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농/단편
[흑녹/합작] 대나무가 우거진 숲
김아오
2014. 4. 4. 11:45
작성일:2013-08-25
대학도 산림 관련 학과를 다녀서 일본에서 대나무 숲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주말이나 방학때마다 알아둔 대나무 숲들을 찾아가 보았지만 허탕을 치던 날이 늘어났다. 오죽하면 어머니도 대나무만 찾냐고 혼내실 정도였으니 할말은 다했다. 하지만 매번 이유를 묻는 어머니에게 찾는 사람이 있어서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찾는 미도리마 신타로는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만난 초록색 뱀의 현신이었다.
우리 집안 남자들은 대체로 약하게 태어났다고 한다.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할아버지는 지병으로 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나의 아버지도 젊었을 때부터 몸이 약해 병원신세를 지시다가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나 또한 몸이 약하게 태어났지만 강인한 할머니가 손자만큼은 튼튼하게 키워야겠다고 4학년 여름방학때 친척집에 맡겼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간 깊은 산골에 자리잡은 친척집은 살모사를 기르는 뱀농장이었다.
그곳에서 먹기도 싫은 살모사구이와 탕을 억지로 먹는 생활을 하는 중에 친척부부에게 뱀을 잡아다가 파는 땅꾼이 찾아왔다. 뱀과 익숙해지기 위해 뱀농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내가 본 그는 괴상한 사람이었다. 구부정한 허리와 검게 탄 팔에는 상처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황달이 낀 눈빛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가지고 온 뱀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거뭇튀튀한 살모사와 달리 유리장에 갖힌 그 뱀은 선명한 초록색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는 초록색 눈빛은 날카로운 분노를 띠고 있었다. 그때 나는 유리장 위에 앉아있는 그 남자를 보았다. 검은 유카타를 입고 뱀과 같은 초록색 머리를 지니고 있는 그 남자는 나를 보고 꺼지라고 소리쳤다. 그 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분노를 담은 그의 눈이 유난히 아름다웠다는 것 뿐이었다.
이번에는 카가와 현에 있는 대나무 숲에가 가기로 했다. 시코쿠까지 비행기로 가면 되지만 시간대비 비싼 감이 있어 그냥 열차를 타기로 했다. 어차피 취업준비생에게 남아도는 건 시간이었다. 물론 짐싸고 있을 때 어머니한테 이미 잔소리 듣고 왔지만 매번 이번만이라고 말하고 나왔다. 빠르게 지나가는 신칸센에 몸을 기대고 바라보는 창밖에는 숲들만 보였다. 그러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 곳을 지나갔다. 어쩌면 저기에 미도리마 그 사람의 고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다.
벌써 1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사진도 없는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어려워서 기억에 남는 건 대나무과 같은 푸른색 머리와 나를 봐준 그 아름다운 눈 뿐.
처음 본 아름다운 남자에게 반했던 나는 그렇게 가기 싫어했던 뱀농장을 매일매일 갔다. 그 뱀이 위험했는지 내가 초록색 뱀을 보고 싶어하자 친척부부는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쾌활하신 친척 아저씨가 이제 괜찮을거라고 그 뱀이 있는 헛간으로 데려가 주셨다. 아마도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 모양이지만 헛간에 들어가자마자 나에겐 유리장에 위에 앉아있는 그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팔짱을 낀 채 나와 친척부부를 고집스럽게 보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그 남자를 다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
남자는 매일매일 찾아오는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날 피할때마다 그의 시선에 가서 인사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목석같은 그에게 나는 실망을 하고 그냥 헛간에 앉아서 그 남자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릴 때 나도 꽤 고집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또 며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드디어 남자가 나를 가르키며 이리 오라고 했다. 그게 너무 기뻤지만 남자가 그동안 날 거부한 걸 떠올라서 처음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자 그가 나즈막한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걱정마라. 너는 해치지 않는다. 약속하겠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 내가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는 나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다. 내가 정중하게 한자도 알려주니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좋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니 하늘을 날아갈 거 같았다. 그런 내 모습이 웃겼는지 그는 살짝 웃고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나의 이름은 미도리마 신타로다.'
그 날 나와 미도리마 신타로는 처음으로 마음이 닿았다.
얘기를 들었지만 이렇게 우동집이 많을 줄 몰랐다. 카가와 현에 갈거라고 하니 어머니가 돌아오는 길에 사누키 우동 생면을 사오라고 한 게 이제야 기억이 났다. 노을이 지고 있는 해변가를 보면서 나는 예약해둔 숙소에 짐을 놔두고 시끌접적한 거리에 나왔다. 그래도 우동의 고장에 왔으니 맛집에 가자고 다짐하면 우동집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유리장에 갖히는 동안 무엇을 먹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척부부들은 살모사 먹이로 흰쥐를 주었다. 그렇다면 그에게도 흰쥐를 주었을까? 한번도 그가 무언가를 먹었던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애써 그렇지 않을거라고 믿었다.
