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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농/장편 2014. 7. 15. 11:55[흑적] 땅거미 내리는 저녁 4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드디어 지루하게 꽁냥거렸던 쿠로코와 아카시에게도 스릴쇼크서스펜스(?)할만한 사건이 일어나는 화입니다. 네, 확실히 질질 끌었죠..ㅋㅋㅋㅋ 아무튼 다음 5화에는 추격씬이 있을 예정인데 메이지 시대의 도쿄 지형이 제가 생각한거랑 달라서 다시 생각하는 게 죽을 맛입니다.
아하하 두번 다시 메이지시대로 쓰지 않을거야 아하하
그럼 4화도 재밌게 봐주세요.
능력제어를 받는 날에 오전 근무만 하고 쿠로코의 집에 오니 무슨 일인지 집주인이 없었다. 퇴근하기 한 시간 전에 쿠로코에게 전화를 했을 때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전부터 그가 집을 비웠다는 건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아카시는 적잖이 당황했다.
며칠 전에 민화집 제본을 부탁하러 방문 했을 때 오늘 능력제어를 받을 거라고 미리 말해두었으니 쿠로코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평소보다 일찍 왔으니 마침 그가 잠시 집을 비울 때 온 아카시 탓도 있다.
집에는 치요도 없는 것 같았다. 집열쇠가 없는 아카시는 제법 뜨거워진 햇빛을 피할 겸, 천막이 세워진 근처 당고집의 평상에 앉아 쿠로코를 기다리기로 했다.
꿀이 발라진 당고와 시원한 말차를 같이 시켰지만 서서히 속이 울렁거려서 말차만 조금씩 마시고 그늘 아래에서 대문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시장 골목에서 달려온 쿠로코가 대문에 도착한 것이 보였다. 계속 뛰어 왔는지 그는 대문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이른데 그가 왜 뛰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아카시는 반가운 쿠로코에게 가려고 반 쯤 일어셨으나 그 때 쿠로코가 아카시가 있는 당고집을 향해 돌아보았다. 이쪽으로 뛰어오는 그를 보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쿠로코는 오자마자 앉아있는 그의 왼 손을 잡았다. 쿠로코의 손은 땀에 젖어있었다. 그럼에도 그 손에서 온기가 전해지면서 시원한 평온함이 밀려오는 게 기분 좋아서 살며시 눈을 감았다 떴다. 마주 본 쿠로코에게서 미세한 향 태우는 냄새가 났다.
“아카시 군, 평소보다 일찍 오셨네요. 많이 기다렸죠? 미안합니다.”
“아니, 일찍 온 내탓이지. 근데 왜 이렇게 뛰어 온 거야,”.
“아까부터 왠지 네가 우리집에 와 있을 거 같아서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대한 볼일을 다 보고 뛰어 왔는데 역시나였네요.”
그렇게 말하고 옆자리에 앉은 쿠로코는 헝클어진 유카타 옷 자락을 한 손으로 다듬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아카시는 제법 감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에겐 먼 곳에서 나는 소리나 냄새가 나지 않을 텐데. 하지만 어차피 그저 우연이었을 것이다.
아카시가 쿠로코에게 먹지 않았던 당고를 건네 주자 그는 접시를 한 손으로 받아서 옆에 두었다. 쓰기 불편한 왼손으로 당고 한 알아 베어 문 쿠로코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자 그는 조금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종이를 갖다 주는 분이 오늘은 오기 힘들다고 저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새로 만드는 종이도 살펴보고 난 뒤에는 마침 향도 떨어져서 신사 근처에도 갔다왔고요.”
어쩐지 아까 만나자마자 자신의 손을 잡은 그의 손 끝에서 자단향 냄새가 난다 싶었다. 아카시는 괜히 은근슬쩍 엄지로 쿠로코의 손끝을 만져보면서 말했다.
“어째든 쿠로코 씨가 이렇게 오래 외출하는 건 처음인 것 같아.”
“저도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너무 집에 만 있었나봐요.”
말하면서도 당고 하나를 다먹은 쿠로코가 나머지 하나는 손을 마주 잡고 있는 아카시에게 건네주었다. 그에게 받은 당고를 베어 무니 바깥에 계속 있어서 곁이 조금 말랐으나 꿀이 발라진 곳은 촉촉해서 맛있었다. 천천히 당고를 다 먹자 쿠로코는 이웃 할머니 댁에 맡겨 둔 치요를 같이 데리려 가자고 아카시를 이끌었다.
