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쿠농/장편 2014. 7. 8. 10:13[흑적] 땅거미 내리는 저녁 3
안녕하세요. 김아오입니다.
연재 시각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3편을 올리고 있는 걸까요ㅋㅋㅋㅋ 정말 시간이 빠르네요. 연재를 시작할때 이미 예비분?으로 3편까지 쓰고 시작한 건데요... 그동안 제가 손도 느리고 흑화온 배포본도 쓰고 있어서 이제 4편을 완성했습니다. 우아아 다음주부터 실시간연재를..ㅋㅋㅋㅋㅋㅋ
3편도 잔잔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둘이서 꽁냥거리는 이야기도 3편이 마지막입니다. 사실 이런 연애인듯 연애아닌 연애같은 이야기를 보단 추격, 사건, ero..쓰는 걸 좋아해서 어서 4편 이후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그럼 재밋게 봐주세요 ><
* 이 글은 실제 역사적 사실, 단체와 전혀 다른 픽션임을 밝힙니다.
오늘은 퇴근할 시간보다 좀 늦게 퇴근했다. 지체된 시간을 아쉬워하며 아카시는 서둘러 쿠로코가 사는 지구로 가는 노면전차를 타기 위해 정거장으로 갔다.
그는 능력제어를 받는 날이 아니라도 일주일에 한 번 꼴로는 퇴근하고 안내자의 집을 방문했다. 개인저택과 쿠로코의 집이 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굳이 찾아오는 그에게 쿠로코는 능력제어하는 날이 아니면 오지말라고 했으나, 그 말은 듣지도 않고 언제나 집에 찾아올 명분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그의 집에 갈 명분이 있었다. 아카시는 부드러운 면 보자기에 싼 쿠로코의 유카타와 게다를 품에 안고 이미 사람들로 가득한 노면전차 안으로 들어갔다.
유카타를 빌린 그 때는 붉은 철쭉을 적셔 줄 봄비가 때 아닌 소나기로 내리던 날이었다. 비는 오전부터 내리고 있었지만 오후가 되도 그 기세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만일을 위해 개인 사무실에 챙겨둔 우산을 쓰고 갔지만 이미 길거리는 진흙탕이라서 조심 걸어도 정장 바지에 잔뜩 튀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그 다음날 귀가할 땐 젖은 정장은 들고 대신 그의 유카타를 빌려 입었다.
경무조 건물이 있는 지구와 쿠로코의 집이 있는 지구는 제법 거리가 있어서 도착했을 땐 집앞에 노을이 짙게 깔렸다. 평소처럼 마당으로 들어가니 마당에서 화관을 만들면서 혼자 놀고 있던 치요가 아카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다행히 치요가 바로 보이는 곳에 있어서 아카시는 단번에 발견했다.
예의 바른 아이는 서둘러 제자리에서 일어나 더러운 손을 털고 옷맵시를 정돈했다. 그런 아이에게 아카시는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종이로 포장한 카스테라를 건네주었다.
“죄송합니다. 오늘 오실 줄 몰랐어요.”
“아니, 미리 연락 못한 내가 잘못이야. 쿠로코 씨는 작업장에 있어?”
치요가 혼자 놀고 있다는 건 지금 쿠로코가 작업장에 들어가 책을 제본하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아카시의 말에 치요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다시 한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아이의 옅은 머리카락은 부드러워서 만지면 기분이 좋아졌다. 어쩌면 같은 머리색을 가진 쿠로코의 머리카락도 부드러울지도.
마당에서 치요가 받은 카스테라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사이, 아카시는 집 뒷마당에 있는 작업실로 갔다.
작은 틈으로 등불 빛이 새어나오는 문을 옆으로 밀어 들어가니 그안에 있는 쿠로코가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짙은 연두색 진베를 입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 책을 고정한 나무 판자를 끼고 두꺼운 갈색실로 책을 꿰매고 있던 그는 아카시를 보자마자 실을 입에 물고 있는 채 놀랐다.
“진베 입기엔 아직 춥지 않아?”
