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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농/장편 2015. 9. 16. 20:39[흑적] 나비처럼 날아 3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어제는 제가 깜박해서 올리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다음편들을 시간예약 걸어둘 걸 그랬네요.
왜 이제야 생각났는지
아무튼 3편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재밌게 봐주세요.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니 집중하라고 할 때 비로소 쿠로코는 정신을 차렸다. 순간 그는 자신이 여기에 왜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떻게 학교에 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학교에 왔다는 건 아침에 농구부 연습도 했다는 건데 그것마저 기억이 안나 당황스러웠다. 쿠로코는 우선 침착하게 책상 밑 서랍에서 교과서부터 꺼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부터 머리가 너무 아팠다.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어 고개를 숙이면 두통은 더 심해졌다. 도저히 참기 힘들어 쉬는 시간에 양호실에서 약이라도 받기로 했다.
1층에 있는 양호실로 가기 위해 천천히 내려갔다. 그의 옆으로 그를 발견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스치며 서둘러 올라갔다.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계속 아래만 보고 갔다. 그런 그의 앞에 누군가가 섰다.
“인사도 안 하다니 서운한 걸.”
예비종을 울릴 때라 벌써 사람이 없는 계단에서 아카시의 목소리가 쿠로코를 불렸다. 놀라서 고개를 드니 창가에서 들어오는 햇빛에 붉은색 머리카락이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목소리는 분명 아카시가 맞는데 말하는 말투가 달라 순간 괴리감이 느껴졌다.
아카시는 쿠로코와 눈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고양이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알고 있는 아카시의 분위기가 전혀 아니라서 두 눈으로 보고 있어도 정말 그가 맞나 싶었다.
기계적으로 웃고 있은 그는 쿠로코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렇게 놀란 눈이야?”
아카시가 그렇게 물어보자 쿠로코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대답했다.
“정말 아카시 군, 맞으세요?”
그러자 아카시는 보는 사람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눈을 크게 떴다. 아주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것 마냥 흥미로운 눈빛을 하는 그의 앞에서 쿠로코는 자신이 먹이감이 된 것 같았다.
“몇 마디 나누는 걸로 알아챌 줄은 몰랐어. 이거 나도 연기 연습 좀 해야겠네.”
그렇게 말한 아카시는 당황하는 쿠로코에게 악수하듯이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 테츠야. 나도 ‘아카시 세이쥬로’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같이 가지 않겠어?”
이미 수업시간이 되어버렸지만 쿠로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는 거절하기 힘든 어떤 힘이 있었다.
그를 따라 간 부실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아카시는. 그러니까 또 다른 아카시는 원래 지금 시간이라면 감독이 가지고 있을 부실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어째서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서 물어보지 않았다.
또 다른 아카시는 쿠로코에게 먼저 앉으라고 권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 맞은편에 앉았다. 붉고 노란 눈동자를 마주보니 두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는 쿠로코를 보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 해줄게. 20년 전 아카시 가에는 두 형제가 있었어. 형 쪽은 명문가의 장남답게 능력도 뛰어났고 모든지 합리성을 따지는 냉정한 사람이었고 동생 쪽은 형보다 능력은 떨어지지만 사람이 참 착한 사람이었지. 성격도 사글사글해서 어느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사람이었어. 서로 성격이 완전히 달랐지만 그래도 나름 사이가 좋은 편이었을 거야.
그런데 두 형제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버렸어. 그 여자는 매우 현명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니까 어느 남자라도 사랑할 수 밖에 없었겠지. 그래서 두 형제의 사랑을 받은 그 여자는 누굴 택했을까?
바로 다정한 동생을 택했어. 그녀는 독립적인 여성이라서 자신을 아카시 가의 며느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바라 볼 사람을 고른 거지. 그렇게 선남 선녀가 만났고 주위 사람들은 축복해주었어.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형은 자신을 택하지 않는 그 여자를 매우 증오했어. 그런데 자신을 선택하지 않는 그녀를 계속 사랑했어. 여자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연애도 못했던 그에게 그 여자는 첫사랑이었거든. 물론 집안을 생각해서 마음을 접기로 노력했겠지. 그러나 그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못한 게 문제였어.
애증만 남은 형은 동생도 그 여자를 못 가지게 하려고 그녀를 강간해버렸어. 그렇게 하면 그녀가 자신이 더럽혔다고 생각하고 가해자인 자신이 있는 아카시 가로 오지 않을 거라고 자기 멋대로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다르게 그녀는 당차고 강단 있는 여자였지. 그녀는 자신이 강간 당한 사실을 동생에 털어놓았고 동생은 그 즉시 형에게 달려가 불같이 화냈지. 경찰에도 신고하려고 했지만 다른 가족들이 막아서 거긴 까지 못했어. 그러나 동생은 그 여자와 함께 집을 나서면서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거라고 못 박아놨어. 그렇게 형은 그 이후도 동생도 그 여자도 볼 수 없었어.
