가 준 쥬시마츠 용 식기에다가 재빨리 자기 몫을 가져갔다. 이치마츠가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못하게 그릇 채 들어서 마셨다. 바로 나와서 뜨거울 텐데 쥬시마츠는 끝까지 맛있게 먹었다. 한입에 깨끗이 먹은 쥬시마츠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맛있어!”
“그야, 네가 만들었잖아.”
퉁명스럽게 말했으나 온 몸으로 맛있다고 하는 쥬시마츠를 보니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맛있게 먹는 쥬시마츠를 따라 이치마츠도 한 숟가락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카라마츠의 동생인 토도마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살고 있는 집에 찾아왔다. 아침에 형이 나무하러 가면 혼자 알아서 잘 찾아왔다. 그리고는 쥬시마츠와 놀면서 하루 종일 있다가 나무하고 돌아 온 형과 함께 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들도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고 없다보니 카라마츠가 나무하러 간 동안에는 토도마츠 혼자 있었다고 한다. 똘똘한 녀석이라서 알아서 잘 지내고 산촌에 사는 애들이랑 같이 놀기도 한다지만 아직 어린아이다보니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
산 속에 지내게 되서 조용하게 지낸다 싶었는데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놀면서 떠들어서 물 건너갔다. 두 사람이 놀 땐 주로 쥬시마츠가 모르는 게임을 어린 토도마츠가 가르쳐 주었다.
“쥬시마츠 형,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다시 해봐.”
토도마츠가 작은 손으로 카드를 되돌리고 다시 쥬시마츠에게 내밀었다. 쥬시마츠는 천사면서도 게임 룰을 잘 이해하지 못해 팔짱을 끼고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었다. 쥬시마츠가 어디서 주워 온 큰 삵을 안고 쓰다듬어 주다가 무슨 게임을 하고 있나보니 도둑잡기였다.
그렇게 어려운 게임이 아닌데 쥬시마츠가 자꾸 실수하는 통에 흥이 깨진 토도마츠가 게임을 먼저 그만두었다. 토도마츠는 발라당 누워서 나무 열매를 먹었다. 작은 발을 동동 구르다가 문득 쥬시마츠와 이치마츠를 번갈아 보고 말했다.
“쥬시마츠 형이랑 이치마츠 형은 닮았는데 그닥 형제 같지 않네.”
정곡을 찌른 말에 이치마츠는 뒤통수 맞은 것 마냥 놀랐다. 그 바람에 무릎에 있는 삵이 놀라서 소파 밑으로 내려갔다. 쥬시마츠도 웃는 입을 뻐금거리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토도마츠는 그걸 놓치지 않고 두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봤다. 이대로 뒤면 토도마츠가 이상한 상상 할까봐 서둘러 말을 돌렸다.
“니네 형제도 그렇게 안 닮았어!”
“당연하지! 우리 형이 얼마나 구린대!”
토도마츠는 죽어도 친형인 카라마츠를 닮은 게 싫은지 바로 발끈했다.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카라마츠가 불쌍하게 느껴졌지만 솔직히 이치마츠도 카라마츠를 구리다고 생각해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토도마츠는 대화가 카라마츠로 가자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단번에 끊었다. 토도마츠의 말을 맞장구치던 이치마츠는 속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 만졌다.
토도마츠는 어두워지기 전에 찾아 온 카라마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쥬시마츠가 만들어 준 저녁을 먹고는 해도 일찍 떨어지고 할 일이 없어서 일찍 자기 위해 침대에 들어갔다. 산은 일찍이 겨울로 넘어가는 중이라서 공기가 부쩍 추워진 탓에 이치마츠는 시린 손을 계속 비볐다. 손을 주물거리며 소파에 앉아서 자신을 보는 쥬시마츠에게 말했다.
“쥬시마츠, 다음부터 조심해야겠어.”
“뭐가?”
이해하지 못한 쥬시마츠가 되물어보자 이치마츠는 눈을 마주보고 대답했다.
“형제같이 구는 거. 카라마츠가 둔감해서 신경 안 썼는데 토도마츠는 어리면서도 예리한 구석이 있어서 이대로 있다간 형제가 아닌 걸 알아챌 거야. 그러면 우리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심하면 너나 나나 위험해.”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긴 소매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보니 아마도 왜 위험한지 모르는 것 같았다. 사람과 생각하는 게 다른 그에게 자신의 입장에 대해 설명하기 귀찮은 이치마츠는 더 이상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달빛 아래에서 고민하고 있던 쥬시마츠는 소매로 입을 가린 채로 자기가 먼저 물어보았다.