“아무래도 책을 제본할 땐 이게 편하니까요. 그나저나 오늘은 능력제어 받는 날이 아니잖습니까. 무슨 일인가요?”
쿠로코의 물음에 아카시는 품어 안고 있던 보자기를 건네주었다. 그가 작업장 안에 있는 다른 의자를 끌어 옆에 앉았을 때, 쿠로코는 보자기를 풀어보고 그 안에 깔끔하게 세탁한 자신의 유카타와 게다를 보았다. 별 기대도 안했지만 쿠로코의 입에선 고마운 말대신 아카시를 나무랐다.
“이건, 나중에 와서 드려도 되잖아요. 아카시 군 집이 우리집에서 가까운 것도 아닌데 굳이 오실 필요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할 걸 이미 예상하고 온 아카시는 그의 나무람을 웃으면서 흘렸다.
어떻게 말을 돌릴까하는 생각에 주위를 돌려보던 중 눈에 유독 화려한 책 여러권이 눈에 뜨였다. 표지를 각자 다른 무늬의 고급 비단종이로 마감한 그 책들 중 한 권을 조심스럽게 들어 살펴보았다. 한가지 더 특이하게도 제목인 日本民譚옆에 작은 글씨로 Japanese tales이라고 쓰여있었다. 아카시에게도 영어로 된 책은 있었지만 서양식으로 제본한 책들 뿐이라서 일본식으로 제본한 이 책이 이질적이고 신기하게 보였다.
“그건 금발의 서양인이 역관과 같이 와서 이번에 조국으로 돌아가는데 어린 손자손녀들에게 줄 선물이니 제본 해달라고 수주 받은 겁니다. 그래서 특별히 표지를 금붕어 무늬가 들어간 질긴 화지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튼튼하게 해달라고 해서 거북등형식으로 엮었고요.”
확실히 이 책은 그동안 만들었던 쿠로코의 책들 중에 무척 화려한 축에 속했다. 그는 책의 형태보다 그 안 들어있는 내용을 중시하는 편이라 대체로 수수하게 만들어 왔었다. 깔끔하게 제본한 책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아카시에게 쿠로코가 책을 펼쳐봐도 된다고 말했다.
책 내용은 제목처럼 애들이 좋아할 만한 민담들이었고 삽화도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영어로 번역한 탓에 세로 읽기가 아닌 가로 읽기로 되어있었다. 이도 저도 아닌 책이 되어버렸지만 어린 아이에게 주는 것이니 그러니하고 납득했다.
하지만 별 내용이 없을 본문 안에 혹시 이 안에 일본의 지리에 대해 언급이 있을지 모르니. 의심이 되는 단어를 위주로 빠르게 살펴보았다.
그 옆에서 쿠로코는 하던 일도 옆에 잠시 두고 아카시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가 책을 거의 읽었때쯤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다.
“별 거 없어. 그냥 여러가지 민담을 영어로 번역한 거야.”
“그렇습니까? 이 것 말고도 전에 한 번 이 언어로 된 책을 제본해달라 수주받은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책들도 그리하겠군요.”
자신이 만든 그 책을 보면서 살며시 웃는 쿠로코를 보니 아카시는 심각한 눈으로 마냥 속 좋아 보이는 그에게 충고 하나 해주었다.
“이 책의 내용이 군사나 지리에 관한 게 아니라 다행이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연관되지 않게 조심해. 이왕이면 쿠로코 씨가 외국어 서적은 수주 안 받으면 좋겠어.”
그러나 이렇게 말해도 쿠로코는 여전히 차분한 미소로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다른 나라로 가서 그 곳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건 매력적인 일입니다. 이야기란 본디 널리 퍼지는 것이 더 가치가 있으니까요.”
지난 십 년 동안 알고 지낸 쿠로코는 이런 사람이었다. 항상 무표정에 멍해보이는 얼굴이지만 알고보면 무척 고집이 강한 성격이다. 특히 좋아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쿠로코가 작업하고 있는 책의 매듭을 묶고 마지막으로 다듬고 있을 때까지 아카시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경무조 일을 하다보면 주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소음이 심한 곳에 가기 마련인데 조용한 쿠로코의 집에 오면 복잡한 마음과 머릿속이 편안히 가라앉았다. 자신의 집도 그만 혼자 살고 있어서 조용하지만 그것만으로 편안해지지 않는다.
