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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농/장편 2015. 9. 19. 19:30[흑적] 나비처럼 날아 6
6편입니다.
미리 예약글을 써두고 있는 중인데 참 편한 걸 이제야 써보는지 모르겠네요.
이번에는 중반부의 마지막이자 우울함의 시작입니다.
우울하지만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연습 때 아카시가 나오지 않았다.
농구부에 가입한 후부터 한번도 빠지지 않았던 성실한 사람이라서 다른 부원들은 마찬가지고 감독도 연락을 받지 않았는지 걱정했다. 연습이 끝날 때가 되도 오지를 않으니 그의 사정을 잘 아는 쿠로코는 불안해졌다. 그가 알기로 별 일이 없었다.
연습이 끝나자마자 아카시의 반부터 달려갔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아카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쉬는 시간이 되면 아카시의 반에 가서 그가 왔는지 확인했다. 1교시에도, 2교시에도 보지 않았던 그는 결국 3교시가 끝난 뒤에 볼 수 있었다. 책상에 엎드려 있는 그의 뒷모습에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서 물어보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기에 참고 꾹 참았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방과후 연습에는 다행히 아카시가 나왔다. 오자마자 완고한 벽을 세운 그는 입을 꽉 다문 채로 부원들과 인사도 하지 않았다. 바로 감독에게 가서 오늘 아침에 안 나온 것을 사과했고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감독이 다독여주었으나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할 일을 마치고 다시 입을 다문 아카시는 그를 멀리서 지켜보는 쿠로코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연습을 시작했다. 쿠로코는 그의 안색이 너무 창백한 것이 너무 걱정되었다. 그러나 그가 세운 벽 때문에 도저히 다가갈 수 없어서 안절부절 되었다.
그러다 한참 연습을 하고 있던 중, 아카시가 갑자기 쓰러졌다. 기절했는지 의식이 없는 그는 니지무라 부장에게 업혀서 양호실에 갔다. 아침연습에도 안 나오고 연습 중에 쓰러진 그 때문에 체육관 분위기는 한 순간에 가라 앉았다. 연습도 도중에 그만두고 서로 웅성거리는 부원들을 부부장인 미도리마가 진정시켰으나 당혹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반면에 쿠로코는 쓰러진 아카시를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그가 이 정도라면 분명 학대를 또 받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래도 잘 버텼던 그였기에 오늘 일은 머리가 새하얘질 정도로 놀랐다.
충격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쿠로코는 어서 그에게 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옆에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키세에게 농구공을 던지고 입구로 달려갔다. 그러자 미도리마가 쿠로코를 발견하고 제지했다.
“어서 연습을 재개하라는 것이야.”
“미도리마 군, 저도 가보겠습니다.”
“부장이 갔으니 너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치만……!”
“돌아가. 쿠로코.”
미도리마가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주위에 있는 부원들이 일제히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자신에 모인 시선이 부담스러운 쿠로코는 우선 포기했다. 당장 갈 수 없다면 나중에 몰래 가면 되었다. 지금은 그의 눈에 띄지 않기로 했다.
잠시 후 함께 양호실에 간 니지무라가 혼자 돌아왔다. 그렇다면 아카시는 양호실에 혼자 남아 있을 것이다. 쿠로코는 쉬는 시간이 다가 올 때쯤 먼저 쉬고 있는 부원들 틈 사이에 숨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된 동시에 아무도 모르게 체육관 밖을 나갔다.
아카시가 눈을 뜰 땐 체육관이 아닌 아무도 없는 양호실이었다. 아직도 지끈거리는 머리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노을이 진 창문을 보다가 괴로운 듯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자 쿠로코가 눈 앞에서 나타났다.
“세이쥬로 군. 괜찮으세요?”
“쿠로코. 제발 갑자기 나타나지마.”
그는 쿠로코를 보자마자 타박했다. 그러나 목소리에 전혀 힘이 없어서 오히려 안쓰러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며칠 안 먹은 사람처럼 힘들어 보였다. 쿠로코가 그를 부축해주려고 손을 뻗었는데 아카시는 그의 손을 쳐냈다. 붉은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상해 보이는 그에게 쿠로코는 다급하게 물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도대체 무슨 일이었습니까?”
그러나 아카시는 대답하지 않고 두 팔로 제 몸을 감쌌다. 입술을 꽉 깨물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으로 이런 아카시를 본 쿠로코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분명 이에 관한 책을 보았는데 머리가 새하얘서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갈팡질팡하다가 하는 수 없이 아카시의 등을 쓸어 만졌다. 쿠로코의 손길에 아카시는 처음에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의 온기에 어느 정도 진정 되었는지 호흡부터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쿠로코는 아무 말없이 계속 등을 쓸어 만져 주었고 아카시는 크게 심호흡하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어제, 그 애가 나오지 않았어.”
