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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송/장편 2017. 1. 28. 00:00[이치쥬시] 마법사와 천사의 이야기 5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어느새 5화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쥬시마츠를 쥬시마츠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애기는 천사가 맞지만(??) 역시 쥬시마츠는 쥬시마츠가 장르라고 쥬시마츠라고 부르는 편이 편하네요ㅋㅋ
그리고 집에만 있던 이치마츠랑 쥬시마츠가 드디어 둘이서 밖에도 나갑니다.
뭔가 5화부터 분위기가 많이 변할 겁니다.
플라토닉한 사랑, 형제애와 같은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5화는 아슬한 선을 살짝 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이 글은 그동안 이치쥬시라고 공수가 정해진 글이라긴 보단 콤비 개념의 숫자마츠 이야기 같았는데 5화에선 이 글이 이치쥬시가 맞구나...라고 조금이나마 느껴지실 겁니다.
5화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오늘 하루도 이치쥬시하세요~
발에 차이는 낙엽에 낀 서리를 햇살에 녹았으나 서리를 만들었던 산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입김이 눈앞에서 허옇게 번지는 것을 보면서 이치마츠는 나무가 빽빽한 산 속을 한걸음 내딛었다. 그의 옆에는 시린 손을 잡아주는 쥬시마츠와 따라오는 사슴 세 마리가 있었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쥬시마츠가 손을 잡으려고 하기에 이치마츠는 번거롭다고 거부했다. 그러다가 얼마가지 않아 물기가 있는 낙엽에 미끄러져서 비틀거렸더니 쥬시마츠가 이치마츠의 손을 꼭 붙잡았다. 산 속에 두 사람만 있다고 해도 이렇게 손잡고 가는 게 부끄럽지만 쥬시마츠가 긴 소매 속에 있던 손을 일부러 꺼내서 깍지까지 끼는 바람에 떼어 놓지 못했다.
거의 집에만 있던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온 건 겨울이 오기 전에 먹을 걸 미리 구하려기 때문이다. 아직 먹을 것이 남아 있는 가을이라서 그동안 쥬시마츠가 알아서 구했으나, 눈이 내리는 겨울엔 산짐승도 먹을 걸 구하기 힘든 기간이니 겨울이 오기 전에 찾을 생각이었다. 마침 토도마츠도 일이 있었는지 오지 않았다. 우선 말려서 먹을 수 있는 버섯을 많이 구할 예정이었다. 이치마츠는 어깨에 멘 바구니를 고쳐 매며 쥬시마츠에게 말했다.
“쥬시마츠, 낙엽이 불룩한 곳을 잘 봐. 알록달록하지 않는 버섯을 찾아야 돼. 화려한 건 독버섯이라서 못 먹으니까. 알겠지? 바닥에 떨어진 밤도 있으면 줍고.”
“이치마츠 형아. 땅 속에 있는 건?”
쥬시마츠가 빈손을 붕붕 흔들면서 떡갈나무 아래 큰 낙엽이 쌓인 곳들을 가리켰다. 뿌리가 튀어 나온 곳은 이끼가 좀 끼여 있고 버섯 같은 건 붙어 있지 않는 평범한 곳이었다. 이치마츠 눈으로 보기엔 저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천사라면 알지도 모르지.
이치마츠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의 손을 잡은 채로 끌고 갔다. 쥬시마츠가 손을 안 놓고 자리에 앉아 한 손으로 땅을 파려고 하기에 이치마츠는 잡힌 손을 살짝 흔들었다.
“땅 팔 거면 이 손 놓고 해. 나 어디 안 가.”
“넹!”
이치마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쥬시마츠는 드디어 손을 놓고 두 손으로 낙엽을 헤치고 땅을 팠다. 부드럽고 축축한 흙은 쉽게 파졌다. 얼마 파지 않아 땅 속에 있는 뿌리가 드러났고 더 깊이 파니 뿌리에 붙어 있는 검은 혹 같은 것이 보였다. 검고 울퉁불퉁한 건 표면이 흡사 돌 같았다. 그러나 풍기는 향은 쥬시마츠 뒤에 있는 이치마츠도 맡아질 정도로 강했다. 태초부터 전해지는 숲의 향기와 축축한 땅 냄새를 풍기는 송로버섯이었다.