아카시는 집보다 여기를 더 편안하게 느끼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쿠로코가 왜 자꾸 별일도 아닌데 집에 오냐고 물었을 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일을 끝난 쿠로코가 자리에 일어나면서 아카시에게 저녁 먹고 가라고 말했다. 그를 올려본 아카시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함께 작업실을 나와 문을 자물쇠로 잠그던 쿠로코가 다시 먼저 말을 꺼냈다.
“아카시 군, 이번에는 어떤 간식을 사오셨습니까.”
“응? 뭐가.”
“아까부터 너에게서 달콤한 냄새가 났습니다. 이젠 몰래 줘도 소용없으니 치요를 위해서도 간식 사오지 마세요. 안 그래도 입이 짧은데 간식 때문에 밥을 더 먹지 못하잖아요.”
“벌써 들키지 몰랐는데 대단해. 하지만 맨손으로 올 수는 없잖아.”
잔소리를 해도 실실 웃으면서 흘려 넘기는 아카시가 얄미운 지 쿠로코는 손등으로 그의 팔을 살짝 때리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너는 손님이 아닙니다. 언제나 편안하게 오라고 매번 말해주었잖습니까.”
“아까는 오지 말라고 했으면서.”
“그거랑 이거는 다르죠. 정말이지 말싸움은 절대 안 지려고 하네요.”
“그게 내 특기인걸.”
앞마당으로 걸어가는 짧은 길에서 투닥거리는 두 사람 앞에 치요가 간단한 다과를 차린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아무래도 일하고 있는 쿠로코와 아카시에게 카스테라를 대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고사리 손으로 카스테라를 자르고 다과를 준비한 마음씨가 기특해서 쿠로코는 말싸움을 멈추고 치요의 쟁반을 대신 들어주었다.
“치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밥 먹을 시간이니 이건 나중에 먹도록 할게요.”
“아빠, 그럼 아카시 님도 같이 먹는거에요?”
치요의 물음에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이가 노을빛 하늘처럼 예쁘게 웃어주었다.
능력제어를 받기 위해 쿠로코의 집에 가기 전 새로 개점한 도라야키 가게가 있다고 해서 들릴 생각으로 오늘은 두 정류장 전에 먼저 내렸다. 전차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가 뒤에서 나타나는 바람에 아카시는 깜짝 놀랐다. 돌아보니 쿠로코가 도라야키 봉지를 안고 있는 치요와 함께 장난끼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짜증났다가 쿠로코 부녀인 걸 알고 기뻐진 아카시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자 그는 작업을 끝낸 책을 의뢰자에게 전해줄 겸, 치요랑 잠깐 외출하고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다 우연히 이 근처에 있었는데 왠지 아카시가 이 곳에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단다.
“사람이 많아서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네. 쿠로코 씨나, 치요나 너무 기척이 없어.”
“하지만 집안 내력인 건 어쩔 수 없죠.”
“사실 닌자인 거 아니야?”
아카시가 옆에서 나란히 가고있는 쿠로코에 농담을 던지자 그는 눈웃음을 살짝 지으며 그러니 조심하라고 장단을 맞춰주었다.
셋이서 나란히 집에 왔던 그날 밤. 치요를 재우자마자 거실에서 아카시에게 어떤 책을 보여주었다. 탁자위에 올려진 책은 서양식으로 제본되어 있었고 두께는 얇았다. 좀 더 다가가 제목을 보니 'Billedbog uden Billeder' 글자밑에 picture book without pictures라고 작게 적혀있었다.
“그림없는 그림책?”
“책 제목이 그거인가요? 서양의 유명한 동화작가가 쓴 책이랍니다. 전에 찾아온 역관에게 부탁해서 잠깐 빌렸습니다.”
