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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송/장편 2017. 1. 21. 00:00[이치쥬시] 마법사와 천사의 이야기 4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어느새 이야기의 중반이 넘어 간 4화입니다.
마법사와 천사가 도시로 도망쳐서 산촌에서 생활하는 이야기의 첫번째 부분입니다.
도시에서 생활하던 마법사님이 과연 산촌에서도 잘 지낼 수 있을까요? 아마도 잘 지내겠죠?ㅋㅋㅋ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산촌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마법사님도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ㅠ
이미 늦은 거 어쩔 수 없겠죠.
아무튼 다음부턴 스포이니 궁금하신 분들께서 아래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이치쥬시하세요~
추위 때문에 몸살에 걸렸지만 옆에 있는 천사 덕분에 하루 만에 말끔히 나았다. 동굴에 반나절 이상이나 앓고 있어서 아무 것도 먹은 게 없는데 저번처럼 몸이 가뿐한 게 또 한 번 신기할 따름이다.
동굴 밖으로 나오니 침엽수와 키가 큰 활엽수가 빽빽하게 보였다. 공기도 하루 전에 있었던 도시보다 차가운 걸 보니 북쪽으로 올라 온 같았다. 얼마나 왔는지는 인가에 가서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날아온 거니 제법 멀리 왔을 것이다. 당분간 회색눈 팬의 시야 밖에 있을 수 있다.
이치마츠는 천사와 함께 인가를 찾아 신 밑으로 내려갔다. 천사가 또다시 이치마츠를 안고 하늘을 날아가면 편하지만 다시 추운 하늘로 올라가고 싶지도 않았고, 천사가 강림했다는 엄청난 소문을 퍼트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힘들어도 천사에게 절대로 날개를 펼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바로 빈집을 찾을 수 있었다. 집은 그렇게 크지 않아서 버려진 산장 같았다. 사람이 안산지 오래 되어서 근처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웅크리면 사람 몸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무성했다. 통나무로 만든 집은 곁의 형태는 아직 무사하나 안에 들어가 보면 썩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건 햇빛은 잘 들었다. 분위기는 낮에도 유령이 나올 정도로 을씨년스럽다.
주위에는 그 집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폐허가 될 정도로 사람이 다니지 않은 곳이라면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이야기가 밖에 나가지 않는다.
도시에서 나름 편안하게 살고 있다가 갑자기 죽을 뻔 했더니 작은 것도 조심하지 않으면 불안해져서 목이 막혔다.
이치마츠는 생각을 정리 할 겸 천사에게 말했다.
“여기서 살거야. 썩은 부분은 흙 반죽으로 메우고 지붕은 곰팡이 핀 부분만 갈고, 집 안에 있는 가구들은 고쳐서 쓰면 둘이서도 충분히 살 수 있어.”
“좋아!”
이치마츠의 말에 천사는 크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어찌나 목청이 좋은지 메아리가 울릴 정도였다. 시끄러워서 이치마츠가 미간을 찌푸리니 그와 반대로 천사는 크게 웃었다. 쌀쌀한 산바람을 맞는 중에도 햇살에 반짝이는 그 얼굴을 보고 있으니 불편했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졌다. 한동안 이렇게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살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한 지 하루도 안돼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말았다. 천사와 함께 빈집을 보수하고 있는 중에 뒤에서 어떤 남자가 힘준 목소리로 잡초를 뽑고 있는 이치마츠를 불렸다. 사람 목소리를 듣고 절망해서 천천히 뒤돌아보니 제 얼굴만한 날이 달린 도끼를 어깨에 메고 있는 같은 또래의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색 짧은 머리에 조금 탄 누런 피부. 이치마츠와 같은 이민자에, 나무꾼으로 보였다.
