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기타 2019. 1. 10. 11:36[유현유진] 안대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이건 143화 이후 만약에 안경을 안 맞춘 상태로 바로 집에 들어갔을 경우를 날조한 글입니다.
144화 나오기 전에 다 쓸려고 했는데 이 놈의 게으름과 산만함이..
유현아, 내가 네 소원 이루어 주었다. 형한테 잘해라. (???)
오늘하루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김민의 헌터로 위장한 한유현을 데리고 나오자마자 교통사고 당하고, 도움을 청하러 세성에 왔더니 성현제가 이상해서 원래대로 돌아오게 만들고, 두 길드장이 사택에서 난리쳤고, 기절한 상태에서 일어나보니 시야도 제 상태가 아니였다.
잘 보이던 눈이 갑자기 모든 게 흐릿하게 보이자 한유진은 신경이 잔뜩 예민해졌다. 들키지 않았더라면 가만히 있었겠지만 친애하는 세성길드장이 귀찮게 알아챈 뒤부턴 더 까칠하게 굴었다.
한유현이야 형이 아프다니까 얌전히 있었고, 성현제도 자기가 어느 정도 잘못한 것은 조금이라도 인정을 했는지 더 이상 장난치지 않았다.
세성에게 꼬리잡기를 부탁하고 밖으로 나오니 차창 밖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붉고 노란 덩어리로 보였다. 아무리 시야가 흐려졌어도 아주 안보이는 것은 아니기에 형태 정도는 구별이 가능했다. 그러나 평소와 다른 일그러진 시야 탓에 먼 곳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한유진이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감자, 옆에서 운전하고 있는 한유현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형, 눈 많이 아파?”
“아니,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래. 이러다 있으면 곧 나아지겠지.”
동생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형의 눈이 언제 나아질 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도 한유진은 급격한 마나 소모에 따른 일시적인 부작용이라고 생각했다. 마나 포션을 몇 병 더 마시고 푹 쉬면 내일이라도 금방 나아질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도착할 때까지 자고 있어. 지금 세성 측과 함께 움직이는 중이니까. 걱정 마.”
한유진과 한유현이 세성에 오기 전에 습격당한 일을 보고 받은 성현제는 알아서 경호를 붙였다. 공식적으로는 해연 길드장은 던전을 공략 중이기에 적에게 세성이 협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한유진은 어느 순간부터 힘겨워진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면서 길게 한 숨을 쉬었다. 어서 귀찮은 떨거지를 떼어 내고 싶었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 사람에게 왜 자꾸 움직이게 만드냐는 거다.
부드럽게 달리는 차의 미세한 흔들림에 취해 잠깐 잠든 것 같은데, 일어나보니 벌써 침대 위였다.
일어나 어두운 방 안을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흐린 시야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촉감이 이질적이었다. 눈 앞이 안 보이니 순간 아무 소리도, 냄새도 느껴질 수 없었다. 갑자기 이 세상에서 혼자만 버려진 느낌이었다.
한유진은 손을 더듬거리면서 겨우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서 불을 켜고 싶은데 발밑 조차 안 보이니 스위치도 쉽게 찾기 어려웠다.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잡힐 만한 것을 찾았다. 이러고 있으니 동생이 보고 싶어졌다.
“한유현, 어딨냐.”
설마 눈 앞이 잘 안 보이는 형을 내버려두고 다른 곳에 간 것은 아니겠지. 한유진은 동생을 굳게 믿었으나 기대와 다르게 대답이 없었다. 숨이 턱하니 막히고 식은 땀이 났다. 등급이 낮아진 공포저항으로도 막을 수 없는 무서움이 언습했다.
“유현아!”
더 큰소리로 부르자 방문이 덜컥 열렸다. 밝은 빛 사이로 큰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형!”
다급하게 달려 온 한유현은 뻗어있는 형의 두 손부터 잡았다. 그리고 좀 더 다가와 팔과 어깨를 잡고 천천히 토닥였다. 차츰 빛에 익숙해진 한유진도 비로소 동생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눈도 안 보이는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면 어떡해. 그냥 앉아서 부르지 그랬어.”
“야, 이거 일시적인 거야. 어두워서 잠시 안보였어.”
한유진은 쑥스러운 마음에 괜히 투덜거렸다. 그런 형을 뒤에서 안다시피 어깨를 감싼 한유현은 그를 데리고 조심스럽게 거실로 갔다. 비록 눈이 잘 안보여도 여기가 자신의 집이 아닌 건 물체의 형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왜 니네 집으로 왔어? 피스랑 삐약이는? 김민의 헌터는 어쩌고?”
“피스랑 삐약이는 사육시설, 김민의는 잠에 깨서 대기중.”
막힘없이 대답한 한유현은 자신의 품에 기대고 있는 형에게 의기양양한 눈빛을 보냈다. 흐릿하게 보이는 동생의 얼굴에다가 뭘 그렇게 잘했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지금의 한유현은 형의 말을 잘 안 들을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지나치게 넓은 한유현의 집은 성현제의 집과 마찬가지로 형태만 겨우 알아 볼 수 있었다. 다시 머리가 어지러워진 한유진은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한유현은 망설이지 않고 형에게 안내를 씌웠다. 눈에 닿은 천에 한유진이 놀랐다.
“차라리 가리는 게 나아. 실제로 눈 치료할 때도 두 눈 다 가려.”
“야, 그래도 보이는 게 더 안전하지. 나 장애물정도는 피할 수 있어.”
동생은 벗으려는 한유진의 손을 잡고 내렸다. 안대때문에 한 치 앞도 안보이지만 왠지 부루퉁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있는 데 뭐가 걱정이야. 나 못 믿어?”
“아니, 내가 왜 널 못믿겠냐. 단지 답답해서...”
