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적] 나비처럼 날아 5
5편입니다.
벌써 중반까지 왔습니다. 아마 이번 이야기는 좀 꽁냥꽁냥한 흑적을 써봤어요.
근데 우울해서 과연.....
아무튼 이번화도 재밌게 봐주세요.
이틀 날이 지나고 아카시가 돌아왔다.
쿠로코는 분위기를 보고 단번에 또 다른 아카시가 아니라 원래 아카시인 것을 알아보았다. 이틀만인데도 오래만에 보는 것 같아서 어서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 연습의 쉬는 시간에 아카시 옆에 앉았다. 힘든 연습 때문에 힘이 다 바닥나서 고개를 세운 무릎에 기댄 상태로 봤다. 그러자 아카시는 곤란한 눈치로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보지 말라고 했잖아.”
“오랜만이라서 그래요. 좀 더 보게 해주세요.”
“결석도 안 했고 부활동도 안 빠진 걸로 알고 있어.”
“그랑 너랑 같습니까?”
다른 사람이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아카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재빨리 표정을 바로 잡았다. 그는 쿠로코에게 시선을 떼고 물을 마셨다. 쿠로코는 동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의 옆모습을 향해 말했다.
“저는 그보다 네가 더 좋아요.”
아카시는 쿠로코의 말에 아무런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붉은색 머리카락에 가려진 귓가가 빨개졌다. 그 것을 보니 덩달아 쿠로코도 얼굴이 달아올라서 고개를 돌리고 화제를 돌렸다.
“어제는 그냥 갔으니 오늘은 남아서 연습할 거에요?”
“하고 싶어도 못해. 분명 오늘도 올 거야.”
“그럼 다른 곳에서 해요. 제가 잘 아는 데가 있는데 좀 숨겨져 있어요.”
숨겨져 있다는 말에 솔깃해 아카시는 쿠로코를 슬쩍 보았다. 호기심에 반짝이는 고양이 눈을 보고 쿠로코는 무릎 위에 있는 팔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 날부터 두 사람은 이번에는 아카시 가의 사람이 찾지 못하도록 학교 밖에 돌아다녔다. 농구 연습은 쿠로코가 말한 대로 동산의 산책길 옆에 있는 공터를 이용했다.
환한 체육관에 비해 하나 밖에 없는 가로등은 어두웠고 바닥은 고르지 못해서 공 표면이 빨리 닳고 부상의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도 두 사람은 도망자의 마음으로 작은 스릴을 즐기고 있었다.
오래된 골대를 향해 공을 던지던 쿠로코는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아카시에게 말했다.
“아카시 군, 이제부터 이름으로 불러도 될까요?”
그 말에 아카시는 잠시 대답이 없다가 또 다른 아카시 때문이냐고 물었다. 그 말에 쿠로코를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헛갈리고, 이 참에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서요.”
“나는 계속 성으로 부를 건데 괜찮아?”
아카시가 그렇게 말해도 쿠로코는 그에게 웃었다.
“상관없어요. 세이쥬로 군.”
농구에 비해 공부는 어두운 곳에서 할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도서관으로 갔다. 쿠로코의 집으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집주소가 알려진 마당에 집은 절대 안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찾기 쉬운 도서관에 갔으나 두 사람은 책상이 아닌 서가 사이에 들어가 숨어서 공부하기로 한 묘수를 생각했다.
쿠로코가 자주 가는 도서관의 지하 서고에서 그와 아카시는 6류 산업의 640번대, 660번대 서가 사이에 들어갔다. 쿠로코가 장담하기로 그 곳은 오후에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큰 서가에 빛이 가려져서 어두운 곳이었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안심이 되었다. 두 사람은 그 더운 곳에서도 서로 독서용 작은 전등을 가져와 공부했다. 두 사람이 서가에 숨어 있는 동안 몇몇 사람들이 지하로 내려왔으나 확실히 두 사람이 있는 서가 안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세상에서 떨어져 나와 둘만 다른 세계로 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쿠로코가 숙제를 하고 있는 사이 개인 공부를 끝낸 아카시는 앞에 있는 축산업 관련 서가에 있는 책을 꺼내보았다. 그가 무슨 책을 꺼냈나 싶어 고개를 들자 옆에 있는 아카시가 가벼운 감탄사를 발했다.
“쿠로코, 여기. 이 안에 책 있어.”