땅 속에 있는 이 버섯은 사람의 눈으로는 절대로 찾을 수 없어서 후각이 뛰어난 돼지가 있어야 찾을 수 있는 버섯이었다. 거기에 버섯이 있는 곳은 많이 않아서 돈 많은 귀족이나 대상들만 먹을 수 있는 귀한 것이었다. 이치마츠도 향기만 맡아 본 게 다라서 송로버섯의 향기를 기억하지 않았더라면 이게 송로버섯인지 모를 뻔 했다. 새삼 그걸 단번에 찾은 쥬시마츠가 사람이 아닌 걸 상기 되었다.
이치마츠는 입고 있던 짧은 로브를 벗어 그 위에 축축한 이끼를 뜯어서 깔았다. 모든 버섯이 그렇듯이 송로버섯 또한 원형 그대로 오래 보관하기 위해선 습기가 중요했다.
“쥬시마츠, 그거 엄청 귀한 거니까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파야 돼.”
“귀한 거야?”
“응, 찾기 힘드니까.”
“헤에, 저쪽에도 더 있는데? 저기, 저기에도 또 있어.”
쥬시마츠는 흙이 묻은 손으로 100걸음 정도 앞에 있는 큰 떡갈나무와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들을 하나씩 가리켰다. 이치마츠가 알기로는 이 나라의 송로버섯 산지는 한 곳 밖에 없었다. 여기처럼 북쪽 산맥에 걸쳐 있는 지방이었다. 그렇다면 쥬시마츠가 날아 온 여기가 그 곳 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측해도 어차피 산촌으로 내려가야 자세히 알 수 있으니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쥬시마츠가 이치마츠의 말대로 조심스럽게 파서 딴 송로버섯은 호두보다 약간 컸다. 금처럼 귀한 송로버섯을 두 손으로 받은 이치마츠는 깔아 둔 이끼 위에 얹어 놓고 로브를 바구니처럼 들었다. 송로버섯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온갖 정성을 다 드렸다.
“하나만 더 따고 가자.”
약간 고양된 목소리로 이치마츠가 말하자 쥬시마츠는 활짝 웃었다. 땅을 판 손으로 다시 손잡았지만 내치지 않고 꼭 잡았다.
오늘은 집에 놀러 온 토도마츠와 함께 산으로 들어갔다. 토도마츠는 따뜻한 쥬시마츠의 손을 꼭 잡고 산속을 누볐다. 확실히 깍쟁이 같아도 산촌에 사는 아이답게 거친 땅도 매끄럽게 돌아다녔고 버섯이나 먹을 것도 많이 찾았다. 돌아다니면서 운이 좋게 열매가 많이 열린 호두나무를 찾아서 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문을 열고 들어 온 카라마츠는 놀란 눈을 하고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 온 거라서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사는 문 앞에 여기에 왔다고 적은 메모를 보고 급하게 온 모양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그에게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주방에 있는 식탁에 앉아 손을 흔들어 반겼다.
“어서와! 카라마츠 형아!”
이치마츠는 딱히 인사할 맘이 들지 않았으나 신난 분위기에 휩쓸려서 말없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카라마츠는 자신의 집에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놀러 온 게 보고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특유의 뻔뻔함은 어딜 가지 않아서 금세 눈에 힘을 주고 허세가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오우! 형제들이여. 날 위한 깜짝 파티인가?”
“그럴 리가 있겠냐고. 카라마츠 형. 어서 와서 안기나 해.”
그의 말에 먼저 딴지를 건 사람은 동생인 토도마츠였다. 형이 이랬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딴지를 거는 게 매우 자연스러웠다.
카라마츠가 커다란 도끼를 문 앞에 있는 도구함에 올려두고 바로 주방으로 오자 스프를 만들어 두었던 쥬시마츠가 자리에 일어났다. 그를 따라 이치마츠도 무의식적으로 따라서 일어났다. 스프를 뜨기 위해 화로 위에 있는 무쇠솥 뚜껑을 여니 걸쭉한 스프에서 진한 송로버섯 향기가 느껴졌다. 워낙 강한 향기였기에 식탁에 앉아 있는 카라마츠까지 전해졌다.