“그럼, 그럼, 형제는 뭐야? 이치마츠 형아. 어떻게 하는 건데?”
“글쎄, 나도 형제가 없어서 몰라.”
외동이기에 모른다고 하니 쥬시마츠는 꽤나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천사이니 그런 걸 잘 알고 있거나 인간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서 몰라도 상관이 없을 텐데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니 의아해졌다. 뭐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말없이 지켜보는 이치마츠는 헤아릴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쥬시마츠는 결론을 지은 듯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카라마츠랑 토도마츠처럼 우리도 손을 잡으면 돼!”
별 희한한 결론에 이치마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손잡는 건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제라서 그런 거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활짝 웃는 쥬시마츠를 보고 문득 어린 자신을 꼭 안아주고, 볼도 꼬집어 주고, 손을 잡아 마주보고 웃었던 엄마가 떠올랐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던 엄마를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그렇겠지. 손 잡아주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집안일 하고, 잠도 같이 자는 게 형제가 하는 일이겠지.”
잠깐 추억에 젖어 낯부끄러운 말을 해버린 탓에 이치마츠는 스스로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쥬시마츠는 그런 거 하나 없이 엄청난 걸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소파에서 폴짝 뛰어 올라 단번에 침대 앞으로 왔다. 이치마츠가 깜짝 놀라서 벽 쪽으로 붙으니 그 사이에 자리를 차지라고 바로 누웠다.
어이없어 하는 이치마츠를 올려다보며 쥬시마츠는 활짝 웃었다.
“그럼, 이제부터 같이 자자. 형제니까 그치?”
그렇다고 해서 좁은 침대에서 표면상으로 성인 남성 둘이 붙어 자는 건 부담스러웠다. 엄마가 있을 땐 제외하고 남들과 한 번도 같이 잔 적이 없는 이치마츠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이미 누운 쥬시마츠를 다시 내보는 건 미안해졌다. 마지못해서 이치마츠는 침대 옆에 있는 등불을 끄고 좁아진 자리에 꿈틀거리면서 누웠다.
어두워진 방안에는 아직 달빛이 스며들지 않아서 이치마츠는 바로 앞에 있는 쥬시마츠의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똥말똥한 시선은 느껴졌다. 쥬시마츠가 가까이 있어서 민망한 이치마츠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그에게 나무랐다.
“잘 거면 어서 눈감고 자. 보고 있으면 신경 쓰인다고.”
“응!”
쥬시마츠는 전혀 잘 것 같지 않은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왠지 오늘은 신경 쓰여서 잠을 설칠 것 같다고 생각한 찰나, 어둠 속에서 쥬시마츠가 긴소매 안에 숨겼던 두 손으로 이치마츠의 손을 포개어 잡았다. 시렸던 손이 햇살같이 따뜻하고 강한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쥬시마츠가 갑자기 손을 잡아서 놀랐지만 손에서 전해진 온기가 온 몸을 따뜻하게 해줘서 빼지 않았다.
“잘 자. 이치마츠 형아.”
쥬시마츠의 인사에 따라 이치마츠는 스르륵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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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송/장편 2017. 1. 14. 00:00[이치쥬시] 마법사와 천사의 이야기 3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여기서부턴 예약글입니다. 그래서 잡담을 넣는 이 부분에 넣을 내용이 많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오늘은 이치쥬시 데이일겁니다.
작년에 이치쥬시 데이라서 탐라가 난리났던 때가 생각나는데 또 이치쥬시데이를 맞이하네요ㅋㅋ 별일이 없다면 내년에도 이치쥬시데이를 맞이하겠죠.
다음에는 뭘 할지는 미래의 저에게 맡겨보겠습니다.
2화도 길었는데 3화도 제법 깁니다. 사실 그다음 4화도, 5화도 6화도 엔딩을 제외하고도 깁니다. 어째서 이렇게 기는지 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3화도 재밌게 봐주시길 바라며
이치쥬시데이을 맞이하여 오늘하루도 행복한 이치쥬시하세요!
천사가 소환되고부터 열흘이 지나서야 이치마츠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동안 천사가 치료한다고 허락도 없이 데리고 온 동물들을 모조리 쫓아내고, 다시 기본적인 도구와 재료를 모았다.