그렇게 세월이 지나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 되었을 때쯤 집안과 연을 끊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서 잘살고 있는 동생 부부에게 그만 불행이 찾아왔어. 두 사람 모두 교통 사고 때문에 열한 살 밖에 안 된 어린 아들을 두고 세상을 뜨게 된 거야.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된 어린 아들은 집안과 연을 끊은 부모님 때문에 맡아 줄 친척이 없어서 고아원에 가버렸지. 하루하루 눈물로 지새우던 어느 날, 마침내 맡아줄 사람이 찾아왔어. 바로 하나 밖에 없는 삼촌인 그 사람이었어. 형은 그 동안 결혼을 하지 않아서 슬하에 자식도 없었어. 그게 걱정이었던 아카시 가 사람들은 마침 조카가 고아 되었으니 그 아이를 그의 양자로 다시 들인 거야.
고아였다가 명문가 도련님이 된 아이는 모든 게 어리둥절했지.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에게 잘해주는 집안 사람들 덕분에 부모를 잃은 아픔을 극복할 수 있었어.
이야기가 여기까지였다면 물론 해피엔딩이겠지? 아이에게 온 불행은 그 다음부터였어. 아이의 삼촌은 그 사람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조카가 그녀를 매우 닮은 것을 보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어. 묵혀두었던 애증을 조카가 자극하고 만 거야.
그래, 어린 아이가 뭘 알겠어. 그저 아름다운 어머니와 닮았을 뿐인데. 그러나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지. 자신을 버린 그 여자가 너무 미웠으니까, 그 여자를 차지한 동생에게 처음으로 질투했으니까 참을 수 없었겠지. 그래서 그 사람은 조카를 학대했어.
중학생이 되어 이제 막 2차 성징이 시작된 어린 조카를 사람을 시켜 강간했어, 아이는 몸이 너무 아팠고 남자로서 이런 일을 당한 것에 엄청난 치욕스러움을 느꼈어.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알몸으로 울고 있는 조카에게 그 사람이 찾아왔지. 조카는 삼촌에게 다가가 차마 말로 못할 일을 당했다고, 도와달라고 애원했어. 그런데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딱 한마디만 했어. 더러워.”
마지막의 한 마디에 쿠로코는 자신이 들은 것처럼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깟 해묵은 감정 때문에 하나 밖에 없는 가족에 그런 식으로 상처를 줄 거라고는 감히 상상 할 수 없었다. 사연을 듣고 있는 쿠로코에게도 너무 버거웠다.
충격을 받아서 정신이 없고 머리가 너무 아픈 쿠로코 앞에서 또 다른 아카시는 이야기를 더 이어갔다.
“의지했던 삼촌에게 배신 당한 아이는 이대로 있을 수 없어서 증거를 가져가 경찰로 갔어. 하지만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그들은 수사하지 않았어. 계속 해달라고 소리치고 있던 중에 그 사람이 아이를 데리러 경찰서에 왔어. 그러자 경찰서의 높은 사람이 찾아와 그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는 거야. 그제야 아이는 아무도 자신을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 후 다시 모르는 사람에게 강간을 당하고, 또 당한 아이는 치욕스러움에 목숨을 끊기로 마음먹었지. 소용없겠지만 유서를 남기고 커터칼로 손목을 그었어. 하지만 상처가 깊어서 동맥까지 자를 수 없었어. 그래서 칼을 세우고 쑤시려고……”
“이제 그만하세요!”
쿠로코는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쳤다. 이 정신으로는 더 이상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기에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부실 한 구석에서 남자들에게 당하는 아카시와 그 옆에서 자해하는 아카시가 아른거렸다.
또 다른 아카시는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다며 쿠로코의 팔을 잡아 당겼다.
“제대로 들어. 그 순간, 내가 나왔어. 그 녀석의 몸을 차지해서 더 이상 자해하지 않도록 했지. 왜냐면 난 살고 싶었으니까.”
그에게 꽉 잡힌 팔은 아팠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상대적으로 두통이 줄어들어 진정할 수 있었다. 차분해진 머리로 그의 말을 듣던 중 의문점이 생겼다. 아카시가 작년 가을에 들어와서 그를 안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를 매일 관찰했던 쿠로코는 한 번도 그의 다른 이면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동안 한 번도 당신을 본 적이 없었는데.”