눈이 조금 큰 남자는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가 물어보았으나 이미 당황한 이치마츠는 완전 얼어붙었다. 대놓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앞에 있는 젊은 남자는 눈치를 못 채고 일부러 힘 준 얼굴로 다가왔다. 이치마츠가 망설이고 있는 사이 지시대로 지붕을 고치고 있던 천사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작은 기척에도 눈치 챈 남자는 바로 고개를 들어 천사를 발견했다. 남자의 고개가 올라감에 따라 이치마츠도 서둘러 천사를 봤는데 다행히 날개를 펼치지 않았다.
“일행이 있었군. 그쪽은 누구신가?”
남자는 대답을 못하던 이치마츠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말에 천사는 활짝 웃었다. 그러자 남자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천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천사가 내뿜는 성스럽고 생명력이 가득한 기운에 저도 모르게 취한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 이치마츠는 눈치 없는 천사가 괜히 이상한 말을 하기 전에 남자에게 먼저 달려가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우리는 형제야! 형제. 할아버지의 형님의 아들의 외사촌의 조카가 나에게 물러준 집인데 잠깐 살려고 왔어. 정말 잠깐만!”
급하게 거짓말을 하다 보니 별 희한한 말까지 나왔지만 젊은 남자는 산촌 사람이라서 그런지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어깨에 메고 있던 도끼를 내리고 이치마츠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매를 걷은 남자의 팔은 다부졌다.
“만나서 반갑네. 나는 카라마츠. 이 근처에서 이 도끼 한 자루로 이 세상에게 온기를 주기 위해 열심히 나무에게 도움을 받는 나무꾼이지. 자네들의 낡은 집에도 불같은 온기가 필요하면 내가 얼마…….”
“장작은 필요 없어. 나도 만나서 반가워! 이치마츠야.”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라고 한 남자의 손을 마주 잡아 악수했다. 긴장감을 풀려고 손을 세게 흔들다가 이자에게 본명을 그대로 알려줬다는 것을 깨닫고 속으로 경악했다. 숨어 살아야 하는데 첫 단추부터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이치마츠의 심정을 눈치 못 챈 카라마츠는 눈에 힘주어 쌍꺼풀을 만들어 느끼하게 웃었다. 그 표정을 보고 벌써부터 질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카라마츠가 이번엔 지붕에서 내려 보는 천사에 대해 물었다.
“그렇다면 귀여운 자네의 형제 이름은 무엇인지 이 카라마츠에게 알려 줄 수 있는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이치마츠는 다시 얼어붙었다. 천사의 이름을 아직도 몰라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때 카라마츠 뒤로 까마귀 네 마리가 보였다. 이치마츠는 가까스로 머리를 굴려서 형제 같아 보이는 이름을 만들었다.
“그게, 쥬시마츠야 동생은 쥬시마츠. 내가 1이 들어가고 동생은 1하고 4가 들어가서…가 아니라 엄마가 십자매를 좋아해서 쥬시마츠야.”
엄마가 십자매를 좋아하는 것조차 지금 지어낸 말이지만 다행히도 카라마츠는 그대로 믿었다. 이 사람은 원래 사람을 잘 믿는 성격 같았다.
같은 또래를 만나서 기쁜 카라마츠는 땅에 꽃은 도끼를 들고 산 속으로 돌아갔다. 헤어지기 전에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이치마츠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카라마츠가 가자 지붕에 있던 천사가 날개를 펼치고 이치마츠 옆으로 내려왔다.
“갑자기 날개를 펼치면 어떡해! 또 누가 봤으면 어쩌려고!”
“괜찮아, 괜찮아. 카라마츠 지금 멀리 갔어.”
아무 걱정 없이 웃는 천사를 보니 괘씸해졌다. 왠지 카라마츠는 자주 찾아 올 것 같아서 천사에게 단단히 주의를 줘야겠다. 자꾸 한숨만 나오는 이치마츠에게 천사는 대뜸 소리쳤다.
“쥬시마츠!”
아까 카라마츠 앞에서 즉석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이치마츠는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아, 그건 대충 둘러댄 거니까. 원래 이름 있잖아.”