이치마츠가 지금까지 마법을 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되는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지만 처음에는 혼자서 고생하는 엄마를 도와주기 위해서 시작했다. 그렇다보니 악마와 저주에 관련된 흑마술보단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탈리스만이나 애뮬릿을 만들고 불행을 막아주는 회색마법을 더 잘 알았다. 소환의식의 재료와 집세,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귀찮아도 사람들에게 의뢰를 받았다.
이번 의뢰는 긴 항해를 앞둔 선장이 무사히 항해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법을 부탁했다. 선장이 급하게 의뢰해서 의식을 치루는 데 시간을 구애 받지 않는 인공적으로 자연령을 만드는 의식을 하기로 했다. 자연령을 만들 땐 신선한 원소가 필요해서 귀찮아도 밖에서 했었는데 천사 덕분에 집안의 기운이 신선해져서 이번에는 집에서 할 수 있었다.
이치마츠는 집안의 모든 창문과 문을 열어두었다. 이치마츠가 자연령을 만들 것을 알기라도 한 듯이 밖에 있는 공기가 집안으로 들어와 작은 바람이 되어 맴돌았다. 천사에게 치료를 받고 있던 비둘기는 바람을 쐬고 푸드덕 날개를 흔들었다.
의식을 치루기 전 타로 카드를 꺼내 펼쳤다. 가볍게 볼 생각으로 한 장만 뽑았더니 '세계' 카드의 정방향이 나왔다. 완전한 성공을 뜻하니 카드가 나왔으니 의식을 바로 감시탑을 여는 의식을 시작했다. 침대에 앉아 있는 천사는 눈을 다친 고양이를 안고 종을 든 이치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시탑에서 나쁜 기운을 가진 영과 생물에게 알리기 위해 종을 세 번, 네 번, 세 번 나누어서 흔들었다.
“나는 신의 이름 아래에서 신성한 의식이 시작한다. 참가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떠나라.”
주문을 외우는 동시에 이치마츠 옆에서 작은 바람이 스쳐 나갔다. 의식에 참가하지 않는 모든 것이 나가라고 했으나 천사와 천사가 안고 있는 고양이는 그대로 있었다. 애써 그쪽은 신경 쓰지 않고 의식에만 집중했다. 종 한 번 더 치고 다른 손에는 단검을 들어 오각성 결계를 만드는 의식을 시작했다.
눈을 감고 마음속에서 밤하늘 위에 떠있다고 느끼며 단검을 이마에 댔다. “그대는,” 다음에는 단검을 지면을 향해 몸 아래로 내렸다. 단검이 가는 대로 흰색 빛줄기가 세로로 그어졌다. “왕국이며,” 이어서 단검을 오른쪽 어깨에 댔다. “힘이고,” 단검을 왼쪽 어깨로 옮겨가니 이번에는 빛줄기가 가로로 그어졌다. “영광입니다.” 마지막으로 단검을 양손으로 잡아 기도하듯이 가슴 가운데에 모았다. 가슴 안에서 황금색 빛이 점점 커졌다. “영원히.”
나쁜 기운으로부터 의식을 지켜줄 위대한 존재에게 말하고 눈을 뜨자 이미 완벽한 결계가 쳐져 있었다. 다음 결계를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견고했다. 혹시나 해서 침대 쪽을 보니 잠이 든 고양이를 안고 있는 천사가 이치마츠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아무래도 천사가 결계를 치는 것을 도와준 모양이다. 귀찮은 의식을 하지 않아도 되서 편하지만 필요하지 않는 도움을 받아버려서 빚이 생긴 것 같다.
이치마츠는 미간을 찌푸리고 감시탑을 여는 의식을 마저 하려고 했다. 그러다 다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천사가 떠올랐다. 어차피 감시탑을 열 때 천사의 힘을 빌리는데 이미 천사가 여기에 있는데 굳이 다른 천사를 부를 필요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다시 천사를 돌아보고 말했다.
“감시탑 할 수 있어? 의식을 치루는 데 나쁜 쪽으로 가지 않게 하고 방해 받지 않도록 하는 건데.”
“그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사는 비는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천사의 몸에서 황금색 빛이 나왔고 그 빛은 뻗어나가 동서남북에 빛나는 원기둥 같은 감시탑을 간단하게 세웠다. 매일 실없이 웃고 있어도 천사는 역시 천사였다.