속삭이는 말에 쿠로코는 숨을 멈추었다. 어제 지켜주는 사람없이 홀로 당했을 그 아픔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괴로워하는 아카시를 위해 아무 것도 못해주는 자신의 무력함에 너무 화가 났다.
아카시는 괴로운 숨소리를 내면서 계속 말했다.
“이제 그만하고 싶어. 이렇게 벌 받기 싫어. 난 아무 잘못 한 것도 없다고.”
쿠로코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그를 달래주었다.
“그렇죠. 세이쥬로 군은 죄가 없어요.”
“근데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돼.”
그 순간 아카시는 입을 꽉 다물고 쿠로코를 노려보았다. 새빨간 눈동자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것 같아서 마주친 순간 뒤로 물러설 뻔 했다. 그의 망설임을 단번에 느낀 그는 더 날을 세웠다.
“이전까지 아무렇지 않았어. 아무렇지 않게 연기 할 수 있었다고. 근데 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계속 이 걸 당해야 돼? 왜 나는 평범하게 사랑하지 못해! 그게 너무 토할 정도로 역겹고 더러워서 이 몸을 쥐어 뜯어버리고 싶어……!”
격정을 토하는 아카시는 쿠로코의 옷을 부여잡았다. 피가 통하지 않는 손은 슬픔으로 떨리고 있었다.
“다 너 때문이야. 너만 없었더라면 이런 감정 전혀 몰랐어.”
그 말에 쿠로코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더듬었다. 그를 위로해줘야 하는데 자신을 향한 비난에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지금의 아카시는 그에게 너무 버거웠다. 모든 에너지를 쏟았는지 아카시는 쿠로코의 옷을 잡은 손을 힘없이 떨구었다. 고개마저 떨군 모습으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하고 싶어. 죽어버릴 거야.”
“그, 그래도 살아요.”
쿠로코는 아카시의 말에 목을 쥐어짜서 대답했다. 듣고 싶지 않는 고백에 호흡이 거칠어졌지만 그래도 한 단어씩 뱉는 느낌으로 말했다.
“죽고 싶어도 살라고요. 살고 싶어서 그까지 만들었잖아요.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악착같이 사세요! 살아서 그 사람에게 네가 아무리 괴롭혀도 잘 산다고 보여줘야죠. 허무하게 포기하면 당신 부모님이 너무 슬퍼하실 거에요. 그리고 나도 있어요. 난 세이쥬로 군 없이는 절대 못 살아요.”
말이 끝나고 쿠로코는 거친 숨을 가다듬었다. 턱 밑까지 차오른 울음을 참는데 그도 모든 에너지를 다 썼다. 농구할 때보다 더 힘들어서 서있기 힘들어서 아카시가 있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바로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정수리가 보였다. 이마를 가리는 긴 앞머리가 아카시의 표정을 가렸다. 한동안 말이 없었던 아카시는 날숨을 쉬고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떡해야 돼.”
“제가 옆에서 끝까지 너만 사랑할게요. 언제나 기댈 수 있게 할게요.”
그렇게 말한 쿠로코는 끝내 지쳐버려서 아카시의 머리에 제 머리를 기댔다.
“그러니까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죽겠다는 말 하지 마세요. 그거 하나면 돼요.”
자신의 하늘색과 그의 붉은색이 엉킨 곳에서 느껴지는 온기로 맘을 달랬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 사이 자리를 비운 양호선생님이 돌아왔다. 그녀는 정신을 차린 아카시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이제 괜찮다며 귀가 조치 시켰다.
그와 함께 체육관으로 돌아가니 이미 부원들은 돌아 간 지 오래였다. 아카시를 제일 걱정한 감독에게 보고해야 걱정했는데 옆에 있는 아카시가 그럴 힘이 없어 보여서 그냥 부실로 가기로 했다.
샤워도 못하고 옷만 갈아 입고 나온 두 사람은 각자 집으로 가지 않고 편의점부터 들렸다. 집에 갈 기운도 없는 그에게 에너지 음료라도 먹여주고 보내려고 했다. 막상 음료 코너를 보니 추워진 날씨에 차가운 고 카페인 음료는 좋지 않을 거 같아서 결국 핫초코 하나 사왔다.