“그거랑 상관없어. 이치마츠가 나를 쥬시마츠라고 부르고나서부터 난 쥬시마츠가 인거야.”
그렇게 말한 천사를 이치마츠를 빤히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자기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대충 지은 이름가지고 이렇게 좋아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 이치마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이름이 있어야 부르기 편하니까.
“……귀찮아. 맘대로 해.”
이치마츠는 상기된 얼굴을 돌리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제부터 쥬시마츠가 된 천사는 잔뜩 신이 나서 힘차게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의 날갯짓 소리에 아까 그곳에 있던 까마귀들이 놀라서 날아갔다. 그런데 한 마리는 날아가지 않아서 유심히 살펴보니 깃털이 빠져서 듬성듬성했다.
* * *
나무꾼인 카라마츠에게 우연히 발견된 후부터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원치 않는 이웃이 생겨버렸다. 장작을 많이 구해야 하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서 바쁠 시기인데도 집고치는 것을 손수 도와주었다. 같은 또래에 같은 고향의 이민자 출신이 새로 왔으니 반갑겠으나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찾아 올 수 록 곤란했다.
급기야 카라마츠는 자신의 어린 남동생까지 데려와서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에게 소개시켰다. 그의 동생은 이름이 토도마츠였고 나이는 갓 10살을 넘긴 아이였다. 순진한 형과 다르게 똘똘하고 무엇보다 애교가 많았다. 남자아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여자아이라고 믿을 만큼이었다.
작은 동물을 좋아하는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만나자마자 완전히 친해졌다. 그사이에 토도마츠에게 애교를 배워서 완전 찰떡이 맞았다. 거기에 천사인 쥬시마츠는 원래 음식을 먹지 않아서 어린 토도마츠에게 먹을 것도 주기도 하니 당연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꼭 붙어서 둘이서만 장난을 치고 놀았으니 친형인 카라마츠가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제3자인 이치마츠가 보기엔 토도마츠가 어린 나이인데도 영악한 구석이 있어서 친형처럼 순진해 보이는 쥬시마츠에게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돌아가고 그날 밤 평소처럼 잠자려고 침대에 누운 이치마츠를 빤히 보고 있던 쥬시마츠가 대뜸 말했다.
“이치마츠 형아.”
형아라는 말에 이치마츠가 놀라서 왜 그러냐고 반문했다.
“뭐야, 왜 갑자기 형아라고 해?”
“토도마츠가 그랬어. 카라마츠 형아, 이치마츠 형아, 쥬시마츠 형아.”
카라마츠가 빌려준 등불에 비친 쥬시마츠의 눈이 무척 반짝반짝 빛났다. 형아라는 단어가 그의 무엇을 자극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이치마츠는 한숨을 쉬고 차근하게 설명했다.
“그건 토도마츠가 제일 어리니까 너나 나한테 형이라고 하는 거야. 쥬시마츠 넌 인간인 나보다 훨씬 오래 살았을 테니 형이라고 할 필요 없어.”
“근데 여기서 난 이치마츠 동생 아니야? 그러니까 형아가 맞지? 맞지?”
“그 설정은 둘만 있을 땐 안 해도 돼. 이름도 마찬가지고.”
“그치만 쥬시마츠도 좋고, 형아도 좋아. 나는 계속 할래.”
쥬시마츠가 환하게 웃어버리니 이치마츠는 마음이 간질거리고 얼굴이 달아올라서 시선을 피했다. 별일 아닌 것처럼 굴고 싶은데 부끄러움에 머리가 어지러워서 맘에도 없는 말이 나왔다.
“난 호칭 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딱히 있어도 귀찮기만 해. 형이라고 하면 괜히 친해진 것 같잖아.”
“형아라고 하면 친해진 거야? 그런 거야? 우와! 완전 기뻐!”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의 말을 다르게 받아들었다. 친해졌다는 것이 정말로 기쁜지 감추고 있던 날개를 펼치고 파닥거렸다. 그 날갯짓에 등불이 꺼졌는데 쥬시마츠한테서 나온 빛 덕분에 방안이 밝았다.