감시탑을 세워준 천사가 고맙지만 귀찮아서 말은 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인공적인 자연령을 만들 의식을 바로 진행했다. 항해하는데 필요한 순풍을 불게 해줄 공기 원소의 자연령을 만들 예정이다.
미리 준비한 자연령을 봉인할 화려한 작은 유리병 앞에서 양손을 가슴너비만큼 벌리고 손바닥을 마주보게 들었다.
천천히 온 몸으로 호흡하면서 따뜻한 공기를 느끼고 하나가 되었다.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몸이 가벼워졌고 둥둥 떠다니는 느낌에 현기증이 났다. 몸과 정신을 공기로 만드는 데 기운이 맑고 신성해서 불안감은 전혀 나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양손 사이에 공기를 모았다. 신선하고 촉촉한 바람이 느껴질 때까지 계속 공기를 모았다. 그러자 만들어 낸 바람 속에서 처음으로 번개 같이 깜박이는 불빛이 보였다. 그동안 여러 번 자연령을 만들어 보았지만 실체를 눈으로 직접 본 건 처음이라서 하마터면 정신을 흩트릴 뻔 했다. 인공적인 자연령이 실체가 보일 정도로 힘을 가지게 된 건 천사에서 나오는 생명력 덕분이었다. 자연령도 그걸 아는지 천사가 있는 쪽으로 깜박였다.
이치마츠가 손을 내려도 공기 원소의 자연령은 그 곳에 머물렀다. 이제 자연령을 병 안에 봉인하기 위해 공기 원소에 대응하는 도구인 공기 단검을 들었다. 공기 단검은 십자가 모양에 손잡이는 노란색으로 칠했고 자주색으로 신의 이름, 공기 원소의 대천사 이름, 공기 원소의 지배자 이름, 신의 낙원에서 흐르는 강의 이름이 고대어로 적힌 마법 단검이었다. 이름을 뭐로 지을까 고민하는데 문득 천사의 품에 있는 고양이가 떠올랐다. 이치마츠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공기 단검을 자연령을 향해 대고 명령을 내렸다.
“나는 그대를 '고양이 꼬리 바람'이라고 부르겠다. ‘고양이 꼬리 바람’은 앞에 있는 작은 병에 들어가 항해에 도움이 되는 바람을 불게 해라. 목적을 완수하면 흩어져 바람의 일부가 되거라. 돌아가는 중에 아무도 해치지 마라. 가라.”
명령에 따라 ‘고양이 꼬리 바람’은 작은 회오리가 되어 작은 병 안으로 들어갔다. 자연령은 병 안에서 반짝거렸다. 마지막으로 코르크 마개를 닫아 자연령을 봉인하는 것으로 의식이 끝났다.
의식을 끝낸 이치마츠가 크게 한숨을 쉬니 끝까지 지켜보고 있는 천사가 긴 소매로 가린 손으로 둔탁한 박수를 쳤다. 말을 하지 않아도 감시탑을 닫고 결계를 푼 천사는 이제 빛나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인공적인 자연령이 있는 병을 고급스러운 벨벳 주머니에 넣고 의식할 때 쓴 도구를 정리하면서 천사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했어.”
이치마츠의 말을 들은 천사가 무척 신난 얼굴로 방방 뛰었다. 그 바람에 천사 품에 있던 고양이가 깜짝 놀라 침대 아래로 폴짝 내려갔다.
“진짜? 이제 나 쓸모 있어?”
그 말에 대답해주고 싶지 않았지만 대신 귀찮은 결계와 감시탑을 세워준 게 있어서 마지못해 대답했다.
“이번 건 좀 쓸모 있었어.”
“아싸!”
천사가 기뻐서 날개를 펼치자 천사의 등 뒤에 기대고 있던 작은 뱁새들도 놀라 푸드덕 날았다. 천사가 새들이랑 같이 날아다니면서 이리저리 뛰는 바람에 깃털과 먼지가 풀풀 날았다. 정신이 없는 이치마츠는 귀한 자연령을 로브 안주머니에 넣고 좁은 베란다로 피신했다.
베란다에 부는 신선한 바람이 아치마츠를 스쳐 지나갔다. 품 안에 있는 자연령이 바람에 반응해 미세하게 움직였다. 이번에 만든 자연령은 자연 속에 있는 자연령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의뢰한 선장에게 돈을 더 받을 생각을 하면서 아래에 있는 뒷골목을 내려다보았다. 오물로 가득했던 거리가 제법 깨끗해졌다.