그의 말에 책이 꽂혀 있는 곳을 자세히 보니 아주 어두운 곳에서 희미하게 책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책을 숨겨놓은 모양이네요. 가끔 대출 못하는 사람이 혼자 읽겠다고 숨겨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쿠로코는 안에 있는 책을 꺼내기 위해 다른 책도 꺼냈다. 안에 있는 책은 제법 커서 책을 다섯 권 정도 꺼내야 했다. 가득한 책 먼지 때문에 숨을 참고 서가 안 쪽으로 손을 뻗어서 잡았다. 무거운 책을 힘들게 꺼내보니 제목이 ‘에로티카’ 였다.
여자의 맨 등과 엉덩이가 훤히 드러나는 표지를 보고 당황했다. 옆에서 같이 본 아카시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창 성에 관심이 있는 중학생 남자애로서 책 안에 있는 내용들이 매우 궁금했지만 혹시나 책 내용들 때문에 아카시의 상처를 건들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보지 않기로 했다.
어색한 동작으로 책을 다시 숨기려고 하자 옆에 있던 아카시가 먼저 보자고 했다. 놀라서 그를 보니 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분위기를 조금 어색해졌다. 쿠로코가 빤히 보자 그는 헛기침을 했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 그럼 펴볼게요.”
경직된 손으로 두꺼운 책을 폈다. 하드커버 표지 안에는 그림과 사진 작품뿐만 아니라 에로틱한 문학에서 인용한 문구도 있었다. 한눈에 봐도 얼굴을 달아 오를 만한 적나라한 표현에 주위를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책에 집중했다. 천국을 배경으로 남녀가 같이 붙어 있는 사진에서는 눈을 뗄 수 없었다. 갑자기 옆에 있는 아카시가 환영처럼 아른거렸다.
그러다 누가 지하서고로 내려오는 소리에 황급히 책을 덮었다. 완전히 놀라서 마구 뛰는 심장을 쉽게 진정시키지 못해서 아플 정도였다. 숨을 죽이고 아카시를 보자 그도 눈을 크게 뜨고 쿠로코를 마주보았다. 동그란 붉은 눈동자에서 그의 뛰는 심장을 느낄 수 있었다.
지하서고에 내려 온 사람은 쿠로코와 아카시가 있는 곳까지 오지 않았다. 계단 근처에 있는 3류 사회과학 쪽 서가만 돌다가 바로 1층으로 올라갔다. 그 사람이 완전히 올라가고 나서 쿠로코는 바짝 긴장해서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이렇게 간이 졸려서 더 이상 이 책은 보기 힘들었다.
“다시 넣을게요.”
“으응, 그래.”
어색한 마음에 다시 책을 숨겨두고 아카시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쿠로코처럼 얼굴이 달아오른 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했다. 괴로운 표정을 짓다가 찡그린 미간을 풀고 흥분한 듯한 표정을 짓기를 반복했다. 성적인 자극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를 보니 미안해져서 그를 보지도 못하고 재빨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세이쥬로 군. 역시 괜히 봤죠? 이제 집으로 갈까요?”
“아니.”
대화가 끝나자 두 사람 사이에선 전보다 더 무거운 어색함이 감돌았다. 그 무게에 몸이 짓눌려서 괴로울 지경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 데 자꾸만 책에서 봤던 거랑 아카시가 당했던 모습이 겹쳐서 떠올랐다. 죄책감에 목이 막혀왔다. 그때 아카시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미안해 할 필요 없어. 이건 자연스러운 거야. 우리 나이 때 그런 호기심은 어쩔 수 없잖아.”
애써 침착하게 말하려는 그에게 쿠로코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런데 저는 보면서 너를 생각하고 말아서......정말 죄송합니다.”
그러자 아카시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이 없는 그의 얼굴 볼 용기가 없어서 쿠로코는 고개를 고정하고 앞만 보았다. 역시 털어놓지 말 것 그랬다. 이대로 아카시가 혐오하면 어쩌나 걱정되기도 하고, 그의 상처를 건든 아닐까 하고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스쳐지 나갔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서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그의 예상과 달리 아카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한 단어씩 꺼냈다.
“나라도 좋다면, 그렇다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너라면 괜찮을 거야. 아니 괜찮아.”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쿠로코는 황급히 그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아카시는 잠시 시선을 돌리다가 바로 마주보았다. 깜박이지 않는 그의 눈에서 단단한 각오가 전해졌다. 그에게 정말로 괜찮나고 물어봐야 하는데 이 기회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턱밑까지 올라 온 그 말을 꾹 눌러 담았다. 그대신 다른 말이 나왔다.
“그,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세이쥬로 군.”