“옆에 있어도 돼. 친해진 걸로 난 쓸모 있어진 거야.”
“쓸모 있다는 게 그렇게 중요해? 쓸모없어도 옆에 있어도 된다고.”
“그래도 쓸모 있는 채로 있을래. 그게 좋잖아. 그치? 이치마츠 형아.”
낮에 토도마츠가 한 걸 그대로 배워서 고개를 살짝 기울고 바짝 다가왔다. 그 때문에 이치마츠는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빨개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얼른 이불을 뒤집어썼다. 추운 날씨에 얇은 이불을 덮은 건데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 같았다.
“몰라 맘대로 해. 난 이제 잘 거야.”
“응! 잘 자. 이치마츠 형아!”
힘세고 강한 쥬시마츠가 모든 힘든 일을 다 하고 이치마츠는 세부적인 것을 고쳐서 사흘 만에 집다운 집에서 보낼 수 있었다. 빈집에 침대와 식탁, 소파는 남아 있어서 차가운 맨 바닥에서 생활하지 않게 되었다. 도망칠 때 챙기지 못했던 이불, 식탁보, 식기, 자잘한 바구니 같은 생활품은 카라마츠가 자신들이 쓰지 않는 걸 빌려줬다.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고쳐진 집을 보니 겨울을 지나 계속 지내도 될 것 같았다. 회색눈 팬이 영원히 오지 않는다면.
산 속으로 온 이후로 이치마츠는 전보다 훨씬 느긋하게 보냈다. 근처에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그에게 마법을 의뢰할 사람이 없고, 마법 도구와 타로카드도 가져오지 않아서 할 수 없었다. 마법 도구야 다시 만들면 되지만 마력을 기르기 위해 했던 이완 의식을 하지 않을 정도로 무기력해져서 그마저 하지 않았다. 소환된 악마 이름 목록은 있지만 복수할 악마를 찾는 것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엄마를 버리고 간 아버지를 싫어한다. 지금이라도 스스로 나온다면 곤죽이 될 만큼 팰 의향도 있다. 근데 살의가 사라진 건 잘못 소환된 천사 덕분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새 천으로 덮은 소파 위에 웅크리고 있는 이치마츠에게 쥬시마츠가 다가와 밥을 먹으라고 했다. 그가 말을 걸어서야 정신을 차린 이치마츠는 그제야 음식 냄새를 맡았다. 음식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냄새를 맡아도 쥬시마츠가 뭘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그게 무엇이든 무척 맛있었다. 의욕을 안 생기게 만든 건 쥬시마츠가 이치마츠가 아무 것도 안 해도 될 정도로 다 챙겨주는 것도 있다.
식탁에 앉아 온갖 야채를 한꺼번에 넣고 끓은 스튜가 담긴 그릇 하나를 바라보던 이치마츠는 먹기 전에 마주보고 앉아 있는 쥬시마츠에게 지금까지 물어보지 않았던 걸 물어보았다.
“음식, 정말 못 먹어?”
“그건 왜?”
이치마츠가 물었는데 쥬시마츠는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입을 벌리고 해맑게 웃고 있어도 이런 식으로 반문하면 스스로 시험에 드는 기분이었다. 그 표정 앞에선 솔직한 말만 나왔다.
“사람 앞에 앉혀두고 혼자 먹기 좀 그래. 먹을 수 있으면 같이 먹어, 그게 더 좋잖아.”
이치마츠의 대답에 쥬시마츠는 소매로 입을 가렸다. 잠시 고민하는 모습에 이치마츠가 되려 긴장되어 몸이 굳어졌다. 더 이상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저절로 입에서 말이 나왔다.
“그렇게 싫으면 뜸들이지 말고…….”
“좋아! 먹자!”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의 말을 끊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큰 소리에 이치마츠는 고양이처럼 놀랐다. 그 바람에 말이 헛 나왔다.