“으흠? 이건 무슨 향기인가? 집 안이 숲의 그윽한 향기로 가득하군. 집 안에 숲의 요정님이라도 강림하신 건가? 아항?“”
“아, 네네.”
쥬시마츠조차 무시한 카라마츠의 말을 카드를 만지고 놀던 토도마츠만이 대충 받아줬다. 그러나 솔직히 동생도 형의 말을 제대로 들은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내뱉은 말에 뿌듯하고 있는 카라마츠에게 이치마츠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대답했다.
“시끄러워. 개똥마츠.”
“푸하하핫. 개똥마츠래. 하하하.”
형이 충격을 받든 말든 어린 동생은 이치마츠의 말에 크게 웃었다. 의자에 앉아 발을 동동 구르는 게 정말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카라마츠는 어린 동생이 욕을 배울까봐 전전긍긍했다. 그 모습에 조금 찔렸으나 쥬시마츠가 큰 그릇에 송로버섯 스프를 가득 퍼 이치마츠에게 건네줘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얇게 저민 송로버섯이 들어간 야채 스프 앞에서 카라마츠와 토도마츠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 맡은 향이라도 송로버섯이 진미인 걸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릇 네 개가 식탁에 올라가자마자 토도마츠가 먼저 자기 손에 맞지 않는 숟가락을 들고 먼저 스프를 먹었다.
“우와, 대박. 맛있어! 진짜 맛있어!”
“톳티, 맛있어?”
“응! 맛있어. 쥬시마츠 형아.”
어린 토도마츠가 애교를 섞여서 맛있다고 하니 만든 쥬시마츠도 기뻐서 박수치며 웃었다. 이치마츠도 스프를 먹어보니 역시 맛있었다. 짭조름하면서 양파와 당근에서 배어 나온 단맛이 혀 위에 맴돌았다. 그리고 입안 가득히 풍기는 송로버섯 향기는 숲 속에서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는 것 같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카라마츠의 말대로 숲의 요정이라도 온 것 같았다. 이렇게 먹어보니 왜 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송로버섯을 찾는지 이해되었다.
동생을 따라 스프를 먹은 카라마츠는 허세를 벗고 본래의 목소리로 감탄했다.
“정말 맛있군. 이런 건 처음 먹어봐. 이 버섯 이름이 뭐지?”
“송로버섯. 처음 봐?”
이치마츠가 대답하니 카라마츠는 송로버섯이란 이름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다. 이런 건 어디서 구한 건가.”
이민자 출신이라도 산촌 토박이인 카라마츠는 이 숲에서 송로버섯이 나는지 모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여기가 송로버섯 산지는 아닌 게 밝혀졌다.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던 송로버섯을 찾은 것도 어쩌면 행운을 가져다주는 천사의 기운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대충 구하기 힘든 귀한 거라고 말해주고 마저 식사했다.
처음으로 네 명이 함께 한 저녁식사가 끝나니 맛있는 걸 대접해준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에게 차를 내줬다. 카라마츠는 좋은 차가 아니라서 미안했지만 오랜만에 차다운 차를 마시게 된 이치마츠는 속으로 감사히 받았다. 차를 마시면서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첫눈 오면 장이 어디서 열리는지 알려줘. 겨울을 대비해서 살 게 많아.”
“그리고 보니 곧 첫눈이 오겠군. 나도 장작을 팔아야 하니 같이 가세.”
카라마츠의 말을 들은 토도마츠는 자기도 장터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토도마츠와 이치마츠도 가는데 쥬시마츠도 안갈 리가 없으니 다같이 장터에 갈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어디 간 적이 없었던 이치마츠는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차까지 마시니 이미 밖은 어두워졌다. 이 시간에 산길을 다니는 건 위험하다면서 카라마츠가 두 사람에게 자고 가라고 했다. 그러나 이치마츠는 불편하다며 단번에 거절했다. 토도마츠마저 자고가라고 떼쓰기 전에 바로 현관문을 열었다.
“어두운 데 잘 갈 수 있겠나?”
“남 걱정하지 말고 잠이나 자러가. 우리는 알아서 갈거야.”
“응! 달빛이 있으니까 괜찮아. 괜찮아!”