“그분에게 자주 맡겨?”
“예전부터 아는 분이기도 하고, 그 집 손녀가 치요랑 친구라서 같이 예뻐해주세요. 혼자 사는 저에겐 정말 고마우신 분이죠.”
쿠로코가 칭찬한 이웃 할머니 댁은 그들이 있었던 당고 집에서 왼쪽으로 두번째 집이라서 정말 쿠로코의 집에서도 가까웠다. 쿠로코의 집보다 더 작은 집 마당에는 친구와 같이 놀고 있는 치요가 있었다.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그 집을 둘러보면서 아카시도 치요에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날 아카시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집 안에서 쿠로코의 손을 잡고 능력제어를 하고 있었다. 능력제어를 할 동안에는 한 손을 못쓰니 쿠로코도 그 때만큼은 작업장에 가지 않고 같이 집안에 있었다. 집안에서 두 사람이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침을 먹고나면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면서 간단하게 수다를 떨고, 치요와 놀아주는 것밖에 없었다. 능력제어라고 해도 거의 빈둥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번에도 평소처럼 저녁까지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오기 전 쿠로코의 집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를 받기 위해 쿠로코가 자리에 일어나는 바람에 신문을 보고 있던 아카시도 같이 일어났다.
전화를 받은 쿠로코는 바로 아카시에게 수화기를 건네 주었다. 올려다보는 푸른 눈이 불안해보였다.
“경무조입니다.”
경무조 쪽에서 쿠로코의 집으로 전화했다는 건 능력제어를 하고 있는 아카시를 호출할 정도로 급한 일이 생겼다는 걸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능력 제어할때 연락하는 걸 제일 싫어하는 아카시가 엄청 화낼 게 뻔했으니까.
그에게 전화를 건네 받자 수화기 너머에서 경무조 건물에 있을 부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오랫동안 추적하고 있던 정치범의 소재를 찾았으니 수색에 합류하라며 경무조장이 호출했다고 말했다. 1소대 대장이자 경무조의 우두머리인 그의 호출은 같은 소대장인 아카시이라도 무시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정치범은 자신도 붙잡고 싶었던 용의자였다.
부하의 말을 다 들은 아카시는 잠시 침묵하다가 알겠다고 대답한 다음 뒷말은 듣지도 않은 채 바로 전화를 끊었다.
“쿠로코 씨, 어쩔 수 없이 그만 가봐야할 거 같아.”
아카시가 그렇게 말하자 쿠로코는 알겠다며 그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거실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던 치요를 마당이 보이는 마루으로 데려갔다. 마루에서 쿠로코가 소근거리는 말을 들은 치요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곳에 앉았다. 아이를 그 곳에 두고 온 그는 마당이 보이는 커다란 창문을 꼭꼭 닫았다. 창문은 얇은 장지로 마감을 해서 치요가 거실을 볼 수 없었다.
어두워진 거실에서 아카시와 쿠로코는 마른 침을 삼키고 거실 벽에 기대어 앉았다.
아직 능력제어는 다 되지 않았다. 제어가 다 되기 전까지는 아직 아카시의 몸에 독소가 남아 있어서 이대로 현장에 가면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었다. 결국 짧은 시간안에 능력 제어를 마쳐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손 잡는 걸로는 무리였다.
쿠로코가 옆에 있는 아카시의 손을 잡고 괜찮나고 물었다. 아카시는 쿠로코를 향해 고개를 돌려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목을 길게 빼고 서서히 다가왔다. 서로의 코가 맞닿을 쯤 아카시는 머리를 옆으로 살짝 꺾고 눈을 감았다. 서로의 호흡이 단 한번 오가는 사이 쿠로코의 얇은 입술이 입술에 닿았다.
오랜만에 맞대 본 붉은 피부는 매끈하고 부드러워서 그 틈 안으로 빨려 들어 갈 것만 같았다.
결국 카가와 현에서 발견한 예비자가 실종된 지 한 달이 지나자 전 경무조에게 비상명령이 내려졌다. 이미 찾기에는 한참 늦어져 버렸지만 단 한 명이라도 경무조에겐 소중한 인재라서 실낱의 가능성이 있다면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카가와 현은 오사카 지부와 교토 지부가 가까워 두 지부를 중심으로 실종자를 수색하기로 했으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도쿄 지부에서도 파수꾼들을 파견해기로 했다.