* * *
도시의 뒷골목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천사가 자주 들리는 야채, 고기, 생선 같은 식료품 장사는 매일매일 문전성시였다. 그들이 손안에 돈을 두둑하게 들고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잡화, 생필품, 화주 장사꾼들도 덩달아 많은 돈을 손에 쥐었다.
단순히 뒷골목 장사꾼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다들 어디서 행운을 따고 왔는지 들리는 소식들이 좋은 것뿐이었다. 오죽하면 태어날 때부터 생이별한 쌍둥이 형제를 여기서 찾았다는 소문까지 돌까.
사람들이 버린 오물에는 우연히 꽃씨가 내려앉아 꽃을 가득히 만개했고, 어디서 나타난 고양이들이 해로운 쥐와 벌레들을 모조리 잡아먹어서 꼬리털 하나 보이지 않게 되었고, 어두침침했던 뒷골목에는 하루 종일 맑은 햇살이 내려와 거리를 빛나게 만들었다.
이렇게 변한 뒷골목에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조각상과 웅장한 교회가 있는 광장을 제쳐두고 도시의 중심이 되었다. 이 모든 건 이치마츠 집에 천사가 소환되고 나서부터 한 달 만에 일어난 기적들이었다.
축복이 가득한 천사의 기운을 잔뜩 받은 뒷골목을 내려다보던 이치마츠는 오히려 불안감이 생겼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큰 변화 뒤에는 반드시 불행이 찾아온다. 그걸 얼마 전에도 겪었고 천사 때문이었다.
저녁이 되고 달이 떠오르자 이치마츠는 보름달이 뜬 밤하늘이 잘 보이게 창문을 열어두고 책상 위에서 카드를 펼쳤다. 똑같은 카드를 노려보면서 신중하게 카드를 한 장씩 골랐다. '마법사' 카드 정방향. '힘' 카드 정방향. '심판' 카드 정방향이 나왔다. 각각 시작의 기회, 사랑이 싹틈. 서로의 조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의지력. 재회, 역전, 부활의 기쁨을 의미했다.
오늘도 좋은 것만 보여주는 카드만 나왔다. 침대에 앉아 있는 천사의 좋은 기운 때문에 계속 좋은 점괘만 나오는 것이다. 점괘대로만 그대로 세상이 돌아간다면 아무런 걱정할 필요 없지만 문제는 세상일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여러 갈래의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걸 점을 봐서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이치마츠는 점점 짜증을 늘었다.
오늘도 공친 이치마츠는 카드를 정리하고 침대 위에 있는 천사를 노려보았다. 그에 비해 눈치가 없는 천사는 이치마츠를 보고 항상 빙그레 웃고 있다. 천사의 웃음을 보고 있으면 뿜어내는 기운 때문에 저절로 없던 호감도 생긴다. 그래서 여전히 복수를 방해받고 있어도 지금은 싫어했던 마음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렇다고 천사를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달의 기운이 들어오는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이래도 나중에 천사가 열어버리지만 습관이라서 닫아두었다. 꿈 일기장과 펜을 챙기고 천사가 있는 침대로 갔다.
“저리가. 이제 잘 거야.”
“넹!”
천사는 바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치마츠가 일어난 동안에는 침대를 차지하고 있으나 잠은 자지 않았다. 다친 동물을 치료해주고 이치마츠에게 먹을 음식을 할 때를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은 매일 똑같은 자세로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이치마츠만 보고 있다. 정말 제대로 감시하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천사의 온기가 남아 있는 침대에 벽을 향해 옆으로 누웠다. 등 뒤에서 천사의 올곧은 시선이 느껴졌다.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감시는 멈추지 않았다. 이젠 익숙해진 시선을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오늘 밤은 예지몽이라도 꾸길 바라며 바로 깊은 잠에 들었다.
* * *
재료를 구하지도 않고, 천사가 알아서 식재료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치마츠는 전보다 더 집에 붙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치마츠에게 탈리스만 쪼가리나 애뮬릿을 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안달이 나서 그에게 제발 나오라고 쪽지를 보냈다. 그 쪽지가 제법 많아서 대신 전해주는 아래층 사람도 좀 나가라고 짜증냈다.