쫄깃한 우동을 먹고 나오니 어느 새 거리는 어두워져 네온사인만 보였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 사이에서 보이는 초록색에 나는 저절로 미도리마 신타로를 생각했다.
이름답게 초록색으로 아름다운 남자. 내일은 큐라무라 산책로에 있는 대나무 숲에 가기로 했다. 카가와 현에도 대나무 숲이 많다고 하니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매번 이렇게 기대한다. 이번에는, 여기에는 미도리마 씨, 그 사람이 있을 거라고.
나에게 마음을 연 미도리마 씨는 신나서 평소보다 조잘되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왜 이곳에 왔냐고 묻는 말에 나는 머뭇거리면서 몸이 약해서 왔다고 하니까 그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여기에서 뱀을 먹은 것을 알았을 것이다. 난 그게 너무 부끄러웠고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말없이 내 머리를 쓰담아 주었다. 항상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나에겐 제일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각자 살던 곳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도쿄라는 도시에서 왔다고 하니까 미도리마 씨는 내 이마에 길고 아름다운 손을 댔다. 그때 내 눈 앞에는 푸른색이 가득한 대나무 숲이 펼쳐졌다. 대나무 밑에는 노란 달맞이 꽃이 피어있었다. 대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빛나는 그 숲에 나는 매료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온 사람이라 이렇게 아름다웠구나라고 문득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게 고향을 보여주고 난 미도리마 씨의 눈빛에 나는 움찔거렸다. 항상 자신감이 있고 날카롭다고 생각했던 그의 눈이 그토록 슬퍼보일 줄 몰랐다. 그는 울지 않았지만 내가 울고 싶어졌다.
맥주를 사들고 숙소에 들어온 나는 그냥 아무렇게나 침대에 누워버렸다. 기대감에 잠이 오지 않지만 아침일찍 나가야 하니 비닐봉투에 있는 맥주를 따서 그 자리에서 마셔버렸다. 오늘도 떠올라 본다. 미도리마 씨의 고향을, 내가 찾아야할 곳을.
카가와 현에 있다는 모든 대나무 숲을 찾아가 보았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다. 비슷한 곳을 찾는데 보이지 않아서 혹시나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하고 인적이 드문 깊은 곳까지 갔었다. 잔가시에 피부가 긁히고 험한 길을 걸어다니는 바람에 발목도 삐긋했다. 욱씬거리는 발목을 잡고 삐죽삐죽 솟아난 대나무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온건 싸늘한 메아리였다. 결국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숙소로 돌아왔다. 항상 매번있는 실망감이지만 몸이 아프니 렌터카를 운전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고말았다. 이번에 실패하면 어머니의 말씀대로 구직활동에 전념해야한다. 그러면 다시 그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길까. 차라리 포기하면 편할텐데.
제대로 씻지못하고 잠에 골아떯어진 날, 나는 잊고 싶은 그때를 꿈으로 꾸었다.
신나게 뱀농장을 가던 그날, 뱀농장에 손님이 왔는데 미도리마 씨를 가지고 온 그 땅꾼이었다. 땅꾼의 뒷모습에 놀란 나는 침착하게 소리내지 않고 헛간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미도리마 씨에게 땅꾼이 왔다는 것을 숨기고 불안한 마음으로 미도리마 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잠시 화장실가려고 나왔을 때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는 땅꾼이 나의 팔을 잡고 잡아당겼다. 그는 황달끼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무섭게 노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그가 보이는 거지?'
땅꾼의 말에 그가 원하는 사람이 미도리마 씨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잡힌 팔을 힘주어 빼내려고 했지만 어린애가 성인은 이길 수 없었다.
'어서 말해, 너는 그 뱀의 현신이 보이는 거야. 그 뱀이 영물이 맞는 거라고.'
그 당시 내가 알 수 없는 말을 마구 내뱉는 그가 너무 무서웠다. 그에게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 나는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화장실도 가는 것도 까먹고 나는 친척 아주머니 품에 달려가 안겼다. 아주머니가 놀란 나를 달래줄 동안 나는 미도리마 씨가 혼자 있는 헛간을 보았다. 다행히 땅꾼은 헛간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뱀들을 보려갔다. 어쩌면 나는 거기서 친척 아주머니에게 가야할 게 아니라 미도리마 씨를 지키려 가야 했을 지도 모른다.
맥주를 사들고 숙소에 들어온 나는 그냥 아무렇게나 침대에 누워버렸다. 기대감에 잠이 오지 않지만 아침일찍 나가야 하니 비닐봉투에 있는 맥주를 따서 그 자리에서 마셔버렸다. 오늘도 떠올라 본다. 미도리마 씨의 고향을, 내가 찾아야할 곳을.