쥬시마츠가 팔 근육을 뽐내는 것처럼 두 팔을 들어 흔들어 보아도 카라마츠의 걱정하는 표정은 가시지 않았다. 괜히 또 붙잡을 게 귀찮았던 이치마츠는 인사도 없이 바로 현관문을 닫아 뒤도 보지 않고 산길에 들어갔다. 확실히 나무가 빽빽한 산길은 하늘에 커다란 보름달과 별이 떠도 어두웠다. 발밑을 조심하지 않으면 돌부리에 채여서 넘어질지도 모른다.
한 치도 보이지 않는 발밑을 노려보면서 가던 중 쥬시마츠가 이치마츠를 번쩍 안아들었다.
“날아가자! 이치마츠 형아.”
대답도 듣기 전에 쥬시마츠는 이미 커다랗고 하얀 날개를 꺼냈다. 날아가겠다는 말에 잠시 놀랐지만 어차피 바로 눈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숲속이기에 누구에게 걸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거기에 날아가면 걸어올 때보다 훨씬 더 빨리 가고 다리도 안 아프니 지금은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의 어깨를 꼭 잡고 말했다.
“춥지 않게 가.”
“넹! 넹!”
쥬시마츠가 가볍게 뛰자 간단하게 커다란 나무 위까지 올라갔다. 나무가 가렸던 밤하늘을 보니 티 없이 부드러운 검은 비단에 하얗고 노랗고 붉고 푸른 보석이 흘러가는 강처럼 박혀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에 추운 것도 잊어버렸다. 쥬시마츠는 큰 날개를 크게 퍼덕였다. 천천히 흔들리는 걸 느끼며 이치마츠는 자신을 안고 있는 온기에 취해 살며시 눈을 감았다.
* * *
카라마츠의 말대로 일주일 뒤에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라서 도시처럼 많이 내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발목이 파묻힐 정도 제법 내렸다. 어제만 해도 알록달록했던 산이 밤사이에 새하얗게 된 걸 보고 오늘 무사히 산길을 내려갈 수 있나 고민했으나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장작을 가득 들고 해도 안 뜬 새벽부터 집에 찾아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따라 눈 쌓인 산길을 내려갔다.
쥬시마츠가 손을 꼭 잡고 있어줘서 무사히 산길을 내려가 당나귀 두 마리가 끄는 수레가 대기하고 있는 곳까지 갔다. 내려오면서 카라마츠가 말하길 장이 열리는 곳은 산 아래 강이 시작되는 나루터라서 거기까지 수레를 타고 더 가야한다고 했다. 큰 수레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이치마츠는 품에 안에 숨긴 걸 더 끌어안고 쥬시마츠 옆에 꼭 붙어 있었다. 그러자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산촌 사람들은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궁금한 것이 많아서 계속 질문을 했다. 이치마츠가 대답을 거의 안하고 입을 다물고 있으니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대신 대답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이 많은 사람들도 쥬시마츠를 볼 땐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천사인 걸 숨기기 위해 날개를 드러내지 않아서 이치마츠와 비슷하게 생긴 보통 사람처럼 보일 텐데도, 그에서 뿜어 나오는 성스럽고 생명력이 가득한 기운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경외하는 것 같았다. 쥬시마츠가 눈이 마주쳐서 빙그레 웃고 있으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해졌다. 신앙심이 충만해서 눈물을 흐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정오가 되지 않는 시간에 나루터에 도착했다. 이런 촌이라도 장터에서는 사람이 제법 많이 왔다. 장소도 나루터라서 정착된 배도 많았다. 같이 수레를 타고 온 산촌 사람들이 서둘러 내리자 이치마츠는 눈에 띄지 않게 그들 뒤에서 내렸는데 옆에 있는 쥬시마츠 때문에 장터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이대로면 안될 것 같아서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와 잡은 손을 놓았다. 그러자 쥬시마츠가 놀랐다. 영문을 몰라서 눈이 빙그르르 돌아가는 쥬시마츠에게 이치마츠는 목소리를 잔뜩 낮추어서 말했다.
“남들 앞에서 손잡고 다니면 이상하게 봐.”
“왜? 우리 형제잖아?”
“형제라도 다 큰 성인처럼 보이는 남자 둘이 손잡으면 안된다니까?”
“왜? 왜? 나랑 이치마츠 형아는 안 이상해.”