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유현은 그를 번쩍 안았다. 한유진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바로 동생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아무리 안기는 것에 익숙한 연약한 F급이라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몸이 들리니 낭떠러지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형의 반응에 동생의 발걸음이 가벼운 듯했다.
“야, 한유현 웃지마. 넌 형이 이런데 웃음이 나와?”
“아니야, 안 웃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감출 수 없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이때다 싶어 형을 놀리는 동생이 얄미운 한유진은 주먹으로 동생의 등을 쳤다. 오히려 때린 주먹이 더 아팠다. S급의 단단한 몸에 자국하나 안 남기지 못한 것이 억울했다.
한유현은 한유진을 거실 소파에 조심스럽게 내렸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가죽 소파의 감촉을 느끼는 사이 동생이 형의 허리에 쿠션을 받쳐줬다. 푹신한 쿠션 덕분에 허리가 편안했다. 이윽고 한유현이 옆에 앉았고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앞에서 들렸다. 뒤이어 짭조름하고 달큰한 음식 냄새가 느껴졌다. 간장으로 무언가를 만든 것 같은데 냄새로는 그게 정확히 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밥도 동생이 먹여줄 모양이다.
“밥은 안대 벗고 먹어도 될 거 같은데. 이정도는 참을 수 있어.”
“번거롭잖아. 자 아- 해.”
한유현이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지 몰라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에 수저와 밥이 닿았다. 조금 흐릿하게 보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다 싶어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입 다물고 있을 순 없어서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밥을 조금 담은 수저가 조심스럽게 들어왔고, 한유진은 흘리지 않게 받아먹었다. 다시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고 이번에는 젓가락이 오물거리는 입술에 닿았다. 받아 먹어보니 찜닭이었다.
몇번 받아먹은 한유진은 오물거리면서 동생에게 먹으라고 말했다.
“우선 형부터 먹이고 먹을게.”
“같이 먹자. 안대 잠시 벗는 걸로...”
다시 한유진의 손이 안대로 가자, 한유현이 형의 손을 재빠르게 잡아당겼다. 잡힌 손이 너무 아파 저절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곧바로 동생의 힘이 풀렸으나 그래도 손을 놓지 않았다. 옆에서 동생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알았어. 먹으면서 할게. 그럼 됐지?”
옆에서 동생이 드디어 밥 먹는 소리가 들렸다. 어째서 자기가 봐준다는 식으로 구는 지 알 수 없었다. 간간히 보여주었던 동생의 과보호가 이번 일로 다시 드러나게 된 걸까. 가벼운 부작용 가지고 이러고 있는 꼴이 우스워 당장이라도 안대를 벗고 싶었다. 그러나 그랬다간 한유현이 어떻게 나올 지 한유진조차 짐작할 수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겨우 식사가 끝났다. 안대를 쓰고 있는 형을 대신해 동생이 뒷처리도 맡아서 했다. 거실과 부엌을 오가는 동생의 걸음소리를 들으면서 앞으로 할 일을 생각했다. 우선 시력이 어느정도 회복되었다 싶으면 바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만약에 동생이 테스트 해본다고 하면 설득하면 된다. 가끔 제멋대로 굴어도 대화로 충분히 풀 수 있는 상대이니까.
다시 한유진 옆에 앉은 한유현은 티비대신 라디오를 틀었다. 좌측에 스피커가 있는지 그쪽에서 잔잔한 팝송이 들렸다. 노래를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는 비온 뒤 흐린 날씨와 잘 어울렸다. 노래에 맞춰서 흥얼거리니 옆에 있던 동생이 살며시 어깨에 기댔다. 에어컨때문에 조금 쌀쌀했는데 마침 잘됐다.
한유현은 한유진의 팔뚝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건들었다. 그 감촉이 꽤 간지러웠다. 동생의 손은 팔뚝에서 어깨까지 천천히 올라왔다. 긴장한 목덜미에 긴 손가락이 닿자 잔뜩 움츠렸다. 한유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유진의 얼굴을 잡아 자신 쪽으로 돌렸다. 안대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어정쩡한 각도로 고개를 들었다.
“형, 얼굴에 뭐가 묻었다.”
아무렇지 않는 목소리에도 소름이 돋았다. 뭐라 반응하기 전에 이미 한유현의 엄지손가락은 한유진의 입가를 매만졌다. 지방층이 얇은 피부로 손가락이 느껴진다. 곧바로 도톰한 입술을 누르는 압력이 이어졌다. 손톱 끝이 입술 사이로 들어가려는 참에, 손이 떨어졌다. 그동안 정신이 없었던 한유진은 멈췄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도 어느새 다른 노래로 바뀌었다.
한유현은 한유진의 어깨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커다란 손이 어깨를 두드리다가 등을 쓸어만졌다. 그리고 허리를 잡고 살짝 당겼다. 의도를 어렴풋이 느꼈으나 반응하지 않았다. 한유현이 가끔 이런 행동을 보여줄때마다 한유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었다.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
“그래.”
한동안 대화없이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잘 시간이 되었다며 한유현이 한유진을 들고 침대로 눕혔다. 침대에 누운 것을 본 뒤에야 이불을 덮고 안대를 벗겨주었다. 흐릿한 시야 가운데에 한유현이 있었다.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왠지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커다란 손이 한유진의 가슴을 살짝 토닥였다.
“잘 자.”
“너도 잘 자.”
한유현이 나가고 방문이 닫혔다. 한유진은 옆으로 눕고 이제야 온 몸에 힘을 풀었다.
겨우 하루가 지났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현유진] 조각 (0) | 2018.12.17 |
---|---|
[키세레이키세] 세계관까지 합친 엄청난 크로스오버 (0) | 2014.04.07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