카가와 현에 있다는 모든 대나무 숲을 찾아가 보았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다. 비슷한 곳을 찾는데 보이지 않아서 혹시나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하고 인적이 드문 깊은 곳까지 갔었다. 잔가시에 피부가 긁히고 험한 길을 걸어다니는 바람에 발목도 삐긋했다. 욱씬거리는 발목을 잡고 삐죽삐죽 솟아난 대나무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온건 싸늘한 메아리였다. 결국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숙소로 돌아왔다. 항상 매번있는 실망감이지만 몸이 아프니 렌터카를 운전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고말았다. 이번에 실패하면 어머니의 말씀대로 구직활동에 전념해야한다. 그러면 다시 그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길까. 차라리 포기하면 편할텐데.
제대로 씻지못하고 잠에 골아떯어진 날, 나는 잊고 싶은 그때를 꿈으로 꾸었다.
신나게 뱀농장을 가던 그날, 뱀농장에 손님이 왔는데 미도리마 씨를 가지고 온 그 땅꾼이었다. 땅꾼의 뒷모습에 놀란 나는 침착하게 소리내지 않고 헛간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미도리마 씨에게 땅꾼이 왔다는 것을 숨기고 불안한 마음으로 미도리마 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잠시 화장실가려고 나왔을 때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는 땅꾼이 나의 팔을 잡고 잡아당겼다. 그는 황달끼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무섭게 노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그가 보이는 거지?'
땅꾼의 말에 그가 원하는 사람이 미도리마 씨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잡힌 팔을 힘주어 빼내려고 했지만 어린애가 성인은 이길 수 없었다.
'어서 말해, 너는 그 뱀의 현신이 보이는 거야. 그 뱀이 영물이 맞는 거라고.'
그 당시 내가 알 수 없는 말을 마구 내뱉는 그가 너무 무서웠다. 그에게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 나는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화장실도 가는 것도 까먹고 나는 친척 아주머니 품에 달려가 안겼다. 아주머니가 놀란 나를 달래줄 동안 나는 미도리마 씨가 혼자 있는 헛간을 보았다. 다행히 땅꾼은 헛간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뱀들을 보려갔다. 어쩌면 나는 거기서 친척 아주머니에게 가야할 게 아니라 미도리마 씨를 지키려 가야 했을 지도 모른다.
카가와 현을 떠나기 전날 이곳 주민에게 버려진 대나무 숲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있는 대나무 숲들은 다 정비를 해서 많이 가꿔진 곳이라고 했다. 그중에 아직도 다듬어지 않는 대나무 숲이 많다고 하는 데 그 주민이 알려준 곳이 그런 대나무 숲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정말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그 곳에 갔다. 산의 입구에서 위험하다는 경고판이 보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대나무 숲은 산에서도 좀 깊은 곳에 있었다. 다른 나무들 때문에 그늘진 대나무 숲은 어두컴컴했고 죽은 대나무들이 이리저리 쓰러져 있어서 위험해보였다. 아직 다 낳지 않는 발목이 걱정되었지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에 나는 쓰러진 대나무를 넘어 그나마 산책길로 보이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미도리마 씨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그 땅꾼과 친척집에 돌아온 나는 어떻게는 그를 피하고 다녔다. 저녁을 서둘러 먹고 방으로 들어가 숨어있었는데 열어둔 창문 밖에서 친척아저씨와 그 땅꾼이 뭐라고 대화하는 게 들렸다. 그의 목소리조차 듣는 것도 싫었던 나는 이불로 귀를 막으려고 했지만 그들의 대화에서 초록색 뱀을 살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버리고 말았다. 뱀들에게 팔린다는 건 먹힌다는 얘기. 그동안 내가 먹어온 뱀들을 떠오르면서 방을 뛰쳐나가 친척 부부에게 아무말도 없이 뱀농장으로 달려갔다.
친척부부에서 뱀농장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어서 나는 한 시간이 넘어서야 뱀농장에 도착했대. 다행히 친척부부와 그 땅꾼이 없다는 것을 본 나는 곧장 헛간으로 갔다. 헛간의 전등을 켜자 유리장 위에 앉아 있던 미도리마 씨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왜 이 시간에 왔냐고 묻는 그의 말에 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유리장을 열려고 했다. 나의 어깨를 잡고 진정시키려는 그에게 나는 울면서 이렇게 대답했던 거 같다.
'내일 미도리마 씨가 죽을지도 몰라요. 어서 여기서 벗어나야 돼요.'
그러자 미도리마 씨는 말없이 심각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때 악을 쓰고 유리장을 잠그고 있는 자물쇠를 잡아당겼다. 이대로 미도리마 씨를 죽게 할 수 없었다.