쥬시마츠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기운이 다 빠졌다.
“남자 둘인데 손잡고 다니면 너무 친밀하게 보여서 그렇고 그런 사인 줄 알아. 우리가 그런 사이가 아닌데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해.”
“우리 완전 친해!”
“여기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아.”
더 이상 설명하기 귀찮았던 이치마츠는 대화를 서둘러 마치고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있는 곳으로 먼저 갔다. 그렇게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한 쥬시마츠는 침울해졌다. 입술을 삐죽 내밀고 팔이 축 처져 있는 게 이치마츠에게 삐친 것 같았다. 아무리 천사라도 이런 거 하나 이해 못하는 게 답답했으나 한편으로는 손 하나 못 잡는다고 침울해진 쥬시마츠가 귀여워 보였다. 얼마나 떨어지지 싫으면 저럴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설마.
느릿하게 따라오는 쥬시마츠를 바라보던 이치마츠에게 카라마츠가 불렀다.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니 카라마츠와 토도마츠는 가지고 온 장작의 값을 이미 치루고 끝난 뒤였다. 그들을 보고 자신도 어서 서둘러야 겠다는 생각에 쥬시마츠를 끌고 가려고 했는데 쥬시마츠 옆에는 어느새 토도마츠가 쪼르르 달려와서 풀이 죽은 달래주고 있었다. 이다음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치마츠도 카라마츠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갔다.
멀뚱하게 있는 카라마츠를 데리고 간 곳은 배에 짐을 실고 있는 나루터였다. 거기서 짐꾼들에게 지시하고 있는 상단 주인을 찾았다. 송로버섯 같이 귀한 건 돈이 있는 사람에게 팔아야 했다. 상단 주인에게 가기 전, 이치마츠는 품에 숨겨 두었던 돌사과만한 송로버섯을 카라마츠에게 전해주며 대신 거래하고 오라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송로버섯을 가져왔으나 이 귀한 걸 자신이 팔다가 혹이나 소문이 돌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장터에 온 것도 도박이나 다름이 없는데 여기서 더 큰 도박을 하다간 위험했다.
왜 거래를 자신에게 시키는지 모르는 카라마츠에게 이치마츠는 사정을 숨긴 채 다짜고짜 하라고만 했다.
“너는 그나마 장터에서 아는 사람들이 많잖아. 값은 적게 받아도 되니까 네가 나무 했다가 멧돼지가 땅 파는 걸 보고 거기서 땄다고 해.”
“네가 그렇게 말하면 되는 걸 왜 나에게 시키는가?”
“잔말 말고 그냥 하고 와.”
쥬시마츠도 그렇고 카라마츠까지 자꾸 물어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완전 굳어진 얼굴로 이치마츠가 노려보자 카라마츠는 단번에 기가 죽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송로버섯을 들고 상단 주인에게 가는 카라마츠를 놔두고 이치마츠는 두 사람이 잘 보이는 곳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카라마츠가 어색해하며 꺼낸 송로버섯을 본 상단 주인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다. 송로버섯의 크기에 한 번 더 놀랐다. 송로버섯을 확인한 상단 주인은 황급히 주위를 살펴보고 카라마츠에게 더 다가가 다른 사람들이 송로버섯을 보지 못하게 몸으로 막았다. 그 때문에 이치마츠도 거래가 어떻게 되는지 볼 수 없었다.
여전히 뻘쭘해하는 카라마츠와 대화를 나누던 상단 주인은 재빠르게 돈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금세 떨어졌는데 카라마츠의 손에 송로버섯이 없는 것을 보아 거래가 끝났다. 품에 귀한 것을 안고 다른 곳으로 상단 주인을 보면서 이치마츠는 나루터를 나오는 카라마츠에게 갔다. 이치마츠를 본 카라마츠는 그동안 긴장했는지 울상이 된 얼굴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제대로 말했지?”
“그렇다. 멧돼지 때문에 발견했다고 말했다. 거짓말을 하려니 너무 떨려서 넘어질 뻔 했다고.”
남자답게 생긴 것과 다르게 속이 좁은 카라마츠를 보고 혀를 찼다. 중요한 볼일은 끝났으니 송로버섯을 팔아서 받은 돈을 돌려받았다. 돈 주머니에 담긴 돈을 세보니 상단 주인이 제법 두둑하게 줬다. 물론 그 송로버섯을 들고 이 값보다 훨씬 더 비싸 파겠지만.