따뜻한 김이 나는 핫초코를 온기 없는 아카시의 손에 쥐어준 쿠로코는 그의 안색을 살폈다. 핫초코를 보고 있다가 입술만 댄 아카시는 뜨거워했다. 고양이 혀인 그가 핫초코를 다 마실 동안만 공원에 가서 앉았다 가기 위해 아카시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놀란 그가 손을 떼자 다시 손을 잡고 말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잖아요. 잡고 가요.”
“코너만 돌면 사람들 많아.”
“그래도 잡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쿠로코는 아예 깍지를 끼고 단단하게 잡았다. 그는 뒤에서 따라오는 아카시를 뒤돌아 보지 않고 앞장섰다.
***
얼마 후 겨울 방학이 시작하자 바로 합숙에 들어갔다.
봄 대회를 대비하기 위한 합숙은 도쿄 근교에서 했다. 은퇴한 3학년을 제외하고 1,2학년은 시외 버스를 타고 떠났다. 오래된 버스가 이리저리 몸을 흔들면서 점점 녹지가 많은 곳으로 갈 때 쿠로코는 멍한 얼굴로 밖을 보다가 앞에 있는 아카시를 보았다. 옆에 있는 미도리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또 다른 아카시는 남들이 감쪽 속을 만큼 연기 잘하고 있었다. 또 다른 아카시가 나온 것을 보고 쿠로코가 불안해 하자 그는 메일로 학대를 받아서 나온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부쩍 또 다른 아카시가 나오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빌린 체육관에서 하루 종일 연습에만 매달렸다. 너무 힘들어서 식사시간에 숟가락 하나 들 힘이 없었던 쿠로코는 밥과 반찬이 가득히 넣은 식판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이미 다 먹고 또 먹고 있는 아오미네랑 의외로 소식하는 키세가 어서 먹으라고 재촉했지만 그는 전혀 입맛이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다른 부원들이 식당을 떠나고 있을 쯤에도 쿠로코는 여전히 밥을 먹고 있었다. 매니저들이 만들어 준 정성을 생각해서 한 입이라도 먹을 생각이었다. 옆에서 다 먹은 아오미네가 의리를 지킨다고 옆에서 지루했다.
그가 또 다시 재촉할 때 식사시간 동안 보이지 않았던 아카시가 그들에게 왔다. 밥 먹다 말고 올려보니 여전히 눈이 붉고 노랗게 빛나는 또 다른 아카시였다.
그는 쿠로코 옆에 앉아 있는 아오미네에게 자신이 있을 테니 돌아가라고 말했다. 아오미네가 괜찮다고 했으나 또 다른 아카시는 그렇게 옆에서 재촉하면 쿠로코가 체할 거라고 반박했다. 그 말에 찔린 그는 어쩔 수 없이 식당을 나갔다. 그 자리를 또 다른 아카시가 앉았다.
제일 보고 싶지 않는 상대가 옆에 있으니 쿠로코는 아오미네가 있을 때보다 더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의 눈치 때문에 예상보다 좀 많이 먹은 쿠로코는 속이 부대낄 정도 배가 불렸다. 음식이 조금 남은 식판을 들고 일어나려고 하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아카시가 제지했다.
“음식이 남았어. 테츠야.”
“충분히 배부릅니다.”
“먹는 것도 훈련이야.”
이렇게 말한 그는 쿠로코의 팔을 잡고 일어나지 못하게 힘주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빛을 쿠로코는 저항할 수 없었다. 본래의 아카시보다 지금의 아카시는 남을 찍어 누르려고 했다. 쿠로코는 그 것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만은 한 가득 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마저 먹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체하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쿠로코는 결국 체하고 말았다. 배가 아픈 그를 위해 또 다른 아카시가 아무도 없는 식당에 앉혀놓고 소화제를 가지고 왔다. 그가 창백해진 얼굴로 물과 함께 약을 받아 먹을 동안 또 다른 아카시는 계속 그의 옆에 앉았다. 쿠로코와 단둘이 있기 위해 그를 일부러 방에 데려가지 않았다. 식탁에 엎드려서 또 다른 아카시를 올려다 보는 쿠로코는 그의 의중을 깨닫고 아침부터 꾹꾹 누르고 있던 말을 꺼냈다.
“얘기 들었습니다. 그 때 왜 나오지 않았습니까?”
“첫 마디가 그거야?”
또 다른 아카시는 쿠로코를 보지 않고 되물었다. 쿠로코가 아무 말도 안 하니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라고 당하는 걸 매번 좋아하지 않아. 힘든 건 나도 마찬가지고……. 쉬고 싶었어.”