사라진 파수꾼을 찾은 건 보통 파수꾼들보단 특수 장기에서 나오는 독성을 느낄 수 있는 탐색자 파수꾼가 나서는 게 훨씬 빠르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탐색자는 전국 경무조를 통틀어 단 한 명 밖에 없었고 게다가 그 사람은 다른 파수꾼 예비자를 찾으러 북쪽에 있었다.
정부의 명령에 따라 도쿄 지부 3소대 전원과 2소대 소속 파수꾼 한 명이 지방으로 파견을 나가자 업무는 눈샐 수 없이 바빠졌다. 6명이나 되는 인원이 자리를 비운다고 평소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줄어드는 건 아니었으니 빈자리를 메꿔야하는 건 남은 사람들 몫이었다.
덕분에 아카시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갔던 쿠로코의 집에 못가고 있었다. 그나마 대장이란 위치가 있어 능력제어를 위해 하루를 뺄 수 있지만 그 반동으로 제어를 하는 주기가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주기를 늦춰서 15일만에 능력 제어를 받으러 쿠로코의 집에 갔던 날은 도착하자마자 쿠로코의 품에서 쓰러졌다. 마치 심한 몸살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아침부터 많이 힘들었어도 쓰려질 정도는 아니었기에, 자신을 안고 있는 쿠로코보다 본인이 더 놀랐다. 아무래도 이젠 쉴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탈진한 걸 지도 몰랐다.
쿠로코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그는 우선 아카시를 부축여서 자신의 침실에 앉혔다. 그리고 옷장에서 아카시의 유카타를 그에게 주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옷 갈아 입을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에 아카시는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카시에게 쿠로코가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다시 거실로 나갔다. 급하게 나갈 채비를 한 뒤 치요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갔다. 아마 아카시를 위해 아이를 이웃 할머니에게 맡길 생각인 것 같았다.
자단향냄새가 가득한 집안에 홀로 앉아있는 아카시는 쿠로코가 무릎에 올려 준 유카타를 보고있다가 고개를 살짝 돌려 창밖을 보았다. 낮이 길어진 만큼 어느 새 노을도 길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홍색 노을에 빛나고 있던 침실은 무척 어두웠다. 그리고 푹신한 요 위에 두터운 이불을 덥고 있었다. 쿠로코가 돌아오기 직전에 유카타로 갈아입고 쓰러진 뒤 기억이 없었는데, 쓰러진 아카시를 그가 보살펴 준 모양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운 아카시는 멍하니 천장을 보았다. 그러다 왼손에서 시원함이 느껴져 옆을 보니 쿠로코가 그의 손을 잡고 누워있었다. 그믐달인 밤이라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잔잔한 숨소리가 들렸다.
아카시는 무심코 그에게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고 그냥 미안한 듯 웃었다. 어지러운 머리가 진정이 되도록 다시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살며시 눈을 감고 있으니 쿠로코 집 안에서 낯선 사람의 체취와 흔적이 느껴졌다. 지금 이곳에 있는 건 아니고 아마 어제나 며칠 전에 방문한 사람의 흔적이라서 약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불편했다. 그동안 그의 집에 방문자가 아예 없었던 아니지만 이번 방문자는 익숙하면서도 기분이 나쁜 흔적을 남겼다. 괜히 마음이 불안해진 아카시는 쿠로코의 손을 힘주어 꽉 잡았다. 잠시 잊었던 시원한 평온함이 피부를 통해 들어왔다.
이렇게 옆에 쿠로코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안심하고 잘 수 있었다.
후덥지근한 낮과 달리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은 시원한 밤에, 고급 요정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내무성 경보국[각주:1] 간부의 비서로 사실 간부인 귀족과 같이 있던 비서가 휘말려 피해를 입었다는 게 사건의 경위이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있을 때 쯤 갑자기 화살 여러개가 동시에 장지문을 뚫고 날아왔다고 간부가 진술했다. 범인을 본 건 요정의 종업원들이었고 그들은 그 사람을 지붕 위에서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범인은 사건이 일어난 즉 후 바로 요정을 빠져나가서 현재 소재를 파악할 수 없었다.
증거를 찾을 수 없었던 경찰부대는 경무조에게 협력을 요청했고 두 시간 뒤 먼저 출동한 2소대의 신입을 뒤이어 아카시가 현장에 도착했다.