월세 낼 돈을 벌기 위해 이치마츠는 의뢰인을 찾으러 간만에 밖으로 나왔다. 천사가 열심히 먹이고 있어서 계단을 내려오는 걸로 힘들지 않게 체력이 많이 붙었다.
싸구려 연립주택의 대문을 여니 뒷골목은 완전히 달라졌다. 향기마저 나는 거리에는 화려하게 꾸민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천사의 기운 때문에 거리가 완전히 바뀐 건 위에서 보고 있어서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맞닿으니 이 분위기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치마츠는 식은땀을 뻘뻘 흐르는 이마를 모자를 꼭 내려서 가리고 구석에 붙어서 갔다. 주고객이었던 장사꾼들은 거리가 바뀌었어도 변함없이 생업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장사꾼이든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가득해서 그토록 찾았던 이치마츠를 발견하지 못했다.
나와 달라고 해서 나왔는데 보지 못한 건 그들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온 김에 책방이 있는 샛길로 가보았다. 주위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신경 쓰여서 들어가지 않고 흘끗 보았는데 문을 열지 않았다. 역시 사람이 많이 찾을수록 곤란한 곳이라서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은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났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어디서 정보를 찾아야하나 고민하던 중에 이치마츠의 눈에 바로 띄는 사람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사람들 사이에서 우중충하고 투박한 사냥꾼 옷을 입은 다섯 명 무리가 모여서 다녔다. 그들 가운데에서 앞서 있는 사람은 얇은 입술을 벌리고 날카로운 회색 눈으로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다. 볼이 움푹 파인 얼굴을 보고 이치마츠는 피가 차갑게 식었다.
이치마츠는 복수할 악마를 찾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했다. 그렇다보니 그에겐 적이 많았는데 그 적 중에 하나 회색눈 팬이었다. 잔병이 많아서 유약해 보이지만 성질을 포악한 악질 중에 악질이었다.
이치마츠가 회색눈 팬을 만나게 된 건, 2년 전에 다른 나라의 백작이 주최한 마법사 연회에 참가 했을 때 이었다. 그 백작이 마법에 대해 관심이 많고 후원을 많이 해준다는 소문이 마법사들 사이에 펴져서 그가 마법사를 위한 연회를 열었다는 것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마법사들이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라도 항상 돈이 궁했기에 이번에 귀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한몫 챙길 생각이었다. 이치마츠도 그런 마음으로 귀찮아도 백작의 연회에 참가했었다.
그러나 연회는 마법사들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변했다. 백작 자리 옆에 장막이 있었는데 그가 장막을 걷자 미라가 된 여자아이 시체가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 입고 앉아 있었다. 사실 백작이 마법사들을 부른 것은 죽은 딸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어떤 마법이라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기에 마법사들을 다 거절했다. 하지만 백작은 그걸 받아드리지 않았고 돌아가려는 마법사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하자 마법사 중 하나가 기어코 악마를 부르고 말았는데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불렸기에 소환된 악마는 먼저 죽은 사람들의 피냄새를 맡고 폭주했다.
백작은 악마를 보자마자 서둘러 피신했지만 남은 사람들은 악마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치마츠만 그의 몸에 악마의 피가 흘려서 살려준 거 였다. 그 후 백작이 몰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문제는 끝까지 살아남은 백작이 자신의 성에 악마를 부른 마법사들에게 복수하겠다고 나선 거였다. 특히 이치마츠는 악마가 살려줬으니 요주의 인물이었다. 그때부터 백작의 더러운 일을 맡아서 하는 회색눈 팬이 백작의 명령에 의해 지금까지 쫓아 온 거다. 회색눈 팬은 단순히 백작 밑에서 일하는 사용인 같은 게 아니었다. 누구보다 잔혹했고 사람을 괴롭히는 걸 즐겼으며 끈질기게 집요했다.
결국 저 사람을 피해서 이곳으로 온 건데 부하까지 대동해서 여기까지 온 것을 보니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저 사람이라면 이치마츠의 집을 찾는 건 시간 문제였다.
이치마츠는 챙이 넓은 모자를 꼭 잡고 지름길로 들어가 바로 연립주택에 도착해 집이 있는 꼭대기 창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그 녀석의 단검이 바로 등 뒤를 대고 있을 것 같은 느낌에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숨이 넘어갈 것 같아서 손잡이를 잡고 주저앉았다.