그렇게 말하면서 아카시에게 다가갔다. 둘 다 무릎 세우고 앉아 있어서 어떤 자세를 해야 하는지 잠시 헛갈렸다. 결국 무릎 꿇는 자세로 바꾸었다. 그대로 앉아 있는 아카시에 비해 앉은 키가 상대적으로 높아져서 그를 내려보는 상태가 되었다.
쿠로코는 갈 곳 없는 두 손을 어찌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얼굴을 잡아도 되는 건지. 그러나 지금 그러기엔 너무 부끄러워서 그나마 만만한 팔뚝을 잡았다. 그리고 점점 아카시에게 다가갔다. 쿠로코를 올려다보고 있던 아카시는 그가 가까이 다가올 때 두 눈을 꼭 감았다. 부끄러움이 가득한 그 얼굴이 너무 예뻐 보였다.
밖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신경 쓰면서 고개를 돌린 쿠로코는 입술을 맞추기 직전에 눈을 감았다.
어두컴컴한 검은색 속에서 쿠로코는 꾹 닿은 아카시의 입술을 느꼈다. 입술 가장 위에 각질이 조금 일어나서 조금 까끌했지만 상상보다 부드럽고 폭신해서 놀랬다. 부드러움에 취해 조금 비벼보니 아래에 있는 아카시가 움찔거렸다. 덩달아 쿠로코도 움찔거렸다. 아카시와 입만 맞추는 건데도 쿠로코는 아까보다 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맞닿은 입술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온기와 냄새와 감촉이 검은색 일색인 시야를 형형색색으로 만들었다.
이 상황이 너무 부끄러워서 어찌할지도 모르는 채 입만 맞추고 있는 동안 밑에 있는 아카시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제야 쿠로코는 자신도 숨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입술을 뗐다. 두 사람은 동시에 숨소리를 내면서 급하게 숨쉬었다.
첫 입맞춤이 끝나고 아카시의 얼굴을 보니 더 부끄러워졌다. 시선도 못 맞추고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리는 술에 취한 듯 어지러웠고 온몸은 한 여름처럼 더웠다. 그리고 빠르게 뛰는 심장이 아팠다. 그래도 너무 좋았다. 그냥 다 좋아서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움과 기쁨이 가득한 지하서고에 누군가가 내려왔다. 내려오자마자 서가 사이를 살펴보는 것을 보아 그 사람은 사서였고 지금은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인 모양이었다. 기뻐하는 마음도 잠시 쿠로코와 아카시는 서둘러 짐을 챙기고 서가 사이를 나왔다. 자신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여자분을 뒤로하고 어서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그게 무척 재미있어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날 밤, 방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잠 자기 직전에 쿠로코의 머릿속에선 도서관에서 본 그 책이 자꾸 떠올랐다. 눈을 뗄 수 없었던 적나라한 사진 작품이랑 급하게 읽었던 문학작품은 인용한 부분이 계속 맴돌아서 오히려 괴로웠다. 몸이 저절로 이상하게 변하는 것을 느끼면서 곤란해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두 눈을 감았던 아카시의 얼굴을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입술로 느꼈던 감촉에 심장이 다시 빠르게 두근거렸다. 하는 수 없이 손을 아래에 대면서 쿠로코는 머릿속에 있는 아카시에게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사과하고 사과했다,
결국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한 바람에 쿠로코는 퀭한 눈으로 아침연습에 참여했다. 과연 오늘을 안 쓰러지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피곤하고 인사하기 귀찮아서 부원들 몰래 들어와 옷 갈아 입던 중 아카시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가 어디 가는 걸까 궁금해서 서둘러 갈아 입으니 옆에 있던 아오미네가 쿠로코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나오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그를 내버려두고 황급히 부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체육관 뒤편으로 가는 아카시가 보여서 냉큼 따라갔다.
뒤편에는 방금 온 아카시 밖에 없었다. 그곳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바로 뒤를 돌아봐 따라오는 쿠로코를 발견했다. 아카시는 살며시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따라 올 거라 믿었어. 쿠로코.”
“미끼였습니까? 좀 치사하…….”
쑥스러운 마음으로 대답하고 있었는데 ‘쿠로코’라고 말한 아카시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랐다. 장난이 가미 된 입 꼬리가 딱 누군가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잠깐, 설마 아카시 군 입니까?”
얼굴을 굳히고 물어보자 또 다른 아카시는 놀라다가 아쉬운 듯이 웃었다. 붉고 노란 눈동자를 반짝인 채로.
“테츠야, 벌써 알아버리면 어떡해. 좀 더 속이려고 했는데.”