이치마츠는 대신 수고해준 카라마츠에게 수고비를 건네주고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를 찾으러 갔다. 두 사람은 나루터 근처에서 작은 인형을 꺼내서 재밌는 이야기를 말하는 이야기꾼을 구경하고 있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즐거워하는 토도마츠와 달리 쥬시마츠는 여전히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미안해져서 어떻게든 달래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치마츠와 카라마츠가 가니 이야기꾼의 이야기는 끝났고 사람들은 박수치며 그에게 동전 몇 닢을 건넸다. 송로버섯을 팔아서 돈이 두둑한 이치마츠가 대신 이야기꾼에게 동전을 주었다. 어느 정도 돈을 받은 이야기꾼은 여기 오기 전에 들은 새 소식이라면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남쪽 지방에 천사가 강림했다고 합니다! 그걸 한 사람이 본 게 아니라 여러 명이 봤다네요.”
이야기 꾼 입에서 천사가 강림했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번쩍 놀라서 한마음으로 짧은 감탄사를 말했다. 그에 비해 이치마츠는 당황한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회색눈 팬에게 도망칠 때 쥬시마츠가 화려하게 날아오르긴 했어도 이렇게 빠르게 소문이 퍼질지는 몰랐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이 이야기꾼에게 천사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보았다.
“그야, 상아처럼 뽀얗게 빛나는 피부에 햇살처럼 눈 부시는 금발이 아니겠습니까? 천사를 본 사람들 말로는 마그레타 공주님보다 아름답디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촤악- 하고 펼쳐진 날개가 무척 커서 해를 가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소문으로 퍼진 내용이 평범하게 생긴 쥬시마츠와 많이 다르다는 거였다. 이 나라에도 성지가 생겼다며 신기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치마츠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천사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야기 꾼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로 붐비기 전에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와 함께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장터를 돌면서 이치마츠는 염장한 돼지 뒷다리, 야채 절임 가득히, 딱딱한 빵 여러 개, 말린 옥수수 한 다발, 추운 겨울동안 입을 자신과 쥬시마츠 옷들, 등불용 기름을 사갔다. 그럼에도 돈이 남았다. 송로버섯 하나 판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들고 가기 힘들 정도 많았으나 힘이라면 어느 누구보다도 센 쥬시마츠가 가뿐히 들어서 걱정하지 않고 샀다.
다시 수레를 타고 산촌으로 돌아 온 네 명은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집으로 가니 여전히 말이 없는 쥬시마츠와 단둘이 남았다.
이치마츠는 하루 종일 우울해 하는 쥬시마츠를 어떻게 달래줘야할지 열심히 고민했다. 하지만 떠오른 것 중에 마땅한 것이 없어서 더 자괴감이 들었다. 솔직히 자기는 맞는 말을 했을 뿐인데 천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괜히 자책감이 든 것 같았다.
앞서 가는 쥬시마츠에게 이치마츠는 머뭇거리다가 그냥 속에 있는 말을 다했다.
“저기, 사람들에겐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게 중요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면 다들 안 좋게 보고 의심해.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 그것 때문에 속상하게 만들었으면 미안해. 근데 우리가 같이 다니려면 쥬시마츠 너도 지켜야 하는 거야.”
이치마츠의 말을 묵묵히 듣던 쥬시마츠는 멈췄다. 뒤돌아보지 않는 채로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이치마츠 형아랑 다시 안 친해진 것 같았어. 또 가라고 할까봐 무서웠어.”
표정을 볼 수 없지만 매일 웃던 쥬시마츠가 지금은 무척 속상한 얼굴을 하고 있을 거 같아서 이쪽도 마음이 아파졌다. 아무리 사람들의 시선에 때문에 한 거라도 그걸로 오해하게 만들었다는 게 옳은 일인가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치마츠는 먼저 쥬시마츠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니야. 우리 친해. 세상에 둘도 없을 만큼 누구보다도 친해. 그러니까 절대로 가라고 안 할 거야.”