“천사인데 사람 음식을 먹다가 탈이 나거나 그러면 어쩌려고. 어이 무리하지 말라고.”
“걱정마! 걱정마!”
쥬시마츠는 활짝 웃어주고 카라마츠가 준 쥬시마츠 용 식기에다가 재빨리 자기 몫을 가져갔다. 이치마츠가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못하게 그릇 채 들어서 마셨다. 바로 나와서 뜨거울 텐데 쥬시마츠는 끝까지 맛있게 먹었다. 한입에 깨끗이 먹은 쥬시마츠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맛있어!”
“그야, 네가 만들었잖아.”
퉁명스럽게 말했으나 온 몸으로 맛있다고 하는 쥬시마츠를 보니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맛있게 먹는 쥬시마츠를 따라 이치마츠도 한 숟가락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카라마츠의 동생인 토도마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살고 있는 집에 찾아왔다. 아침에 형이 나무하러 가면 혼자 알아서 잘 찾아왔다. 그리고는 쥬시마츠와 놀면서 하루 종일 있다가 나무하고 돌아 온 형과 함께 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들도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고 없다보니 카라마츠가 나무하러 간 동안에는 토도마츠 혼자 있었다고 한다. 똘똘한 녀석이라서 알아서 잘 지내고 산촌에 사는 애들이랑 같이 놀기도 한다지만 아직 어린아이다보니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
산 속에 지내게 되서 조용하게 지낸다 싶었는데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놀면서 떠들어서 물 건너갔다. 두 사람이 놀 땐 주로 쥬시마츠가 모르는 게임을 어린 토도마츠가 가르쳐 주었다.
“쥬시마츠 형,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다시 해봐.”
토도마츠가 작은 손으로 카드를 되돌리고 다시 쥬시마츠에게 내밀었다. 쥬시마츠는 천사면서도 게임 룰을 잘 이해하지 못해 팔짱을 끼고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었다. 쥬시마츠가 어디서 주워 온 큰 삵을 안고 쓰다듬어 주다가 무슨 게임을 하고 있나보니 도둑잡기였다.
그렇게 어려운 게임이 아닌데 쥬시마츠가 자꾸 실수하는 통에 흥이 깨진 토도마츠가 게임을 먼저 그만두었다. 토도마츠는 발라당 누워서 나무 열매를 먹었다. 작은 발을 동동 구르다가 문득 쥬시마츠와 이치마츠를 번갈아 보고 말했다.
“쥬시마츠 형이랑 이치마츠 형은 닮았는데 그닥 형제 같지 않네.”
정곡을 찌른 말에 이치마츠는 뒤통수 맞은 것 마냥 놀랐다. 그 바람에 무릎에 있는 삵이 놀라서 소파 밑으로 내려갔다. 쥬시마츠도 웃는 입을 뻐금거리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토도마츠는 그걸 놓치지 않고 두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봤다. 이대로 뒤면 토도마츠가 이상한 상상 할까봐 서둘러 말을 돌렸다.
“니네 형제도 그렇게 안 닮았어!”
“당연하지! 우리 형이 얼마나 구린대!”
토도마츠는 죽어도 친형인 카라마츠를 닮은 게 싫은지 바로 발끈했다.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카라마츠가 불쌍하게 느껴졌지만 솔직히 이치마츠도 카라마츠를 구리다고 생각해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토도마츠는 대화가 카라마츠로 가자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단번에 끊었다. 토도마츠의 말을 맞장구치던 이치마츠는 속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 만졌다.
토도마츠는 어두워지기 전에 찾아 온 카라마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쥬시마츠가 만들어 준 저녁을 먹고는 해도 일찍 떨어지고 할 일이 없어서 일찍 자기 위해 침대에 들어갔다. 산은 일찍이 겨울로 넘어가는 중이라서 공기가 부쩍 추워진 탓에 이치마츠는 시린 손을 계속 비볐다. 손을 주물거리며 소파에 앉아서 자신을 보는 쥬시마츠에게 말했다.