그의 말에 아카시는 고개를 끄덕이고 책을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표지 아래있던 표제지에는 Hans Christian Andersen라고 작가 이름이 적혀있었다. 동화작가로서 안데르센이란 이름은 그도 들은 본 적이 있었다. 그래도 실제로 그의 책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 보는 외국서적은 혹시나하는 마음에 검사 하는 게 본인의 일 중에 하나인지라 아카시가 주의 깊게 본편을 읽어가는 중에 옆에 있던 쿠로코는 그가 다 읽는 걸 기다리지 않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카시 군은 이 언어 잘하십니까?”
“버벅거리지 않을 정도로 읽고 쓰는 건 할 수 있어. 왜?”
“저도 이 언어를 배워보고 싶습니다.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안 보고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데 바쁜 아카시 군에게 매번 부탁하는 것도 미안하고요. 그러니 차라리 이런 날에 틈틈히 너에게 배워서 제대로 읽고 싶네요.”
동화책을 바라보고 있는 쿠로코의 옆모습을 보고 있던 아카시는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사관학교에서 받았던 교재 가져와줄게. 아직 있을지도 몰라.”
“감사합니다. 나중에 제대로 익히게 되면 이 언어의 책들을 번역할 수 있게 되겠지요.”
“쿠로코 씨의 본심은 그거네.”
살짝 웃으면서 내비치는 쿠로코의 본심에 역시나라고 생각했다.
그의 바람이 한 발자국 더 이루어 질 수 있게 아카시는 책의 맨 첫장을 다시 펴서 처음 글자에 손 끝을 갔다 댔다. 약속한 교재가 지금 없으니 우선 본문이라도 번역을 해주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쿠로코가 원하는 건 이 책의 내용일테니까.
아카시가 즉석에서 알려줄 걸 짐작했는지 그와 동시에 쿠로코가 공책과 책상 밑에 두고 있던 자신의 필묵함을 꺼냈다. 마침 읽어주려고 하는 아카시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한 그는 연적에 담은 물을 벼루에 뿌리고 서둘러 먹을 갈았다.
“왼손으로 쓰는 거 괜찮아? 손 놓고 있는게 더 좋지 않겠어?”
“아직은 손 놓고 있으면 네가 힘들잖아요. 그건 좀 무리고…….”
말을 흘리면서 골똘하게 생각하던 쿠로코는 좋은 꾀가 떠오른 모양인지 눈을 살짝 동그랗게 떴다. 그는 자신과 아카시의 유카타 소매를 걷어 최대한 상대방의 피부가 많이 닿게 팔짱을 끼었다. 쿠로코가 갑자기 가깝게 오자 놀라서 오히려 몸을 뒤로 빼고 그를 밀 뻔 했다.
“불쾌해도 참아주길 바랍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으니.”
“아니, 그렇지 않아. 좀 놀라서 그런거니까. 이제 시작해도 돼?”
물음에 쿠로코는 공책을 펴고 먹물을 묻힌 붓을 들어 대답했다.
아카시는 천천히 영문을 직역해주면서 글씨를 쓰는 쿠로코의 오른팔의 움직임에 맞추어서 왼팔을 움직였다. 쿠로코가 그에게 편안하게 있어도 된다고 했지만 아카시는 계속 쿠로코의 움직임에 맞추어 주었다.
그가 직역해주는 것을 세 장 이상 써내려가는 동안 말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두사람이 책에 집중하는 동안 밤은 깊어지고 촛불이 자작자작 타들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카시는 책을 읽고 있었던 거실 다다미 바닥에 누워있었다. 그것도 같이 책을 읽고 있던 쿠로코의 팔을 베고 있던 채로.
처음 눈 떴을 땐 멀쩡한 침실에 안 들어가고 왜 여기에서 자고 있는지 기억이 안 나지않아 멀뚱히 잠자고 있는 쿠로코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게, 동화책을 번역한 것에서 너무 열중한 나머지 두 사람은 동이 트기 직전까지 책을 붙잡고 있었다. 결국 직역해주는 아카시의 말이 꼬이고 그걸 받아 적고 있는 쿠로코의 글씨가 꼬불꼬불 되고 나서야 뒤로 쓰러지듯이 잠들어 버렸다. 이랬으니 잘 기억이 안 날 법했다.