사향 냄새를 풍기는 고급 요정은 口자 형태의 2층 목조 건물로 건물들이 빙 둘러진 가운데에는 지붕 없는 정원이 있었다. 간부과 비서가 있는 방은 2층이었으니 범인을 목격한 종업원들 말대로 지붕에서 화살을 쏴서 사람을 죽이는 게 가능했을 수 도 있다.
그러나 사건 현장을 살펴 본 아카시는 사건이 일어난 방 앞에 있는 복도 나무 난간에 기대어 지붕을 올려다 보면서, 지붕에서 화살을 쏘지 않았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지붕에서 아무리 몸을 낮추어도 복도 위를 가리는 처마 때문에 이 방을 맞출 수 있는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화살이 뚫고 지나간 장지문에 있는 구멍은 길게 찢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위에서 쐈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아카시 눈 앞에서 잔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 범인들이 종업원이 2층에 없는 틈 타 장지문을 열고 화살을 쏘았을 것이다. 여러명이 동시에. 하지만 증거가 완벽하지 않아 앞에서 화살을 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보이지 않았다. 안개처럼 흐려져 있는 그들을 보면서 아카시는 혀를 찼다.
잔상이 끝나고 있을 때쯤 지붕에 갔다 온 2소대 신입이 사향 냄새를 뭍힌 채 한 손으로 머리를 짚고 대장인 아카시에게 다가왔다.
“범인을 보았던 지붕에 가보니 어떠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고 사향 냄새가 지독해서 머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아주 콧구멍이 저절로 막히…, 아니 냄새로 추적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요즘에도 닌자가 있나.”
아카시의 말에 신입은 웃어야할 지 말아야 할 지 결정하지 못해서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가 그러고 있든지 말든지 아카시는 손을 들어 바로 앞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반대편에 있는 복도였고, 거기에는 장지문을 닫은 또 다른 방이 있었다.
“종업원들이 지붕에서 범인을 봤다고 했지 그가 화살을 쐈다는 걸 보지 않았고, 장지문의 종이가 뚫린 흔적을 보면 위가 아닌 바로 정면에서 화살이 쏜 걸로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붕에 있는 사람은 미끼일 뿐이고 진범들은 따로 있다는 거지. 경찰 부대가 저 곳은 확인해 보았나.”
물어보자 반대편 방문을 말없이 보고 있던 신입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카시는 대답을 들은 즉시 바로 복도를 걸어가 순식간에 문제의 방 앞에 도착했다. 허둥지둥 쫓아 온 신입이 경찰부대를 불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지만 일일히 대답하기 귀찮은 아카시는 말없이 장지문을 옆으로 열었다.
열자마자 안에서 사향 냄새가 진하게 풍겨졌다. 요정 안에 가득히 채운 그 사향 냄새가 맞는데 문제는 원산지가 다른 사향 냄새가 뒤섞여 있어서 사향의 원산지로 추적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방 안에는 식기류조차 없어 깔끔한 상태 그대로였고, 역시 어느 누구도 없었다. 이미 사건이 일어난 지 두시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현장에 남아 있다는 건 경찰 부대처럼 멍청한 사람들이니 상대할 가치도 없다. 그들은 종업원들이 미끼를 발견하자마자 요정 안이 혼란해진 사이에 빠져 나갔을 것이다.
아카시는 신입에게 이 방을 치운 종업원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방안으로 들어가 범인들이 흘리고 갔을 흔적을 살펴보기로 했다. 등불이 꺼진 방안은 남향이라서 보름달의 환한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감각이 예민한 아카시에게 문제되지 않았다. 분명 문제되지 않아야 했다.
어째선지 그의 눈은 어떤 흔적도 볼 수 없었다. 범인들이 흘렸을 머리카락도 없었고 옷에서 떨어졌을 실밥도 없었다. 심지어 먼지나 타액이 튀긴 흔적도 남지 않았다. 손을 바닥에 짚어 다다미가 눌린 모양으로 대충이나마 체격을 알아보려고 했으나 범인들이 영리하게도 여기저기를 완벽히 균일하게 눌려놔서 이마저 확인할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흔적을 지운 현장은 처음이었다. 지붕을 확인한 신입처럼 지독한 사향 냄새때문에 체취로도 추적이 불가능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카시 눈 앞에 정체를 알 수없는 범인들의 잔상이 나타나 그를 비웃고 있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깨달았다. 이정도로 흔적을 지울 수 있는 건 파수꾼 밖에 없다.
- 현재의 경찰청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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