이치마츠의 이런 모습을 두 번째로 본 천사는 침대에서 내려와 그를 한손으로 들어서 침대로 데려갔다. 아무 걱정 없는 얼굴로 어서 오라고 인사했다.
“왜 뛰어왔어?”
이치마츠는 자신을 붙잡은 천사의 손을 내쳤다. 그 바람에 바닥에 크게 부딪쳤지만 아픈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있어서 없는 힘도 다 짜내 제일 큰 가방을 찾아 온 집안을 뒤졌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너도 어서 짐 싸!”
천사는 이치마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긴 소매로 입을 가리고 멀뚱거리고 있자 이치마츠는 열 받아서 목소리가 갈라지고 소리가 높아졌다.
“뭐하는 거야. 어서 움직이라니까!”
“나 짐 없어.”
“아, 그렇게 손이 비면 날 도와주던가!”
화를 내고 있는 이치마츠의 말을 들은 천사는 신이 나서 활짝 웃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다급한 자신과 다르게 아무것도 모르는 천사를 보니 분통이 터질 것 같았다. 그렇지 꺼지라고 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뒤져보다가 이제야 큰 가방을 겨우 찾았다. 아직 본격적으로 짐도 싸지 않았는데 귀 옆에서 심장이 뛰는 듯 한 긴장감에 땀이 비 오듯이 흘렸다. 그가 가방을 찾기를 기다렸는지 천사는 이치마츠 눈앞에 잔뜩 챙긴 잡동사니를 내려놓았다. 쓸데없는 것이 많아서 손도 안댔다.
가방 안에는 마법 도구와 낡은 책상 밑에 모아둔 돈을 챙겼다. 얼마 없는 옷과 함께 천사가 버리지 못하게 항상 가지고 있던 소환된 악마들의 목록을 챙기는 찰나 현관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이치마츠는 숨 쉬는 것마저 멈추었다. 집안에 아무도 없는 척을 해서 도망갈 시간을 벌어야 할지 고민하는데 갑자기 천사가 손을 번쩍 들고 해맑고 대답했다.
“넹! 누구십니까?”
눈치 하나 없는 행동에 너무 놀란 이치마츠가 말릴 새도 없이 천사는 재빠르게 현관문을 열어버렸다. 열린 문 앞에는 이치마츠와 천사보다 조금 큰 사람이 날카로운 회색 눈으로 내려 보고 있었다. 그 뒤에는 똑같이 우중충한 옷을 입고 있는 네 명이 석궁과 단검을 들고 있었다. 거리에서 본 그놈들이었다.
회색눈 팬은 해맑게 웃고 있는 천사를 이상한 눈으로 보다가 이내 그 뒤에 있는 이치마츠를 보았다. 그가 말하기 전에 먼저 불안정한 숨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군. 이치마츠 군. 여기까지 오는데 너나 나가 고생이 많았어.”
철금성 목소리에 이치마츠는 전에 이 사람에게 걸려서 개고생 했던 게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이번에 붙잡히면 다시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서로 다치지 말고 곱게 가야지. 알겠지?”
회색눈 팬은 자신 앞에 있는 천사를 밀치고 이치마츠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천사가 그의 팔을 잡았다. 그 상태로 웃으면서 올려다보았다. 이치마츠는 앞에서 회색눈 팬을 막은 천사를 보고 저 자들을 해치워 줄 거라고 내심 기대했다.
“이치마츠 친구. 나도 같이 갈래. 난 이치마츠에게 쓸모 있으니까!”
눈치 없는 천사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더니 손이 잡힌 회색눈 팬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았다. 그때는 놓치지 않고 이치마츠가 천사에게 부탁했다.
“저 새끼 절대로 친구 아니야! 밖으로 내보내!”
“아니야?”
이치마츠의 말을 들은 천사가 눈썹을 내리면서 대답하는 사이에 회색눈 팬은 천사의 어깨를 잡고 같이 뒤돌았다. 이 사람 성격이라면 인정사정없이 한대 칠 텐데 앞에 있는 사람이 천사인거 모르는 그 조차도 천사의 기운에 감화돼 나름 순한 양이 되었다.
“잠깐 이치마츠와 얘기 할 건데 자리 좀 비켜주지 않을까?”