항상 웃는 얼굴로 가면을 쓰던 또 다른 아카시가 처음으로 속마음을 드러냈다. 속마음을 말하는 게 힘들었는지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그 날 양호실에서 있던 본래의 아카시가 겹쳐 보였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을 계속 지켜보면서 감정을 소모할 대로 소모한 쿠로코는 더 힘들었다. 자신이 기댈 곳은 또 다른 아카시 밖에 없었다. 쿠로코는 일어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그에게 부탁했다.
“미안합니다. 너에게만 강요하는 거 같아서. 하지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저는 당신에게 기댈 수 밖에 없어요. 당신만이 세이쥬로 군을 도와줄 수 있어요. 이렇게 부탁 드립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애원하는 쿠로코의 목소리에선 흐느낌이 섞여있었다. 또 다른 아카시는 부탁만 하는 그의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크게 한숨을 쉬고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은 있어?”
쿠로코는 더 이상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또 다른 아카시는 자리에 일어나 먼저 식당을 나갔다. 텅빈 식당에는 점점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만 있었다.
식당에서 늦게 나온 쿠로코는 씻는 것도 늦어져서 욕탕에 가지 못하고 샤워 만하고 나왔다. 이미 어두워진 복도에선 작은 창문에서 나오는 방의 불빛만이 길을 비추어주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배정 받은 방으로 들어가니 이미 같은 방 사람들이 이불을 깔아 놓고 누워있었다. 양쪽으로 있는 잠자리 중에서 빈 자리는 왼쪽 맨 끝 아카시 옆자리였다. 아카시는 이미 옆에 있는 미도리마에게 등을 돌린 채로 누워있었다.
쿠로코가 들어오고 나서 바로 코치가 부원들에게 어서 자라고 말했다. 그의 재촉에 쿠로코는 서둘러 자리에 갔고 그 즉시 불이 꺼졌다. 순식간에 방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방 안에 있는 부원들은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지 코치가 문닫고 나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쿠로코도 같이 잠이 오지 않았으나 그들의 대화에 끼지 않았다. 쿠로코는 앞이 보이지 않지만 아카시가 있는 방향으로 누웠다.
잠시 후 눈이 어둠에 익숙할 때쯤 훈련 때문에 피곤했던 부원들은 모두 잠이 들었다. 여기저기에서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쿠로코도 눈을 감자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아카시가 쿠로코의 손을 톡톡 만졌다. 조금 놀라서 다시 눈을 뜨니 어두운 곳에서 또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눈빛을 보았다. 그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쿠로코의 손을 만졌다. 왠지 또 다른 아카시가 아니라 본래의 아카시 같았다.
쿠로코는 고개만 들어 아카시의 뒤에 있는 미도리마가 잠에 든 것을 확인하고 그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다가가는 동안 이불이 비벼지는 소리에 다른 사람들이 깰 까봐 긴장되었다. 어느 정도 다가간 그는 아카시에게 귓속말 했다.
“세이쥬로 군인가요?”
그러자 아카시도 쿠로코에게 귓속말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치약의 상쾌한 냄새와 함께 뜨거운 숨소리가 가슴을 간질거렸다. 살짝 움찔거린 쿠로코는 아카시에게 또 다시 귓속말했다.
“보고 싶었어요.”
“나도.”
아카시의 귓속말을 들은 쿠로코는 그 한마디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그를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 너무 안심되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위안 받을 수 있었다. 다시 누워서 마주보고 아카시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제법 굳은 살이 늘어난 손을 만지고 있는데 아카시가 먼저 다가와 귓속말했다.
“잠이 안 와.”
그 말을 들은 쿠로코는 그에게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양 팔을 그에게 벌렸다. 팔 배게 해주려고 바닥에 닿은 오른팔을 뻗자 아카시는 고개를 들고 조금씩 다가왔다. 얼굴이 닿을 정도 가까워지자 쿠로코는 그를 꽉 끌어 안았다. 심장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고른 숨결과 온기가 너무 좋아서 나른해진 고개를 아카시의 머리에 기댔다. 단단한 등을 토닥여 주며 아카시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다.
“이제 좀 괜찮아요?”
그러자 아카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쿠로코의 가슴팍에서 속삭였다.
“으응, 편해. 고마워 쿠로코.”
그 말을 듣고 쿠로코는 그를 한번 더 끌어 앉았다. 이대로 그가 다치지 않게 가슴 속에 품어주고 싶었다. 계속 그러고 있자 이내 아카시도 새근새근 잠들었다. 부드러운 그의 머리카락으로 손장난을 하던 쿠로코도 천천히 잠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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