“쥬시마츠, 다음부터 조심해야겠어.”
“뭐가?”
이해하지 못한 쥬시마츠가 되물어보자 이치마츠는 눈을 마주보고 대답했다.
“형제같이 구는 거. 카라마츠가 둔감해서 신경 안 썼는데 토도마츠는 어리면서도 예리한 구석이 있어서 이대로 있다간 형제가 아닌 걸 알아챌 거야. 그러면 우리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심하면 너나 나나 위험해.”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긴 소매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보니 아마도 왜 위험한지 모르는 것 같았다. 사람과 생각하는 게 다른 그에게 자신의 입장에 대해 설명하기 귀찮은 이치마츠는 더 이상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달빛 아래에서 고민하고 있던 쥬시마츠는 소매로 입을 가린 채로 자기가 먼저 물어보았다.
“그럼, 그럼, 형제는 뭐야? 이치마츠 형아. 어떻게 하는 건데?”
“글쎄, 나도 형제가 없어서 몰라.”
외동이기에 모른다고 하니 쥬시마츠는 꽤나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천사이니 그런 걸 잘 알고 있거나 인간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서 몰라도 상관이 없을 텐데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니 의아해졌다. 뭐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말없이 지켜보는 이치마츠는 헤아릴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쥬시마츠는 결론을 지은 듯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카라마츠랑 토도마츠처럼 우리도 손을 잡으면 돼!”
별 희한한 결론에 이치마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손잡는 건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제라서 그런 거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활짝 웃는 쥬시마츠를 보고 문득 어린 자신을 꼭 안아주고, 볼도 꼬집어 주고, 손을 잡아 마주보고 웃었던 엄마가 떠올랐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던 엄마를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그렇겠지. 손 잡아주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집안일 하고, 잠도 같이 자는 게 형제가 하는 일이겠지.”
잠깐 추억에 젖어 낯부끄러운 말을 해버린 탓에 이치마츠는 스스로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쥬시마츠는 그런 거 하나 없이 엄청난 걸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소파에서 폴짝 뛰어 올라 단번에 침대 앞으로 왔다. 이치마츠가 깜짝 놀라서 벽 쪽으로 붙으니 그 사이에 자리를 차지라고 바로 누웠다.
어이없어 하는 이치마츠를 올려다보며 쥬시마츠는 활짝 웃었다.
“그럼, 이제부터 같이 자자. 형제니까 그치?”
그렇다고 해서 좁은 침대에서 표면상으로 성인 남성 둘이 붙어 자는 건 부담스러웠다. 엄마가 있을 땐 제외하고 남들과 한 번도 같이 잔 적이 없는 이치마츠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이미 누운 쥬시마츠를 다시 내보는 건 미안해졌다. 마지못해서 이치마츠는 침대 옆에 있는 등불을 끄고 좁아진 자리에 꿈틀거리면서 누웠다.
어두워진 방안에는 아직 달빛이 스며들지 않아서 이치마츠는 바로 앞에 있는 쥬시마츠의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똥말똥한 시선은 느껴졌다. 쥬시마츠가 가까이 있어서 민망한 이치마츠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그에게 나무랐다.
“잘 거면 어서 눈감고 자. 보고 있으면 신경 쓰인다고.”
“응!”
쥬시마츠는 전혀 잘 것 같지 않은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왠지 오늘은 신경 쓰여서 잠을 설칠 것 같다고 생각한 찰나, 어둠 속에서 쥬시마츠가 긴소매 안에 숨겼던 두 손으로 이치마츠의 손을 포개어 잡았다. 시렸던 손이 햇살같이 따뜻하고 강한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쥬시마츠가 갑자기 손을 잡아서 놀랐지만 손에서 전해진 온기가 온 몸을 따뜻하게 해줘서 빼지 않았다.
“잘 자. 이치마츠 형아.”
쥬시마츠의 인사에 따라 이치마츠는 스르륵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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