'그만! 쿠로코, 지금 손이 많이 상했다는 것이다. 이제 안해도 된다.'
'싫어요! 미도리마 씨는 제가 살릴거야!'
미도리마 씨 말대로 나의 손은 많이 상해있었다. 자물쇠를 잡아당기는 걸로는 되지 않는 걸 겨우 깨달은 나는 유리장을 깨트릴 것을 찾으러 헛간 밖으로 나갔다.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나온 밖에서 나는 멀리서 뱀농장으로 오늘 친척 아저씨의 차를 발견했다.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짱돌을 들고 다시 헛간으로 들어갔다.
돌을 던지면 유리장을 깨트릴 수 있다. 나는 미도리마 씨에게 조심하라고 말하고 단번에 돌을 유리장으로 던졌다. 역시 유리장은 쉽게 깨졌고 파편에 미도리마 씨도 다치지 않았다. 서둘러 미도리마 씨를 꺼낸 나는 그의 현신도 놓치지 않고 그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밖으로 나오니 이미 안으로 들어온 친척아저씨의 차가 보였고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친척 아저씨가 소리치며 나를 불렀다. 나는 그 소리도 들은 체도 안하고 미도리마 씨의 손을 꼭 잡고 수풀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두운 숲속을 미친 듯이 뛰어갈 때처럼 지금도 목적지 없이 가는 게 힘들었다. 그때는 그래도 미도리마 씨와 같이 있어서 무섭지는 않았다. 혼자서 이 숲속을 헤매는 나는 어떠한가. 그를 찾지 못하는 걸 두려워하는 걸까. 나는 다시 쓰러진 대나무를 넘어갔고 그 앞에서 노란 달맞이 꽃을 보았다.
그날 미도리마 씨의 손을 꼭 잡고 어두운 수풀속을 어떻게 뛰어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어린 아이이었던 나는 천척 아저씨와 땅꾼에게 제법 따라 잡힌 거 같았다. 난 초조한 마음에 울면서 마구 뛰어갔는데 그때까지 말없이 따라오던 미도리마 씨가 날 부르더니 갑자기 나의 팔을 물어버렸다. 날카로운 그의 이빨이 연약한 살을 꿰뚫은 아픔에 이미 힘이 풀려버린 다리에 더 이상에 힘을 주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팔에서 그렇게 피가 많이 나는 건 처음 보았다. 그리고 피부 안을 태우는 고통에 더 아팠던 거 같았다. 나의 팔을 문 미도리마 씨는 나보다 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안아주고 사라졌다. 나를 쫓아온 친척 아저씨와 땅꾼은 쓰러진 나를 보고 서둘러 일으켰고 내 팔에 난 상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땅꾼은 나를 보고도 미도리마 씨를 찾으러 수풀 속으로 갔지만 친척 아저씨는 나를 안아 들고 병원으로 달려가셨다.
병원에 입원한 나는 이틀이 지나고 깨어났다고 한다. 친척 아저씨는 나를 보며 미도리마 씨를 욕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점점 많아지는 달맞이 꽃을 따라 가니 너무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쩌면 정말 여기 일 지도 모른다. 미도리마 씨가 보여준 그 아름다운 곳이 여기는 아니었지만 감이라는 게 있다. 그렇게 걸어가고 있으니 어느새 대나무 숲의 끝까지 와버렸다. 여기까지 오도록 나는 미도리마 씨를 보지 못했다. 이상한 느낌에 다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갔다. 제발 이번에는 그를 보고 싶은 맘에 걸어가면서 소리쳤다.
"미도리마 씨! 제가 왔습……."
"시끄럽다. 쿠로코."
그 때 내 뒤에서 익숙하고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기쁜 마음에 뒤돌아 보니 어두컴컴했던 숲 속이 환해지고 어릴 때 보았던 그 풍경이 보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그토록 찾았던 미도리마 씨가 있었다. 그는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찾았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도록 날 찾으러 다닌 네가 이상한 것이다. 그나저나 팔은 괜찮은가."
나보고 그 시간동안 자신을 찾으러 다니는 걸 멍청하다고 타박 할 때는 언제고 미도리마 씨 본인은 내 팔을 문 것은 아직도 맘에 두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려서 생겼지만 이제는 희미해져 거의 잘 보이지 않는 상처를 보여주었다.
"미도리마 씨 덕분에 건강한 몸이 되었습니다."
물린 이후로 확실히 나는 잔병이 없어졌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미도리마 씨가 날 고쳐준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말했지만 미도리마 씨는 그래도 미안했는지 나에게 다가와 그 예쁜 손으로 나의 팔을 어루만졌다. 그런 그를 난 꽉 끌어 안았다.
드디어 나는 사랑했던 미도리마 씨는 다시 찾았다.