부끄러운 말을 하고 있어서 이치마츠의 얼굴은 추운 겨울인데도 달아올랐다. 말을 계속하다보니 결국 속에 둔 말까지 나올 순간에는 심장이 요동쳐서 그대로 들릴 정도였다. 이치마츠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가 좋아. 쥬시마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쥬시마츠의 손이 크게 움찔거렸다. 듣던 쥬시마츠는 정말 놀랐는지 몸이 완전히 굳어졌다. 그의 반응에 걱정되어 이치마츠가 좀 더 가까이 가자 쥬시마츠는 황급히 잡은 손을 뺐다. 이런 쥬시마츠가 이상해서 얼굴을 보기 위해 앞으로 갔다. 그의 얼굴을 본 이치마츠는 놀라서 자기도 몸이 굳어졌다.
쥬시마츠는 완전 새빨간 얼굴로 입을 뻐금거리고 있었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말끔하게 정리된 머리도 솟아 오른 것 같았다. 그리고 앞에 있는 이치마츠를 보고 있는 눈은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잘못한 걸 들켜서 무서워하는 아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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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송 2017. 1. 24. 20:11[쵸로마츠] 마법 사서의 일상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오늘도 찾아왔네요ㅋㅋㅋ
근데 이번건 별거 아니고 헤소쿠리에 나온 마법 사서 쵸로마츠를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길게 쓸 건 없어서 아주 짧게 썼습니다.
어떤거 쓸까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좀 신기한 걸 찾았습니다. 포르투갈의 오래된 도서관에서는 책벌레들을 잡아먹으라고 박쥐를 키운데요. 그것도 예전부터 전해지는 거라서 지금도 그렇다고 하네요. 저도 처음 듣는 소리라서 이번에 한번 써봤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검색하면서 미국 공공도서관에서 쓰는 도서 분류법인 듀이십진분류법에 해리포터 마법 과목을 대입시켜 보기도 했는데 막상 만들어 놓고 쓰지 못해 여기에 대충 올려봅니다. 심심하면 한번 열어보세요ㅎㅎ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쵸로마츠는 제 키보다 큰 황금색 열쇠를 타고 학교 뒷산 아래에 있는 작은 창고처럼 보이는 서고로 갔다. 곁에서 보기엔 2평도 채 되지 않아 도저히 서고로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학교 자체가 커다란 나무에 둘러싸여 있어서 햇빛이 잘 들지 않는데, 그 커다란 학교가 동쪽 하늘을 막고 있어서 더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이었다. 남들은 음침하다고 질색하지만 쵸로마츠가 일하기엔 최적의 장소다.
분류방법
DDC
000 컴퓨터 과학, 정보 총류 (마법 이론, 총류)
100 철학 심리학 (+ 강령술, 점술)
200 종교
300 사회 과학 (머글 연구, 사회학)
400 언어 (고대 룬 문자, 에녹어)
500 과학 (신비한 동물, 약초학, 천문학, 산술점)
600 기술 (약학, 변신술)
700 예술, 레크리에이션 (비행, 마법 예술, 마법 스포츠)
800 문학
900 역사, 지리 (마법의 역사, 마법사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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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송/단편 2017. 1. 23. 20:55[이치쥬시] 끝난 여름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단편으로 오랜만이에요ㅋㅋㅋ
별 이유는 없고요 그냥 문득 양호교사 이치랑 야구부 쥬시 이야기를 다 쓰고 싶어서 어제부터 부지런히 썼습니다.
별다른 애정행각도 없고 짧은 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치킨먹으러 갈게요~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 쥬시마츠를 본 이치마츠는 의아했다. 특별하게 잘못한게 없는데 황급히 도망하는 꼴이라서 이치마츠는 괜히 서운해졌다.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어쩌면 설마.
"오늘은 성교육을 할거야."
매니저라서 딱히 격하게 움직이지 않는데도 마치 훈련을 받는 것 마냥 목덜미에 땀 한줄기가 흘러 내렸다. 쥬시마츠는 습관처럼 입고 있는 티셔츠 소매로 대충 땀을 닦다가 아차 싶었다. 분명 옷에 또 땀 냄새가 밸 것이다. 최대한 땀 냄새가 안나게 하려고 수건을 챙겼는데. 쥬시마츠는 다음에는 반드시 수건으로 땀을 닦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공 바구니를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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