“그래서 날 유인하러 여기까지 온 거라는 거죠? 안에서 하다간 제가 정체를 밝힐까 봐요.”
쿠로코가 나름 추리하자 또 다른 아카시는 대충 맞았다고 대답했다. 또다시 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꼴이 되니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또 그가 나왔다는 사실에 불안해졌다.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또 다른 아카시는 걱정말라며 사정을 설명했다.
“걔가 아침에 일어나지 않길래 대신 일어나서 등교했어.”
“어제 세이쥬로 군이 뭐했는데요?”
“그건 비밀.”
비밀이라는 말에 쿠로코가 다시 의심하자 또 다른 아카시는 절대 생각하는 거 아니라고 못박아 두었다. 장난스러운 어투에서 정직함이 느껴져서 그를 믿기로 했다. 어떤 식이든 또 다른 아카시를 계속 만나니 그 또한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다시 생각했다.
“그나저나, 어제 도서관에서 뽀뽀만 하는 건 뭐야. 어제 자위했을 테니 딱히 순진한 것도 아니잖아.”
어젯밤에 남몰래 했던 일을 알아챈 그의 말에 쿠로코는 화들짝 놀랐다. 아무리 혜안이 있다고 해도 보는 것만으로 그런 걸도 맞추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건 그렇고 도서관에서 있던 둘 만의 일을 제3자가 끄집어 내는 건 반갑지 않았다.
“그건 너랑 상관없잖아요. 제가 하고 싶었던 대로 한 것뿐입니다.”
“할거면 적어도 이렇게라도 해야지.”
그렇게 말한 아카시는 한 손으로 쿠로코의 얼굴을 잡았다. 놀라서 얼굴을 잡은 그의 손에 눈이 돌아갈 때 또 다른 아카시는 쿠로코에게 입을 맞추었다. 갑자기 닿은 감촉에 놀란 쿠로코가 몸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그는 다른 손으로 쿠로코의 목을 잡고 놓지 않았다.
당황한 쿠로코가 소리 내려고 하자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까지 집어넣었다. 그의 혀가 자신의 혀에 닿을때 소름이 돋아 온몸이 굳어졌다. 또 다른 아카시는 쿠로코의 반응을 즐기면서 혀를 움직여 그를 자극했다. 처음 겪은 아찔함에 다리의 힘마저 잃어버릴 것 같았다.
정신이 아득해질 찰나 이쪽으로 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고,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또 다른 아카시를 밀었다. 순순히 떨어져 간 그를 노려보면서 쿠로코는 팔로 입술을 닦았다.
“그만하세요! 여긴 학교에요.”
다른 사람들이 최대한 듣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화냈으나 또 다른 아카시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얼굴이 빨개진 쿠로코와 달리 그는 태연한 얼굴로 오히려 타박했다.
“이렇게 못해서 만족 시킬 수 있겠어?”
그 말을 들은 쿠로코는 황당해서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경험은 없어도 꼴에 자존심은 있는데 그걸 건드니 더욱 화가 나고 경쟁심도 생겼다. 그는 다음에는 지지 않겠다는 식으로 맞받아쳤다.
“나중에 내가 더 잘 할거니까 그때 가서 두고 봅시다. 반드시 가만히 안 둘 겁니다.”
쿠로코가 그렇게 말하자 또 다른 아카시가 소리를 죽이면서 웃었다. 뭐가 그리 웃기는지 그는 아예 허리까지 굽히고 있었다. 딱히 그가 이렇게 웃을 만한 얘기도 하지 않았다. 뭔가 나름 호기롭게 한 말을 비웃는 것 같아 거기에 동참할 마음이 없어졌다. 또 다른 아카시는 한동안 웃다가 겨우 진정시키고 뚱해진 쿠로코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근데, 테츠야 너 너무 재미있어.”
“재미있으라고 한 말 아닙니다.”
“알아. 아는데, 키스 가지고 두고 보자고 하는 게 이상하잖아. 정말 나한테도 할 생각인 거야?”
생각해보니 도발한 또 다른 아카시에게 키스로 갚아준다는 말이 되었다. 못한다는 말 때문에 쓸데없는 자존심이 발동해서 무심코 나온 말이 부끄러워졌다. 또 다른 아카시는 체육관 안에서 나는 소리를 곰곰이 듣다가 자신을 찾는 소리에 먼저 입구로 갔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는 쿠로코를 지나치면서 넌지시 말했다.
“다음에 기대할게.”
그렇게 말한 또 다른 아카시는 얼굴을 살짝 붉히고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