회색눈 팬은 재빠르게 천사를 현관문 밖으로 내보냈고 그 대신에 들어온 부하들이 천사 앞을 막았다. 방해꾼을 없앤 그는 과장된 손짓을 하면서 다시 집안을 보았다. 그러나 거기에 얌전히 있어야 할 이치마츠는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았다. 활짝 열린 베란다 문을 본 그는 서둘러 베란다로 갔다. 가방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 도망가는 이치마츠를 발견했다.
“이 쥐새끼!”
회색눈 팬의 쉰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이치마츠는 잠시 움찔거렸으나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도 또 겪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저 사람에게 잡히는 건 죽어도 싫었다.
6층 높이에선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뒤에서 그 놈들이 쫓아오는지 확인하고 싶어도 지붕 기와가 미끄러워서 온 신경을 집중하지 않으면 위험했다. 고양이처럼 몸을 잔뜩 낮추고 한 팔로 가방을 끌어안고 한 발을 내딛는데 발 놓을 자리에 석궁용 화살이 날아와 위협적으로 튕겼다. 발을 제대로 딛지 못한 탓에 그만 중심이 흩어져 버렸다. 몸이 기울었는데 그때 바람에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가 버렸다.
소중한 모자가 날아간 것을 본 이치마츠는 자신이 지붕 위에 있다는 것을 생각도 안하고 손을 내밀어 잡았다. 몸이 더 기울 때 자신이 실수 했다는 걸 깨달았으나 이미 몸이 지붕 아래로 떨어졌다.
두 발이 공중에 뜬 느낌에 놀라서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 때문에 몸이 뒤집어 졌을 때 자신을 노려보는 회색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저 사람에게 잘못한 게 많다고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야 하나 억울함이 들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두 팔로 이치마츠를 꽉 붙잡았다
“와하하, 잡았다!”
천사였다. 마치 낚시 바늘로 고기를 낚아채는 것처럼 천사는 공중에서 이치마츠를 낚아서 밑으로 빠르게 떨어졌다. 이치마츠가 이게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에 천사는 바닥에 두발로 착지했고 그 반동으로 다시 위를 향해 뛰어 올랐다. 재빠르게 하늘로 날아갈 줄 몰랐던 이치마츠는 천사를 꽉 잡고 길게 비명을 질렀다.
이치마츠가 사는 꼭대기 층보다 훨씬 더 높이, 구름이 닿을 것 같은 곳에 올라온 천사는 감추었던 날개를 활짝 폈다. 광활한 하늘에서 펼친 천사의 날개는 성인키만큼 훨씬 거대했다. 천사는 이치마츠를 꽉 안고 햇빛이 오는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공중에서 천사에게 안긴 이치마츠는 엄청난 바람소리에 눈을 천천히 떴다. 아까까지 있었던 도시가 다 작게 보였다. 자신을 쫓아 온 회색눈 팬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살면서 완전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치마츠가 진정한 걸 안 천사는 크게 소리쳐 말했다.
“꽉 잡아! 멀리가자!”
거친 바람에 숨쉬기 어려웠던 이치마츠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것에 신이 난 천사는 큰 소리로 웃으며 더 빠르게 날아갔다. 차가운 바람이 뼛속까지 들어와서 이치마츠는 잡힌 상태로도 최대한 몸을 더 웅크렸다.
얼마나 날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천사가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해도 하늘의 냉기는 그 온기를 뚫고 이치마츠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그가 추위에 떨고 있는 걸 천사도 알고 있어서 반나절이 지나 어두운 밤이 되었을 때 산에 있는 동굴로 내려갔다.
하늘보다 덜 추운 땅으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몸은 얼음장 같이 차가워서 이치마츠는 두 팔로 몸을 껴안고 달달 떨었다. 열을 내기 위해 손으로 팔을 비벼도 좀처럼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천사가 걱정하는 얼굴로 괜찮냐고 물어보았는데 입이 얼어서 대답도 못했다.
그런 이치마츠에게 천사는 그를 다시 껴안고 동굴 벽에 기댔다. 엄마가 아이를 춤에 안는 것처럼 천사는 품에 가득히 이치마츠를 안았다. 천사의 따뜻한 기운 덕분에 어느 정도 온기를 찾았다. 거기에 더해 천사는 커다란 날개를 펼쳐서 이치마츠를 감쌌다.
하얀 날개는 밤의 차갑고 습한 공기를 막아주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공기 속에서 이치마츠는 점점 진정할 수 있었다. 그는 눈을 감자마자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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