“당연하지. 나는 걔가 자살을 시도 했을 때랑 당했을 때만 나오니까. 평소에는 내가 나오는 게 싫어서 못 나오게 해.”
“그, 때도 당신이었습니까?”
처음으로 그의 집에 간 일에 대해 물어보자 또 다른 아카시는 흔쾌히 대답했다.
“응 맞아. 근데 그때는 녀석들이 약 같은 걸 가져와서 나도 정신을 잃었어.”
자기한테 일어난 엄청난 일을 남 일 인양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가 거북했다. 그래도 참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질문을 하는 동시에 쿠로코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가장 최근에 있던 일로, 쿠로코가 아카시가 당하는 것을 목격한 사건이었다. 그 전까지 그가 그런 일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를 정도 꼭꼭 숨겨두었는데 백부에 의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말았으니 그도 제정신이 아니었을 게 뻔했다.
애초에 그의 백부가 쿠로코를 집으로 초대한 것은 아카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치졸한 방식에 치가 떨렸다. 또 다른 아카시에게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넘치는 분노를 어디에도 풀 수 없다는 것이 그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또 다른 아카시는 온 몸으로 화내고 있는 쿠로코를 게슴츠레 바라보았다. 원래 아카시라면 되려 쿠로코를 위로해줄 테지만 또 다른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마치 그의 반응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는 예쁘게 웃는 입으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테츠야.”
“……어떻게 이라니요?”
무슨 말이냐며 다시 묻자 또 다른 아카시는 고개를 그에게 내밀었다. 당황해서 몸을 뒤로 빼며 피하니 그는 재미있어했다.
“그러니까, ‘아카시 세이쥬로’를 어떻게 할거냐는 거지. 너도 이 일로 충격 받았잖아. 그럼 마주 볼 때마다 트라우마처럼 다시 떠오를 텐데 견딜 수 있겠어? 게다가 이중인격이잖아? 눈 앞에서 정신이 왔다 갔다 할 텐데 감당 할 수 있겠냐는 거지.”
확실히 앞으로 아카시를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했다. 분명 평소대로 대하는 건 무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쿠로코라도 힘들었다. 지금도 버겁다고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으니. 그렇지만 사람을 갖고 노는 듯이 실실 웃는 또 다른 아카시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 부정했다.
“함부로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네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하지만 네 마음이 흔들리는 건 알고 있어.”
또 다른 아카시는 쿠로코를 마주보는 상태로 빙그레 웃었다. 마음을 꿰뚫어보는 고양이 눈으로 친 눈웃음은 반할 정도로 예뻤지만 저 외모 안에 있는 사람이 하는 짓이 전혀 예쁘지 않아서 맘이 가지 않았다.
엄청난 이야기가 끝나니 부실 안에는 어색함이 감돌았다. 하필이면 마주 앉아서 더 어색하던 중 부실에 있는 시계를 보니 곧 쉬는 시간이 될 때였다. 이때 싶은 마음에 쿠로코는 아카시에게 먼저 가겠다고 말했다.
“먼저 가겠습니다. 어떻게 할 지는 제가 알아서 생각할 테니 그쪽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자 멍하니 앞을 보고 있던 아카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쿠로코를 보았다. 큰 눈을 여러 번 깜박이던 그는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그 애를 만났구나. 쿠로코.”
“아, 아카시 군?”
그에게 말을 건 아카시는 아까 와 다른 분위기에, 자신과 쿠로코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다. 진짜 아카시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 대해야 하나 고민했던 것이 방금 전인데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될 지 몰랐다.
“저기, 그러니까……. 원래대로 돌아 온 건가요?”
“그 애가 갑자기 나에게 넘겨줬어. 근데 지금 수업 시간인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야.”
아카시는 전혀 기억이 안 나는지 이상한 얼굴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자기의 의지와 다르게 수업 시간을 빼먹은 게 불쾌한 모양이었다. 눈 앞에서 변한 아카시를 보고 당황한 쿠로코는 천천히 말했다.
“네가, 아니 또 다른 아카시 군이 절 여기로 데려왔습니다. 기억 안 나세요?”
“몸을 그 애에게 넘겨줄 때는 기억 못 해. 만약 무례를 범했다면 그 애를 대신해서 사과할게.”
다시 정중한 본래의 아카시를 보니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저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대화가 끝나고 다시 어색해지자 쿠로코는 다시 쉬는 시간 벨소리를 기다렸다. 쉬는 시간이 되기까지 남은 1분이 어찌 이리도 길었던 걸까. 아무 말이 없는 진짜 아카시를 마주한 동안 그에게 어떤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쿠로코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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