고개를 돌려 마당에 연결 된 문의 살짝 열어둔 틈을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나 버린 듯 했다. 너무 늦잠을 잔 탓에 졸음은 가시지 않았지만 이제는 일어나야할 시간이었다.
아카시는 자기에게 팔 베개 해주고 있는 와중에도 다른 손을 잡아 준 쿠로코의 손을 살짝 들어 올리고 천천히 상체를 들었다. 작은 움직임에도 쿠로코는 금세 눈을 뜨고 따라 같이 일어났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응. 쿠로코 씨도 잘 잤어?”
주고 받은 아침 인사에 쿠로코는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따라 아카시도 같이 하품을 했는데 이리저리 뻗친 쿠로코의 머리가 신경 쓰여 저절로 손으로 머리를 다듬어 주었다.
생각해보니 자신의 안내자가 잠에서 방금 깨어난 모습을 본 건 거의 처음이었다. 그동안 쿠로코가 먼저 일어나 그가 깨어나기까지 기다리곤 했었다.
푹신한 요가 아닌 맨 다다미에서 자서 그런지 평소보다 몸이 뻐근했다. 한 팔로 기지개를 펴고 움츠리고 있던 몸을 움직이자 옆에 있는 쿠로코도 같이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팔 베개 해준 팔이 불편한 지 여러 번 어깨를 돌렸다.
“맨 바닥에서 잘 못자는 도련님에게 팔베개 해줬더니 몸이 천근만근이네요.”
“나이가 많아서 그런게 아니고?”
“왜 이러세요. 아직 팔팔할 때입니다.”
아카시의 농담에 쿠로코는 무시 말라고 받아쳤다. 의자에 앉아서 책이나 읽는 샌님에, 소심하고 차분하게 보여도 속으로는 장난끼가 많고 당돌한 면이 숨어있었다. 그래서 파수꾼과 안내자로 만나 1년 뒤 친해지기 시작 했을 때 신분 차가 있었음에도 쿠로코가 먼저 아카시에게 장난을 걸었다. 외동이었던 아카시는 타인에게 장난을 처음 당해봐서 당황했었지만 지금은 같이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연신 어깨를 두드리던 쿠로코가 아카시에게 뻐근한 어깨를 내밀고 안마를 부탁했다. 아카시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수 안마를 해주었다. 만약 부하들이나 다른 대장들이 아카시의 이런 모습을 보면 무척이나 놀랄 것이다.
주먹으로 두드리고 주물려주기도 했다. 그런 동안에 작은 방에서 두 사람이 늦게 일어난 덕분에 같이 늦잠을 잔 치요가 눈을 비비고 거실로 나왔다. 책이 펼쳐져 있고 문방사우도 정리하지 않은 거실에서 이리저리 뻗친 머리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자 놀랐다.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앉은 치요는 쿠로코와 아카시를 번갈아보더니 작은 손가락으로 볼을 가르켰다.
“둘 다 볼에 다다미 자국 났어요.”
치요의 말에 아카시와 쿠로코는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그 말을 들으니 이제야 광대와 관자놀이에 찍힌 다다미 자국이 보였다. 쿠로코는 아카시의 시선이 간 자신의 오른쪽 광대에 손을 대고 만져보더니 자국이 느껴져서 웃어버렸다.
“정말 꼴불견이네요.”
“그러네.”
아카시도 쿠로코를 따라 자신의 왼쪽 볼을 만지며 웃었다. 소소한 기억이 될 하루가 시작되었다.
'쿠농 > 장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흑적] 땅거미 내리는 저녁 5 (2) | 2014.08.19 |
---|---|
[흑적] 땅거미 내리는 저녁 4 (0) | 2014.07.15 |
[흑적] 땅거미 내리는 저녁 2 (0) | 2014.07.01 |
[흑적] 땅거미 내리는 저녁 1 (0) | 2014.06.24 |
[청흑] MAN IN THE EYES 4 (0) | 2014.06.16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